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다, 거두어 간직하다, 보존하다, 숨기다, 저장하다, 착하다, 알려지거나 발각될까 두려워 숨으려 하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 藏은 매우 흥미로운 구성으로 되어 있다. 풀을 나타내는 艹(풀 초)와 노예를 의미하는 臧(착할 장, 숨을 장)이 각각 위아래로 결합하여 만들어졌는데, 글자 아래의 구성요소에서 숨기다, 숨는다는 의미가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는 하지만 글자의 위에 있는 艹(艸)는 원 글자가 草인데, 검은색 염색약으로 쓰이는 도토리, 또한 ‘하인’이라는 뜻과도 관련이 있으므로 臧을 보조하는 구성요소가 되는 것에 무리가 없다. 먼저 草부터 살펴보자.
풀을 나타내는 글자는 부수로 쓰이는 艹, 풀이 자라는 모양을 본떠서 만들어진 艸, 떡갈나무의 열매인 도토리를 기본적인 의미로 하는 草 등이 있다. 艹는 부수로만 쓰이는데, 艸, 혹은 草가 변형된 것이다. 草가 풀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은 假借된 것인데, 皂(검은색 조, 노예 조)의 본래 글자이다. 皂와 皁는 같을 글자인데, 草의 위에 있는 艹는 皁의 위에 있는 丶이 변형된 것으로 보는데, 가차(假借) 되어서는 풀을 나타내는 것으로 되어 봄이 되면 식물의 싹이 앞다투어 머리를 내밀며 올라오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변했다.
그러나 草는 기본적으로 나무와 관련이 있다. 十은 나무의 줄기와 가지가 아래위와 옆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본떠서 만든 것으로 기본적으로 나무를 나타내며, 白은 서쪽, 혹은 陰을 지칭하여 양이 음으로 들어간다는 의미가 있다. 이 두 요소가 합쳐져서 떡갈나무의 열매인 도토리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아울러 검은색이라는 뜻도 가지게 되었는데, 이것은 도토리가 지닌 성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도토리의 즙을 내면 검은색을 띠는데, 옛날에는 천 같은 것에 물을 들여 색깔을 바꾸는 재료가 마땅하지 않아서 도토리의 검은 색을 이용하여 염색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인해 도토리는 검은색이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고, 나아가 하인 노예 등의 뜻도 포함하게 되었다. 이것이 草라는 글자에 하인, 노예, 검은색 등의 뜻이 들어가게 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아래의 구성요소인 臧(착할 장, 숨을 장) 역시 매우 특이한 글자이다. 이 글자는 전쟁에 져서 잡혀 온 사람으로 한쪽 눈을 없앴거나 먹으로 된 표식을 당한 노예를 의미한다. 후대로 오면서 착하다는 뜻을 가진 善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눈을 잃거나 육체적 상해를 당한 사람들은 자신의 주인에게 절대복종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하여 착하다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순전히 주인의 입장에서 이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예가 진심으로 복종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힘으로 복종하도록 만들고, 그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노예, 혹은 하인이야말로 거의 모든 것을 숨기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에서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글자의 구성을 보면 이러한 뜻이 한층 명확하게 들어온다.
爿, 戈, 臣의 구성요소로 이루어져 있는데, 臣(신하 신)은 바로 서 있는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귀를 늘어뜨려 앞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모양을 나타낸 글자이다. 그러므로 臣은 복종, 노예, 신하, 범죄자 등의 의미를 가진다. 戈는 고대에 수평으로 당기거나 찔러서 타격하는 것으로 갈고리 같은 모양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에 사용된 중요한 전쟁용 무기다. 이것이 칼을 이용하여 줄로 쪼갠 널빤지를 의미함과 동시에 죽이다는 뜻을 가진 爿과 함께 쓰여서 죽이다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臣이 두 요소와 결합하여 한쪽 눈이 창에 찔려서 보지 못하는 사람인 노예를 나타내게 되었는데, 노예는 주인에게 절대복종하는 것을 미덕으로 하므로 이것을 善이라고 생각했다. 저항력을 잃어버린 노예의 이러한 미덕, 혹은 선은 속에 감추어져서 드러나지 않으므로 하인이라는 뜻을 가지면서 노예, 혹은 무성한 풀이라는 뜻을 가지는 艹가 더해지면서 나중에는 숨김, 감춤 등의 뜻도 가지게 되었다.
노예, 혹은 하인이라는 것에 출발한 글자인 藏은 감추다, 숨기다, 보존하다, 지키다, 품다 등의 뜻을 가지는데,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속에 숨어 있는 것을 지칭하는 어감이 강하다. 숨기거나 숨는 것이 필요하거나 유용할 때도 있지만 잘못된 일을 저질러 놓고도 감추려고만 한다거나 어딘가에 숨어서 나오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다. 잘못하면 머리는 숨기고 꼬리는 드러냄(藏頭露尾)으로써 몸통 전체를 들키고 말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