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태감三寶太監 서양기西洋記 통속연의通俗演義 제3회

제3회 연등고불은 김 원외랑의 집에 현신하고
유서 깊은 정자사에 몸을 의탁하다
現化金員外之家 投托古淨慈之寺

이런 시가 있다.

夜夜生蘭夢 밤마다 아들 얻는 꿈을 꾸고
年年種玉心 해마다 좋은 아내 얻고 싶었네.
充閭看氣色 아들 낳은 걸 축하하며 기색을 살피고
入戶試啼聲 방 안에 들어가 아기 울음소리 들어보았네.
明月還珠浦 밝은 달이 주포(珠浦)로 돌아오니
高枝發桂林 계수나무 숲에 높이 출세한 이 나타났네.
北堂書報日 모친께 편지로 알리는 날이면
不啻萬黃金 황금 만 냥 벌었다는 얘기만 하진 않을 테지.

그러니까 유씨는 대야에서 별을 하나 집어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단숨에 삼켜버렸지만, 정작 자신은 그런 줄도 모르고 있었다. 김 원외랑은 그걸 보고 깜짝 놀랐다.

“저런, 조심하지 않고!”

“옛날에 누가 술잔에 비친 활 그림자를 보고는 뱀을 삼켰다고 놀랐다고 하더니, 이것도 뜻밖의 실수였나 보네요.”

“술잔에 비친 그림자야 가짜였지만, 당신이 삼킨 별은 진짜였소.”

“허풍이 진짜가 돼버린 셈이군요.”

“그나저나 그 별은 정말 예쁘게 빛나던데, 아깝구먼.”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셔요?”

“예로부터 ‘총명한 사람들끼리 서로 처지를 알아준다.’고 했잖소?”

그 말에 두 사람은 잠시 웃음을 터뜨리다가 자리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일어나서도 그들은 실수로 별을 삼켰다고만 생각했을 뿐, 연등고불이 인간의 몸을 빌려 세상에 나오기 위해 유씨의 태에 들어갔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월경이 없는 것을 보고서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씨는 초산(初産)이기도 하고 별을 삼킨 일도 있고 해서 마음이 무척 불안했고, 김 원외랑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이에 부부는 관제(關帝)의 사당에 가서 기도를 올리고 점을 쳐서 길흉을 알아보기로 했다. 김 원외랑은 몸소 향과 촛불, 지전 따위를 준비해서 관제의 사당으로 가서 다섯 번 절을 올리고 세 번 머리를 조아린 후 지금까지의 일을 자세히 설명하며 두 손으로 점통을 받쳐 들었다. 그리고 점통을 한 번 흔들자마자 막대가 하나 툭 떨어졌다. 주워 들고 보니 쉰세 번째 점괘였는데, 거기에는 ‘중평(中平)’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가 다시 기원했다.

“정말 쉰세 번째 점괘라면 길조(吉兆)를 보여주는 두 개의 점괘를 내려 주소서.”

그러자 과연 두 개의 점괘가 나왔는데 그 의미가 조금 애매했다. 그는 관제에게 공손히 읍(揖)을 올려 감사하고, 서쪽 회랑 아래의 방으로 가서 도사에게 인사하고 종이봉투를 건넸다. 도사는 오십삼 번째 점괘를 적은 시를 꺼내서 그에게 건네주었다. 받아서 읽어보니 내용이 조금 이상했다.

君家積善已多年 그대 가문에선 이미 여러 해 동안 선업을 쌓았으니
福有胎兮禍有根 복을 잉태했지만 재앙도 뿌리를 내렸노라.
八月秋風生桂子 팔월 가을바람에 계수나무 열매 생기리니
西風鶴唳哭皇天 서풍에 학이 울며 하늘 향해 통곡하리라.

그걸 보자 김 원외랑은 마음속에 차츰 화가 치밀었다. 도사가 그의 표정을 보더니 물었다.

“이건 무얼 점친 것입니까?”

그가 화난 목소리도 대답했다.

“제 아내가 임신을 해서요.”

“그렇다면 아주 길한 점괘입니다. 아주 길해요!”

“아니, 왜요?”

“팔월 가을바람에 계수나무 열매가 생긴다고 했으니 대단히 길한 점괘가 아닙니까?”

“거기다가 하늘 향해 통곡한다는 게 더해졌으니,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아들을 낳을 건가를 물으셨지 길흉화복을 물으신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 구절은 덤으로 붙여진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약 길흉화복을 물으셨다면 팔월 가을바람에 계수나무 열매가 생긴다는 구절은 아무 쓸모가 없어집니다.”

도사가 풀이를 잘해 주었지만 김 원외랑의 마음에는 약간 걱정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도사와 작별하고 집으로 돌아가자 아내가 급히 맞이하며 물었다.

“점괘가 어떻게 나왔어요?”

그가 점괘를 적은 시를 외어주자 아내가 말했다.

“길보다는 흉이 많은 것 같네요.”

그는 다시 도사의 말을 전해 주었다.

“그야 면전에서 아첨하는 말일 테니까 믿기 어렵지 않겠어요?”

“걱정 마시오. 나한테 방법이 있소.”

“무슨 방법이요?”

“며칠 전 통강교(通江橋)에서 여동빈(呂洞賓)의 도건(道巾)을 머리에 두르고 이십사기(二十四氣)의 문양이 그려진 법복(法服)을 입고, 남경교(南京橋) 교영리(轎營里)에서 만든 삼양혜(三鑲鞋)를 신은 채 남쪽으로 문이 난 옻칠 가게에 앉아 있는 어떤 이를 만났소. 앞쪽에는 ‘역괘통신(易卦通神)’이라고 큼직하게 써놓았습디다. 그런데 점을 치고 괘를 풀이하는 것이 버들가지로 생선을 꿰듯 조리 있고 능숙하더란 말이오. 그래서 근처에 사는 사람한테 조심스럽게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았소. 그러니까 자기도 본래 이름은 모르는데, 다만 듣자 하니 귀곡자(鬼谷子)의 제자로서 별명이 귀추(鬼推)라고 한다 합디다. 그렇게 《주역(周易)》 점을 잘 치는 사람이라면, 가서 한 번 점을 쳐볼까 하오.”

“일리 있는 말씀이네요.”

김 원외랑은 의관(衣冠)을 단정히 고치고 소매를 휘저으며 천천히 통강교로 갔다. 그 점쟁이는 점을 치고 풀이해주느라 정신이 없어서 고개를 들거나 걸음을 옮길 틈조차 없었다. 김 원외랑은 다리가 저리고 발이 아플 때까지 서서 기다렸으나 차례가 오려면 한참 멀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귀추 선생!”하고 불렀다. 점쟁이는 자신의 별명을 부르는 사람이 있자, 아는 사람인가 싶어서 얼른 맞이했다.

“어서 들어오시지요.”

김 원외랑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간신히 안으로 들어갔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나자 점쟁이가 말했다.

“원외랑님, 점을 치시려거든 먼저 성명하고 사주팔자, 그리고 점을 치는 목적에 대해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저는 용금문 밖에 사는 김 아무개라고 합니다. 제 안사람이 임신을 했는데 그게 아들인지 딸인지, 길한 일인지 흉한 일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그 점쟁이는 제법 노련한 사람이어서, 즉시 돌아서서 향을 사르고 공손히 절을 올리며 중얼중얼 주문을 읊조렸다.

“육정신(六丁神)께 삼가 고하노니 문왕(文王)의 괘(卦)에 영험함을 담아주소서. 길흉은 우주만물에 부합되지만 결코 인정을 따르지는 않습니다. 무릇 괘라는 것은 그 덕이 천지와 합치되고, 밝음이 해와 달과 합치되며, 순서가 사계절과 합치되고, 그 길흉은 귀신과 합치됩니다. 하늘은 사사로움이 없고 영험한 괘에 감응합니다. 좋은 향을 사르며 복희(伏羲) 성인(聖人)과 문왕 성인, 주공(周公) 성인, 대우(大禹) 성인, 공자(孔子) 성인, 귀곡(鬼谷) 선생, 원천강(袁天罡) 선생, 이순풍(李淳風) 선생, 진희이(陳希夷) 선생, 소강절(邵康節) 선생까지 팔괘조사(八卦祖師)를 청하옵나니, 앞뒤로 가르쳐 주시고 종사(宗師)의 뜻을 풀이해서 설명해 주시옵소서. 아울러 괘 속에 육정육갑의 신장(神將)들과 천리안(千里眼), 순풍이(順風耳), 축천축지신장(縮天縮地神將), 보괘동자(報卦童子), 척괘랑군(擲卦郞君), 치일전언옥녀(値日傳言玉女), 주사공조(奏事功曹), 이 지역 오방(五方)의 토지신(土地神), 이 지역 성황대왕(城隍大王), 해당 가문의 여러 조상들, 따라오신 향화복신(香火福神), 허공을 지나는 모든 신들과 우러러 마지않는 여러 성인들께도 이 제사에 내려오셔서 이 점이 영험하게 들어맞는지 보살펴 주시옵소서.

이제 위대한 명나라 절강도(浙江道) 항주부(杭州府) 인화현(仁和縣)의 신도 김 아무개가 삼가 부인의 임신과 관련하여 길흉을 미리 알 수 없는지라 이 달 이 날에 삼가 여러 성인들의 팔팔 육십사 괘 가운데 하나의 괘와 사백여든네 개의 효(爻) 가운데 하나의 효를 점치고자 하옵니다. 효는 함부로 움직이지 않고 괘는 함부로 옮기지 않으며, 인정에도 귀신의 뜻에도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길하다면 길한 신께서 괘에 나타나시고, 흉하다면 흉한 신께서 나타나시옵소서. 엎드려 바라옵건대 여러 성현들께서 자세히 살피시고 상세히 따져주시옵소서. 지성이면 괘에도 영험함이 나타나고, 효가 천지와 통하면 괘도 귀신과 통하겠지요. 여러 성현들이시여, 영험을 드러내시어 응답해주소서!”

이어서 그는 동전을 여섯 번 던졌는데, 나온 것은 뇌수해괘(雷水解卦)였다.

“해괘로군요! 아주 좋습니다! 해(解)라는 것은 곤란함이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또한 위쪽 괘가 아주 길한 괘입니다. 괘의 해설서에는 ‘길한 별이 길한 날을 만나니 흉함은 적어지고 길함은 더욱 많아지리라. 남자는 아내를 만나고 여자는 해로할 남편을 만나리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부인께서 아드님을 낳으실 게 분명합니다.”

“다시 한 번 살펴봐주십시오. 군자는 재앙에 대해 묻지 복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고 했으니, 사실대로 말씀하셔도 괜찮습니다.”

점쟁이는 김 원외랑이 사리를 아는 사람이라 숨기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이 괘가 좋긴 합니다만, 한 가지가 부족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린다고 기분 나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저 사실대로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선생을 탓할 리 있겠습니까?”

“오늘이 축일(丑日)이니 몸도 다섯째 효에 있고, 귀신도 다섯째 효에 있습니다. 이걸 일컬어 사람이 귀신을 따라 무덤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다만 이런 점이 덧붙여져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댁에 길한 운세가 찾아왔으니 흉한 일을 만나도 길하게 바꿀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 마십시오. 괜찮습니다.”

김 원외랑은 ‘사람이 귀신을 따라 무덤에 들어간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한 길[丈] 여덟 자[尺]의 신창(神槍) 다섯 개가 일제히 가슴을 찌르는 듯이 아팠다. 그는 눈살을 찌푸린 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복채를 주고, 두 손을 모아 절을 한 후, 황급히 집으로 돌아갔다. 그의 아내가 맞이하는데, ‘집에 들어가면 흥망성쇠에 대해 말하지 말지니, 표정만 봐도 알 수 있기 때문’이라는 속담에 딱 들어맞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또 불길한 점괘가 나온 모양이군요.”

김 원외랑은 점괘 이름과 점쟁이가 해준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었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갑자기 그의 뒤쪽에서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점은 뭐 하러 치고, 무슨 신에게 물어본다는 겝니까?”

김 원외랑이 급히 돌아섰고, 그의 아내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살펴보니, 거리에서 구걸하는 노파였다. 나이는 아흔 살쯤 되어 보이고 머리카락은 온통 눈서리처럼 새하얀 그 노파는 왼손에 물고기 담는 광주리를 들고, 오른손에는 자죽(紫竹)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김 원외랑의 부인이 말했다.

“할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셔요?”

그러자 그 노파가 이렇게 읊조렸다.

如來觀盡世間音 여래는 세간의 모든 소리를 듣고
遠在靈山近在心 몸은 멀리 영산(靈山)에 있지만 마음은 가까이 있노라.
禍福古來相倚伏 예로부터 재앙과 복은 서로 기대어 바뀐다고 했으니
何須問卜與求神 굳이 신에게 점을 쳐서 물어볼 필요 있으랴!

그다지 요긴하진 않지만 이 읊조림이 김 원외랑 부부를 깨우쳤다. 그의 아내가 말했다.

“할머니, 일리 있는 말씀이네요. 잠깐 안으로 들어오셔요. 제가 보시라도 조금 해 드릴게요.”

하지만 김 원외랑의 아내가 막 돌아서는 순간, 그리고 김 원외랑이 눈을 한 번 깜박 하는 순간, 그 노파의 모습은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그들 부부는 비로소 관음보살이 현신하여 깨우쳐주었다는 것을 알고 즉시 관음보살상 앞에 세 자루 향을 사르고 천 장의 갑마지(甲馬紙)를 태우며 지성으로 귀의하면서 경건하게 아미타불에게 절을 올렸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새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달이 떴다.

원래 이날 밤은 평범한 밤이 아니라 8월 15일 중추절의 밤이었고, 그 달도 평범한 달이 아니라 중추절의 보름달이었다. 김 원외랑은 하인들에게 향을 사르는 탁자와 갑마지를 태우는 화로를 치우라고 분부했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말했다.

“중추절 밤이니까 준비해둔 떡하고 차로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내도록 해요.”

그다지 오래지않아 그들은 차와 떡을 준비하여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냈다. 잠시 후 둥근 달이 떠오르며 온 하늘의 구름이 걷히니 정말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를 증명하는 부(賦)가 있다.

저 음기(陰氣)의 정령(精靈)은
보름마다 기울었다가 보름마다 찬다네.
하얀 빛 흘리면서 얼음처럼 깨끗하고
차가운 빛 뿌려 눈처럼 엉기네.
토끼의 정령 뛰어올라 밤중에 노니는데
두꺼비의 현란한 빛으로 밤이 놀라네.
신선 세계 계수나무 심도록 허용하고
천성(天星)을 우러러 밝음을 더해주게 하네.
갑자기 기꺼이 생겨나서
또 즐겁게 밝아지기 시작했네.
여드레가 지나 빛이 생기고
석 달이 지나 계절을 이루었네.
여기(呂錡)가 활로 달을 쏘니 성(姓)을 점쳤고
감택(闞澤)은 달 속에 자기 이름 나타나는 꿈을 꾸었지.
서쪽 교외의 감단(坎壇)에서
가을바람 부는 저녁에 제사를 지냈지.
물의 부류에 속하니 조수(潮水)와 호응하고
의미는 음(陰)에 속하니 예(禮)에 부합하지.
후비(后妃)의 형상을 보여주고
경(卿)과 사(士)의 올바른 자세를 보여주지.
그러므로 하늘의 사자(使者)가 되고
군주의 누이가 되었지.
바퀴 같은 달 속에서 상서로운 광채를 보고
천리 먼 곳에서도 맑은 빛 함께 누리지.
그 덕분에 서쪽 정원에 나들이 가는 귀족들의 수레가 있고
동쪽 변방의 왕찬(王粲)에게 아름다운 문장을 짓게 할 수 있었지.
회계왕은 뜰에 비친 달빛을 사랑했고
육기(陸機)는 방에 비친 달빛을 손으로 잡으려 했지.
둥근 빛은 부채 같고
하얀 몸체는 홀과 같다네.
합해(蛤蟹)와 성쇠를 함께 하고
주귀(珠龜)와 차고 기우는 것을 똑같이 하지.
달무리가 합쳐지니 한나라 군대는 포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보름달이 되면 오랑캐 기병들이 공격해왔지.
달무리가 귀고리처럼 좌우로 피거나 위로 서면 상서롭고
아직 차지 않을 때나 갓 생겨난 때에는 조화로움을 보여주어
대지의 결이 되고
음기의 종주가 되었지.
상서로움을 내려서 한나라 왕실에 길조를 드리우고
오나라 궁궐에 길몽을 통하게 했지.
발톱이나 송곳니 같은 빛이 보이면 허물로 여겼고
초하루에 달이 동쪽에 나타나면 불길한 징조로 여겼지.
하얀 빛이 하늘에 흐르고
향기로운 빛이 방 안에 들어오는데
아내가 순종의 덕을 닦지 않으면
왕후는 월식이 생길 때 북을 쳤지.
사물은 오직 서치(徐稺)의 설명과 같고
달이 드나드는 굴이 양웅(揚雄)의 부(賦)에 나왔지.
관산(關山) 가득 그림자 드리웠고
회랑의 창에 들어와 하얀 빛이 쌓였지.
그걸 수레에 태우고 다니는 이는 누구인가?
망서(望舒) 또는 섬아(纖阿)라네.
풍성하게 맑은 광채 드리우고
가득한 황금물결 희롱한다네.
듣자 하니 그 정령이 여적(女狄)에게 감응했고
항아가 불사약을 훔쳐 달아났다는 전설도 있지.
밝고 아름답게 하늘에 있다가
환하게 필수(畢宿) 곁을 떠났다네.
달이 없어지면 틀림없이 물고기 뇌도 없어지고
계단 옆의 달력 풀[蓂莢]로 틀림없이 증명했지.
갈대 재로 그렸을 때 달무리에 빠진 부분이 있기도 하고
이슬 받는 쟁반 받쳐 들면 광휘가 흐르지.
흰 토끼 약초 찧는 소리 들리고
오(吳) 땅의 물소는 달을 바라보면 숨을 헐떡이지.
언뜻 눈썹 같은 초승달 알아보고
아득히 옥고리 같은 달 보고 놀라네.
거문고 들고 촛불 끈 채
맑은 달빛 유유히 감상할 수 있을까?

維彼陰靈, 三五闕而三五盈, 流素彩而氷淨, 湛寒光而雪凝.
顧兎騰精而夜逸, 蟾蜍絢彩以宵驚, 容仙桂之託植, 仰天星而助明.
乍喜哉生, 還欣始明, 經八日而光就, 歷三月而時成.
呂錡射之而占姓, 闞澤夢之而見名.
若夫西郊坎壇, 秋風夕祭, 類在水故應於潮, 義在陰故符於禮.
取象后妃, 視秩卿士, 故以爲上天之使.
人君之姊, 瞻瑞彩於重輪, 共淸光於千里 .
爾其遊西園之飛蓋, 騁東鄙之妍詞, 會稽愛庭中之景, 陸機攬堂上之輝.
圓光似扇, 素魄如圭, 同盛衰於蛤蟹, 等盈缺於珠龜, 暈合而漢圍未解, 影圓而虜騎初來.
若乃珥戴爲瑞, 朏魄示衝, 爲地之理, 作陰之宗.
降祥符於漢室, 通吉夢於吳宮, 覩爪牙而爲咎, 見側匿而爲凶.
觀其素景流天, 芳輝入戶, 婦順苟或不修, 王后爲之擊鼓.
物惟徐孺之說, 窟見揚雄之賦, 彌關山而布影, 入廊櫳而積素 .
厥御兮維何, 望舒兮纖阿, 垂靄靄之澄輝, 弄穆穆之金波.
聞感精之女狄, 傳竊藥之嫦娥.
皎兮麗天, 昭然離畢, 應魚腦而無差, 驗階蓂而靡失.
亦有畵蘆灰而暈缺, 捧陰燧而輝流.
擣聞白兎, 喘見吳牛, 乍認蛾眉, 遙驚玉鉤.
得不薦鳴琴而滅華燭, 翫淸質之悠悠.

그야말로 이런 격이었다.

秋半高懸千里月 한가을이라 천리를 비추는 달 높이 걸렸는데
夜深寒浸一天星 밤 깊어지니 온 하늘의 별들에 한기가 스며드네.

김 원외랑 부부가 한참 동안 달구경에 빠져 있다 보니 어느새 이경이 지나 삼경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유씨는 갑자기 피곤해져서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여보, 그만 자는 게 어때요?”

이튿날 일어나 보니 해는 벌써 세 길이나 높이 떠 있었다. 이것은 “마음 한가하니 무슨 일이든 느긋하지 않으랴? 잠에서 깨어 보니 동쪽 창이 벌써 밝아졌네.”라는 상황은 아니니, 분명코 어떤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부인이 일어나 눈을 떠 보니 어느새 커다란 아이를 낳아놓고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건지 땅에서 솟아난 건지, 자기가 낳은 건지 남이 낳아서 두고 간 건지, 해질녘에 낳은 건지 한밤중에 낳은 건지, 새벽에 낳은 건지 해가 뜬 뒤에 낳은 건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녀는 “아이고!” 하면서 한 손으로 침대를 짚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남편을 잡아당겼다. 그때까지도 김 원외랑은 꿈속에 있었다. 부부는 나란히 눈을 감고 합장한 채 침상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 아이의 몸에서는 수많은 금빛이 피어나 방 안이 온통 발그레한 빛으로 가득했다.

한편 이웃에 사는 벗이나 주민들은 날이 밝아 해가 세 길이나 높이 떴는데도 자리에서 일어났거나 세수를 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야말로 선비와 농부, 기술자와 장사꾼은 각자의 직업이 있다는 격이었다. 그때 갑자기 하늘에서 삘릴리 둥둥 음악소리가 일제히 울리면서 기이한 하늘의 향기가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문을 열고 살펴보니 김 원외랑의 집 위로 눈부시게 아름답고 환한 빛이 하늘에 닿을 듯이 피어나고 있었다. 이웃들과 벗들이 일제히 달려와 보니, 그 집의 대문은 여전히 닫혀 있고 사람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게 어디 보통 일인가? 사람들이 문을 밀치고 들어가 보니 안에도 사람이 보이지 않고, 방문 앞에도 아무도 없었다. 그대로 문을 박차고 침실로 들어가 보니 머리에 솜털도 없는 아이 하나가 침대에 앉아 있었고, 김 원외랑 부부는 눈을 감은 채 합장을 하고 침상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모두들 그 장면을 보고 너무 놀라 멍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불이 난 게 아니라면 머리에서는 불꽃같이 이글거리는 빨간 빛은 무엇이고, 불이 났다면 방 안은 연기에 가득 차서 잿더미가 되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이를 낳은 게 아니라면 침대 위에 버젓이 있는 아이는 무엇이며, 아이를 낳았다 하더라도 무슨 아이가 이리 장엄한 모습이란 말인가? 누군가에게 음해를 당하지 않는 거라면 그들 부부는 왜 이리 혼백이 날아가 죽은 모습이고, 누군가에게 음해를 당했다면 두 사람의 몸에 왜 칼자국 같은 상처 하나 없단 말인가? 도무지 알 수 없는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개중에 그나마 경험 많고 사리 구분을 잘하는 이가 있었다.

“이거 예삿일이 아니로구먼. 관청에 보고해서 조치를 취하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까지 재앙을 당하겠어!”

사람들이 곧 육(陸) 노인을 대표로 내세워 연명(連名)으로 문서를 작성해서 관청에 보고하자고 했다. 육 노인은 나이도 많고 음덕이 있어서 마을 사람들이 모두 존경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육 노인은 사람들의 얘기를 듣더니 연신 “알겠네!” 하면서 곧 소매를 떨치고 일어났다. 그때 사람들 속에서 젊은이 하나가 불쑥 나서서 육 노인의 소매를 붙들었다.

“잠깐만요!”

“자네는 누군데 나를 붙드는 겐가?”

“저는 이 집안의 친척입니다. 돌아가신 분은 제 큰형님이시고, 저는 넷째입니다. 형님이 돌아가셨으니 동생이 장례를 치러드려야지 관청에 알릴 필요가 있습니까?”

“자네 형님의 죽음에 좀 이상한 데가 있으니 관청에 알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럴 필요 없습니다.”

“아닐세. 알려야 하네.”

한참 동안 언쟁이 오갔지만 결국 다수의 의견대로 연명으로 문서를 작성해서 항주지부(杭州知府)에게 보고했다. 이 지부는 청강포(淸江浦) 사람으로서 전제(田齊)의 후예인데, 상당히 청렴하고 일처리가 공정했다. 이 때문에 항주 사람들 사이에는 “지부 나리는 너무 청렴하고 공정해서 전혀 인정사정을 봐주지 않고, 지부 나리는 너무 청렴하고 유능해서 한 톨의 뇌물도 받지 않는다.”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그래서 모두들 그를 ‘청천태야(淸天太爺)’라고 불렀다. 연명장을 받은 지부는 그걸 가져온 이들에게 몇 마디 물어보더니 금방 사태를 파악하고 이렇게 분부했다.

“김 아무개의 죽음은 의혹이 있긴 하지만 검증할 만한 상처도 없고, 태어난 자식은 어미가 없지만 살아 있다. 그러니 모두들 힘을 합쳐 그들 부부의 장례를 치러주고, 아이는 출가시키도록 하라. 이렇게 하면 산 자와 죽은 이들 모두에게 이로울 테니, 더 이상 번거롭게 고발장을 올리지 말라!”

육 노인은 함께 간 이웃들과 함께 머리를 조아리며 연신 “예, 예!”하고 급히 물러났다. 그리고 두 개의 관을 사서 김 원외랑 부부의 시신을 수습했다. 일이 끝나자 사람들이 다시 상의했다.

“시신은 수습했는데 영구는 어디에 두나? 아이를 출가시켜야 하는데 나이가 몇인지도 모르지 않은가? 또 어느 절에다 출가시킨단 말인가? 아무래도 청천태야께 다시 말씀드려야 하지 않겠어?”

그 지부는 바로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공정하고 엄명한 판결을 내리는 인물이었다. 육 노인 등이 관아로 들어가 섬돌 아래 넙죽 엎드렸는데, 그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지부가 말했다.

“또 나를 찾아온 건 영구를 안치하는 문제와 아이의 출가 문제 때문이렷다?”

육 노인 등이 황급히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나리, 과연 신처럼 고명하십니다!”

“내 이미 생각해둔 바가 있다. 영구는 소명사(昭慶寺) 안의 북쪽에 있는 그 경기탑(慶忌塔) 아래 안치하고, 아이는 뇌봉 아래 정자사의 온운적(溫雲寂) 장로(長老)의 제자로 출가시키도록 해라. 오늘 당장 시행하라!”

지부는 즉시 담당 관리를 불러 두 장의 긴급 문서를 쓰게 했다. 그리고 두 명의 심부름꾼을 시켜서 하나는 서호 옆의 소경사로 보내 주지로 하여금 영구를 탑 아래 안치하도록 통지하고, 다른 하나는 뇌봉 아래 정자사로 보내 운적 장로로 하여금 그 아이를 제자로 받아들이라고 통지했다. 이렇게 두 가지 문제를 합리적으로 처리하니, 산 자와 죽은 자 모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인간 세상에서 겨우 한없는 복을 맞는가 싶었더니 하늘에서 재앙이 날아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늘 가득 음악소리가 울리고 온 성 안에 기이한 향기가 퍼졌으니 누군들 놀라지 않았겠는가? 군인들과 일반 백성들은 물론이고 도지휘사(都指揮司)와 승선포정사사(承宣布政使司), 제형안찰사사(提刑按察使司)까지 삼사(三司)와 정치를 감찰하는 삼원(三院), 남북의 양쪽 관문까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것들이 어떤 관청인가! 그런데 하필 그곳에는 무척 까다로운 관리가 하나 있었다. 그의 모습은 이러했다.

玉節搖光出鳳城 옥 장식 반짝반짝 흔들며 도읍을 나서니
威摧山嶽鬼神驚 산악을 꺾을 듯한 위세에 귀신도 놀라네.
群奸白晝嫌霜冷 간사한 무리들은 대낮에도 찬 서리 보듯 피하고
萬姓蒼生喜日晴 억조창생들은 맑은 날 왔다고 기뻐하네.
當道豺狼渾斂迹 권력 잡은 사나운 무리들 수탈의 흔적 혼탁해도
朝天驄馬獨馳名 천자 배알하며 어사 홀로 이름 날렸네.
九重更借調元手 구중궁궐에서 다시 정치의 권력 빌려 주니
補袞相期致太平 황제를 보필하며 태평성대를 기약하네.

그는 어사대(御史臺)에 앉아 진즉부터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김 원외랑의 사건에 대해 알고 있었다. 당시 그는 바로 유능한 관리를 파견하여 해당 지역 관청으로 가서 정보를 알아보고, 그곳 지방관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살펴보게 했다. 그날 오후, 관리가 돌아와서 보고했다.

“청렴하고 공정한 그곳 지부께서 이렇게 저렇게 처리했습니다.”

어사는 즉시 두 명의 전령을 파견하여 전하고 직접 그 지방 관청의 해당 부서에서 가서 문서를 제출 받아 검토해 보려 했다. 전령이 그곳에 도착해서 문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하자 담당 관리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는데, 마침 그 ‘청천태야’가 도착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나자 어사가 물었다.

“인명은 중한 것이거늘 어찌 가벼이 여길 수 있겠소?”

“제가 어찌 감히 그러겠습니까? 다만 이 사건은 단서가 없다 하지만, 저는 그 실상을 잘 압니다.”

“그걸 어찌 안단 말이오? 어디 좀 자세히 얘기해 보시구려.”

“저는 매일 새벽 오경에 일어나 목욕재계하고 향을 살라 하늘에 기원한 뒤에 청사로 나와 일을 처리합니다. 오늘도 오경 무렵에 일어나 기원을 마쳤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음악소리가 울리면서 기이한 향기가 코를 찔렀습니다. 그래서 뭔가 상서로운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에 과연 상서로운 구름 한 덩어리가 서쪽에서 내려왔는데, 그 위에는 깃발과 화려한 덮개를 한 수레가 깃털을 장식한 의장(儀仗)과 무지개 깃발을 앞세우고, 양쪽으로 악대를 거느리고, 사방으로 호위병들을 대동한 채 얹혀 있었습니다. 흐릿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가운데에 두 바퀴가 달린 용거(龍車)와 봉련(鳳輦)이 있었는데, 곧장 본 성의 서북쪽 귀퉁이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중간의 그 구름이 저절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데 왼쪽 수레에는 웬 남자가, 오른쪽 수레에는 웬 여자가 단정히 앉아 있었습니다. 구름은 계속 하늘 높이 올라가서 결국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침 이 지역 사람들이 찾아와 모두들 김 아무개 부부가 평소 정진결재(精進潔齋)를 해왔다고 칭송하지 뭡니까? 그래서 저는 전말을 깨닫고, 그들 부부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르라고 명을 내렸던 것입니다.”

“영구는 지금 어디 있소이까?”

“소경사 경기탑 아래에 있습니다.”

“아이한테는 무슨 기이한 점이 있었습니까?”

“제가 보기에 아이의 일은 그다지 기이할 것도 없는데, 지역 사람들 얘기로는 멀리서 볼 때 그 집에 붉은 기운이 가득 차 있었고, 가까이 가서 보니 그 아이가 두 손을 모으고 가부좌를 튼 채로 우뚝 앉아 있더랍니다. 어리석은 제 소견으로는 분명 어떤 훌륭한 보살님이 인간 세계에 강림하신 게 아닐까 해서 출가시키라고 명을 내렸던 것입니다.”

“어디로 출가시켰습니까?”

“정자사의 운적스님 제자로 들였습니다.”

“현명하신 태수님, 말씀도 타당하고 처리도 마땅하게 하셨습니다. 다만 한 가지, 백성들이 워낙 교활한 짓을 잘하니 저희처럼 윗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럼 태수께서는 관사로 돌아가십시오. 저는 여기서 달리 처리할 방도가 있습니다.”

청천태야가 나가자 어사는 곧 명을 내려 항주 전아(前衛)와 우아(右衛), 관해아(觀海衛), 임산아(臨山衛)의 담당 관리들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또 명을 내려 해녕(海寧)과 감포(澉浦), 사포(乍浦), 대숭(大嵩), 확구(霩衢), 건도(健跳), 애완(隘頑), 만기(滿岐) 등지의 수어천호소(守御千戶所) 담당 관리들과 자산(赭山), 석돈(石墩), 왕강경(王江涇), 백사만(白沙灣), 조림(皂林), 고당(臯塘), 사안(四安), 천목산(天目山) 등지의 순검사(巡檢司) 담당 관리를 불러들였다. 아문(衛門)의 관리들은 각기 기마병(騎馬兵) 서른 명, 천호소의 관리들은 각기 보병(步兵) 서른 명, 순검사의 관리들은 각기 궁병(弓兵) 서른 명을 대동했다. 갑옷과 투구를 번쩍이며 날카로운 무기로 무장한 이들은 일제히 서호 소경사 경기탑 아래로 가서 관을 열고 시신을 살펴보았다. 여러 관리들이 함께 살펴보았지만 시신에 상처 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검시가 끝나자 그들은 다시 뇌봉 아래 정자사의 운적스님의 방으로 갔다. 여러 관리들이 함께 점검하러 오자 그 절의 모든 제자들이 벌을 받지 않으려고 신속하게 상황을 보고했다. 이게 바로 “장군의 명령만 들을 뿐 황제의 조서(詔書)는 듣지 않는” 격이었다.

한편 이들 관아의 관리들과 천호소의 관리들, 순검사의 관리들을 비롯한 수많은 관리들과 기마병, 보병, 궁병 및 수많은 군마(軍馬)들이 일제히 들이닥쳐 소경사를 철옹성처럼 겹겹이 둘러싸자 승려들은 너무 놀라 혼이 달아날 지경이었다. 관리들은 다들 상처를 발견해내면 제일 큰 공을 세우리라 생각했고, 따라 온 군인들은 다들 오늘 상처를 발견하면 적당한 상을 받을 걸로 생각했다. 그런데 관을 날라다 하나를 열어 보니 뜻밖에도 안이 비어 있었고, 다른 하나도 마찬가지였다. 관리들은 멍하니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병사들은 너나없이 비집고 나와 자기 눈으로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정자사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정자사에 도착해 보니 운적스님도 예사로운 인물이 아니어서 육신의 눈은 좋은 편이고, 법안(法眼)은 아주 하급이었고, 혜안은 중간쯤 되고, 천안(天眼)은 제법 높았지만, 불안(佛眼)이야말로 자신의 장기였으니 이들 군마(軍馬) 쯤이야 안중에도 없었다. 군마가 절문 앞에 이르렀을 무렵에 그는 벌써 어사가 조사하러 나왔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이에 그는 한 손에 그 아기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지팡이를 짚은 채, 아무 말도 없이 다짜고짜 도찰원(都察院)으로 향했다. 관리들은 그가 나이도 많고 아이까지 안고 있으니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여겨서, 그를 가로막지 않고 그대로 돌아갔다.

이때는 벌써 날이 어두워지고 있어서 둥지로 돌아가는 까마귀들이 줄지어 날고 있었다. 어사는 그때까지 청사에 앉아 관리들의 보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관리들이 꿰인 생선들처럼 줄지어 들어와 서열대로 계단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래, 관을 열어 검시하니 무슨 상처가 있더냐?”

관리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두 개의 관이 모두 비어 있었습니다.”

어사는 슬쩍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이는 어디 있더냐?”

“지금 승려가 밖에 와 있사옵니다.”

어사는 관리들에게 각자의 부서로 돌아가라고 분부하고, 따로 승려를 안으로 들이라고 했다. 관리들이 물러나자 승려가 천천히 섬돌 위로 올라왔다. 어사는 몸소 일어나며 분부했다.

“스님, 예절은 생략하고 그냥 대청으로 들어오시지요.”

그러면서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늙은 승려가 어린아이를 하나 안고 있었는데, 그 아이는 머리가 길쭉하고 이마가 넓은데다 이목구비가 아주 깔끔하고 예뻤다. 태어난 지 겨우 하루밖에 안 되었는데도 포대화상(布袋和尙) 같은 기품이 완연했다. 어사가 무척 기꺼워하며 물었다.

“오늘 아이가 무얼 먹었습니까?”

“이 아이는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 되었지만, 사실 많은 것을 품고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걸 어찌 아시오?”

“아침에 청천태야의 분부에 따라 제가 제자로 받아들였사온데,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잃어서 젖을 먹일 사람도 없는지라 불목하니를 시켜 시주들의 집을 찾아가 젖동냥을 얻게 했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집에서도 두 번째 집에서도 아이가 입을 열지 않았고, 심지어 열 번째 집에 갔을 때에도 계속 입을 열지 않더랍니다. 아이를 안고 산문으로 돌아올 무렵에는 날이 저물어 가서 이미 어스레해지고 있었지요. 그러니 저는 혹시 이 제자가 부처님의 인연을 따르는 특별한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 앞에 바쳐진 과일을 조금 떼어서 먹여보았더니 단번에 받아 삼키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겨우 두 입을 먹었을 때 어사께서 파견하신 관리들과 병사들이 들이닥쳤기 때문에, 소승이 제자를 안고 이렇게 어사 나리를 찾아와 간청하게 된 것입니다. 부디 하늘을 대신해 올바른 도리를 실천하시는 어사 나리께서 현명하게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어사가 입을 열기도 전에 문지기가 큰 소리로 보고했다.

“항주지부께서 오셨습니다!”

어사는 승려에게 일어나라 하고 아이를 잘 보살피라고 당부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 청천태야를 맞이했다. 청천태야가 뜰에서 예를 행하자 어사가 두 손으로 부축해 일으키고 껄껄 웃으며 말했다.

“오늘 일은 어떤 것 같소이까?”

“불민한 저는 그저 깨우쳐주셔야 이해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보고 아는 것과 듣고 아는 것은 어떻게 다른 것인지요?”

“무릇 신선이 인간 세계에 내려올 때에는 육신을 빌려 그 안에 영성(靈性)이 사는 법이지요. 이 영성이 바로 신선이고, 육신은 그저 껍질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영성이 승천하게 되면 육신도 따라서 사라지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그걸 ‘시해(尸解)’라고 합니다. 태수께서 아침에 직접 김 아무개 부부가 신선이 되어 승천하는 것을 보셨다고 하시기에, 저는 그 두 사람의 육신도 분명히 풍화되어 사라졌을 테니 관 속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관리들에게 관을 열어 살펴보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태수의 신명(神明)함을 드러내고 제 어리석은 소견을 증명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이러니 태수께서는 보고 아시는 것이고 저는 듣고 아는 게 아니겠습니까?”

청천태야가 연신 훌륭한 말씀이라고 칭송하며 감사하자, 어사가 또 말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인간 세상에 강림한 보살이라는 건 어찌 아셨습니까?”

“지역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제 나름대로 추측해본 것입니다.”

“이번에는 제가 보고 알게 되었고, 태수께서는 듣고 아시게 되었구려.”

“무슨 말씀이신지?”

“태수께서는 지역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시고 속으로 짐작하셨지만, 저는 조금 전에 그 스님이 아이를 안고 들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머리가 길쭉하고 이마가 넓은데다 이목구비가 아주 깔끔하고 예뻤고 미륵처럼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것이 영락없이 포대화상의 모습이지 뭡니까? 그러니 그렇게 말씀 드린 것이지요.”

그야말로 이런 상황이었다.

一切須菩提 모든 것은 수보리이니
心如是淸淨 마음은 이렇듯 청정하다네.
佛言世希有 부처님 말씀은 세상에 진귀한 것이라
所未曾見聞 이제껏 듣도 보도 못했던 것이라네.
若復有人聞 사람들이 그 말씀 듣게 되면
淸淨生實相 청정함이 실제로 나타나리라.
若復有人見 사람들이 그것을 보게 되면
成就第一天 첫날에 바로 성취를 이루리라.
無見復無聞 보지도 듣지도 않는다면
是人卽第一 그는 세상의 제일이겠지.

어사와 청천태야가 각기 듣고 본 것이 있다 하지만, 그 안에 귀로 들을 수 없고 눈으로 볼 수 없는 수많은 인과(因果)가 담겨 있음을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그러면 그 귀로 들을 수 없고 눈으로 볼 수 없는 수많은 인과라는 게 무엇인지는 다음 회를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