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찬自贊>
그 성격은 편협되고 성급하고, 그 표정은 우쭐하고 자만하고, 그 말투는 천박하고 비속하고, 그 마음은 미친 듯 바보 같은 듯하고, 그 행동은 경솔하고, 교제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누구든 보는 앞에서는 다정하고 따뜻하게 대한다. 다른 사람들과 사귈 때는 단점을 찾기 좋아하고 장점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일단 누군가를 미워하면, 그 사람과 관계를 끊어버리고, 또한 종신토록 그 사람을 해치려고 한다.
속마음은 따뜻하고 배부른 것을 추구하면서도 스스로 자기는 백이⋅숙제[1]라고 하고, 본바탕은 원래 《맹자》에 나오는 제나라 사람이면서도,[2] 스스로 자기는 도(道)와 덕(德)에 배부르다고 말한다. 분명히 하나도 남에게 주는 것이 없으면서도 유신[3]을 입에 담고, 분명히 털 한 오라기도 남을 위해 뽑아주지 않으면서도 양주[4]는 인(仁)을 해친다고 한다.
걸핏하면 세상 모든 것과 어긋나고, 입에서 나오는 말은 마음속 생각과 또 다르다. 사람 됨됨이가 이와 같아 마을 사람들이 모두 싫어한다. 옛날에 자공이 스승 공자에게 “마을 사람들이 모두 싫어하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아직 나쁘다고 단정하기 곤란하다”고 했는데,[5] 그럼 나 같은 사람은 아직 괜찮단 말인가?(권3)
[1]. 백이(伯夷)․숙제(叔齊)는 은(殷)나라 말기 사람으로, 주왕(紂王)의 폭정에 염증을 느껴서 주(周)나라 문왕(文王)에게 귀의했다. 문왕이 죽은 후, 뒤를 이은 무왕(武王)은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않은 채 은나라 정벌에 나섰다. 백이와 숙제는 상중(喪中)에 군대를 동원하는 것과 신하의 처지에서 주군을 무력으로 정벌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무왕이 탄 말고삐를 붙잡고 만류했지만, 무왕은 이들의 말을 듣지 않고 은나라를 정벌하여 멸망시켰다. 백이와 숙제는 도리를 지키지 않는 주군 밑에 있을 수 없으며 그 땅에서 나는 것도 먹지 않겠다고 하여 수양산(首陽山)으로 들어가 고사리로 연명하다 결국 굶어 죽었다고 한다.
[2]. 《맹자》 <이루하>(離婁下)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어떤 제(齊)나라 사람이 외출만 했다 하면 남의 제사를 찾아가 먹을 것을 빌어먹고, 집에 돌아가서 자기의 처와 첩에게는 부잣집 친구의 초대로 갔다가 배불리 먹고 왔다며 거들먹거렸다고 한다.
[3]. 유신(有莘)은 지명으로, 상(商)나라의 명신 이윤(伊尹)이 탕왕(湯王)에게 등용되기 전에 농사를 지으며 은거했다는 곳이다. 나중에 탕왕은 이윤의 보좌로 하(夏)나라의 폭군 걸(桀)을 물리치고 상나라를 건국했다.
[4]. 양주(楊朱)는 전국시대 철학자로, 《맹자》 <진심하>(盡心下)의 내용에 따르면, 양주는 “설령 내가 털 한 오라기를 뽑으면 천하에 이익이 된다 할지라도 나는 뽑아주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며, 그의 이런 사상을 ‘위아주의’(爲我主義)라고 하여, 극단적인 이기주의의 대명사로 일컬어진다.
[5]. 《논어》 <자로>(子路)에 실려 있는 자공(子貢)과 공자(孔子)의 대화이다. 자공이 “마을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면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아직 좋다고 할 수 없다”라고 대답했고, 자공이 또 “마을 사람들이 모두 싫어하면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아직 나쁘다고 할 수 없다. 마을 사람 중에 선량한 사람이 좋아하고 선량하지 않은 사람이 싫어하는 것이 제일 낫다”라고 대답했다.
卷三 自贊
其性褊急,其色矜高,其詞鄙俗,其心狂癡,其行率易,其交寡而面見親熱。其與人也,好求其過,前不悅其所長;其惡人也,既絕其人,又終身欲害其人。志在溫飽,而自謂伯夷、叔齊;質本齊人,而自謂飽道飫德。分明一介不與,而以有莘藉口;分明豪毛不拔,而謂楊朱賊仁’與物迕,口與心違。其人如此,鄉人皆惡之矣。昔子貢問夫子曰:“鄉人皆惡之何如?”子曰:“未可也。”若居士,其可乎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