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혁명가적인 열정은 또 청년시대의 신앙이었던 진화론과 결부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사상의 근저에는 진화론에 대한 강한 믿음이 깔려있는데, 인류 사회보다는 중국 사회의 진보를 저해하는 모든 것과 싸우는 것이 그의 현실의 행동을 지배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언젠가 좌익적인 생각이 자기 자신에게 들어올 때까지는 적어도 자신은 그랬었다고 나에게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인생은 극히 구체적인, 직접 그의 생활 속에 있는 또는 생활의 주변에 있는 객관적인 중국 사회와 중국인을 가리키는 것이었고, 여기에 그의 모든 관심의 중심이 있었다. 그 정도로 그는 중국과 중국인을 사랑했던 것이다.
자의식의 과잉으로 개인의 머릿속에서의 두서없는 사고의 착종을 일으키는 아마추어를 문학이나 평론에 떠맡기는 것은 환경적으로 최소한 청말 이래로 오늘날까지 중국에서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좋다. 객관적인 환경이 너무나도 엄혹했기 때문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것은 (세계 속에서) 중국이 처해 있는 환경과 관계가 있는 것이고, 이것에 제약을 받는 중국 자체의 환경이기도 한데, 그런 관계에 놓여 있는 환경을 타파하고 바꾸기 위해 청말 이래로 중국의 뛰어난 두뇌(문학가도 물론이고)는 여러 형태로 싸우고 발버둥 치며 최대한 힘을 다해 살았다. 물론 루쉰(과 루쉰의 문학)을 고려하는 경우에도 이것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