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포단肉蒲團 제2회 2

이때 과장된 그의 인사치레에 쑥스러웠던 스님은 몇 마디 겸손한 말로 화답하였어. 마침 옹기솥의 밥이 다 익었고 그가 멀리서 걸어와 분명 배가 고플 것이라 여긴 스님은 아침 공양을 함께 하자고 하였지. 두 사람은 마주 앉아 선禪에 대해 토론하였는데 그 날카로움의 우열을 가릴 수 없었어. 원래 미앙생은 매우 총명하여 과거 시험 공부를 열심히 하였을 뿐 아니라 여러 사상과 철학[1] 책도 훑어보지 않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야. 수많은 선문답 가운데 다른 사람들이 깊이 깨달을 수 없었던 것도 그는 그저 스님이 꺼내는 한마디 말로 모두 완벽하게 이해하였지.

스님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주저하며 생각했어.

‘지식이 출중한 사내로군! 어찌하여 저런 용모를 갖고 태어났을까? 하늘을 탓할 수밖에…… 어찌하여 불법을 공부할 마음과 죄를 지을 얼굴이 함께 있단 말인가! 내가 그의 생김새와 행동거지를 보니 분명 색마가 될 것이다. 내가 그를 가죽 포대에 집어넣지 않는다면 훗날 반드시 벽에 구멍을 뚫고 담장을 넘어 아녀자들과 사통하여 규방에 많은 화를 일으키게 될 것이겠군. 천지간에 얼마나 많은 부인이 이러한 재앙을 당할 것인가! 내가 오늘 만나지 않았으면 모르겠으나 세상을 어지럽힐 인간을 만났으니 중생을 위해 이 환란을 멈추게 하지 않는다면 이는 자비의 도가 아니다. 설령 그의 죄업이 뿌리 깊게 박혀있어 움직일 수 없다고 할지라도 나 역시 그 마음을 다할 뿐이다.’

스님은 그에게 말했어.

“소승 출가를 결심한 이래 내 눈으로 직접 많은 이들을 겪어보았소! 착하게 살려고 하지 않는 어리석은 남정네와 여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참선하려는 서생들, 불법을 들으려는 고관대작들, 이 모두 문외한이라 할 수 있지요. 대체로 참선을 이해하는 것과 불교의 교리를 이해하는 것은 서로 다른 지혜입니다. 교리를 이해하는 것은 쉬우나 선禪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요. 유교에서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 수 있으나 불교에서는 하나를 들으면 그저 잘해야 둘을 알 수 있을 뿐이라오. 그런데 거사께서 이리도 지혜롭고 총명할지 누가 알았겠소? 당신이 참선을 배우면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삼매에 들게 될 것이오.

세상을 살아감에 육체의 형태는 얻기 쉬우나 정신과 영성은 얻기 어렵고, 세월은 지나가기 쉬우나 액운은 지나치기 어렵소. 거사는 성불할 수 있는 자질을 지니고 있으니 잘못된 귀신의 길로 들어가선 안 됩니다. 어찌하여 젊은 기운이 아직 흩어지지 않은 지금, 애욕을 버리고 불가에 귀의하지 않는 게요? 소승, 비록 평범한 사람이나 오히려 저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큰 원력을 세워 인과를 증험한다면 백년 이후에도 위로는 승가에 배향되며 아래로는 지옥 악귀[2]의 명령을 듣지 않아도 되니 거사는 이를 어떻게 생각하시오?”

미앙생이 대답하였어.

“제가 속세를 떠나려 생각한 지 이미 오래입니다. 훗날 반드시 여기로 돌아와 부처님께 귀의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하지 못한 바람이 두 가지 있어 떨쳐버리기 어렵습니다. 아직 나이가 어리니 이 두 가지 일을 마치고 돌아와 몇 년 동안 편안히 누리며 일생을 보람있게 살다가 그때가 되어 머리를 깎고 계를 받은 후 불가에 귀의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그 두 가지 바람이 무엇인가요? 부유한 나라의 관리로 임명받아 아래로는 배운 바를 실행하고 먼 곳에서 공을 세워 위로는 조정에 보답하는 그런 것입니까?”

미앙생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어.

“아닙니다. 공명功名이라는 것은 비록 공부하는 사람들의 본분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이루는 이는 적고 이루지 못하는 이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예전 유분劉蕡[3]이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이백 또한 과거에 낙방하였으니 비록 급제할 재주가 있더라고 급제할 운명이 있어야 하는데 제가 어찌 그 운명을 멋대로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공을 세우고 업적을 남기는 것 역시 운명입니다. 하늘이 공을 세우는 이를 용인할지라도, 사람들이 업적을 남기는 그를 허락하지 않으니 설령 악비의 충성심과 관우의 의리가 있어 그저 그 마음을 다한다 해도 그 몸을 망칠 뿐입니다. 이 어찌 나라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겠습니까? 저는 이러한 명예와 이익이 어찌 작용하는지 진작부터 알고 있으나 이는 제가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거사께서 결국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제가 원하는 것은 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고 제 스스로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헛된 망상도 아니고 이루기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스님께 거짓 없이 제 능력을 말씀드리자면 책을 읽고 기억하는 능력이나 불법을 듣고 깨닫는 능력, 문장을 짓는 뛰어난 능력은 모두 최고라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유명한 문장가들이라 하는 이들은 그저 억지로 암송한 것을 이리저리 짜깁기하여 몇 편의 습작을 만들어내고 이를 시문집으로 출간하며 문단의 기치를 내걸고 한 시절을 풍미하게 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러한 것은 모두 거짓된 것들입니다.

진정한 문필가라 한다면 반드시 천하의 기이한 책들을 읽고 천하의 뛰어난 인재들과 사귀며 천하의 모든 명산을 노닐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방에 틀어박혀 책을 지어 후세에 모범이 될만한 말을 남겨야 하고요.

다행히 이름이 과거급제자 명단에 올라 조정을 대신해 몇몇 일을 하게 된다면 문장을 후세에 남기는 복을 누리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편히 늙을 수 있고 오래도록 그 명망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속으로 몰래 이런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재능있는 사람이 된다면 ……”

“그것이 한 가지 바람이라면 두 번째는 무엇인가요?”

미앙생은 입을 떼려 하다 다시 소리를 삼켰지. 그는 말하기 편치 않은 이것을 말해서 되려 스님이 자신을 비웃을까 두려워하는 듯하였어.

“두 번째는 거사께서 말씀하시기 저어하시니 소승이 한번 말해볼까요?”

“저의 마음을 스님께서 알고 계신단 말인가요?”

“제 말을 들어보시고 만일 아니라면 기꺼이 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제 말이 맞는다면 거사께서는 아니라고 하지 마십시오.”

“스님께서 맞추신다면 보살 아니면 신선이실 겁니다! 잘못된 길에서 이끌어주십사 부탁을 드려야 할 판에 어찌 감히 발뺌하며 거짓을 말하겠습니까?”

스님이 차분하고 조용하게 말했어.

“천하제일의 미녀에게 장가가고 싶으시죠?”

미앙생은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눈이 휘둥그레 커지고 입을 다물지 못했어.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 이윽고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지.

“스님께선 정말 신선이십니다. 이 두 가지는 제가 남몰래 지금껏 염원했던 것입니다. 마치 스님께서는 제게 직접 들으신 것처럼 바로 맞추시는군요. ”

“사람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도 하늘은 우뢰와 같이 큰 소리로 듣는다는 말을 아직 들어보지 못하신 모양입니다.”

“이치를 따진다면 불도를 논하는 자리에서 정욕을 이야기하면 안 되겠으나 스님께서 이처럼  말씀하시니 제가 감히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짓 없이 말씀드리자면 저는 불법을 구하는 마음은 오히려 얕고, 욕정을 탐하는 마음은 정말로 깊습니다.

예로부터 재자가인才子佳人 즉 재능 있는 사내와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네 글자는 항상 떼려야 뗄 수 없는 말이지요. 재능 있는 사내가 있으면 마땅히 아름다운 여인이 있어 배필이 되어야 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있으면 반드시 능력 있는 사내가 한 쌍이 되어야 하는 법이죠.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뛰어나게 아름다운 여인을 본 적이 없으며 종종 보이는 아름다운 부인들조차도 모두 용모가 추한 사내들의 배필이 되어 후회하지 않는 이가 없더이다.

저는 재능은 말할 필요도 없고 외모 또한 모자라지 않아 늘 거울을 들여다 보면 반안潘安과 위개衛玠[4]가 다시 살아난 듯하고 또 그들에게 최고의 자리를 양보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늘이 저와 같이 재능있는 이를 나게 하였다면 어찌 어여쁜 여인 하나를 만들어 서로 짝을 짓게 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에 아름다운 여인이 없으면 모를까, 만에 하나 혹시 있다면 그녀의 짝이 되는 것은 제가 아니면 누구겠습니까?

저는 아직 스무살 밖에 되지 않았고 혼인을 올리지도 않았으니 제 재능과 용모를 헛되이 하지 않게 하고 싶습니다. 제가 세상에 돌아가 아름다운 여인을 찾아 배필이 되고 아들을 하나 얻어 대를 이으면 그때 모든 바람은 다 이뤄지고 다시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스스로 마음을 고쳐먹을 뿐만 아니라 제 안사람에게도 함께 성불하자고 권유할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스님은 듣고 한참을 말이 없다 이내 코웃음을 치며 대답하였어.

“어찌 보면 거사의 생각은 추호도 틀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과 만물을 만드신 하느님께서 조금 실수하신 듯하군요. 만일 그대에게 추한 몸뚱이를 주셨다면 그대는 어리석지 않은 영혼을 갖고 도리어 깨달음의 열매를 얻었을 것이라오.

옛사람 가운데 문둥병, 간질로 손이 꺾이고 발을 저는 천형을 받은 사람들이 신선이 되거나 성불하는 이가 많은 것도 이러한 이유지요.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형체를 만드실 때 너무도 멋대로 하셨습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여 어렸을 때 몸이 상할까 성격이 삐뚤어질까 염려하여 욕 한마디, 매 한 대 때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아이는 커서 자기 육체와 성격은 하늘이 낳고 부모가 길러주신 것이라 반드시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고 여기고 멋대로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고 죄를 짓습니다. 이윽고 관청에 잡혀 곤장을 맞고 조정에 불려가 목이 잘리는 형벌을 받고 나서야 부모가 나를 멋대로 키웠다고 한탄하지요.

지금 부드럽고 고운 육체와 교만한 성격은 좋은 징조가 아닙니다. 거사께서 본인의 외모로 자신의 재능있는 사내라 여기고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찾는다면 그녀를 얻든 말든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최고의 미녀를 찾는다고 할지라도 그녀의 이마에 ‘최고’라고 쓰여있지는 않을 테니 말입니다. 당신이 그녀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을 발견한다면 아마도 그녀와 결혼한다는 결정을 뒤집고 더 아름다운 여인에게 가겠지요.

하지만 더 아름다운 이 여인이 만일 당신과 비슷한 성품이라면 아마도 쉽게 다른 이에게 시집가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가장 능력 있는 사내를 기다려야 하니까요. 뭐 첩으로 삼아도 좋겠지요? 그런데 만일 그녀에게 남편이 있다면 어쩌시렵니까?

만일 헛된 망상을 끊어버린다면 이전과 같이 제일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수단과 방법으로 당신의 바람을 이루려 한다면 지옥에 떨어지는 여러 일들이 여기에서 나올 것입니다. 거사께선 지옥에 가길 바라십니까? 천당에 가길 바라십니까? 만일 기꺼이 지옥에 떨어지길 바라신다면 얼마든지 가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찾으십시오. 하지만 천당에 가길 바라신다면 그런 헛된 생각을 거두고 이 늙은 중애게 출가하시죠.”

“스님께서 처음 하신 말씀은 모두 흥미진진합니다. 다만 천당과 지옥이라는 이 말은 아무래도 좀 진부하여 고승의 말씀 같지는 않습니다. 참선의 도리는 스스로 그 처음과 끝을 깨닫는 것에 불과하고, 불생불멸의 피안에 몸을 세우면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닌지요. 어찌 따로 천당이 있어 오를 수 있겠습니까? 또한 비록 남녀 간의 풍류를 즐긴 죄가 조금 있다고 한들 또한 명분과 교화를 더럽힌 것에 불과할 따름인데 어찌 지옥에 빠질 수 있겠습니까?”

“선을 행한 자는 천당에 가고 악을 행한 자는 지옥에 떨어진다는 말은 정말이지 상투적인 말이 맞습니다. 당신네 지식인들은 모든 일마다 상투적인 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자신을 수양하고 옳은 일을 행하는 것은 구태의연한 것이라 해도 한치도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천당과 지옥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설령 천당이 없다고 할지라도 천국을 선을 지향하는 계단으로 여기지 않을 수 없고 또한 설령 지옥이 없더라도 지옥을 악한 짓의 경계로 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진부한 말을 듣기 싫어하시니 훗날 저승에서의 응보는 거르고 현세에서의 응보를 말하겠습니다. 말을 꺼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구태의연한 말로 시작하겠습니다.

옛말에 ‘내가 남의 부인을 유혹하지 않으면 남도 나의 아내를 유혹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주 케케묵고 평범한 틀에 박힌 말이죠. 하지만 세상의 음탕하고 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벗어날 수 없었던 말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의 아내에게 음탕한 짓을 하면 내 아내 역시 다른 사람에게 음탕한 짓을 당하고, 다른 이의 딸을 더럽히면 내 딸 역시 다른 이에게 더럽혀집니다. 만일 이러한 것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그저 사통하고 음란한 짓을 하지 않으면 될 뿐이요 만일 간음한다면 이 상투적인 말이 정확하게 들어맞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거사께서는 이러한 상투적인 것에서 벗어나고 싶은 건가요, 아니면 그렇지 않은 건가요? 아니라면 그저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가서 찾으시면 됩니다. 만일 벗어나고 싶다면 그러한 헛된 생각을 접고 이 늙은이에게 출가하세요.”

“스님의 말씀은 구구절절 이치에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는 무지몽매한 자들에게 들려주실 요량으로 간곡하게 불법을 말씀해주신 것일 뿐입니다. 그래야 이를 듣고 등골이 오싹해서 경계하게 될 것이니까요.

하지만 저와 같은 사람들에게 이치를 말씀해주실 때는 행여 그러실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하늘의 법이 비록 엄하게 세웠을지라도 그 법을 행하는 데 관대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까요.

간음하고 응보를 받는 이가 비록 많다고는 하나, 응보를 받지 않는 이 역시 아직 적지 않습니다. 만일 모든 집을 샅샅이 뒤져 간통한 사람을 잡고 그 처와 그 딸에게 그 간통의 죄를 똑같이 갚게 한다면 하느님 역시 매우 추잡하다 하겠습니다.

요컨대 윤회의 도리와 응보의 이치는 대체로 들어맞습니다. 선하지 않은 이들이 몰라서는 안되겠지요. 이것이 교화의 가장 중요한 문제이니까요. 하지만 어찌 이렇게 꽉 막힌 것이겠습니까?”

“거사께서 말씀한 대로라면, 간음한 세상 사람들에게도 응보가 내리지 않는다는 것인가요? 짐작건대 하느님은 법을 만들고 이를 벗어나게 한 적이 지금껏 없었습니다. 아니면 거사의 눈과 귀가 너무도 충직하고 관대하여 사람들이 당신의 눈과 귀를 빠져나가는 것이겠지요.

소승이 본 바로는 다른 이의 아내와 딸을 범하고도 응보를 받지 않은 적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역사와 책에 기록된 것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것들이 수천수만입니다. 출가하여 계를 받은 제 입으로 말씀드리긴 좀 뭐하지만, 거사께서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다른 이의 아내나 딸을 간음한 것은 이득이 되는 일이므로 기꺼이 남에게 이야기하여 때문에 아는 사람이 많겠으나, 아내나 딸이 음탕한 짓을 당한 것은 손해를 본 것이라 남에게 이야기하길 꺼리고 따라서 아는 이들이 적은 것입니다.

또한 집안에서 부인이 남편을 속이고 딸이 그 아버지를 속여 집안사람들조차 아무도 몰라 간음하는 것에는 아무 응보가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녀가 죽어 관 뚜껑이 닫힌 후가 되면 그제야 옛말에 틀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랍니다.

간음한 사람의 아내와 딸로 간음의 책임을 배상하는 것과 상관없이, 아내와 딸에게 단지 음탕한 생각이 한번 들기만 하여도 이때 그 아내와 딸의 마음속에는 자기도 모르게 많은 망령된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자기 아내가 몹시 추하게 생겨 밤에 잠자리할 때 흥분이 되지 않는다면 마음속으로 낮에 본 이름다운 여인을 상상하며 아내를 그 여인으로 바꿔 스스로 쾌감을 느끼겠죠? 하지만 어찌 알겠습니까? 이때 아내의 마음에도 남편의 못생긴 얼굴이 못마땅하여 낮에 본 꽃미남을 생각하며 남편 대신 상상하며 쾌감을 느낄 줄 말입니다.

이러한 것은 집집마다 사람마다 흔히 있는 일입니다. 비록 서릿발 같은 지조에 흠결이 생기지는 않아도 정절을 지키는 마음에는 큰 상처를 남기죠. 이는 남자가 음탕함을 좋아하여 받은 응보입니다.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이는 것조차 이와 같을진대 하물며 다른 여인의 방에 들어가 몸으로 그 여인의 살갗을 누르고도 귀신이 보지 않고 하느님이 꾸짖지 않으며 그 아내가 명예와 정절을 온전히 지킬 수 있겠습니까? 소승 이러한 말들은 모두 상투적인 말이 아니라 보는데 거사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말씀한 것이 매우 이치에 맞습니다. 다만 한 가지 스님께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부인과 딸이 있는 사람이 다른 이의 아내와 딸에게 음탕한 짓을 하여 자신의 아내와 딸로 갚아야 한다면 만약 아내도 첩도 없는 부랑자나 자식 하나 없는 독신남이 다른 이의 아내와 간통하고 다른 이의 딸을 범하면 무엇으로 갚겠습니까? 이것이야말로 하늘의 법도가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한 사람의 아내는 한계가 있으나 천하의 이름다운 여인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예컨대 한 집에 단지 한 두 명의 처와 첩이 있고 한 두 명의 딸이 있는데 오히려 천하의 무수히 많은 부인들과 관계를 맺는다면 비록 아내와 딸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할지라도 적은 밑천으로 많은 이윤을 남긴 것이지요. 하느님이 장차 이를 어떻게 처리하실까요?”

스님은 그가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는 완고한 돌덩어리 같다고 생각했어[5]. 어쩔 수 없이 당근과 채찍의 방법[6]을 사용하여 그에게 말하였지.

“거사의 말솜씨가 예리하시군요. 소승 정말 못 당하겠습니다. 다만 이러한 도리는 말로만 해서는 아무 증거가 되지 못하는 게지요. 그저 해보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거사께서는 돌아가십시오.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하고 육신의 참선 방석[7]에서 깨닫는다면 그제야 허망을 떠난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것입니다. 소승은 지금부터 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당신은 성인이 될 수 있는 비범한 그릇과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는 자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소승은 차마 당신을 포기하지 못하겠소.

만일 크게 깨달은 후 여전히 소승이 생각나고 되돌리는 길을 상의하고 싶다면, 소승의 말이 불행히도 맞았다는 이유로 만나기 부끄러워 저와의 관계를 끊어내지 마시고 찾아오십시오. 소승 내일부터 온종일 눈을 비비며 당신을 기다리겠소.”

말이 끝나자 남은 종이를 잘라 붓을 들고 5언 절구의 게송[8]을 다음과 같이 적었어.

가죽 포대는 던져버리고
육신의 부들방석에 앉게나.
살아있을 때 뉘우쳐야 하나니
관 뚜껑 닫혔다 탄식 말기를.
請拋皮布袋,去坐肉蒲團。
須及生時悔,休嗟已蓋棺。

그는 종이를 몇 번 접어 그에게 건네고는 말했어.

“저는 촌스럽고 우둔한 행각승이라 예의범절을 알지 못합니다. 게송이 비록 과격하나 노파심에서 그런 것이랍니다. 거사께서는 이를 받으시고 훗날의 근거로 삼아주십시오.

스님은 말을 마치고 그를 배웅하려는 듯 몸을 일으켰어. 미앙생은 계속 머무르며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눌 수 없음을 알았지. 또한 스님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고승이었어. 감히 성이 나게 한 채로 갈 수는 없었지. 그는 머리를 조아리고는 사죄의 말을 올렸어.

”타고난 성품이 우둔하여 스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스님께서 넓은 도량으로 용서해주십시오. 다른 날 다시 뵙게 되면 맞아 주시길 간청드립니다.“

그는 말을 마치고 전처럼 무릎을 꿇고 네 번 절을 하였어. 스님도 답례를 하고 그를 배웅하고 헤어졌지. 이것으로 고봉선사가 등장한 이야기는 다 한 셈이야. 다음 부분은 미앙생이 여색에 빠지는 이야기야. 고봉선사는 다시 거론하지 않으려고 해. 고봉선사와의 결말 부분 이야기는 마지막 회나 되어야 등장하니 알아두라고.


[1] 원문은 ‘삼교구류三教九流의 책書’으로 되어있다. 여기에서 삼교는 유교, 불교, 도교, 구류는 유가, 도가, 법가, 명가, 묵가, 종횡가, 잡가, 농가, 음양가 등의 제자백가 사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2] 원문에는 나찰羅刹로 되어있다. 지옥에서 사람들 괴롭히는 역할을 한다고 전한다.

[3] 당唐대의 사람으로 당시 환관의 횡포를 직언하는 바람에 과거에서 낙방했다.

[4] 반안潘安과 위개衛玠는 위진남북조 시대의 인물로 고대 중국을 대표하는 미남의 대명사이다. 반안은 외모 뿐 아니라 문장으로도 유명하였고 위개 역시 당시 유행하던 철학 사조인 현학으로도 이름을 알렸다. 반안이 거리를 나서면 여인들이 그를 보려고 수레에 과일을 던졌다고 하며 위개의 경우 사람들이 하도 쳐다보는 바람에 그 눈빛을 이기지 못해 27세 나이에 요절하였다고 전해진다.

[5] 이 부분은 남북조시대의 승려 도생道生의 이야기에서 끌어온 표현이다. 그는 쑤저우蘇州 후치우산虎丘山에서 홀로 돌과 바위를 상대로 설법하였다고 한다. 그의 설법에 탄복한 돌과 바위가 고개를 끄덕였다는 전설이 있다. 

[6] 원문은 半放半收으로 반쯤 놓았다가 반쯤 거둬들이는 방법으로 번역할 수 있다. 시쳇말로 밀당의 방법이라 할 수 있다.

[7]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육포단肉蒲團은 육체를 참선 시 사용하는 부들방석으로 삼는다는 말로 육체관계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8] 원문은 게偈이다. 부처를 찬미하는 불경의 노래 가사를 의미한다. 산스크리트어 가타gatha를 음역한 게타偈陀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