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확실히 언제나 미래를 멀리까지 생각했다. 언젠가 내가 그 즈음 평판이 나 있는 마오둔茅盾의 작품을 번역하려고 한다는 뜻을 알리자, 그는 나에게 오늘만 성가가 있는 것을 번역하는 게 좋은지, 그렇지 않으면 영구한 가치가 있는 작품을 번역하는 게 좋은지를 되물었다. 나는 그의 말을 그 작품이 비록 오늘 평판이 있다 해도, 그것은 오늘뿐인 것이라, 좀 더 미래에까지 생명이 있는 일에 노력을 기울이면 어떻겠는가라고 권고하는 것으로 알아들었다. 하지만 나에게도 내 나름의 생각이 있었기에 뭔가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아서 설사 오늘뿐인 가치가 있는 것이라도, 번역하고 싶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했는데, 그때도 나는 나 같은 소인배와 달리, 그는 먼 미래를 위한 일에―항상 그것에 눈을 돌리고, 노력을 기울였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헤아릴 수 있었다.
그는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중국의 미래에서는 사막이 보인다‘ 라고 말했다. 그는 개탄하듯이 이렇게 말했다. 물론 그 말 자체는 비유적인 표현이었어도, 그가 너무나도 기가 막히게 훨씬 앞선 미래까지 관심을 갖고, 확실히 내다보려고 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었다. 또 “중국은 무엇보다 인간이 죽지 않으면(기근이나 살생으로), 평화는 오지 않을 것이다. 삼분의 일(이라고 들었다고 생각하는데, 혹은 십분의 일이었다고도 생각한다. 사막까지 보인다고 했기 때문에 십분의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정도의 인구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즈음 나는 그런 이야기가 너무 각박하고 그의 상궤를 벗어날 정도로 걱정이 많은 성향에서 이야기 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러나 그 정도로 진지하게 먼 미래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에게는 현실에 대한 구원이라는 애절한 소망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위다푸郁達夫는 “우리가 일부분을 보고 있을 때 그는 전체를 보았고, 우리가 현실을 부여잡고 초조해할 때 그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파악했다”고 말했는데, 그는 내가 아는 그 어떤 중국의 작가에 비해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예리한 통찰이 있는 동시에(일례로, 그의 「위진 풍도·문장과 약·술의 관계魏晋風度及文章與药及酒之关系」 중에서 우리에게 뒤집어 보여주었던 ’죽림칠현竹林七賢‘에 관한 연구로 말하자면, 일찍이 누가 그 정도로 주도면밀하고 예리한 시각으로 역사를 보았던가), 게다가 그 안목은 어디까지나 미래까지 담고 있어, 그로부터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질책이 생겨났던 것이다. 중국의 오늘을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중국의 미래를, 영원을 살아가기 위해서라는 것을 그는 항상 마음에 두고 있었던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