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대소설예술기법 21 홍운탁월법烘雲托月法


홍운탁월법烘雲托月法

【정의】

류시짜이劉熙載는 《예개藝槪》 「시개詩槪」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산의 정신은 묘사할 수 없어 연기와 이내로 묘사하고, 봄의 정신은 묘사할 수 없어 풀과 나무로 묘사한다.山之精神寫不出, 以烟霞寫之; 春之精神寫不出, 以草樹寫之.” 이것은 회화에서 말하는 ‘홍운탁월’과 그 이치가 같다. 홍烘의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불에 쬐다, 말리다, 돋보이게 하다’는 것이고, 탁托은 ‘바탕을 배경으로 두드러지게 하다’는 것이다. 즉 글자 그대로 풀어보면 구름을 돋보이게 칠하되 결국은 달을 두드러지게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홍운탁월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름雲’과 ‘달月’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렸다. 곧 기본적으로는 구름을 묘사하고 있지만 그 의미는 달에 있다. 그러므로 구름의 색채가 생동감 있게 묘사될수록 달의 형상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이다. 그러나 구름의 형상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주객이 전도되어 예술적인 형상화에 실패하게 된다.
이 기법은 고전 소설 창작에서 상용되어 왔는데 작가들은 어떤 예술 형상을 그려낼 때에 형상 그 자체에 직접적으로 붓을 대지 않고 바림(색칠할 때 한쪽을 진하게 하고 다른 쪽으로 갈수록 차츰 엷고 흐리게 하는 것)으로 형체를 두드러지도록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강렬한 예술적 분위기를 자아내어 묘사되는 대상을 훨씬 더 선명하고 생동감 있게 만든다.

【실례】

《삼국지연의三國演義》 가운데 ‘삼고초려三顧茅廬’ 대목에서 작자는 주거량諸葛亮을 형상화할 때 그를 직접 묘사하지 않고 우선 공명의 친구와 동복童僕을 먼저 표현한다. 그들의 위풍당당하고 이지적인 풍채와 확 트이고 소박한 말투를 통해 분위기를 형성시킨 후, 공명의 포부와 재략才略, 기개를 두드러지게 하는 것이다. 주거량과 함께 생활하고 사귀면서 그의 영향을 받은 친구의 사람됨이 이와 같으니 주거량의 훌륭함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드러나게 된다. 이 점에 대해 마오쭝강毛宗崗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기서는 주거량을 지극히 잘 묘사했으되, 작품 속에는 오히려 주거량이 없다. 대개 뛰어난 인물을 잘 묘사하는 것은 묘사를 드러낸 부분이 아니라, 묘사를 드러내지 않은 부분과 관련되는 문제이다.此篇極寫孔明, 而篇中却無孔明. 蓋善寫妙人者, 不于有處寫, 正于無處寫.”

【예문】

이때 별안간 한 사람이 나타났다. 용모가 훤칠하고 풍채가 늠름한데 머리에는 소요건을 쓰고 몸에는 검은 무명 도포를 입고 있었다. 그 사람은 명아줏대 지팡이를 짚으며 후미진 오솔길을 걸어오고 있었다.
“저 분은 틀림없이 워룽 선생臥龍先生(주거량諸葛亮)일 것이다.”
쉬안더玄德(류베이劉備)는 급히 말에서 내려 앞으로 나아가 인사를 했다.
……
그 사람이 말했다.
“나는 쿵밍孔明이 아니라 쿵밍의 친구인 보링博陵의 추이저우핑崔州平올시다.”
……
쿵밍의 초가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이었다. 느닷없이 길가의 주점에서 웬 사람이 노래를 불렀다. …… 노래가 끝나자 다시 한 사람이 탁자를 두드리며 다른 노래를 불렀다. …… 노래를 마친 두 사람은 손뼉을 치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쉬안더가 소리쳤다.
“워룽이 이곳에 계시는가 보구나.”
즉시 말에서 내려 주점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탁자를 사이에 놓고 마주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데, 윗자리에 앉은 사람은 흰 얼굴에 수염이 길었고, 아랫자리에 앉은 사람은 맑은 반면 예스럽고 특이한 모습이었다. 쉬안더는 두 손을 맞잡고 읍을 한 뒤 물었다.
“두 분 가운데 어느 분이 워룽 선생이십니까?”
……
수염 긴 사람이 말했다.
“우리는 워룽이 아니고 둘 다 워룽의 친구올시다. 나는 잉촨潁川의 스광위안石廣元이고 이 분은 루난汝南의 멍궁웨이孟公威지요.”
……
쉬안더가 다시 물었다.
“워룽은 지금 댁에 계신가요?”
주거쥔諸葛均이 대답했다.
“때로는 작은 배를 저어 강과 호수에서 노닐기도 하고 때로는 스님이나 도사를 만나려고 산과 고개를 오르기도 하며 때로는 친구를 찾아 마을로 가는가 하면 때로는 동굴 속에서 거문고나 바둑을 즐기기도 합니다. 그 오고감을 짐작할 수 없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
바야흐로 말에 올라 떠나려 할 때였다. 갑자기 동자가 울타리 밖을 바라보고 손짓을 하며 소리쳤다.
“노선생께서 오셔요.”
쉬안더가 바라보니 방한모로 머리를 가리고 여우 가죽으로 만든 갖옷으로 몸을 감싼 사람 하나가 조그마한 다리 서쪽에서 나귀를 타고 오고 있었다. 그 뒤에는 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술을 담은 조롱박을 들고 눈을 밟으며 따라왔다. 나귀를 탄 사람은 작은 다리를 건너며 시 한 수를 읊었다.
……
노래를 들은 쉬안더가 소리쳤다.
“이번에는 진짜 워룽이시다.”
……
주거쥔이 등 뒤에서 일러 주었다.
“이 분은 워룽 형님이 아닙니다. 형님의 장인 황청옌黃承彦 선생이십니다.”
쉬안더가 말을 돌렸다.
“방금 읊으신 구절은 지극히 고상하고 묘합니다.”
……
( 《삼국지연의》 제37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