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李贄-분서焚書 황안 두 스님의 수첩에 써주다書黃安二上人手冊

<황안 두 스님의 수첩에 써주다書黃安二上人手冊>

출가한 사람은 죽을 때까지 집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출가한 뒤에도 집에 연연한다면 출가할 필요가 없다. 출가는 왜 하는가? ‘속세를 떠나기’[出世間] 위한 것이다. ‘출세간’이란 이 세상과 격리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출세간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출가란 집과의 인연을 끊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진정 출가한 사람이라고 일컫게 된다.

석가불(釋迦佛)을 보라! 그 자신이 정반왕(淨飯王)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그 몸을 돌리니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자리에 있게 되지 않았는가? 어찌 부귀한 사람이 되는 것과 비교할 수 있으리오? 집안에는 야수녀(耶輸女)라는 현명한 여자를 처로 두었고, 또한 라후라(羅睺羅)라는 총명한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 깊은 산에 들어가서, 굶주림과 추위를 참으며 지냈다.

왜 그토록 스스로 자신을 고통받게 했겠는가? 출세간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출세간을 해야 세상을 구제할 수 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구제하여 성불(成佛)하게 하려고 한 것이다. 하물며 친부모와 처자식은 말할 필요가 있는가? 석가는 도를 깨우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묘락(妙樂)을 증험하게 했다. 그러니 한 집안만 지키고 있는 사람을 어떻게 보았겠는가?

사람들은 부처가 탐하지 말라고 했다고 하지만, 나는 부처야말로 진정 큰 것을 탐했던 자라고 생각한다. 탐하는 것이 컸으므로 일도양단(一刀兩斷)하여, 인간 세상의 즐거움에 연연하거나 탐하지 않았을 뿐이다.

석가 뿐만 아니라 공자 역시 그랬다. 공자는 외아들 리(鯉)가 죽은 지 오랜 세월이 지났을 때에도 자식을 보려고 집착한 적이 없었다. 또한 리가 죽지 않았을 때 리의 어머니는 일찍이 세상을 떠났는데도 공자는 아내를 다시 얻으려 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삼환[1]이 천거했지만 공자는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사람들이 공자를 등용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바로 공자 스스로가 등용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부귀를 마치 뜬구름처럼 보고, 오직 3천 7십 제자와 함께 사방을 돌아다녀, 서쪽으로 진(晉)나라에 가고, 남쪽으로 초(楚)나라에 가며, 밤낮으로 서둘러서 속세를 벗어난 지기(知己)를 찾았다. 이는 명목상은 집에 있다 해도 사실 종신토록 출가한 것이다. 그러므로 석가모니 부처는 집을 떠나 출가한 자이고 공자는 집에 있으면서 출가한 자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는 거짓이 아니다.

지금 나 스스로 보아도 총명함이나 역량이 두 분에게 훨씬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여유로운 생각으로 부처의 대사(大事)를 증험하려고 했는데, 내 스스로 역량을 헤아려보지 못한 한계를 많이 드러내고 말았다. 두 스님은 또한 무엇을 위하여 먼 길을 왔는가?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양친께서 흙으로 돌아가시고 난 뒤, 아내 황씨(黃氏) 또한 무사히 세상을 살다 가는 것이다. 딸이 하나 있는데 장순부[2]에게 시집갔다. 장순부 또한 부지런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지금 황안의 두 스님이 여기에 온 것은 출세간이라는 큰 일을 추구하기 위해서다. 이런 내가 무슨 말을 해주리오? 그저 석가에 대해 말하고, 또 어릴 때부터 유학(儒學)에 종사했으므로, 공자의 일생을 비유를 들어 말했을 뿐이다. 다만 옛일을 알고 장래를 위해 부지런히 힘을 써서 처음의 뜻을 등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권3)


 [1] 삼환(三桓)은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실권을 잡았던 맹손씨(孟孫氏)․숙손씨(叔孫氏)․계손씨(季孫氏)를 말한다. 모두 노나라 환공(桓公)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이들을 삼환이라고 한다.

[2] 장순부(莊純夫)는 이지의 사위이다. 이지는 자신의 처 황의인(黃宜人, 의인이란 관리의 처에 주는 봉호 가운데 하나이다)과의 사이에서 2남 3녀를 낳았는데 장녀를 제외하고는 모두 요절하였다. 장순부는 바로 그 딸의 남편이다. 《분서》 권2 <장순부에게>(與莊純夫)와 권4 <예약>(豫約)에 그의 이름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