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의 사계

위다푸郁達夫

이미 이물異物이 되어버린 고인에 대해 추억하려면 먼저 그나 그녀의 장점을 떠올린 뒤 다시 천천히 생각하다 보면 당시 느꼈던 모든 단점들이 떠올라 그것 역시 음미해 볼 만한 하나의 기념이 되어 회억 속에서 꽃을 피우게 된다. 일찍이 살아본 적이 있는 옛 땅에 관해서라면 이 생에 다시는 두 번째로 길게 살 수 없을 거 같다. 몸은 멀리 떨어진 곳에 처해 있으면서, 그 방향으로 흘러가는 구름을 멀리 바라보며 회상에 잠기니, 불연 듯 그 장점들만 떠오를 따름이다.

중국의 대도시로 내가 전반생前半生 동안 살았던 곳은 소수가 아니다. 하지만 고요히 옛날을 회상해 보노라니, 상하이上海의 시끌벅적함, 난징南京의 광활함, 광저우廣州의 혼탁함, 한커우漢口, 우창武昌의 무질서함, 심지어 칭다오靑島의 그윽함, 푸저우福州의 수려함 및 항저우杭州의 침착함 등 이 모든 것이 결국 베이징―내가 그곳에 살 때는 당연하게도 여전히 베이징이었다―의 위풍당당함과 한적하고 끼끔한 것만 못했다.

먼저 사람이라는 대목을 이야기해 보자. 당시의 베이징―민국 11, 12년 전후―에서는 위로는 군벌, 재벌, 정객, 유명한 배우로부터, 중간으로는 학자와 명인, 문사미녀와 교육가, 아래로는 짐꾼이나 인력거꾼, 장사치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야기할 만하고 모두 그 나름의 기예가 갖는 장점들이 있으며, 혐오스러운 풍모가 없었다. 곧 직업소개소에서 추천한 중년의 아줌마라 하더라도(주인과 밀통한 하녀는 당연히 제외하고) 옷차림이 깔끔하고 보기 싫지 않다.

그 다음으로 베이징의 물산 공급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산해진미와 박래품 및 무와 배추 등 이곳 산물이 하나도 갖춰지지 않은 게 없고, 훌륭하지 않은 게 없다. 그래서 베이징에서 2, 3년 간 살아본 사람은 떠날 떼가 되면 베이징의 공기가 너무 가라앉아 있고, 모래 먼지로 너무 어둡고, 생활 역시 너무 변화가 없다고 느끼면서 일단 길을 떠나 쳰먼前門을 나서면 가슴이 탁 트이고 루거우챠오蘆溝橋를 지나면 날이 밝는 것을 알게 되어 도성 문을 나서면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는 탄탄대로를 가는 듯하다. 하지만 1년 반 정도 베이징 이외의 여러 곳―자기가 유년의 시절을 보냈던 고향은 제외하고―에 가서 살아보면 누구라도 베이징이 다시 생각나 돌아오고 싶어져 알게 모르게 베이징에 대한 향수병이 격하게 도지기 시작한다. 이런 경험은 원래부터 베이징에 살았던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 있고, 나 자신도 각별히 진하고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다. 가장 큰 원인은 아마도 내 큰 아들의 유골이 지금도 교외의 광이위안廣誼園의 묘지에 묻혀 있고, 아주 절친했던 지우들 몇몇도 그곳에서 동시에 비명에 가버린 일군의 수난자로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베이징의 사람들과 사물들은 원래부터 사랑스럽지 않은 게 없다. 모든 이들이 고약하다고 느끼는 베이징의 기후와 지리를 한데 묶어서 봐도 나는 중국의 여러 대도시들 가운데서도 몇 곳 찾기 어려운 좋은 땅이라고 생각한다. 서술의 편리를 위해 사계절로 나누어 간략하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베이징은 음력 10월부터는 모래 먼지가 온 세상을 뒤덮고, 차가운 바람이 뼈까지 스미는 계절이 된다. 그래서 베이징의 겨울은 일반 사람들이 가장 지내기 두려워하는 날들이다. 하지만 한 곳의 특이점을 알고자 한다면 가장 좋은 것은 그런 특이점이 가장 잘 발현될 때 그곳에 가서 직접 느껴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여름에는 열대 지방에 가고, 겨울에는 북극에 가야 한다는 것이 내가 이제까지 견지하고 있는 하나의 원칙이다. 베이징의 겨울은 춥기로는 남방보다 훨씬 더 춥겠지만, 북방 생활의 위대함과 그윽하고 한적함은 겨울에만 가장 도저하게 느낄 수 있다.

먼저 집의 방한 장치부터 이야기해보자. 북방의 주택은 다른 남방의 모던한 도시와 마찬가지로 철근 콘크리트와 냉열기관을 쓰고 있다. 일반적인 북방 사람의 집은 낮은 사합원으로 사면이 아주 두터운 진흙담장을 둘렀다. [사합원의] 상면의 화청花廳 안에는 모두 난갱暖坑이 있고, 회랑이 있다. 회랑 위에는 명창明窓이 나 있는데, 창에는 얇은 종이가 발라져 있고 그 종이 밖에는 또 바람문風門이 달려 있으며,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간소한 집 안에서 그대는 단지 난로에 불만 붙이고, 전등 하나 켜고, 면 소재의 문발 하나만 걸어놓으면, 집안에서 평생 춘삼월처럼 따스하게 살 수 있다. 특히 실내의 온기를 느끼게 하는 것은 집밖에서, 창밖에서 윙윙대며 불어대는 북서풍이다. 하늘은 늘 어두침침한 잿빛이고 길 위 역시 먼지로 뒤덮여 있어 바람과 먼지 속에서 차에서 내려 일단 집에 들어가면 한 무리의 봄기운이 그대의 사방을 에워싸 집밖에서 느꼈던 추운 겨울의 고초를 금방 잊게 된다. 만약 술 마시고 양고기 훠궈火鍋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겨울의 북방 생활은 더더욱 포기할 수 없다. 술은 이미 추위를 견디는 묘약이 되어버렸고, 여기에 더해 마늘과 양고기 장유醬油가 어우러져 삶아내는 향기가 실내를 온통 희뿌연 수증기로 뒤덮어버린다. 유리창 안은 처음에는 맑은 땀이 줄줄 흘러내리다가 나중에는 기이한 성에로 변해버린다.

베이징의 훠궈는 특별히 ‘솬양러우涮羊肉’라 부른다. 우리의 신선로 같이 생긴 화로에 육수를 붓고 거기에 고기와 채소를 살짝 ‘데쳐涮’ 먹는다.

눈이 내릴 때는 당연하게도 경치가 또 다시 일변한다. 아침에 두터운 솜이불 속에서 눈을 뜨면, 실내의 밝은 빛으로 인해 그대는 눈을 뜨기 힘들다. 햇빛이 비치면 눈도 입자마다 빛을 발한다. 오랫동안 칩거하던 작은 새들도 이때가 되면 먹이를 찾아 날개 짓하며 지지배배 지지배배 끝없이 지저귄다. 며칠 동안 지속된 잿빛 어두운 하늘에 드리운 우울한 구름도 말끔히 걷혀 홀연 끝도 없이 티끌 하나 없이 파랗게 변한다. 그러면 북방의 젊은 주민들은 옥외 생활을 즐길 수 있다. 얼음을 지치고, 눈사람을 만들고, 얼음썰매와 눈썰매를 타는 등 이런 시간에 가장 활기차다.

베이하이北海 공원에서 썰매 타기

나는 일찍이 이렇게 눈이 내린 뒤 맑게 갠 저녁 무렵 친구 몇 명과 비루먹은 나귀를 타고 시즈먼西直門을 나서 뤄퉈좡駱駝庄에 가서 하룻밤을 지새운 적이 있다. 베이징 교외의 눈 덮힌 대지에 마른 나무가 수없이 늘어서 있고, 시산西山에는 수많은 흰 봉우리가 보일 듯 말 듯 한데, 때때로 불어오는 눈 섞인 북서풍이 사람들에게 아주 심각하고 위대한 인상을 남겨 말로 형언키 어려울 정도로 신비로웠다. 10여 년이 지난 현재 당시의 정경을 생각하면 한기에 몸을 떨다가 맑은 기운을 토해내는 것이 마치 댜오위타이釣魚臺의 시냇물 옆에 서 있던 순간인 듯하다.

북국의 겨울밤은 특히나 책을 보거나 편지를 쓰고, 과거를 추억하고 한담을 나누거나 허튼 소리 하기에 적합한 절묘한 시간이다. 내가 기억하기로 우리 삼형제가 모두 베이징에 살 때 겨울 저녁이 되면 불원천리하고 달려와 한데 모여 어렸을 적 고향에서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했었다.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고, 집안일 해주는 사람들도 잠이 들면 우리 삼형제는 석탄을 더 넣고 또 다시 석탄을 더 넣어가면서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몇몇 밤은 바깥의 바람이 거세고 날씨가 추워, 새벽 한 두 시가 됐을 때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 차라리 날이 밝을 때까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자는 데 의견이 일치하기도 했다. 이렇듯 소중한 기억, 이렇듯 가장 속 깊은 정조라는 게 본래 평생 드물게 누릴 수 있는 우담바라 같은 것이긴 하지만, 베이징의 겨울밤이 아니라면 그런 취미도 이렇듯 유장할 수 없는 것이다.

한 마디로 베이징의 겨울은 북방의 특이한 맛을 보고자 하는 이에게는 유일한 기회가 된다. 이 계절의 좋은 점이나 이 계절의 자질구레한 일들과 잡스러운 기억들을 상세하게 쓰더라도 제경경물략帝京景物略이라는 커다란 책 한 권을 좋이 만들어낼 것이다. 단지 내 자신이 경험한 것만 써내려가도 너무 길 것이기에 이하 봄, 여름과 가을의 감회를 간략하게 서술함으로써 지금 적의 손에 함락된 고국에 대한 애가로 삼고자 한다.

봄과 가을은 본래 어느 곳에서도 사랑스러운 계절에 속한다. 하지만 베이징에서라면 약간 다르다. 북국의 봄은 늦게 오기에 시간 역시 약간 짧다. 북서풍이 멈춘 뒤 쌓였던 눈이 점점 녹고, 짐승을 끌고 다니는 마부의 몸에서도 닳고 닳은 낡은 양피 겉저고리가 보이지 않을 때, 그대는 봄나들이 할 옷과 돈을 준비해야 한다. 봄은 아무런 소식도 없이 왔다가, 자취도 없이 가버려 눈 깜짝 할 사이에 베이징 시내에서 봄빛이 날아가듯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집안의 난로를 막 치워버리고 얼마 되지 않아서 이내 시원한 그늘을 찾아나서야 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북방의 봄의 가장 기억할 만한 흔적은 성 안팎의 신록, 홍수와도 같은 신록이다. 베이징 성은 본래 수목만 보일 뿐 지붕은 보이지 않는 녹색의 도시로, 일단 아홉 개의 성문을 나서면 사방의 황토 언덕 위는 잡목이 무성하게 자란 삼림지이다. 햇빛 속에 떨고 있는 연한 녹색의 파도가 반들반들, 반짝반짝하는 것이 신경 계통이 온전치 못한 사람이라면 갑자기 몸이 이 담녹색 바다의 파도 속에 들어가 보매, 눈을 뗄 수도, 서 있을 수도 없고 그저 혼절하게 될 것이다.

베이징 시내외의 신록, 이를테면 경도춘음瓊島春陰, 서산읍췌西山挹翠의 신록은 진정 비할 바 없이 기이하고 위대한 인상파의 절묘한 화폭이다! 하지만 이 그림의 액자, 혹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이 그림의 화폭은 지금 이미 검은 털로 뒤덮인 거대한 마귀의 손 안에 떨어져 버렸다! 북으로 중원을 바라보매, 도대체 어느 세월에 광명을 되찾을 것인가?

경도춘음 비

지세와 위도로 보자면 북방의 여름은 남방의 여름에 비해 시원하다. 베이징 성 안에서 여름을 지내면 실제로 베이다이허北戴河나 시산西山으로 피서 갈 필요가 없다. 저녁이 될 때까지 가장 더울 때는 단지 정오에서 오후 서너 시까지로, 저녁에 해가 지면 날이 서늘해져 얇은 겉옷을 입지 않으면 안 되고, 한밤중이 되면 홋이불을 덮고 자야 할 정도다. 그리고 베이징의 천연빙天然冰이 싸고 오래가는 것 역시 여름에 베이징에 사는 사람들의 잊을 수 없는 일종의 혜택이다.

나는 베이징에서 세 번의 여름을 지냈다. 스차하이什刹海, 링쟈오거우菱角溝, 얼자二閘 등 여름에 유람하는 곳은 당연히 모두 가보았다. 하지만 삼복에는 대낮이건 저녁이건 등나무 침대를 정원의 포도 시렁이나 등나무 그늘 아래 갖다 놓고 누워 빙차氷茶 안에 채운 연근을 먹으며 맹인의 고사鼓詞나 나무 위의 매미 울음소리를 들으면 뜨거운 열기나 훈기를 조금도 느낄 수 없다. 그리고 여름철 가장 더울 때라고 해봐야 베이징에서는 기껏해야 34∼5도 정도이고, 이렇게 가장 뜨거운 날씨도 여름 내내 10여 일 정도에 불과하다.

스차하이의 여름

베이징에서는 봄, 여름, 가을의 세 계절을 하나로 묶어 일년 중 한랭한 시기와 비교적 온난한 시기가 서로 대립하고 있는 형국이다. 봄에서 여름까지는 짧은 일순간이고, 여름에서 가을까지 역시 낮잠 한번 자고 나면 이내 서늘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북방의 가을 역시 특별히 길게 느껴지고, 가을의 뒷맛 역시 다른 곳에 비해 짙게 느껴진다. 나는 2년 전에 베이다이허에서 돌아오다가 베이징에서 가을을 보낸 적이 있다. 그때 이미 「고도의 가을」이라는 글을 써서 베이징의 가을에 대해 노래한 바 있어 여기서 다시 중복하고 싶지는 않지만 베이징 근교의 추색秋色은 백번을 읽어도 질리지 않는 기서奇書처럼 뒤적일수록 흥미가 인다.

하늘은 높고 공기는 상쾌하며 바람과 해가 쾌청한 아침 나귀 한 필을 타고 시산西山 바다추八大處나 위취안산玉泉山 비윈쓰碧雲寺를 보러 간다. 산상의 홍시와 저 멀리에 어슴푸레한 나무 사이로 보이는 인가, 교외의 갈대와 곡식, 노새 등에 과일을 싣고 성안으로 팔러가는 농사꾼 등, 이 모든 것들이 한 달 내내 보아도 질리지 않을 것을 보장한다. 봄 가을 두 계절이야 어느 곳에서도 좋지만, 북방의 가을 하늘은 더 높아 보이고, 북방의 공기는 들이마시면 더 건조하고 건강한 듯하다. 아울러 초목이 흔들려 떨어지고 금풍金風에 모든 사물이 생을 마감하는 느낌은 북방이 훨씬 더 엄숙하고 처량하고 고요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믿지 못하겠다면, 시산西山 자락에 가서 농민들의 집이나 오래된 절의 전각에서 음력 8월에서 시월 하순까지 석 달 정도 살아 보라. 옛사람들의 “슬프구나, 가을은 오고야 말아”나 “흉노인의 피리 소리와 풀어 놓은 말들의 슬픈 울음소리”와 같은 비애감은 남방에서는 그다지 느낄 수 없는 것들이지만, 베이징, 특히 교외에서는 지극히 감격하여 눈물을 떨구고, 천리나 떨어진 친구를 떠올리며 수레를 준비하도록 명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베이징의 가을이야말로 진정한 가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남방의 가을은 그저 영어로 말하는 Indian Summer나 소춘小春의 날씨일 뿐이다.

베이징의 사계를 통틀어 보자면, 매 계절마다 모두 그 나름의 특별한 좋은 점이 있다. 겨울은 실내에서 먹고 마시며 편히 쉬는 시기이고, 가을은 교외에서 말을 달리고 매를 놀리는 나날들이고, 봄은 신록이 보기 좋고, 여름은 청량함을 만끽할 수 있다. 각각의 계절이 다가오면 바야흐로 환절기의 어느 시기나 또 다른 정취를 갖고 있으며, 서로 이어지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결합이 되는 중간의 풍미가 있다. 이를테면, 융허궁雍和宮에서 타귀打鬼를 보고, 징예안淨業庵에서 등불을 올리며, 펑타이豊台에서 작약꽃을 보고, 완성위안萬牲園에서 매화 찾는 것 등이 그러하다.

융허궁 타귀

5,6백 년 간의 문화가 모여 있는 베이징을, 1년 4계절 가운데 어느 한 달이라도 좋지 않은 게 없는 베이징을 나는 추억하고 깊이 축원한다. 베이징의 평안한 발전을 축원하고, 우리 황제黃帝의 자손들이 영원히 보유할 수 있는 옛 도성이 되기를 축원한다.

(1936년 12월 우주풍宇宙風사에서 출판한 『베이징일고北平一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