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民家紀行 – 15 구이저우성 둥족 고루와 풍우교

구이저우성 둥족 고루와 풍우교 – 아픈 다리를 쉬어 가는 넉넉한 마음의 다리

우리나라 여행객들이 많이 찾아가는 계림桂林, 즉 광시좡족자치구 구이린시에서 구이저우성 동남부 지역으로 들어가자면 두류강都柳江을 따라 싼장三江, 총장从江, 룽장榕江이란 작은 도시들을 차례로 지나게 된다. 이곳에서는 또 하나의 독특한 민간건축을 만날 수 있다.

시선을 사로잡는 첫 번째 민간건축은 다리다. 제법 큰 강이든 작은 개천이든 다리가 예사롭지 않다. 보통의 다리들은 교각 위에 상판이 얹혀 있고, 상판 좌우에 난간이 설치된 것이 전부다. 그러나 이 지역의 다리는 상판 위의 통행공간이 복도처럼 만들어져 있다. 상판 좌우 난간은 긴 의자처럼 만들어져 있어 누구나 앉아 쉴 수 있다. 그 위로는 화려한 기와지붕이 길게 이어져 있다. 멀리서 보면 몇 개의 정자가 일렬로 늘어선 것 같다. 지붕은 3층 또는 5층으로 겹쳐진 처마가 멋지고, 뾰족한 처마 끝이 하늘을 향해 곧추세워져 있어 엄지를 곧추세우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독특한 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서면, 뾰족한 꼭지가 멋지고 겹처마가 10층은 넘는 누각들을 또 만나게 된다. 누각에는 커다란 북이 하나씩 걸려 있고, 바닥에는 불을 지피는 화당이 있다. 화당 둘레에는 걸터앉는 의자가 난간을 겸하고 있다. 마을의 남녀노소들이 모여 담소가 꽃피기도 하고, 가끔은 간식거리가 풍성하게 돌아가기도 한다.

누각의 앞마당에서는 화려한 전통복장을 갖춘 마을 사람들이 반주도 없고 지휘자도 없이 웅장한 화음으로 독특한 음색을 내뿜는 멋진 합창을 감상할 수도 있다. 눈으로 보고, 두 다리로 걷고, 귀로 들으면 그들의 세계로 빠져들어 가게 된다.

이 화려한 다리는 풍우교風雨橋이고, 북을 걸어놓은 누각은 고루鼓樓이며, 반주와 지휘가 없는 전통 합창은 대가大歌라고 한다. 이런 멋진 민간건축과 전통음악의 주인공은 바로 둥족侗族이다. 둥족은 중국 남방 소수민족의 하나인데, 인구는 고작 300만으로 중국 인구의 0.2%에 지나지 않지만 그들의 건축과 대가는 중국을 대표하는 소수민족 전통문화의 걸작이다.

둥족은 그들 고유어로는 캄Kam이다. 라오스에도 둥족이 사는데 캉족康族이라고 한다.

풍우교에서는 누구나 앉아 쉬면서 강물을 구경하기도 하는데, 화려한 지붕 아래 비와 바람을 피할 수 있어 풍우교라고 부른다. 풍우교는 지붕이 있는 다리인 랑교廊橋의 한 가지다. 양쪽 난간은 긴 의자이고, 화려한 지붕은 보탑寶塔이라 한다. 보탑만 봐도 둥족의 풍우교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다.

풍우교가 둥족만의 건축문화는 아니지만, 둥족의 마을에 풍우교가 많고 화려한 자태도 뛰어난 탓에 풍우교라 하면 바로 둥족을 떠올리게 된다. 둥족의 풍우교는 교각만 석재를 사용하고 그 외는 목재를 사용한다. 일부 석공교나 석판교도 없는 것은 아니다. 특이한 점은 목재를 서로 맞물리는 방법으로 결구하는 데 쇠못을 하나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광시좡족자치구 싼장현의 정양교程陽橋가 대표적인 둥족의 풍우교다. 1916년에 세운 것이니 1세기 가까운 세월을 견뎌온 다리다. 청석으로 된 다섯 개의 교각에 다섯 개의 지붕이 서로 뽐내고 있다. 전장은 76m, 폭 3.4m, 보탑 높이는 10.6m나 된다. 큰 강에만 풍우교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작은 개천에 다리를 놓을 때에도 풍우교로 놓는다. (위쪽 하단 사진).

풍우교는 단순한 다리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이고 청춘남녀가 자연스레 어울리는 곳이며, 외지인들을 친근하게 맞아주는 마을의 얼굴이다.

지금은 마을의 표지를 넘어 둥족이라는 소수민족의 존재를 세상에 알려주는 소수민족의 문화적 아이콘이 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2005년부터 2년에 한 번씩 중국 랑교廊橋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여 전통 교량의 우수성을 학술적으로 조명해오고 있다.

풍우교와 유사하게 기와지붕이 겹겹이 쌓인 고루 역시 둥족의 대표적인 민족문화다. 처음에는 마을 사람들에게 소식을 알리기 위한 북을 걸어두는 누각이었다. 황제가 시간을 장악한다는 근엄한 메시지를 주는 베이징의 고루와는 사뭇 다르다.

고루는 풍우교의 보탑보다 훨씬 크고 높다. 촘촘한 지붕은 열 겹이 넘는데 겹지붕의 숫자는 홀수로만 한다. 고루는 일반적으로 11층짜리가 많은데 이 정도라면 전체 높이가 20여 m는 된다. 둥족에게 고루는 일가족 또는 성씨의 표상이라 한 마을에도 고루가 여러 개다. 고루가 세 개라면 세 성씨 또는 세 씨족이 모여 사는 마을인 셈이다. 화재라도 발생해 집을 다시 지을 때면 일단 고루 자리에 고루 대신 키 큰 나무를 꽂은 다음에 집을 짓는다.

고루에는 안팎을 구분하는 난간이 있는데 난간 안쪽이 의자다. 가운데는 커다란 화당을 설치해 불을 피울 수 있다. 고루 앞은 넓은 광장이다. 이 화당과 난간 의자, 고루 앞 광장에서는 일상의 담소와 마을의 회의는 물론 명절의 연회도 벌어진다. 모임과 축제와 교류의 장인 것이다.

광시좡족자치구 싼장현 민족광장에는 둥족의 고루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이 있다. 지붕이 27층, 높이는 42.6m (위 사진, 우측은 내부에서 올려다본 사진), 삼나무를 통째로 다듬어 세운 56개의 기둥이 버텨주고 있는데, 그 가운데 4개 기둥은 200년 넘은 삼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고루 안으로 들어가면 4층까지는 관람대다. 계단으로 25층 높이까지 올라가서 싼장현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도 있다. 조망도 좋지만 고루 자체가 정말 멋진 구경거리다.

마을의 집들도 대부분 목조주택인데, 산비탈이나 강가의 경사면에 지은 조각루다.

이 마을에서는 또 다른 둥족 문화를 만끽해봐야 할 것이 있다. 둥족 대가大歌, 영어로는 Kam Grand Choirs라고 하는 둥족의 합창이다. 이들의 합창은 적게는 세 명, 많게는 수십 명이 부르게 된다.

둥족의 합창에는 반주나 지휘가 없다. 오직 발성만 있는데, 중저독고衆\低獨高라 하여 단원 대부분은 화음에 맞춰 저음을 깔고, 메인 가수가 독특한 고음으로 노래를 한다. 이들은 20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중국에서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가 1959년 베이징 공연을 통해 중국 전역에 알려졌다. 1980년대부터는 매년 해외공연도 하고 있다.

이들의 합창을 듣고 있노라면 시의 고향이고 노래의 바다詩家鄕, 歌海洋라거나, 밥으로 몸을 키우고 노래로 마음을 키운다飯養身, 歌養心는 그들의 설명이 실감난다. 그래서 한족은 한자로 서책을 만들어 전해주고, 먀오족苗族은 옷에 수를 놓아 역사를 전해주고, 둥족은 노래로써 전통을 물려준다고 말한다.

둥족 마을에서는 현지인들에게 적절한 사례를 하면 언제든 대가를 청할 수 있다. 반 시간에서 한 시간이면 열 명, 스무 명 정도가 전통복장을 하고 모여들어 낯선 외지인들을 위해 둥족의 장엄한 합창을 들려준다. 가사를 알아 듣지 못해도 괜찮다. 반주가 없지만 다양한 악기의 갖가지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애절한 울음이나 환희에 들뜬 소리가 섞여 들리기도 한다.

둥족 대가는 총장현 외곽에 있는 샤오황小黃이란 마을이 특히 유명하다. 명절이 되면 마을 전체가 고루 광장에 모여 ‘거대한 합창’을 하는데, 이때 중국 전역에서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곤 한다.

광시좡족자치구의 구이린에서 출발하여 룽성현을 거쳐 싼장, 총장, 룽장을 거쳐 구이양까지 가는 길은 좡족, 둥족, 수이족水族, 먀오苗族족으로 이어지는 소수민족 답사길이다. 날씨가 좋아지는 5∼6월에 배낭 하나 짊어지고 중국 소수민족을 찾아다니면서 그들의 민간건축과 전통문화, 계단식 논과 같은 대지의 노동예술을 만끽해보는 것은 어떨까. 진정으로 중국의 또 다른 속살을 만져보고 느끼고 들어볼 수 있는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