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미초당필기閱微草堂筆記 – 난양소하록灤陽消夏錄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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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北村)의 정소선(鄭蘇仙)은 어느 날 꿈에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이 죄인을 심리하는 광경을 보았다. 이웃마을에 사는 한 할멈이 염라대왕전 앞으로 나오자 염라대왕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두 손을 맞잡으면서 그녀에게 차 한 잔을 내린 뒤, 저승관리에게 속히 좋은 곳으로 보내주라고 명했다.

정소선은 이를 보고 저승관리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물었다.

“저 시골 할멈은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

그러자 저승관리가 말했다.

“저 부인은 한 평생 남에게 손해를 끼치면서 자기를 이롭게 하고자 하는 마음(利己損人)을 가지지 않았소. 이기심이란 어진 사대부라 해도 피하기 어려운 것이오. 하지만 자신을 이롭게 하려다 보면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기 마련이오. 그래서 온갖 교활한 음모들이 이로부터 생겨나고, 온갖 원한과 허물도 이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오. 심지어는 더러운 이름을 만년 동안 남기고 해악을 온 천하에 흘려보내는 일도 바로 이기심으로 인해 생겨난 해악이오. 그런데 일개 촌부가 그러한 사심을 스스로 누를 수 있었으니, 책을 읽고 경서를 강하는 유생들도 저 아낙과 마주하면 대부분 부끄러운 기색을 띠었소. 염라대왕께서 예를 갖추고 대하는 것이 무엇이 이상하단 말이오?”

정소선은 본디 꿍꿍이가 있던 사람이라 저승 관리의 이야기를 듣고는 두려움에 꿈에서 깨어났다.

정소선이 또 다른 이야기를 해주었다. 할멈이 대전으로 들어오기 전에 관복을 입은 한 관리가 의기양양하게 들어왔다. 그 사람은 자칭 가는 곳 마다 물 한 잔만 얻어 마시고 왔을 뿐이어서 이렇게 귀신을 만나도 부끄러워 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염라대왕이 웃으며 말했다.

“나라에서 관리를 두는 것은 백성들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요. 그래서 역참을 관리하거나 수문을 관리하는 보잘 것 없는 관리에 이르기까지 마땅히 처리해야 할 이해와 폐단이 있소. 그저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해서 훌륭한 관리라고 말한다면, 관청에 꼭두각시를 세워두지 그러시오? 꼭두각시는 물조차 마시지 않으니, 공보다 훨씬 낫지 않겠소?”

그러자 관리가 다시 이렇게 항변했다.

“제가 비록 내세울 공로는 없지만, 그렇다고 지은 죄도 없습니다!”

염라대왕이 말했다.

“공은 일평생 사사건건 자신의 안전만을 도모하느라 아무개의 옥사와 아무개의 옥사에서 혐의를 피하기 위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이것이 바로 백성을 저버린 것이 아니겠소? 아무 사건과 아무 사건 때 번거롭고 일이 많은 것을 귀찮아해서 손을 놓고 사건을 처리하지 않았는데, 이 또한 나라를 저버린 것이 아니겠소? 또 삼 년에 한 번 벼슬아치들의 고과평가를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오? [관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공이 없다면 그것이 바로 죄요!”

관리는 매우 위축되어 조금 전까지 시퍼렇던 서슬이 갑자기 꺾였다.

염라대왕은 천천히 그의 표정을 보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그저 공의 등등한 기세를 꾸짖으려 했을 뿐이오. 냉정하게 말하면 어쨌든 공은 3~4등급에는 속하는 좋은 관리이니, 내세에도 관리가 될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는 곧장 저승관리에게 명해 그 사람을 전륜왕(轉輪王)에게 보냈다. 이 두 사건을 통해서 볼 때 사람의 마음속 아주 은밀한 부분까지 귀신이 모두 꿰뚫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현자의 가슴속 한 가닥 이기심도 귀신의 꾸짖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대가 방에 홀로 있을 때에 [도리어 귀신에게 부끄럼 없는 행동할 지라!]”라는 말이 있더니, 정말로 그러하구나!

北村鄭蘇仙, 一日夢至冥府, 見閻羅王方錄囚. 有鄰村一媼至殿前, 王改容拱手, 賜以杯茗, 命冥吏速送生善處. 鄭私叩冥吏曰: “此農家老婦, 有何功德?” 冥吏曰: “是媼一生無利己損人心. 夫利己之心, 雖賢士大夫或不免. 然利己者必損人. 種種機械, 因是而生, 種種寃愆, 因是而造. 甚至貽臭萬年, 流毒四海, 皆此一念爲害也. 此一村婦而能自制其私心, 讀書講學之儒, 對之多愧色矣. 何怪王之加禮乎?” 鄭素有心計, 聞之惕然而寤. 鄭又言: 此媼未至以前, 有一官公服昻然入. 自稱所至但飮一杯水, 今無愧鬼神. 王哂曰: “設官以治民. 下至驛丞ͺ閘官, 皆有利弊之當理. 但不要錢卽爲好官, 植木偶於堂? 倂水不飮, 不更勝公乎?” 官又辯曰:“某雖無功, 亦無罪!” 王曰: “公一生處處求自全, 某獄某獄, 避嫌疑而不言, 非負民乎? 某事某事, 畏煩重而不擧, 非負國乎? 三載考績之謂何? 無功卽有罪矣!” 官大踧踖, 鋒棱頓減. 王徐顧笑曰: “怪公盛氣耳. 平心而論, 要是三四等好官, 來生尙不失冠帶!” 促命卽送轉輪王. 觀此二事, 知人心微瞹, 鬼神皆得而窺. 雖賢者一念之私, 亦不免於責備. “相在爾室”, 其信然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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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벼슬아치 집안의 며느리는 평소 어떤 불화도 없는 것 같았다. 옹정(雍正) 임자년(壬子年: 1732)의 어느 날 갑자기 번개가 창을 뚫고 들어와 섬광처럼 번쩍! 하더니 쐐기 모양의 벼락이 며느리의 심장을 관통해서 왼쪽 옆구리를 뚫고 나왔다. 그 남편 역시 벼락을 맞고 머리부터 엉덩이까지 모두 새까맣게 탄 채 겨우 숨만 붙어 있었다. 한참 뒤에 깨어나서 아내의 시신을 보고는 울면서 말했다.

“나는 성정이 꼿꼿해서 어머니와 간혹 다투기도 했지만, 당신은 그저 울면서 속의 불만만을 토로하고 눈물을 훔쳤을 뿐인데, 이놈의 벼락이 어쩌자고 당신을 잘못 죽였는지 모르겠소.”

그 남편은 이승이나 저승에서 법을 적용할 때 똑같이 주모자를 엄중하게 처리한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雍正壬子, 有宦家子婦, 素無勃谿狀. 突狂電穿牖, 如火光激射, 雷楔貫心而入, 洞左脇而出. 其夫亦爲雷焰燔燒, 背至尻皆焦黑, 氣息僅屬. 久之乃蘇, 顧婦尸泣曰: “我性剛勁, 與母爭論或有之, 爾不過私訴抑鬱, 背鐙掩淚而已, 何雷之誤中爾耶.” 是未知律重主謀, 幽明一也.

12

무운(無云) 화상은 어디 사람인지 알 수 없다. 강희연간(康熙年間: 1662~1723)에 하간부(河間府)의 자승사(資勝寺)에서 기거하고 있었는데, 그는 종일토록 묵묵하게 앉아서 좌선만 할 뿐 말을 걸어도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선상(禪床)에 올라가 직선 자로 탁자를 두드리자 ‘펑!’하고 소리가 나더니 조용히 입적했다. 탁자 위에 다음과 같은 게어(偈語)가 쓰여 있었다.

삭발하고 집을 떠나 육진(六塵)으로부터 몸을 깨끗이 하더니,

스스로 육신을 거두어 떠나갔네.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고 사물을 아끼는 일은 끝이 없건만,

주공과 공자 같은 성인이 그러했네.

불법은 묵자의 ‘경애’에 가깝지만, 무운 스님의 행동은 양주(楊朱)의 ‘위아(爲我)’적 행동에 더 가깝다.

無云和尙, 不知何許人. 康熙中, 掛單河間資勝寺, 終日黙坐, 與語亦不答. 一日, 忽登禪床, 以界尺拍案一聲, 泊然化去. 視案上有偈曰: “削髮辭家淨六塵, 自家且了自家身. 仁民愛物無窮事, 原有周公孔聖人.” 佛法近墨, 此僧乃近於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