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거우챠오의 새벽달

왕퉁자오王统照(1897∼1957)
왕퉁자오는 자가 졘싼剑三이고, 필명은 시뤼息庐 또는 룽뤼容庐로 현대 작가이다. 산둥 성 주청诸城 사람으로 1924년 중궈대학中国大学 영문과를 졸업했다. 1918년 『서광曙光』을 주관했고, 1921년에는 정전둬郑振铎 선옌빙沈雁冰 등과 문학연구회를 발기했다. 일찍이 중궈대학 교수 겸 출판부 주임을 역임했고, 『문학文学』 월간을 주편했으며, 카이밍서점开明书店 편집과 지난대학暨南大学, 산둥대학山东大学 교수, 산둥성 문화국 국장을 역임했다. 『봄비 내리는 밤春雨之夜』, 『나팔 소리號聲』, 『서리 자국霜痕』 등의 단편소설집과 장편소설 『황혼黃昏』, 산문집 『북국의 봄北國之春』, 시집 『동심童心』 등을 남겼다.

‘처량함은 그 자체로 창안의 해이고,
오열하는 것은 원래 룽수이가 아니었네.
蒼凉自是長安日, 嗚咽原非隴頭水’

이것은 청대 시인이 루거우챠오를 노래한 아름다운 구절이다. 아마도 ‘창안의 해長安日’와 ‘룽터우의 물隴頭水’이라는 여섯 글자에는 지나치게 고전적인 숨결이 있어 읽어 나가면 약간 입에 걸리지 않는가? 하지만 그대가 이 여섯 글자의 출처를 명확히 이해하고 연상과 상상력을 결합시켜 이곳의 환경과 풍물 및 역대의 변화를 제시한다면, 자연스럽게 이렇듯 ‘고전’적인 응용이야말로 루거우챠오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확실하게 배가시킬 수 있을 거라 느끼게 될 것이다.

상세한 지도를 펼쳐놓으면, 현재의 허베이 성河北省, 청대의 징자오취京兆區 내에서 역사적으로 저명한 쌍간허桑乾河를 찾을 수 있다. 예전의 전쟁사에서 ‘옛날을 조문하고 오늘날을 애상하는’ 몇몇 시인의 필하에서 쌍간허 세 글자는 그다지 생소하지 않다. 하지만 즈수이治水, 스수이濕水, 레이수이灅水라는 세 고유명사는 일반 사람들이 아는 바가 아닌 듯하다. 또 베이징에 다녀온 적이 있는 사람들 중 누구도 베이징 성 밖의 융딩허永定河를 기억하지 못한다. 융딩허는 기억하지 못해도 외성의 정남문인 융딩먼永定門은 아마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전문가와 같이 고증을 하지는 않았지만, 수경水經을 이야기할 때 루거우챠오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으려면 다리 밑에 흐르는 물길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즈수이, 스수이, 레이수이 및 속명인 융딩허는 사실상 모두 하나의 하류, 쌍간이다.

그리고 하천의 이름은 그리 생소하지 않지만 보통의 지리서에서는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또 하나의 큰 흐름, 훈허渾河가 있다. 훈허는 훈위안渾源에서 발원하는데, 유명한 헝산恒山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물 빛깔이 혼탁해서 작은 황허黃河라 불리기도 한다. 산시山西 경내에서 이미 쌍간허에 유입되어 화이런懷仁과 다퉁大同을 거쳐 구불구불하게 흐르다 허베이河北의 화이라이懷來 현에 이른다. 동남쪽을 향해 장성으로 유입되었다가 창핑昌平 현의 깊은 산중에서 황룡처럼 완핑 현으로 방향을 틀어 2백 여 리를 달려야 비로소 이 거대하고 웅장한 오래된 다리 밑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원래 룽수이는 아니었다’라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다. 이 다리 아래로 콸콸 흐르는 물은 원래 쌍간과 훈허의 합류, 곧 이른바 즈수이, 스수이, 레이수이, 융딩허와 훈허, 작은 황허, 헤이수이허黑水河(훈허의 속칭)의 합류인 것이다.

이 다리가 건조된 것은 북송대도 아니고, 몽골인들이 베이징을 점거했을 때 시작된 것도 아니다. 금나라 사람과 남송이 남북으로 서로 대치하고 있을 때인 대정大定 29년(1189년) 6월에 하상의 나무다리를 석재로 바꾸어 조성한 것이다. 이것은 금대의 조서詔書에 나온다. 그에 의하면, “명창 2년 3월에 다리가 완성되어 황제의 명으로 광리廣利라 하였으니, 동쪽과 서쪽에 행랑을 세워 여행객들의 편의를 도모했다”고 한다.

청 강희 년간 하천의 범람으로 교각이 망가진 것으 보수했다는 사실을 기록해놓은 루거우챠오 비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 와서 원대 초년에 관직에 있을 때 그는 이미 이 웅장하고 위대한 공정을 보고 자신의 여행기에서 찬미한 바 있다.

원명 양대에 모두 중수하였지만, 정통 9년(1444년)에 이루어진 게 비교적 장대해서 다리 위의 돌 난간과 돌사자가 대략적으로 1차로 중수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청대에도 이 다리를 크게 손본 게 몇 차례 되는데, 건륭 17년(1752년)과 50년(1785년)에 이루어진 두 차례 공사로 이 다리는 적지 않게 면모를 일신했다.

동서로 길이 60장丈에 남북으로 넓이 2장 4척, 돌난간 1백 40개, 다리 구멍橋孔 11개, 6번 구멍은 하천의 딱 중간에 있다.

청 건륭 50년 중수의 통계에 의하면 이 다리의 길이와 크기에 대해 이와 같은 설명이 있는데,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을 포함해 모든 이들이 그 웅장함을 상상할 수 있다.

건기의 루거우챠오

예전에는 베이징 왼쪽 근방의 현을 순톈 부順天府에 귀속시켰는데, 곧 이른바 징자오취京兆區이다. 명인들의 품평을 통해 징자오취 내에는 8가지 경승지가 있다. 이를테면, 시산에 눈이 갠 것西山霽雪, 쥐융의 푸르름居庸疊翠, 위취안에 걸린 무지개玉泉垂虹 등이 그러한데, 모두 아주 그윽하고 아름다운 산천의 풍물들이다. 루거우는 그저 커다란 다리가 있는 것에 불과하지만 엄연하게도 시산, 쥐융과 마찬가지로 8경 가운데 하나에 드는데, 곧 시적인 정취가 아주 풍부한 다음 명칭이다.

루거우의 새벽달蘆溝曉月

원래 “실버들 늘어진 강가의 새벽바람과 지는 달楊柳岸曉風殘月‘은 예전에 여행하던 사람들의 감탄과 감상을 가장 잘 이끌어냈던 새벽에 일찍 출발하는 광경이다. 하물며 멀리서 흘러내려온 도도한 흐름 위에 걸쳐 있는 웅장하고 장려한 돌다리임에랴. 여기에 더해 수도로 들어가는 교통의 요로로 수많은 관리, 선비, 장사치, 농사꾼, 장인들이 사업과 생활, 유람을 위해 명리가 모여드는 경성에 가지 않을 수 없었고, 석양이 비추거나 동녘이 아직 밝지 않을 때 이 고대의 다리 위를 지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해 보라. 교통수단이 아직 지금과 같이 신속하고 편리하지 않은 시절에 거마車馬와 짐꾼들이 분주하게 오가되, 여기에 더해 모든 행인들 중 뉘라서 걱정거리와 기쁨, 흔쾌함과 슬픔의 실제 느낌이 마음속에 걸려 있지 않고, 뉘라서 ’삶의 활동‘이 정신적으로 무겁게 짓누르고 있지 않을쏘냐? 멋진 경관을 눈앞에 두고, 장려하고 아름다운 느낌이 자신의 걱정과 기쁨, 흔쾌함과 슬픔 속에 이입되어 삼투되는 가운데, 그가 어떤 식으로 관조를 하든, 시간과 공간의 변화가 착종되어, 숭고미로 압박해 오는 이 건축물을 마주하매, 행인들이 백치가 아니라면, 당연하게도 그 감상력의 차이와 환경의 상이함으로 인해 여러 가지 감정이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 한 가운데 머물거나 혹은 문자나 회화를 빌어 표출되는 작품 속에 머물러, 루거우챠오라는 이 글자들에 대해 정말로 아주 많은 반응이 있게 된다.

하지만 단지 ‘새벽달’이라는 말로만 루거우챠오의 아름다움을 형용하는 데에는 전설에 따르면 다른 원인이 있다고 한다. 음력 그믐이 되어, 그믐이 되는 날이 막 밝아오려 할 때, 하현으로 구부러진 달이 다른 곳에서는 여전히 분명하게 보이지 않을 때, 이 다리 위에 오면 오히려 밝은 빛을 누구보다 먼저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전설이 이치에 맞는지 여부는 사람들이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사실 루거우챠오가 약간 높기야 하지만, 설마 같은 시간 시산西山의 산마루나 베이징 성 내의 백탑(베이하이北海 산상) 위에서 그믐달을 보는 것이 루거우챠오 위에서 보는 것만 못하겠는가? 하지만 말이란 건 그렇게 곧이곧대로 이야기하지 않는 데 묘미가 있다. ‘새벽달’로 루거우챠오를 안받침하는 것은 실제로는 상상력이 뛰어나고 몸소 겪은 바 있는 예술가의 묘어妙語로 본래는 후대 사람이 과학적인 검증할 것을 미리 예측한 것은 아니었다. 생각해 보라.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다’는 말도 있는데, 하물며 행인이 일찍 출발하는 것임에랴. 새벽 기운이 맑고 몽롱한 가운데 사람으로 하여금 상념을 두드러지게 불러일으키는 달이 파란 하늘에 떠올라 백석白石의 거대한 다리를 내리비춘다. 경성의 성벽은 보일 듯 말 듯하고, 시산의 먹구름은 먼 든 가까운 듯, 너른 들판은 가이 없고, 누런 강물은 격하게 흐르는데,……이런 빛과 색조, 이런 지점과 건축은 쌀쌀한 봄날 아침이나 처량한 가을 새벽이든, 경물은 수시로 변하지만, 비나 눈이 내리지 않는 한 매월 말 오경의 달이 백석의 달과 너른 들판, 누런 강물이 한 폭의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으로 화해 나그네의 심령 깊은 곳에 물들어 떠올라 여러 가지 모양으로 반사된 미감을 일으키는 것이다.

어떤가? 굳이 ‘새벽달’이라는 말로 ‘푸른 풀의 루거우碧草蘆溝’(청대 류리펀劉履芬의 『구몽사鷗夢詞』 가운데 장정권長亭怨 한 수의 기어起語가 ‘남은 봄을 탄식할 제 바퀴 쇠는 지직 소리를 내고, 푸른 풀의 루거우는 길고 짧은 것이 연이어 있다嘆銷春間關輪鐵, 碧草蘆溝, 短長程接’이다)를 안받침하는 게 가장 어울리는 ‘묘경妙境’이 아니겠는가?

오랜 세월 사람들의 발길에 의해 닳고 닳은 루거우챠오의 노면

그대가 직접 그 곳을 다녀온 적이 있건 없건, 지금 역사에 그 이름이 남은 경승지에 대해 아마도 ‘옛것을 생각하는 그윽한 정취가 일어나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옛것을 생각하는 것으로 논하더라도, 그대는 깊은 생각과 긴 탄식, 무궁한 흥취를 충분히 다할 수 있다! 하물며 피로 물들은 적이 있는 돌사자의 곱슬곱슬한 털과 다리 위의 바퀴 자국 안에서 썩어가는 백골, 먹먹하게 피어오르는 모래 안개, 울어대는 강물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한 편의 비장한 서사시를 이루어낸다. 곧 만고에 길이 남을 ‘새벽달’ 역시 그대에게 쓴웃음을 짓고, 차갑게 바라볼 것이니, 예전의 온유함과 그윽한 아름다움이 그저 그대의 맑은 사념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다.

다리 아래 누런 강물은 밤낮으로 울어대며 가없는 푸른 하늘을 띄워 보내고, 침묵하는 교외의 들판을 곁에서 지키고 있다.……

그들은 모두 광명이 도래하고 거센 파도가 넘실되는 날― 그 날의 신새벽을 기다리고 있다.

(이상은 『소년독물少年讀物』에 실린 것이다. 글 가운데 두세 곳은 푸쩡샹傅增湘 선생의 고증을 인용했다는 사실을 여기에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