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부지王夫之의 독통감론讀通鑑論 – 권3 한경제漢景帝 1

한경제漢景帝

1. 오왕 유비가 반대를 명분으로 내세우자, 태자가 병력을 다른 이에게 맡기기 어려워졌다고 설명하다

명의(名義)라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에서 생겨나지만 오히려 바늘 끝이나 칼날이 되어서 은밀하게 찌른다. 그러므로 명분[名]이 실질을 낳으면, 도의[義]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어긋난다면 가슴에 의심이 생겨서 먼저 마음이 떨리게 된다.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믿을 만한 사람이 없으면 반드시 위험해지고, 믿을 만한 사람이 있는데 감히 믿으려 하지 않으면 반드시 실패하게 된다. 오나라 태자는 오왕 유비에게 이렇게 간언했다.

“대왕께서 조정에 대한 반대를 명분으로 내세우셨으니 병력을 다른 이에게 맡기기 어려워졌사옵니다. 그럴 경우 그 사람도 대왕께 반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오왕은 대장 전녹백(田祿伯)을 의심하여, 병력을 나누어 장강과 회하를 따라 무관(武關)으로 진입하겠다는 전녹백의 건의를 기각하고 하읍(下邑)에 머문 채 곤경을 겪었다. 그가 전녹백을 믿지 못해 실패한 것은 태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겠다. 전녹백에게 병력을 나눠주었다고 해서 그가 반란을 일으킬지도 알 수 없다. 그러니 이것은 진퇴양난의 술수로서 그저 잠시 의심을 간직할 따름이다. 그런데도 태자는 굳이 오왕이 반대를 명분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병력을 남에게 맡기기 어렵다고 했다. 명분이 바르지 않고 도의가 올곧지 않은데도 부질없이 백성의 분노를 충동질하여 제 욕심을 채우고자 했으니, 그 가운데 숨겨진 칼날이 항상 폐부와 간장(肝臟) 사이를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명분도 도의도 없이 천하에 무슨 일을 하고자 한다면 설사 그런 식으로 무도한 군주를 공격한다 해도 승리할 수 없거늘, 하물며 그게 하늘에 순응하는 이를 범하는 일이라면 어떠하겠는가? 그러므로 자신을 의심하는 자는 반드시 남을 의심하고, 남을 믿는 자는 반드시 자신을 믿는다. 자신을 믿지 못하고 남을 보증하지 못하면, 의심하다가 공을 이루는 데에 실패하고 믿더라도 재앙이 일어날 것이다. 부견(苻堅)은 남을 의심하지 않았으나 모용수(慕容垂)에게 망했고, 안경서(安慶緖)도 남을 의심하지 않다가 사사명(史思明)에게 망했다. 오나라 태자의 말은 물론 하늘의 이치가 드러나는 하나의 흔적인데, 그것으로 소인을 놀라게 하여 기세를 빼앗아 버리니 어찌 강해질 수 있겠는가! 어찌 강해질 수 있겠는가!

2. 문제, 주아부(周亞夫)를 임용하여 오나라를 견제하다

문제가 붕어할 무렵에 경제에게 다음과 같이 경계했다.

“긴급한 일이 생기면 주아부(周亞夫)에게 장수의 임무를 맡길 만하다.”

그러니까 문제는 오나라를 제압할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왕 유비에게 안궤와 지팡이를 하사한 것은 그 야심을 없애고 스스로 무너지기를 기다리기 위한 것이지 장난삼아 한 행위가 아니었다. 마음속에 믿는 바가 있으니 조용히 그가 움직이기를 기다리면서, 재앙이 먼저 닥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했다. 그러므로 당연히 승리할 수단을 마련해 놓은 것이다. 부드럽지만 나약함에 빠지지 않고 근본을 세웠을 따름이다. 조조(鼂錯) 따위가 어찌 이것을 알 수 있었겠는가! 그는 다급하기만 했을 뿐 대응책이 없었으니, 황제에게 친히 정벌하고 자신은 경사를 지키겠다고 청했다. 주아부라는 믿을 만한 인재가 있음에도 임무를 맡길 줄 몰랐으니, 결국 그가 자기 목숨을 보전하지 못한 것도 마땅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유약하면서도 강적과 맞붙으려 하거나 끝내 자신을 강하게 만들 술수를 알지 못하면, 두 경우 모두 출발은 달라도 똑같이 실패로 귀결되게 된다.

3. 주아부, 양나라를 오나라에 맡기라고 청하여 양나라를 미워하는 경제의 마음을 얻다

주아부는 양(梁)나라를 오나라에 맡겨놓고 한나라가 오나라 병력의 보급선을 끊어 버리자고 청하자 경제가 허락했다. 양나라가 구원을 청했지만 주아부가 들어주지 않았고, 양나라의 하소연을 들은 경제가 조서를 내려서 양나라를 구원하라고 했지만 그 조서를 받지 않고 거절했다. 여기서 주아부의 마음을 알 수 있고 경제의 마음도 알 수 있다. 양나라를 오나라에 맡겨서 오나라를 피폐하게 하는 것은 바로 양나라를 피폐하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양나라의 존망은 한나라에 그다지 큰 손해나 이익이 없고, 지금의 양나라는 곧 미래의 오나라나 초나라와 마찬가지이니, 오나라의 손을 빌려 양나라를 피폐하게 하면 한나라 조정은 그 덕분에 오래도록 평안할 수 있는 것이다. 주아부는 이를 통해 경제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에 조서를 받들지 않아도 의심받지 않았다. 경제가 양나라를 구원하라고 한 것도 양나라의 요청에 응함으로써 태후의 질책을 완화하려는 책략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주아부가 조서를 받들지 않아도 의심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 경제의 마음은 참으로 잔인했구나! 그러나 그렇게 만든 것은 태후가 어린 아들을 편해한 사심(私心)이었다. 경제가 막 즉위했을 때는 서른두 살이었고 태자 유영(劉榮)이 이미 장성해 있었는데 태후는 제위를 양왕에게 물려주려 했다. 경제는 “천추만세(千秋萬歲) 뒤에, 즉 내가 죽은 뒤에 양왕에게 제위를 물려주겠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태후의 마음을 알아보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 것이었다. 두영(竇嬰)이 바른말로 반박하자 태후가 진노했으니, 경제가 양나라를 미워한 것은 그 유래가 오래되었다. 그러니 주아부가 양나라의 위기를 내버려두고 구원하지 않은 것은 경제와 밀약이 되었는 행동이었다고 하겠다. 그렇지 않다면 동생이 위기에 처해서 구해주라는 조서를 내렸는데 그것을 받들지 않은 주아부를 처벌하지 않은 것이 경제가 상황을 면밀히 살펴서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는 자세가 이처럼 흔들림이 없었기 때문이겠는가? 태후가 양왕을 편애할수록 경제는 그를 더욱 미워했으니, 양왕이 공숙단(共叔段)이나 공자언(公子偃)처럼 자기 목숨을 잃고 나라도 망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형제 사이의 관계는 부모가 개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친한 사이든, 아끼는 사이든, 믿는 사이든, 시기하는 사이든 모두 저절로 그렇게 된다. 완전히 중간에 있는 사람은 서로 자극하지 않고, 현량한 사람이 은의(恩義)를 펼칠 수 있게 해 주어서 평화롭고 순조로운 분위기 속에서 자손을 양육하게 할 수 있으며, 은밀한 편애로 서로 알력을 일으키지 않도록 해 준다. 태후도 부도(婦道)를 지켜야 하는 사람인데 이것을 알기에 부족했으니, 군자는 오히려 거기에서 귀감(龜鑑)을 얻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