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대소설예술기법 11 난교속현법鸞膠續弦法

난교속현법鸞膠續弦法

【정의】

‘난교속현鸞膠續弦’에서 ‘난교鸞膠’는 전설로 전해지는 아교의 일종으로 활줄이 끊어진 것을 이을 수 있다고 한다. 《한무외전漢武外傳》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서해西海 지방에서 난교鸞膠를 바쳤는데 무제의 활줄이 끊어져서 그것으로 이으니 활줄 양쪽이 서로 달라붙었다. 하루 종일을 활을 쏘아도 끊어지지 않자 황제께서 크게 기뻐하였다.” 곧 ‘난교속현’이란 문장이 끊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교묘하게 이어져 있는 것을 말한다. ‘난교재속법鸞膠再續法’, ‘속교법續膠法’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것 역시 진성탄金聖嘆의 「독제오재자서법讀第五才子書法」 가운데 하나이다.

난교속현법鸞膠續弦法이라는 것이 있다. 옌칭燕靑이 량산보梁山泊로 소식을 알리려 가다가 길에서 양슝楊雄과 스슈石秀를 만났는데 서로 못 알아보았다. 게다가 량산보에서 다밍푸까지는 피차 작은 오솔길을 택해 갔으니 어떻게 [그 먼 길을 가면서] 같은 오솔길을 갈 수 있었을까? [작자는] 옌칭이 양슝과 스슈와 만나게 하기 위해 옌칭이 점을 쳐 괘를 구하려고 활로 까치를 맞추고 먼저 [양슝과 스슈에게] 싸움을 걸게 한다. 옌칭이 한 주먹에 스슈를 때려눕히나 [양슝에게] 제압당한 뒤 자신의 이름을 짐짓 흘린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난교속현법의 예이다. 이 모든 것이 각고의 계산 끝에 나온 것이다.

有鸞膠續弦法, 如燕靑往梁山泊報信, 路遇楊雄石秀, 彼此須互不相識, 且繇梁山泊到大名府, 彼此旣同取小徑, 又豈有止一小徑之理。看他便順手借如意子打鵲求卦, 先鬪出巧來, 然後用一拳打倒石秀, 逗出姓名來等是也, 都是刻苦算得出來。

【실례】

이것은 흔히 말하는 ‘함접銜接’과는 다르다. ‘함접’은 서로 인접한 앞 뒤 문장을 연결하는 것을 가리키는 반면, ‘난교속현법’은 하나의 실마리가 둘 이상으로 나뉘어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수호전》 제61회에서 우융 吳用은 짐짓 꾀를 내어 루쥔이盧俊義를 량산보에 합류시키려 하나 루쥔이는 한사코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루쥔이는 그 사이 정분이 난 하인 리구李固와 아내 쟈 씨賈氏의 음해를 받아 사먼 도沙門島로 유배를 간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두 갈래로 나뉘는데, 하나는 량산보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루쥔이에 대한 것이다.

루쥔이의 생명은 랑쯔浪子 옌칭燕靑이 지켜줄 뿐 아니라 량산보 역시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우선 옌칭은 루쥔이를 해치려는 방송공인放送公人들을 화살로 쏘아죽이고 루쥔이를 일시 구출하나 이내 그들을 추적한 포졸들에게 루쥔이를 탈취 당한다.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옌칭은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오솔길로 량산보에 가던 중 양슝楊雄과 스슈石秀를 만난다.

진성탄은 바로 이 대목을 지적하고 있다. 곧 량산보로 가는 길이 수없이 많은 데도 불구하고 하필이면 옌칭과 양슝, 스슈가 작은 오솔길을 선택했냐는 것이다. 진성탄에 의하면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루쥔이에 대한 이야기가 옌칭과 량산보라는 상이한 시공간으로 나뉘었다가 다시 합쳐지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로서 작용한 것이다. 곧 오솔길을 걸어가던 옌칭이 배고픔을 못 이겨 까치라도 잡아먹으려고 화살을 쏘아 맞췄지만 정작 까치는 찾지 못하고 바로 그때 “옌칭의 곁을 스쳐 지나”가던 두 사내를 공격하나 결국 두 사내에게 제압 당해 거꾸로 목숨을 잃을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다음 순간에 사용된 소재가 옌칭의 팔에 새겨진 문신이다. 서로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문신은 양자를 이어주는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진성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옌칭이 스스로 통성명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사내들 역시 이름을 알 수 없다. 뛰어난 예술가도 고심하지 않으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없는 법인데, 갑자기 팔에 새겨진 문신이 드러나는 것으로 해결한 수법의 기묘함은 말할 것도 없다.( 《독제오재자서시내암수호전讀第五才子書施耐庵水滸傳》 제61회 회수총평回首總評) 燕靑自通姓名旣不可, 那漢自曉姓名亦不可, 良工苦心, 忽算到花綉上來, 奇妙不可言.

이렇듯 시공간적으로 두 갈래로 나뉘었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합치되는 장치로 쓰인 것은 ‘오솔길’과 ‘팔에 새겨진 문신’으로, 이것들이 바로 이야기를 이어주는 ‘난교’인 셈이다.

【예문】

한편 옌칭燕靑이 반찬거리라도 얻으려고 활을 메고 근처로 사냥하러 나갔다 돌아오는데 온 마을이 떠들썩한지라 숲 속에 숨어 내다보니 창과 칼을 든 1, 2백 명의 사령들이 루쥔이盧俊義를 결박하여 수레에 태워 가지고 지나갔다. 당장 달려 나가 주인을 구하고 싶은 생각은 불붙듯 한데 손에 장기를 쥔 것이 없어 애만 태우다가 생각했다.

‘이런 때 량산보梁山泊에 가서 쑹 궁밍宋公明에게 알리지 않는다면 내가 주인의 목숨을 그르치게 되지 않겠나!’

옌칭은 곧 떠나서 밤중까지 길을 조이니 배가 출출해지는데 몸에는 돈 한 푼 가진 것이 없었다. 그리하여 등성이에 나무들이 듬성듬성한 숲속으로 들어가 날이 저물 때까지 잤다. 새벽녘이 되어 옌칭이 근심에 싸여 있는데 마침 까치가 나무 위에서 깍깍 운다.

‘그렇지 저 놈을 잡아가지고 마을에 들어가 물이나 얻어 삶아먹는다면 요기는 할 수 있을 게야.’

이런 생각을 하며 일어나 고개를 쳐들고 보니 까치는 자기를 내려다보며 울고 있다. 옌칭은 활을 들고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를 드렸다.

‘옌칭에게는 다만 이 화살 한 대가 남았을 뿐입니다. 우리 주인님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거든 저 영리한 새를 떨궈주시고 구원하지 않으시려거든 저 새를 날아가게 하소서.’

그가 시위에 살을 먹여 들고, ‘내 정다운 화살아, 내 뜻을 어기지 말아다오’ 하고 중얼거리며 당겼다 놓으니 시위 소리와 함께 까치는 꽁무니를 맞아 언덕 아래로 떨어졌다. 옌칭이 성큼성큼 등성이를 내려가니 까치는 보이지 않고 문득 두 사람이 마주 온다.

그 두 사람은 옌칭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옌칭은 돌아서서 그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렇지. 노자도 없는데, 이 주먹으로 저 놈들을 때려눕히고 보따리를 빼앗는다면 량산보까지 쉽게 갈 게 아닌가?’

옌칭이 쇠뇌를 집에 넣고 뒤를 밟는데 그 두 사람은 여전히 머리를 숙이고 길만 재촉했다. 옌칭은 쫓아가 전립을 쓰고 뒤에 걷는 자의 잔등에 주먹을 내질러서 그를 땅에 넘어뜨렸다. 재차 주먹을 들어 앞사람을 냅다 지르려다 도리어 그 사나이가 내리치는 몽둥이에 왼다리를 맞아 땅에 쓰러졌다. 그러자 땅에 쓰러졌던 사나이가 일어나 요도를 빼들고 옌칭의 면상을 내려찍으려 했다.

“여보시오. 나는 죽어도 일 없소만 우리 주인의 소식을 누가 전해 주겠소?”

옌칭이 다급히 소리치니 그 호한은 칼 든 손을 멈추고 옌칭의 멱살을 들어 일으키며 물었다.

“이 놈, 무슨 소식을 전한단 말이냐?”

“그걸 알아서 무엇 하겠소?”

옌칭이 되묻는데 그 사나이가 옌칭의 손목을 잡아 일으키다가 꽃을 새긴 손목을 보고 급히 묻는다.

“아니 당신은 루 원외盧員外 댁의 랑쯔浪子 옌칭이라는 분이 아니오?”

옌칭은 생각했다.

‘어차피 죽게 되었으니 실토하고 이들에게 붙잡혀 가 혼백이라도 남아 주인과 만나자.’

“그렇소. 내가 바로 루 원외 댁에 살던 랑쯔 옌칭이오. 나는 지금 우리 주인의 목숨을 구해 달라고 량산보의 쑹 궁밍 형님께 알리러 가는 길이오.”

그 말에 두 사람은 껄껄 웃었다.

“손을 대지 않은 게 다행이었네. 알고 보니 옌칭이었구만. 임자는 우리 둘을 알 만한가? 나는 량산보의 두령 빙관쒀病關索 양슝楊雄이고 저 이는 핀밍싼랑拼命三郞 스슈石秀라오.”

양슝이 말했다.

“우리 둘은 지금 형님의 명을 받잡고 베이징으로 루 원외의 소식을 염탐하러 가는 길이었소. 군사軍師와 다이 원장戴院長 역시 뒤따라 산에서 내려와 우리의 소식을 기다리기로 했소.”

양슝의 말에 옌칭은 그들이 양슝과 스슈임을 알고 일의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양슝이 말했다.

“그렇게 되었다면 나와 옌칭은 산채로 돌아가 형님께 알려서 대책을 세우게 하겠으니 자네는 베이징에 들어가 소식을 알아 가지고 돌아와 알리게.”

스슈가 말했다.

“그렇게 합시다.”

그리고는 구운 떡과 말린 고기를 꺼내 옌칭에게 먹이고 짐을 옌칭에게 지우니 옌칭은 그 짐을 받아 메고 양슝을 따라 밤을 도와 량산보로 올라갔다.( 《수호전》 제61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