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미초당필기閱微草堂筆記 – 난양소하록灤陽消夏錄 1-5

13

영파(甯波) 사람 오생(吳生)은 기생집에 가서 놀기를 좋아했다. 그러다 뒷날 한 호녀(狐女)에게 빠져 남몰래 자주 그녀를 만나면서도 여전히 기생집을 드나들었다.

하루는 호녀가 그에게 말했다.

“저는 조화를 부릴 줄 아는데, 당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한번만 보면 바로 그녀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할 수 있지요. 당신이 늘 누군가를 생각하기만 하면 그녀가 바로 나타나니 돈으로 산 웃음보다는 훨씬 낫지 않아요?”

오생이 시험 삼아 한번 해보라고 청했더니, 호녀는 곧 바로 [그가 생각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으로 변했는데, 그 모습이 진짜와 꼭 같았다. 오생은 그 이후로는 더 이상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한번은 오생이 호녀에게 말했다.

“기생집에 빠져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정말이지 좋소. 는 것보다 훨씬 낫소.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모든 것이 환영이니, 늘 마음속에 벽이 있는 것 같소.”

호녀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성색(聲色)의 즐거움이란 마치 한줄기 섬광이 돌에 부딪히면 이는 불꽃과 같습니다. 어찌 단지 제가 변한 그 사람만 거짓이겠어요? 그 사람자체도 환영이에요. 어찌 그 사람만 거짓이겠어요. 저 자신조차도 거짓이에요. 천 백년 이래의 역대의 명기들도 모두 거짓이에요! 수양버들 우거진 곳, 청산 어느 곳 하나라도 예로부터 일찍이 가무의 장소로 쓰이지 않은 적이 있었나요? 선왕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만난다 하더라도 죽으면 땅에 묻히고, 상릉목자(商陵牧子)처럼 아내를 사랑한다 해도 어쩔 수 없이 헤어지는 경우도 있지요. 아름다운 두 사람이 만남에 어떤 사람은 그것을 시각으로 계산하고 어떤 사람은 날로 계산하고, 어떤 사람은 달로 계산하고 어떤 사람은 해로 계산하지만, 결국에는 헤어지게 마련이에요. 수십 년 동안 살다가 헤어지는 것이나 잠깐 동안 만나 살다가 헤어지는 것이나 모두 낭떠러지에 가서 손을 놓으면 모든 것이 일순간 사라지는 것과 같아요. 기생집에 드나들면서 그곳에 빠져 있으면, 세월은 일장춘몽처럼 모두 덧없이 흘러가지 않겠어요? 설령 정이 깊은 두 사람이 숙명적으로 만나 평생 짝이 되어 살아간다 하더라도 붉은 얼굴은 그대로 멈춰있지 않고, 백발도 생기지요. 같은 사람도 더 이상 이전에 보았던 모습은 아니지요. 당시의 짙은 눈썹과 화장한 얼굴 역시 헛된 환영이라고 할 수 있지요. 당신은 어찌하여 유독 다른 사람으로 변한 저만 환영이라 생각하십니까?”

오생은 호녀의 이야기에 뭔가 느낀 바가 있었다. 몇 년 뒤에 호녀가 이별을 고하고 떠나가자 오생은 기생집에 발길을 끊었다.

甯波吳生, 好作北里游. 後暱一狐女, 時相幽會, 然仍出入靑樓間. 一日, 狐女請曰: “吾能幻化, 凡君所眷, 吾一見卽可肖其貌. 君一存想, 應念而至, 不逾於黃金買笑乎?” 試之, 果頃刻換形, 與眞無二. 遂不復外出. 嘗語狐女曰: “眠花藉柳, 實愜人心. 惜是幻化, 意中終隔一膜耳.” 狐女曰: “不然. 聲色之娛, 本電光石火. 豈特吾肖某某爲幻化, 卽彼某某亦幻化也. 豈特某某爲幻化, 卽妾亦幻化也. 卽千百年來, 名姬艶女, 皆幻化也. 白楊綠草, 黃土靑山, 何一非古來歌舞之場? 握雨携雲, 與埋香葬玉 別鶴離鸞, 一曲伸臂頃耳! 中間兩美相合, 或以時刻計, 或以日計, 或以月計, 或以年計, 終有訣別之期. 及其訣別, 則數十年而散, 與片刻暫遇而散者, 同一懸厓撤手, 轉瞬成空. 倚翠偎紅, 不皆恍如春夢乎? 卽夙契原深, 終身聚首, 而朱顔不駐, 白髮已侵, 一人之身, 非復舊態. 則當時黛眉粉頰, 亦謂之幻化可矣. 何獨以妾肖某某爲幻化也?” 吳洒然有悟. 後數歲, 狐女辭去, 吳竟絶迹於狎游.

14

교하현(交河縣)의 급유애(及孺愛)와 청현(靑縣)의 장문보(張文甫)는 모두 학식 있는 선비로서, 함께 헌현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살았다. 한번은 두 사람이 함께 달빛을 밟으며 산책하다가 남촌과 북촌 사이까지 가게 되었다. 그곳은 학당에서부터 제법 멀고, 논밭이 황폐해져 적막할 뿐만 아니라, 잡목이 우거져 있었다. 장문보는 두려운 마음에 돌아가고 싶어 이렇게 말했다.

“황폐한 무덤에는 귀신도 많다고 하던데, 어떻게 오래 머무를 수 있겠는가?”

별안간 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걸어오더니, 두 선생을 향해 읍하고 앉아서 말했다.

“세상에 무슨 귀신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두 분 선생께서는 세상에는 귀신이 없다고 말한 완첨(阮瞻) 선생의 말을 들어 보지 못했습니까? 두 분 선생께서는 모두 학식 있는 분으로서 어찌하여 불가의 망령된 말을 믿으십니까?”

노인은 내친김에 정주이학의 ‘이(理)’와 ‘기(氣)’에 대한 이론을 늘어놓으면서 ‘이(理)’와 ‘기(氣)’의 이치로 만물의 생성과 소멸을 논하는데, 어찌나 말에 조리가 있고 유창하던지 두 사람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의 정주이학에 대한 지식에 감탄했다. 두 사람은 노인과 말을 주고받느라 정작 노인의 이름을 묻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 때 저 멀리서 큰 수레 몇 대가 다가오고 있었는데, 소 방울소리가 크고 낭랑했다. 그러자 노인은 옷소매를 떨치면서 급히 일어나 말했다.

“저승 사람들은 조용하게 산지 오래되었소. 제가 무귀론(無鬼論)을 지지하지 않았다면 두 분 선생과 함께 밤새도록 길게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것이오. 이제 우리가 헤어져야 할 때가 되었기에 삼가 두 분 선생께 솔직하게 제 신분을 말씀드렸으니, 두 분 선생께서는 놀라실 필요도 없고, 또 제가 일부러 두 분 선생을 희롱했다고도 생각하지 마십시오!”

두 사람이 고개를 드는 순간 노인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었다. 이런 곳에 문인학사가 있을 리는 없고, 동공여(董空如) 선생의 묘가 근처에 있는데, 혹여 그의 혼이런가.

交河及孺愛 靑縣張文甫, 皆老儒也, 並授徒於獻. 嘗同步月南村北村之間. 去 館稍遠, 荒原闃寂, 榛莽翳然, 張心怖欲返, 曰: “墟墓間多鬼, 曷可久留!” 俄一老人扶杖至, 揖二人坐, 曰: “世間何得有鬼? 不聞阮瞻之論乎? 二君儒者, 奈何信釋氏之妖妄?” 因闡發程朱二氣屈伸之理, 疏通證明, 詞條流暢, 二人聽之, 皆首肯, 共嘆宋儒見理之眞. 遞相酬對, 竟忘問姓名. 適大車數輛遠遠至, 牛鐸錚然. 老人振衣急起曰: “泉下之人, 岑寂久矣. 不持無鬼之論, 不能留二君作竟夕談. 今將別, 謹以實告, 毋訝相戲侮也!” 俯仰之傾, 欻然已滅. 是間絶少文士, 惟董空如先生墓相近, 或卽其魂歟.

15

하간현(河間縣, 지금의 하북성 창주시)에 사는 당생(唐生)이 장난치기를 좋아했던 일은 그곳 사람들이 지금까지 이야기할 정도로 유명한데, 이른바 당소자(唐嘯子)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하간현에 무귀론을 즐겨 주장하는 한 글방 선생이 있었는데, 한번은 이런 말을 했다.

“[진대(晉代)의] 완첨이 귀신을 만났다고 하던데,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 말은 불제자들이 멋대로 지어낸 유언비어에 불과하네.”

[그 말을 들은] 당소자는 밤에 그 집 창문에다 흙을 뿌리고 소리를 내며 문을 두드렸다. 글방 선생이 깜짝 놀라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음양(陰陽)의 기운이 만들어낸 자다!”

그 소리에 글방 선생은 식겁해 머리를 파묻고 떨면서 제자 두 명을 불러 날이 밝을 때까지 자신을 지키게 했다.

이튿날 글방 선생은 기가 빠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친구들이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오자 그는 신음하면서 “귀신이 있어! 귀신이!”라고만 말했다. 얼마 뒤에 사람들은 [그 일이] 당소자의 소행임을 알고는 모두들 손뼉을 치며 웃어댔다. 그러나 그때부터 서당에 귀신들이 잔뜩 나타나기 시작했다. 귀신들은 하룻밤도 쉬지 않고 벽돌과 기와를 던지고 창문을 흔들어댔다. 처음에는 사람들도 당소자가 또 장난을 친다고 생각했으나, 자세히 살펴보니 이번에는 진짜 귀신이 소동을 피운 것이었다. 글방 선생은 결국 그 소동을 견딜 수 없어 서당을 버리고 떠나갔다.

아마도 글방 선생은 크게 공포에 질린 이후에 부끄러운 마음까지 더해 기가 쇠해버렸는데, 여우가 글방 선생의 기가 쇠한 틈을 이용해 쳐들어 간 것 같다. “요물은 사람에 의해 일어난다”고 하더니,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한 말인가!

河間唐生, 好戲侮, 土人至今能道之, 所謂‘唐嘯子’者是也. 有塾師好講無鬼, 嘗曰: “阮瞻遇鬼, 安有是事? 僧徒妄造蜚語耳.” 唐夜洒土其窓, 而鳴鳴擊其戶. 塾師駭問爲誰, 則曰: “我二氣之良能也!” 塾師大怖, 蒙首股栗, 使二弟子守達旦. 次日委頓不起. 朋友來問, 但呻吟, 曰: “有鬼!” 旣而知唐所爲, 莫不拊掌. 然自是魅大作. 抛擲瓦石, 搖撼戶牖, 無虛夕. 初尙以爲唐再來, 細察之, 乃眞魅. 不勝其嬲, 竟棄館而去.

蓋震懼之後, 益以慙恧, 其氣已餒, 狐乘其餒而中之也. “妖由人興”, 此之謂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