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미초당필기閱微草堂筆記 – 난양소하록灤陽消夏錄 1-1

난양소하록灤陽消夏錄 1

관혁도인觀奕道人 찬撰

건륭(乾隆) 54년(1789) 기유년 여름에 비적(祕籍: 잘 알려지지 않은 전적)을 순서에 맞게 정리하고 배열하러 난양(灤陽)에 갔다. 가서 보았더니 교감 작업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기에 관리들이 선반 위의 선장본(線裝本)에 책 이름을 써서 붙이는 일만 감독하면 되었다. 낮은 길고 할 일은 없어 이전에 보고 들었던 것을 기억해내어 책으로 써 내었는데, 일정한 체제는 없다. 소설패관(小說稗官)이 저술과는 무관하고, 거리에서 떠도는 이야기 가운데도 간혹 권선징악에 보탬이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에 잠시 필경사에게 건네주어 보관하게 하고는 《난양소하록(灤陽消夏錄)》이라 명명했다.

乾隆己酉夏, 以編排祕籍, 于役灤陽. 時校理久竟, 特督視官吏題籤庋架而已. 晝長無事, 追錄見聞, 憶及卽書, 都無體例. 小說稗官, 知無關於著述, 街談巷議, 或有益於勸懲. 聊付抄胥存之, 命曰《灤陽消夏錄》云爾.

1.

어사(御史) 호목정(胡牧亭)이 해준 이야기이다. 그 고을에 돼지를 기르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돼지는 이웃집 노인만 보면 눈을 부라리고 미친 듯이 꿀꿀대며 물어뜯을 기세였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본 이웃집 노인은 처음에는 몹시 화가 나서 돼지를 사 그 살점을 씹어 먹으려 했다. 그러다 얼마 뒤에 노인은 갑자기 뭔가 깨달은 듯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바로 불경에서 말하는 ‘숙원(夙寃)’이란 말인가! 세상에 풀수 없는 원한은 없다.”

그리하여 노인은 좋은 값으로 돼지를 사들이고 절로 보내어 장생 돼지로 기르기 시작했다. 그 후에 노인이 절에 가서 돼지를 보았더니, 돼지는 머리를 조아리고 입을 귀에 갖다 대며 다정하게 노인에게로 다가서는데, 더 이상 이전의 그런 흉포한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내가 언젠가 손중(孫重)이 그린 「복호응진도(伏虎應眞圖)」를 본 적이 있는데, 그림에 서부 사람 이연(李衍)이 쓴 제사(題詞)가 있었다.

성인은 난폭한 호랑이를 타고도,
되레 천리마처럼 부리네.
어떻게 온순하게 다룰 수 있었던가?
도술의 힘으로 그 사나운 기세를 잠재웠네.
이에 천지간에 정만 있으면,
모든 일이 통하게 되어 있음을 알겠네.
모두가 금석과 같은 굳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일을 행함에 있어 두렵고 꺼릴 것이 없다네.


나는 [이 제사(題詞)가] 바로 호어사가 말해 준 이야기의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胡御史牧亭言. 其里有人畜一豬, 見鄰叟輒瞋目狂吼, 奔突欲噬, 見他人則否. 鄰叟初甚怒之, 欲買而啖其肉. 旣而憬然省曰: “此殆佛經所謂‘夙寃’耶! 世無不可解之寃?” 乃以善價贖得, 送佛寺爲長生豬. 後再見之, 弭耳暱就, 非復曩態矣.
嘗見孫重畵「伏虎應眞」, 有巴西李衍題曰: “至人騎猛虎, 馭之猶騏驥. 豈伊本馴良? 道力消其鷙. 乃知天地間, 有情皆可契. 共保金石心, 無爲多畏忌.” 可爲此事作解也.

2.

창주(滄州)에 사는 효렴(孝廉) 유사옥(劉士玉)은 서재를 여우에게 빼앗겼다. 여우는 대낮에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가 하면, 사람들에게 벽돌과 기와를 던지기도 했지만, 어느 누구도 여우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평원(平原) 출신의 지주(知州) 동사임(董思任)은 훌륭한 관리였는데, [유사옥 집안의] 이야기를 듣고는 직접 찾아가서 여우를 쫓아내려 했다. 그가 한창 사람과 요괴의 다른 이치를 쭉 늘어놓고 있을 때, 갑자기 처마 밑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이 관리로서 백성들을 아주 사랑하고, 또한 남의 돈도 갈취하지 않았기에 감히 공을 공격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이 백성을 아낀 것은 공 자신이 명성을 좋아했기 때문이고, 남의 돈을 갈취하지 않는 것은 후환이 두려워 그랬을 뿐이니, 저 역시 공을 피하여 달아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공께서는 공연히 말을 많이 해서 화를 자초하지 말고 그만두십시오!”

동사임은 허둥지둥 돌아가 며칠을 언짢은 가운데 보냈다. 유사옥의 집에 아주 미련한 하녀가 한 명 있었는데, 유독 여우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여우도 그녀만은 공격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여우와 이야기하다가 그 일에 대해 물어보자 여우가 말했다.

“그녀는 비록 천한 하녀이지만, 그래도 진정한 효부입니다. 귀신도 그녀를 만나면 놀라서 피하는데, 하물며 우리 같은 여우들이야 말할 나위 있겠소!”

유사옥이 그 말을 듣고 하녀를 서재에 살게 했더니, 여우는 그날로 자취를 감추었다.

滄州劉上玉孝廉有書室, 爲狐所據. 白晝與人對話, 擲瓦石擊人, 但不睹其形耳. 知州平原董思任, 良吏也, 聞其事, 自往驅之. 方盛陳人妖異路之理, 忽檐際朗言曰: “公爲官, 頗愛民, 亦不取錢, 故我不敢擊公. 然公愛民乃好名, 不取錢乃畏後患耳, 故我亦不避公. 公休矣, 毋多言取困.” 董狼狽而歸, 咄咄不怡者數日. 劉一僕婦甚粗蠢, 獨不畏狐, 狐亦不擊之. 或於對語時擧以問狐, 狐曰: “彼雖下役, 乃眞孝婦也. 鬼神見之猶斂避, 況我曹乎!” 劉乃令僕婦居此室, 狐是日卽去.

3.

애당(愛堂) 선생이 해준 이야기다.

옛날에 한 학구가 밤길을 가다 뜻밖에 죽은 친구를 만났다고 한다. 학구는 천성이 강직하고 두려운 것이 없는 사람이라 [자신이 귀신을 만났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친구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더니, 친구가 말했다.

“저승 관리가 되어 남촌(南村)으로 사람을 잡으러 가는 길인데, 마침 동행하게 되었구먼.”

그리하여 두 사람은 함께 길을 가게 되었다. 어느 쓰러져가는 집 앞에 이르자 귀신이 말했다.

“이곳은 선비가 사는 집일세.”

학구가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묻자 귀신이 말했다.

“사람이란 낮에는 분주히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성령이 모두 파묻혀 있네. 오직 잠잘 때만 아무 잡념도 생겨나지 않아 정신이 맑아질 수 있다네. 이때 가슴속에 쌓여 있던 글들이 글자마다 빛을 발하며 몸의 온갖 구멍을 통해 나오는데, 그 모습이 아득하고 어질하여 마치 수놓은 비단처럼 찬란하다네. 학문이 동한(東漢)의 정현(鄭玄)이나 당(唐)의 공영달(孔穎達)과 같고, 문장이 전국시대(戰國時代)의 굴원(屈原)이나 송옥(宋玉), 동한의 반고(班固)나 서한(西漢)의 사마천(司馬遷)과 같은 사람이라면 그 빛줄기가 하늘을 뚫고 올라가 별과 달과 함께 광채를 다툰다네. 그보다 조금 못 한 사람이라면 그 빛이 몇 장(丈) 길이로 비추고, 그보다 더 못 한 사람이라면 몇 척(尺) 길이로 비추고, 이렇게 조금씩 줄어들어 가장 아래 있는 사람은 그 빛이 희미한 등불과 같아 겨우 창밖으로 새어나올 뿐일세. [이 모든 것을] 사람들은 볼 수 없으며 오직 귀신만이 볼 수 있다네. 내 이 집에서 7∼8척의 빛이 뿜어져 나오는 걸 보고 [저 안에 선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네.”

학구가 물었다.

“나 역시 평생 동안 글만 읽었는데, 자는 동안 발하는 빛은 어느 정도인가?”

귀신은 한참 동안 머뭇거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어제 자네의 서재 앞을 지나가다 보니 자네는 한창 낮잠을 즐기고 있더군. 자네의 가슴속을 들여다보니 고두강장(高頭講章) 한 부, 묵권(墨卷) 500∼600편, 경문(經文) 70∼80편, 책략[策略, 책문(策問)의 예상 문제답지] 30∼40편이 들어 있는데, 글자가 모두 검은 연기로 변한 채 자네의 서재를 에워싸고 있더군. [자네 같은] 제생(諸生)들이 외는 시서(詩書) 소리는 마치 짙은 구름과 안개 속에 있는 것과 같아 정말이지 아무런 빛도 보지 못했다네. 절대 허튼 소리가 아닐세!”

그 말을 들은 학구가 버럭 화를 내며 귀신을 질책하자 귀신은 도리어 호탕하게 웃으면서 떠나갔다.

愛堂先生言. 聞有老學究夜行, 忽遇其亡友. 學究素剛直, 亦不怖畏, 問: “君何往?” 曰: “吾爲冥吏, 至南村有所勾攝, 適同路耳.” 因並行, 至一破屋, 鬼曰: “此文士盧也.” 問: “何以知之?” 曰: “凡人白晝營營, 性靈汨沒. 惟睡時一念不生, 元神朗澈, 胸中所讀之書, 字字皆吐光芒, 自百竅而出, 其狀縹緲繽紛, 爛如錦繡. 學如鄭․孔, 文如屈․宋․班․馬者, 上燭霄漢, 與星月爭輝, 次者數丈, 次者數尺, 以漸而差, 極下者亦熒熒如一燈, 照映戶牖. 人不能見, 惟鬼神見之耳. 此室上光芒高七八尺, 以是而知.” 學究問: “我讀書一生, 睡中光芒當幾許?” 鬼囁嚅良久, 曰: “昨過君塾, 君方晝寢. 見君胸中高頭講章一部, 墨卷五六百篇, 經文七八十篇, 策畧三四十篇, 字字化爲黑煙, 籠罩屋上. 諸生誦讀之聲, 如在濃雲密霧中, 實未見光芒. 不敢妄語!” 學究怒叱之, 鬼大笑而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