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부지王夫之의 독통감론讀通鑑論 – 권3 한무제漢武帝 8

한무제漢武帝

20. 장탕은 속임수를 쓰다가 속임수에 죽었다

장탕은 죄수를 심문하고 압송하던 하급 관리로 있던 시절에 죄수로 잡혀 온 노알거(魯謁居)의 동생을 보자 몰래 도와주려고 일부러 모르는 사람인 체했으니, 이야말로 간사한 자가 잘 쓰는 은밀한 술수였다. 그런데 노알거의 동생은 내막을 몰라서 그 때문에 장탕을 원망했고, 결국 장탕은 그 때문에 (그가 고발해서) 죽었다. 간사한 자는 결국 간사함 때문에 죽게 되나니, 귀신은 속일 수 없고 사람이 술수로 귀신을 부릴 수 없기 때문이다. 재앙은 예측할 수 없이 일어나는데, 간사한 이는 이런 술수를 팔아 이익을 챙기다가 결국 스스로 멸망할 수밖에 없다. 군자가 이런 일을 한 적이 있었던가?

주의(周顗)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이런 술수를 왕도(王導)에게 썼다가 결국 장탕과 마찬가지로 재앙을 당했으니, 참으로 어리석었구나! 왕돈(王敦)의 죄는 그의 친척 동생인 왕도에게 함께 묻지 않고, 대신의 신분으로 무엇을 꺼리고 의심했기에 스스로 나서서 처리하지 않고 간사한 자들이나 쓰는 속임수를 썼단 말인가! 겉으로는 은혜를 베푸는 척하면서 은밀히 자기 이익을 챙기고, 사로잡을 속셈으로 일부러 풀어주는 술수를 쓴 주의는 노자의 가르침에 빠져서 자신이 장탕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이런 술수를 쓰면 적게는 자신의 목숨을 잃고 크게는 나라를 망치게 되니, 지혜로운 듯하지만 사실을 지혜를 해치는 이런 술수를 군자는 싫어한다. 《주역》 〈절괘(節卦, ䷻)〉의 “초구(初九)” 효사(爻辭)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대문과 정원을 나가지 않으면 허물이 없다.

不出戶庭, 無咎.

이는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비밀을 지킨다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지, 그 실질을 은폐하고 오히려 거꾸로 이용하여 상대에게 예측불허의 대응을 보여주라는 뜻이 아니다. 비밀이 있다면 위험하다. 설령 못된 마음을 품지 않더라도 신과 사람이 꺼리는 바를 저촉할 수 있으니,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21. 무제, 난대(欒大)를 천거한 정의(丁義)를 처형하다

악성후(樂成侯) 정의(丁義)가 난대(欒大)를 천거했는데, 난대의 속임수가 바닥이 드러나자 정의도 기시형(棄市刑)에 처해졌다. 소인은 어질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의롭지 못한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작은 잘못만 저질러도 징계를 받아서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해 주니, 이것은 소인의 복이다. 한 사람을 징계하여 천하가 경계하면 나라의 복이다. 정의가 난대를 천거했는데, 무제가 장려하지 않았다면 천거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의를 징계하지 않았다면 그를 이어서 누군가를 천거하는 이가 줄을 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의가 처벌되자 대신들이 감히 방사(方士)를 천거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처벌이 두려워서 감히 시도해 보지 못한 것이다. 정의가 처벌되자 공손경(公孫卿)이 받은 총애도 문성장군(文成將軍)에 봉해진 이소옹(李少翁)이나 오리장군(五利將軍)에 봉해진 난대처럼 찬란하지 못했다. 그 후 무제도 신선을 찾으려는 마음이 없어져 버렸고, 그에 따라 그것을 이용해 아부하려는 자들도 없어졌다. 그러므로 형벌과 상이 분명하면 소인배가 줄어들기 마련이다. 무제의 음란과 사치가 과도했지만 끝내 망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은 것은 이 덕분이 아니겠는가!

22. 예관(兒寬)이 유술(儒術)로 봉선제(封禪祭)를 찬미하다

귀신이 나날이 천지간에 유행하면서, 황홀하고 뚜렷한 형상도 없는 특징을 이용해 천하의 이목을 뒤흔들어 미혹에 빠뜨렸다. 그런데 가르치는 이들이 그런 것은 없다고 바로잡아 설명해 주지 못함으로 인해 깊은 의미가 전해지지 못했고, 이 때문에 천박하고 비루한 자들이 거기에 의탁하게 되었다. 불교와 노장(老莊)의 가르침이 비록 편파적이지만 그것들도 처음에는 귀신에 의존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의 먼 후예가 일단 지나치게 귀신에 빠지게 되면서 허무적멸(虛無寂滅)을 추구하던 초심(初心)마저 어기게 되었다. 어찌 불교와 노장사상만 그렇겠는가! 군자의 도리가 전해지게 되면 도중에 바른길에서 벗어나는 유파도 생기기 마련이다.

위(魏)·진(晉) 이래로 불교와 노장사상이 성행하면서 귀신에 관한 이야기도 여기에 빌붙어 유행했는데, 이는 불교와 노장사상 본래의 것이 아니라 무당이 거기에 빌붙은 결과이다. 동한 이전에는 불교가 아직 중국에 들어오지 않았고 노장사상도 아직 무당에게 오염되지 않아서, 귀신에 관한 이야기는 선왕의 예악(禮樂)과 《시경》, 《서경》 등에 빌붙어 천하 사람들을 미혹했다. 그 와중에 잡박(雜駁)한 유생들이 군자의 도리를 왜곡하여 귀신을 증명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잡박한 유생들의 허무맹랑한 행위는 불교와 도교의 못난 신도들이 저지른 행위와 똑같다. 천하의 어리석고 못난 자들이 도(道)를 빙자할 무언가가 생기게 되자 요사한 말들이 이런 자들을 통해 일어나서 종식시킬 수 없게 되었다. 한나라 초기의 부서(符瑞)는 훗날 참위(讖緯)가 되었고, 잡박한 유생들이 어리석고 못난 이들을 꾀어 속이는 이런 것들을 이용해 선왕의 도리를 믿게 했다. 아아! 참으로 비루했구나!

무제가 지나치게 제사를 올리며 불로장생을 추구한 것은 방사들과 무당들이 거짓말한 결과일 따름이다. 예관(兒寬)은 유생인지라 왕도(王道)를 얘기할 때는 또박또박 큰소리를 늘어놓아도 부끄러움이 없었다. 그런데 견강부회하고 꾸며서 봉선제(封禪祭)를 찬미하면서 공손경 같은 무리와 표리(表裏)를 이루며 호응하니, 무제가 그 이야기에서 이용할 만한 것을 발견하고 유술(儒術)을 채용하여 자신의 음란함과 황탄(荒誕)을 그럴듯하게 꾸몄다. 이 바람에 선왕의 도리는 후세의 불교나 도교 무리와 같아지면서 극도로 멸렬(滅裂)되어 버렸다. 그것이 참위로 이어지면서 더욱 망가져서, 백련교(白蓮敎)가 거짓으로 불교에 의탁해서 반란을 고무한 것과 똑같은 길을 가게 되었다. 아! 유생이 먼저 그 방어막을 찢어 망령된 생각의 단초를 열어 놓았으니, 불교와 도교 가운데 지혜로운 이가 있다면 그 분별없고 몽매함을 비웃으며 천시할 것이다. 한나라 유생들은 도를 훼손하고 유속(流俗)을 따름으로써 성인의 가르침을 망쳤으니, 그 죄를 어찌 다시 모면할 수 있겠는가!

귀신이라는 것은 군자가 없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그 존재를 천하에 증명할 수도 없다. 없음 가운데 존재하기도 하고, 없음 가운데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니, 또 어찌 있는 것을 직접 가리키며 있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육경(六經)’에 그에 관한 미묘한 말[微辭]이 들어 있고, 교묘(郊廟)에 그에 대한 정의(精意)가 깃들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망령된 자들 여기에 의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천하에서 은밀한 비평을 이해하고 정의를 분명히 살펴서 저승과 이승[幽明]의 사연을 알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어쩔 수 없다면 차라리 불교와 도교 신도들이 어리석고 못난 자들을 따라 유혹하여 과도하게 허무맹랑한 생각에 빠진 이들을 모두 불교와 도교의 골짜기로 몰아넣게 내버려 두는 게 낫다. 그러면 선왕의 도리가 아직 그 올바른 성정[貞性]을 탁월하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위·진 이래 유생은 귀신에 관해 말하지 않다가 송나라에 이르러 성인의 도가 다시 크게 빛났고, 불교와 도교의 과도한 제사가 흥성하더라도 성인의 도는 울타리가 저절로 튼튼해졌으니, 이것이 오히려 더 낫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