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화의-장열張說 신도 남정에서 곽원진·노숭도를 전송하며新都南亭送郭元振盧崇道

신도 남정에서 곽원진·노숭도를 전송하며新都南亭送郭元振盧崇道/ 장열張說

竹徑女蘿蹊, 대나무 길 겨우살이로 뒤덮었고
蓮洲文石堤. 연 밭엔 무늬 새긴 제방이 걸쳤다.
静深人俗斷, 조용하고 깊어 인적 끊어지고
尋玩往還迷. 볼거리 찾다가 길 잃었다.
碧潭秀初月, 푸른 연못엔 초승달 빼어나고
素林驚夕栖. 하얀 숲 저녁에 깃든 새 놀라게 한다.
褰幌納蟾影, 휘장 걷어 올려 달빛 맞이하고
理琴聽猿啼. 거문고 줄 고르며 원숭이 울음소리 듣는다.
佳辰改宿昔, 좋은 시절 잠깐 사이에 바뀌니
勝寄坐睽携. 명승지에 앉아 헤어지는구나.
長懷賞心愛,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길이 간직할지니
如玉復如珪. 옥 같고 홀 같기도 하여라.

[해제]

제목의 신도 남정은 지금의 사천성 성도시 신도구(新都區)의 서남쪽에 있는 계호(桂湖)를 가리킨다. 이곳은 한대 때부터 연꽃으로 이름을 떨친 곳이다. 수대 때 이 호수는 성의 남쪽에 있었기 때문에 이곳을 ‘남정’이라 불렀으며 송대에 이르러 다시 ‘신도역(新都驛)’으로 개명했다. 이때부터 이곳은 남북으로 내왕하는 나그네의 쉼터가 되었다. 명대에 이르러 신도 출신의 저명한 학자 양신(楊愼, 1488-1559)이 지은 <계호곡(桂湖曲)>로 인해 계호가 이름을 떨치자 이때부터 ‘계호’로 불렸다. 계호삼림공원 안에 그의 사당 승암사(升庵祠), 현대 소설가 애무(艾蕪, 1904-1992), 항일장군 왕명장(王銘章, 1893-1938)의 무덤과 모택동 주석이 가장 좋아했던 비서 전가영(田家英)의 동상이 있다.

이 시는 ≪전당시≫ 권113에 노숭도의 시로 나와 있다. 노숭도는 개원 초기에 태상경(太常卿)을 지낸 바 있다.

‘죽경(竹徑)’은 ‘삼경(三徑: 세 오솔길)’의 하나로 한(漢)나라 때 은사 장후(蔣詡)가 자기 집 대나무 밑에 세 오솔길을 내고 구중(求仲)과 양중(羊仲) 두 사람하고만 교유했던 데서 유래되었으며, 보통 은자의 정원을 가리킨다.

오언고시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