열미초당필기閱微草堂筆記 – 난양소하록灤陽消夏錄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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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부상서(戶部尙書) 조죽허(曹竹虛)가 해준 이야기다. 그의 집안 형이 흡현(歙縣)에서 양주(揚州)로 가던 길에 한 친구 집을 지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때는 한여름이었다. 친구가 그를 데리고 서재로 들어가 앉았는데, 서재가 탁 트이고 몹시 시원했다. 그래서 저녁에 그곳에서 자겠다고 하자 친구가 말했다.

“여기는 귀신이 있어서 밤에는 머물 수가 없네.”

조 아무개는 고집을 피우며 억지로 그곳에 머물렀다.

한밤중이 되자 어떤 물체가 문틈으로 꿈틀꿈틀 들어오는데, 종이처럼 아주 얇았다. 종이는 방 안으로 들어온 뒤 천천히 펼쳐지면서 사람 모습으로 변하는데, 다름 아닌 여자였다. 조 아무개가 전혀 두려워하지 않자 여자는 갑자기 머리를 풀어 헤치고 혀를 길게 빼물면서 목매달아 죽은 귀신 흉내를 냈다. [이 광경을 본] 조 아무개가 웃으면서 말했다.

“머리카락이 조금 흐트러져도 머리카락은 머리카락이고, 혀가 조금 길어도 혀는 혀이니, 두려울 게 뭐가 있다고!”

귀신은 [그 소리를 듣자] 갑자기 머리를 떼어내 책상 위에 놓았다. 조 아무개가 또 웃으면서 말했다.

“머리가 있어도 두려울까 말까 한데 하물며 머리가 없음에야!”

귀신은 더 이상 부릴 재주가 없어지자 갑자기 사라졌다.

조 아무개는 돌아오는 길에 다시 그 방에 묵었는데, 밤이 되자 문틈 사이에서 또 무엇인가가 꿈틀댔다. 귀신이 막 얼굴을 들이는데 조 아무개가 침을 뱉으며 소리쳤다.

“오라! 또 그 재수 없는 놈이로구나!”

그러자 귀신은 감히 들어오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혜중산(嵇中散)이 귀신을 만난 일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무릇 호랑이는 술 취한 사람을 잡아먹지 않는다고 하던데, 그것은 술 취한 사람이 두려움을 모르기 때문이다. 대개 두려움이 있으면 마음이 어지러워지고, 마음이 어지러우면 정신이 흐려진다. 정신이 흐려지면 귀신이 이 틈을 타고 들어온다. 두려움이 없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마음이 안정되면 정신이 온전하며, 정신이 온전하면 나쁜 기운이 감히 침범할 수 없다. 그래서 혜중산의 이 이야기를 기록한 책에서 “정신이 밝고 깨끗하면 귀신이 부끄러워서 달아난다.”고 말한 것이다.

曹司農竹虛言. 其族兄自歙往揚州, 途經友人家. 時盛夏, 延坐書屋, 甚軒爽. 暮欲下榻其中, 友人曰: “是有魅, 夜不可居.” 曹强居之. 夜半, 有物自門隙蠕蠕入, 薄如夾紙. 入室後, 漸開展作人形, 乃女子也. 曹殊不畏. 忽披髮吐舌, 作縊鬼狀. 曹笑曰: “猶是髮, 但稍亂, 猶是舌, 但稍長, 亦何足畏!” 忽自摘其首置案上. 曹又笑曰: “有首尙不足畏, 况無首耶!” 鬼技窮, 倏然滅. 及歸途再宿, 夜半門隙又蠕動. 甫露其首, 輒唾曰: “又此敗興物耶!” 竟不入. 此與嵇中散事相類. 夫虎不食醉人, 不知畏也. 大抵畏則心亂, 心亂則神渙. 神渙則鬼得乘之. 不畏則心定, 心定則神全, 神全則沴戾之氣不能干. 故記中散是事者, 稱: “神志湛然, 鬼慙而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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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곡강 선생이 해준 이야기이다.

묵암(黙庵) 선생이 조운(漕運)의 총책임을 맡고 있었을 때의 일이라고 했다. 그의 관내에 토신(土神)과 마신(馬神)을 모셔둔 사당 두 개가 있었는데, 단지 토신만이 짝이 있었다. 자신의 재주만을 믿고 교만하기 짝이 없는 묵암 선생의 어린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토신과 같은 털 복숭이 영감이 아름다운 부인을 데리고 있어서는 안 되고, 마신은 나이가 젊으니 짝이 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곧장 여신상을 마신의 사당에 옮겨 두었다. 잠시 뒤에 그는 어지러움을 느끼면서 넘어졌는데, 사람을 몰라보았다. 묵암선생이 그 이야기를 듣고 직접 가서 기도를 하며 여신상을 제자리에 옮겨두었더니, 아이가 비로소 깨어났다.

또 하간(河間) 학관(學官)의 관저에 토신이 있었는데, 역시 여신상과 함께 놓여 있었다. 한 선생이 학교에 여신상을 두어서는 안 된다며, 따로 작은 사당을 짓고 여신상을 그곳에다 옮겨 두었다. 토신이 그의 어린 아들에 빙의해 말했다.

“네가 주장하는 이치는 정당하지만, 네가 집을 넓히려는 사심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니, 나는 승복할 수 없다.”

그 선생은 당당하고 차분하게 옛 예의범절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토신이 그의 내심을 알아차리자 크게 놀랐다. 그리하여 그는 임기가 끝나자 더 이상 그곳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이 두 사건은 아주 흡사하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그 선생이 여신상을 옮긴 것은 그래도 예법에 따라 행한 일이지만, 묵암선생의 아들은 토신을 너무 얕잡아보고 한 일이기 때문에 더 심한 벌을 받았다.”

나는 묵암의 아들은 나이가 어려 호기로 한 짓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선생은 사심을 가지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겉으로는 정당한 이유를 대며 다른 사람의 말문을 막았다. 만약에 토신이 그의 속내를 폭로하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은 여전히 그가 제사의 일을 기록하는 전적을 바로 잡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춘추(春秋)》에서는 본심을 벌하는데, 이에 따르면 그 선생이 묵암의 어린 아들보다 심하게 벌을 받아야 한다.

董曲江言. 黙庵先生爲總漕時. 署有土神․馬神二祠, 惟土神有配. 其少子恃才兀傲, 謂土神于思老翁, 不應擁艶婦, 馬神年少, 正爲嘉耦, 徑移女像於馬神祠. 俄眩仆不知人. 黙庵先生聞其事, 親禱移還, 乃蘇.

又聞河間學署有土神, 亦配以女像. 有訓導謂黌宮不可塑婦人, 乃別建一小祠遷焉. 土神憑其幼孫語曰: “汝理雖正, 而心則私, 正欲廣汝宅耳, 吾不服也.” 訓導方侃侃談古禮, 猝中其隱, 大駭. 乃終任不敢居. 是實二事相近. 或曰: “訓導遷廟猶以禮, 董瀆神甚矣, 譴當重.” 余謂董少年放誕耳, 訓導內挾私心. 使己有利, 外假公義, 使人無詞. 微神發其陰謀, 人尙以爲能正祀典也. 《春秋》誅心, 訓導譴當重於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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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은 빠른 손놀림에 불과하다. 그러나 반운술 原註: 송나라 사람들의 책에는 ‘반운搬運’이 반般으로 되어 있다. 은 확실히 있다. 기억하기로는 어린 시절 외조부 장설봉(張雪峰) 선생 댁에 있었을 때, 한 술사(術士)가 술잔을 탁자 위에 놓고 손으로 한번 만지자, 술잔이 탁자 안으로 들어가 탁자와 같이 평평해졌다. 탁자 아래를 만져보았으나 잔 바닥이 만져지지 않았다. 잠시 뒤 다시 잔을 꺼냈을 때도 탁자는 원래 그대로였는데, 이것은 어쩌면 눈속임에 해당한다.

또 술사가 큰 접시에 담겨 있는 생선회를 공중에 던지자 생선회가 사라졌다. 그에게 회를 다시 가져오라고 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안됩니다. 생선회는 지금 서재에 있는 그림 상자의 서랍에 있으니, 공들께서 직접 가서 가져오십시오.”

이때 손님들은 너무 많고 서재에는 옛날 물건들이 많아 문을 꼭꼭 채워둔 상태였다. 또한 서랍은 2촌(寸)에 불과해 3~4촌이나 되는 그릇이 결코 들어갈 수 없었기에 술사의 말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열쇠를 가져와 문을 열고 확인해보았더니, 그릇은 작은 탁자 위에 놓여 있고, 그릇 안에는 다섯 개의 불수감나무 열매가 담겨져 있었다. 그것은 본래 불수감나무 열매가 담겨 있던 그릇인데, 생선회로 바뀐 채 서랍에 숨겨져 있으니, 이것이 반운술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론적으로 따지면 반운술이란 결코 있을 수 없지만, 실제로는 있으니 바로 이와 같은 예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론상으로도 있다. 여우와 산귀신이 사람의 물건을 훔쳐도 사람들은 괴이하게 생각하지 않고, 여우와 산귀신을 제압할 수 있는 사람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요괴를 제압할 수 있다면 요괴를 부릴 수 있고, 요괴가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물건을 훔칠 수도 있으니, 여기에 또 무슨 기이함이 있겠는가?

戲術, 皆手法捷耳. 然亦實有般運術. 宋人書搬運皆作般. 憶小時在外祖雪峰先生家, 一術士置杯酒於案, 擧掌拍之, 杯陷入案中, 口與案平. 然捫案下, 不見杯底. 少選取出, 案如故, 此或障目法也.

又擧魚膾一巨椀, 抛擲空中不見. 令其取回, 則曰: “不能矣. 在書室畫廚夾屜中, 公等自取耳.” 時以賓從雜遝, 書室多古器, 已嚴扃. 且夾屜高僅二寸, 椀高三四寸許, 斷不可入, 疑其妄. 姑呼鑰啓視, 則椀置案上, 換貯佛手五. 原貯佛手之盤, 乃換貯魚膾藏夾屜中, 是非般運術乎? 理所必無, 事所或有, 類如此. 然實亦理之所有. 狐怪山魈, 盜取人物不爲異, 能劾禁狐怪山魈者亦不爲異. 旣能劾禁, 卽可以役使, 旣能盜取人物, 卽可以代人盜取物, 夫又何異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