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권 유동산은 순성문에서 무예를 자랑하고,
십팔형은 주막에서 기이한 행적을 보이다
劉東山誇技順城門 十八兄奇蹤村酒肆
동산은 한동안 멍하니 있으면서 가슴을 치고 발을 동동 구르며 말하였다.
“은전을 잃었으니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일생동안 대장부의 명성이 오늘에 이르러 훼손되니 장천사(張天師)가 귀신에 홀린 것 같구나! 한스럽고도 한스럽도다!”
고개를 떨구고 의기소침하여 걸음을 걷는 듯 마는 듯 빈손으로 교하(交河)로 돌아와 아내에게 그 일을 말하자 모두 괴로워하였다. 부부는 상의하여 본전을 수습하고 교외에 주점을 열고 술을 팔아 생계를 꾸리며 더 이상 활을 만지지 않았다.
3년이 지난 어느 날, 매우 추운 겨울날이었다.
서리 쌓인 기와에 원앙, 바람 따라 날리는 장막의 천엔 비취, 올핸 다행히 추운 날이 적구나. 작은 못 박힌 밝은 창, 붉은 문을 비스듬히 열어 사람들이 어지러이 드나들지 않도록 하자. 겹겹의 어둠에 구름 없어지지 않고 많은 눈이 내리는구나. 푸른 휘장과 늘어진 양탄자 빈틈없어야 하고, 붉은 휘장 둘러치니 작아야 하네.(詞≪天香子≫
각설(却說)하고 겨울에 동산 부부는 주점에서 술을 팔고 있었는데, 마침 문 앞에 말을 탄 손님들 열한명이 오는 것을 보았다. 그들이 타고 있던 말은 모두 준마(駿馬)로 안장과 고삐도 광채를 발하였다. 몸에는 조끼를 걸치고 허리에는 활과 검을 차고 있었다. 차례로 말에서 내려 가게에 들어와 안장과 고삐를 풀었다. 유동산은 그들을 맞이하고 말을 몰아 마구간으로 갔다. 그들은 직접 여물을 만들고 콩을 삶았다.
그 중에 관을 쓰지 않은 사람이 있었는데 나이는 아마 열 다섯, 여섯 살 되었고 키는 팔척으로 말에서 내리지 않고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십팔(十八) 동생은 건너편에 가서 쉬겠오.”
여러 사람들이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저희들은 여기에서 머물면서 시중들겠습니다.”
그 사람은 건너편으로 갔다. 십여명이 술을 준비하여 마시고 주인은 닭, 돼지, 소, 양고기를 준비하여 안주를 만들었다. 잠깐 사이에 게걸스럽게 고기 육, 칠십근을 먹어치우고 술 여섯, 일곱 항아리를 마셨다. 주인더러 술안주를 건너편 누각에 갖다 주고 관을 쓰지 않은 사람에게 주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주점의 음식을 다 먹고도 양에 차지 않았는지 가죽 주머니를 열고 사슴다리와 들꿩과 토끼 등을 꺼내 웃으며 말하였다.
“이것은 우리 음식으로 한턱내는 것이니 주인장도 와서 같이 드십시다.”
동산은 한번 사양하고 나서야 자리에 앉았다. 눈으로 한번 쳐다보고 북쪽의 왼편에 있는 사람을 보니 전립 삿갓을 늘어트려 얼굴이 분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그가 고개를 들었는데 동산은 혼비백산할 정도로 놀라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누구인지 아는가? 바로 웅현(雄縣)에서 말판 돈을 빼앗아 간 소년이었다.
‘이젠 죽었구나! 어떻게 하면 그가 위협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저번에 한 명인데도 대적하지 못했는데 이번엔 사람이 이렇게 많고 모두 한가락하는 것 같은데 이 일을 어쩌란 말이지?’
가슴이 마치 새끼사슴처럼 두근두근 뛰었다. 술잔을 들었지만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몸을 일으켜 주인에게 술을 권하자 높은 자리에 앉아 있던 소년이 전립을 올리고 주인을 불렀다.
“동산은 별고 없었오? 옛날 함께 동행하며 어울린 것이 지금까지도 기억나는군요.”
동산은 얼굴색이 흙빛이 되어 부지불식간에 두 무릎을 꿇고 말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소년은 자리에서 일어나 역시 무릎을 꿇고 부축하여 일으켜 세우며 손을 잡고 말했다.
“이러지 마시오. 이러지 마시오. 부끄럽습니다. 이전에 우리 형제들이 순성문(順城門)의 가게에서 형이 천하무적이라고 자랑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평을 하여 저로 하여금 도중에 그런 경박한 일을 하여 경을 위협하여 웃음거리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경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하간(河間)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혼몽지간(魂夢之間)에도 경과 임구(任丘)가는 길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경의 호의에 감사를 드리며, 지금 경에게 열 배로 돌려 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치자, 주머니에서 천금을 꺼내어 상위에 놓으면서 동산에게 말했다.
“사양하지 마시고 빨리 집어넣으시오.”
동산은 꿈같기도 하고 장난삼아 말하는 것 같아 응낙할 수 없었다. 소년은 그가 미심쩍어하는 것을 보고 손을 치며 말했다.
“대장부가 어찌 사람을 속이는 일을 하겠습니까! 동산 역시 호한(好漢)이신데 이렇게 겁이 많으십니까. 우리 형제들이 정말로 당신의 돈을 가질 것 같습니까? 빨리 넣으시오.”
유동산은 그의 말이 완강한 것을 보고 거짓이 아님을 알았다. 마치 취한 것이 깨고, 꿈이 깬 것 같아 사양할 수 없었다. 들어가 마누라에게 말하고 나와서 함께 돈을 가지고 들어갔다. 정리가 된 후 둘은 상의하여 말했다.
“호걸에게서 이런 은덕을 받으니 가볍게 할 수 없지요. 우리 다시 고기를 잡고 술을 차려 진심으로 그들을 한동안 머무르게 합시다.”
동산은 나가서 이 뜻을 소년에게 전했다. 소년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니 모두 말하였다.
“이미 형제와 같은데 어찌 불가하겠습니까? 단지 십팔형에게 한 번 의향을 물어봅시다.”
모두 문으로 나가 젊은이에게 이야기했다. 동산 역시 따라가 젊은이를 보니 근엄해 보였다. 젊은이는 그들을 장중하게 대하였다. 주인이 그들을 며칠동안 묵어 가란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좋아. 좋아. 그래도 무방하지. 단지 취하고 배불리 먹어도 늦잠은 자지 말아라. 주인의 착한 마음에 부담을 주지 말도록 해라. 조금만 시끄러워도 허리를 두동강 내어 칼이 피를 머금을 것이다.”
일제히 말했다.
“모두 잘 알겠습니다.”
동산은 한 동안 그 뜻을 추측할 수 없었다. 모두 다시 가게로 들어와 마음껏 술을 마셨다. 또 술을 가지고 문루에 갔으나 다른 사람들은 함께 하지 못하고 단지 십팔형만이 자음자작(自飮自酌)하였다. 그 혼자 먹고 마시는 술과 고기는 가게에서 다섯 명이 먹는 양이었다. 십팔형은 웃으면서 주머니에서 순은(純銀)의 조리를 꺼내 불을 피어 요리를 하며 혼자 먹었다. 백여점을 연이어 먹더니 정리를 한 후 큰 걸음으로 문을 나갔으나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었다. 곧 날이 어두워지자 비로소 돌아와 문의 맞은편에서 묵으며 유동산의 집으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무리가 동산의 집에서 머무는 동안 다니면서 문에서 서로 마주쳤지만 십팔형은 그들과 농담을 하지 않았으며 거동은 오만하였다. 동산은 의구심이 그치지 않아 뒤쪽에서 소년을 잡고 물었다.
“당신들의 십팔형은 어떤 사람이요?”
소년은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무리에게 말하니 모두가 웃었다. 내력을 이야기하지 않고 단지 큰 소리로 시를 읊었다.
“버드나무와 도화가 서로 나오는데 이것이 봄 바람임을 알지 못하는가?”
시가 끝나자 크게 웃었다. 이틀을 머문 후 각자 작별을 고하고 짐을 싸서 말에 올랐다. 젊은이가 앞에 서고 무리는 뒤에 서서 무리를 지어 갔다. 동산은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천냥의 돈을 모았으니 몸도 편하게 되었고, 또 다른 일이 일어날까 걱정이 되어 성내로 이사하여 달리 장사를 하였다.
뒤에 이 일이 알려지자 유식한 사람이 말하였다.
“두 글귀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李)’자라오. 더구나 십팔형이라 부른 것은 젊은이는 성이 이씨였을 것인데 두목이 틀림었오. 그가 무리에게 한 말을 볼 때, 그는 다른 놈들의 기습을 걱정한 것이 틀림없오. 문에 있으면 양쪽을 살피기 좋기 때문이오. 역시 십팔과 음식을 같이 하지 않은 것은 존중한다는 뜻이오. 밤에 혼자 나간 것은 어디 가서 작당할까를 살피기 위한 것이 아닐까요? 그렇지만 정확하게 알아 볼 방법은 없소.”
유동산은 평생 영웅 행세를 하다가 우연히 그런 일을 당한 후, 다시는 자신의 무예에 대하여 한 마디 자랑도 하지 않았으며 화살을 꺾고 활을 버렸다. 또한 자신의 본분을 기키며 살다가 행복하게 죽었다.
인생 한평생 스스로 강하다고 자만하지 말아라. 그렇게 자만하는 자는 아직 흉폭한 자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지. 짧은 시로 유동산을 비유한다.
평생토록 활쏘기에 전념했는데,
마지막에 가서 강적을 만났네.
세상 사람들이여 자만하지 말거라.
패왕(覇王) 역시 비가(悲歌) 부른 날 있었음을.
또 다른 시로 그 소년을 비유한다.
영웅은 예로부터 가뿐히 활을 쏘았지,
도적이라도 도가 있으니 이야기할만 하구나.
웃으며 백금을 가지고 천금으로 갚아 주었네.
길 가던 중 좋은 인연을 만났구나.
신병철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