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왕유王維 늦겨울 눈 내리는 날 호 거사의 집을 생각하며冬晩對雪憶胡居士家


늦겨울 눈 내리는 날 호 거사의 집을 생각하며 冬晩對雪憶胡居士家/당唐 왕유王維

寒更傳曉箭 경고(更鼓) 소리 새벽을 알리는데
淸鏡覽衰顔 노쇠한 내 얼굴 맑은 거울에서 보네
隔牖風驚竹 창문에 흔들리는 대 소리 요란하더니
開門雪滿山 문을 여니 온 산에 펄펄 눈이 내리네
灑空深巷靜 하늘에 눈 날려 깊은 골목 고요하고
積素廣庭閑 흰 눈 쌓여 넓은 마당은 한가롭네
借問袁安舍 거사는 옛날 원안의 집처럼
翛然尙閉關 아직도 초연히 문을 닫고 계시는가

호 거사가 누군지는 알 수 없으나 왕유가 호 거사에게 쌀도 보내주고 불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눈 것을 보면 오늘날 재가 불자를 居士로 한 것과 같은 의미임을 알 수 있다.

이 시에 袁安이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왕유는 이 인물을 호 거사에 비유하여 그의 가난과 덕을 드러내며 안부를 묻고 있다. 한시에는 이전의 인물을 빌려 상대를 칭송하거나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이 흔하다. 원안은 한 나라 때 재상을 지낸 인물인데 남에 대한 공감 능력이 매우 뛰어났던 모양이다. 국사를 논할 때 한숨을 쉬고 눈물을 흘리는 일이 많았다.

이 사람의 천거와 관련한 일화가 있다. 낙양에 언젠가 한 길이 넘는 대설이 내려 사람들이 눈에 갇혀 있다가 며칠 만에 겨우 눈을 치우고 나와 밥을 빌어먹었는데 원안은 집에 가만히 있었다. 당시 낙양령이 순찰을 하다가 집 앞에 눈을 치운 흔적도 없어 갇혀서 굶어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눈을 치우고 들어가 보니 추운 방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 낙양령이 왜 나오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그는 ‘큰 눈이 내려 모두 굶고 있는데 남에게 요구해서는 안 된다.’라고 대답하였다. 낙양령은 원안을 어질다고 생각하여 효렴으로 천거하였다. <<王右丞集箋注>>에 특별히 이 고사를 소개해 놓았다.

밤새 바람이 불어 창문 앞 대가 심하게 요동치고 해서 잠을 설치다가 새벽 인정 소리에 문을 열고 보니 폭설이 내리고 있다. 하늘을 청소라도 하듯 함박눈이 내려 집 앞 골목도 마당도 정적이 감돈다. 이런 날에 가까운 곳에 사는 호 거사가 밥이라도 먹고 있는지 걱정이 되는 것이다. 1월 4일 소개한 <유우석에게 안부를 물으며>와 통하는 면이 있다. 눈이 환기하는 그리움의 스펙트럼이 다채롭다고나 할까.

눈 내리는 새벽의 閒靜이 그림처럼 표현되어 있어 詩中有畫란 말이 절로 떠오르는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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