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각박안경기初刻拍案驚奇 제3권 1

제3권 유동산은 순성문에서 무예를 자랑하고,
십팔형은 주막에서 기이한 행적을 보이다
劉東山誇技順城門 十八兄奇蹤村酒肆

약자가 강자를 제압하니 모양의 크고 작음에 있지 않네.
낭저(螂蛆)가 대(帶)를 제압하는 것이 어찌 긴 부리가 있어서인가?

천지간에 사물이 하나 있으면 반드시 그것을 제압하는 것이 있으니 높다고 자만할 수 없고 강하다고 믿을 수 없다. 앞의 시에서 말하는 ‘낭저’란 무엇인가? 빨간 다리를 가진 지네로 속칭 ‘백각(百脚)’ 또는 ‘백 개의 다리를 가진 벌레’라고도 한다. ‘대’는 또 무엇인가? 큰 뱀이다. 그 모양이 띠와 같아서 이러한 이름을 얻었다. 영남(嶺南)에는 큰 뱀이 많았는데 길이가 수 십장으로 자주 사람을 해쳤다. 그 지방 주민들은 집집마다 지네를 길렀는데 한 척이 넘는 것도 있었다. 주로 베개 옆이나 베개 속에 놓았다. 뱀이 가까이 오면 지네가 ‘쉭쉭 ’소리를 내었다. 지네를 풀어 주면, 허리를 굽혀 머리와 꼬리에 한 번 용을 써 일 장(丈) 높이가 되고 큰 뱀의 일곱 치 내에 오면 되면 갈고리 같은 집게를 사용하여 뱀의 피를 빨아 죽어야 멈춘다. 길고 큰 뱀이 오히려 자그마한 것에게 죽게 되니 옛말에 “지네는 뱀을 제압한다.”라는 말은 이것을 가리킨다.

한(漢) 무제(武帝) 연화(延和) 3년에 서쪽 오랑캐인 월지국(月支國)에서 맹수 한 마리를 헌상하였는데 모양은 태어난 지 오,육십일 된 강아지 같았으나 너구리나 고양이보다는 컸고, 누런 꼬리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사신이 손으로 안고 와 바쳤는데 무제가 그것의 생김새가 왜소한 것을 보고 웃으며 말하였다.

“이런 작은 것이 어찌 맹수라고 할 수 있겠소?”

“무릇 모든 짐승의 위엄은 반드시 크기로 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신린(神麟)이 거상(巨象)의 왕이 되고 봉황이 대붕(大鵬)의 종주가 되는 것 또한 크고 작음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제가 믿지 않고 사신에게 말하였다.

“시험삼아 그 놈이 소리를 내도록  짐에게 들려주시오.”

사신이 손으로 한번 가리키자 이 짐승은 입술을 핥고 머리를 흔들며 갑자기 포효하니 평지에서 벼락이 치는 것 같았다. 두 눈을 번뜩이며 섬광을 방출하였다. 무제는 즉시 의자를 뒤집고 급히 귀를 막으며 와들와들 떨었다. 시립한 주위 사람과 병기를 든 근위군은 손에 든 것을 모두 떨어뜨렸다. 무제는 기분이 나빠 곧 성지를 전해 이 짐승을 상림원(上林園)에 보내 호랑이의 먹이로 주게 하였다. 상림원의 책임자는 뜻을 받들어 호랑이의 우리 옆에 놓아두자 호랑이들은 모두 움츠러들며 피하였다. 상림원의 책임자가 상주하니 무제는 더욱 노하여 이 짐승을 죽이려 하였지만, 다음날 사신과 맹수 모두 사라졌다. 

흉폭한 것은 호랑이와 표범이 제일이나 오히려 이렇게 작은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있어서 힘의 강약, 지혜의 장단은 끝이 없구나.

강한 것 중에 더욱 강한 것이 있으니, 사람들 앞에서 자만하여 떠버리지 말라.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나그네가 있었는데, 이름과 출신은 전해지 않는다. 그는 완력이 남보다 뛰어나고 무예가 출중하였기에 일생동안 의협심이 많아 길을 가다 공평치 않은 것을 보면 칼을 빼들고 도왔다. 자신의 능력을 믿고 노복을 거느리지 않고 회시(會試)를 보기 위해 상경하는 중 있었다. 준마에 고삐를 매고 허리에는 활과 화살과 단검을 매고  혼자 길을 가며, 도중에 꿩과 토끼를 사냥하여 주막에 묵을 때 술안주로 삼았다.

하루는 산동(山東)으로 가다가 말이 빨리 달려 묵을 곳을 지나치게 되었다. 어느 마을에 이르렀는데 날이 이미 저물어 더 갈 수 없게 되었다. 마침 그 앞에 인가가 있었다. 열린 대문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말에서 내려 말을 끌고 대문 안으로 들어가니 큰 공터가 보였다. 공터에는 태호석(太湖石) 서너 개가 쌓여 있었고, 가운데에는 세 칸의 본채와 두 칸의 곁채가 있었다. 한 노파가 마당에 앉아서 삼을 짓고 있었다. 정원에서 말발굽 소리가 나자 몸을 일으켜 물었다. 나그네가 큰 소리로 말하였다.

“아주머니, 소생이 길을 잃어 묵어가고자 합니다.”

“그대는 불편하겠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오.”

그녀의 언사 중에서는 처량한 기색이 감돌았다. 나그네는 미심쩍어 물었다.

“아주머니, 집안의 남자들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어찌 홀로 계십니까?”

“나는 늙은 과부로 남편이 죽은 지 오래 되었다오. 아들 하나가 있는데 타지로 장사하러 갔다오.”

“며느리도 있습니까?”

노파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였다.

“며느리가 있긴 있는데 남자보다 나아서 생계를 지탱하고 있다오. 근데 힘이 대단히 세고, 겁도 없다오. 더욱이 성질이 굉장히 사나워 조금만 잘못해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오. 전 오금이 저려서 며느리 눈치만 살피다가 마음에 맞지 않으면 능욕을 당한답니다. 그러니 젊은이를 묵게 하는 것은 제 소관이 아니라오.”    

말을 마치고 눈물을 비 오듯이 흘렸다. 나그네는 그 이야기를 듣고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 두 눈에 심지를 돋우며 말했다.

“천하에 이런 불공평한 일이 있다니! 그 놈의 못된 며느리는 어디 있소? 내가 당신을 위해 그 년을 죽여 버리리다.”

말이 묶여져 있는 태호석으로 가 칼을 빼들었다.

“나으리! 분수를 아셔야죠. 제 며느리는 만만치 않다오. 게가 여자의 일은 배우지 않았지만, 매일 점심 먹은 후 빈손으로 산에 올라가 노루, 사슴, 토끼 등을 잡아온다오. 고기를 절여 사람들에게 팔아 돈을 만드는데 항상 일, 이경이 되어야 돌아온다오. 생계를 며느리에게 의지하니 난 그를 거역할 수 없다오.”

칼을 어루만지며 칼집에 넣었다.

“저는 평생동안 강한 자를 업신여기고, 약한 자를 걱정하여 대신 힘을 썼지요. 그깟 부녀자 한번 용서한다고 무슨 일이 있겠오? 더욱이 아주머니께서 며느리에 의지해 산다고 하시니, 내 그년의 목숨을 남겨 두리다. 대신 한 대 때려 며느리의 못된 성미를 고쳐 노리다.”

“그 애가 온다 하더라도 나으리께선 가만히 계세요.”

나그네가 분기 탱천하여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문 밖에 검은 그림자가 보이더니 집안으로 들어 와서 어깨에 매었던 물건을 마당에 던져 놓으며 말했다.

“어머니! 불을 가져 와 짐을 수습하구려.”

노파는 전전긍긍(戰戰兢兢)해 하며 말했다.

“무슨 좋은 물건이니?”

노파는 물건에 불을 비춰 보다가 놀라 쓰러졌다. 그건 죽은 호랑이였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나그네의 말은 불빛에 비추어진 죽은 호랑이를 보고 놀라 펄쩍 뛰었다.

“저 말은 어디서 왔죠?”

나그네가 어두운 곳에서 몰래 보니 키가 크고 검은 여자였다. 그녀의 모습과 뒤에 있는 죽은 호랑이를 보고 헤아렸다.

‘힘 좀 쓰게 생겼군.’

마음속으론 겁이 조금 생겼다. 급히 말에게 달려가 고삐를 꽉 묵은 후, 여자에게 말했다.

“소생은 과거시험을 치러 가다가 길을 잃은 나그네라오. 머물 곳을 지나쳤으나 다행히 귀댁에 이르러 문이 열려져 있는 것을 보고 실례를 무릅쓰고 하룻밤 유숙하려 하오.”

그녀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노인네가 이리 경우가 없을까! 이런 귀인을 야심한 때에 어찌 밖에서 서 계시게 했어요?”

또 죽은 호랑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오늘 산에서 저 놈을 맞닥트려 실랑이를 벌이다가 겨우 잡았어요. 늦게 집에 돌아 와서 주인의 예를 행하지 못했으니 귀인은 죄가 없지요.”

나그네는 그녀가 말을 시원스럽게 하고 예절도 갖추어져 있는 것을 보고, ‘내가 가르치면 고쳐지겠군.’하고 생각하였지만 “별 말씀을, 별 말씀을”이라고 연이어 말하였다.

그 여자는 거실로 들어가 의자를 가지고 나와 나그네에게 말했다.

“거실로 모시어 앉히는 것이 예의지만, 저와 시어미니밖에 없어서요. 남녀칠세부동석이니 행랑에 앉아 계세요.”

또 탁자를 끌고 와 그의 앞에 놓고 등불을 밝혔다. 그런 후, 마당에 나가 두 손으로 죽은 호랑이를 짊어지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에 술 한 병을 데워 큰 쟁반에 가지고 나오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호랑이 고기 한 접시와 사슴포 한 접시가 담겨 있었다. 또 절인 꿩고기, 토끼 고기 같은 것이 대여섯 접시를 내어 오며 말했다.

“귀인께선 더럽다고 사양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나그네는 그녀의 정중함에 혼자 자작을 하며 순식간에 술과 안주를 다 먹고 공손히 말했다.

“후의에 감사드리오.”

“별 말씀을. 황송하게도.”

쟁반을 가지고 나와 탁자 위의 그릇과 접시를 치웠다.

나그네는 그 틈을 타서 말했다.

“부인을 보아 하니 영웅처럼 행동거지가 현명한 것 같은데 어찌 아래위를 모른단 말이오?”

여인은 상을 치우다 말고 노기를 띠며 말했다.

“금방, 저 늙은 것이 귀인에게 무슨 거짓말을 했군요?”

“그, 그게 아니라. 부인께서 말하는 중에 업신여기는 것처럼 보이니 시어머니에게 할 도리가 아닌 것 같고, 또 나그네는 융숭하게 대접해주시니 이치가 안 맞는 것 같아서 좋게 얘기하는 겁니다.”

여인은 그의 말을 듣고, 나그네의 옷자락을 잡은 후, 다른 한 손으로 등잔을 들고 태호석으로 끌고 갔다.

“제 말을 들어보세요.”

나그네는 순식간에 잡혀 빠져 나올 수 없었다.

‘다 들은 후 일리가 없으면 두들겨 패야지.’

여인은 태호석에 기대어 돌을 손바닥으로 치면서 말했다.

“옛날에 일이 있었는데, 여차여차, 저차저차 하였어요. 제가 잘못했나요? 아니면 시어머니가 잘못했나요?”

말을 마치고 집게손가락으로 돌을 그어 댔다.

“이와 같은 거예요.”

손으로 한 번 그을 때마다 바위는 부서지면서 골이 일촌 깊이 정도로 파였다. 연달아 세 번 그어대자 태호석엔 정으로 파놓은 것처럼 “천(川)”자가 새겨졌다. 옆에서 보면 “삼(三)”자와 같았는데 족히 일촌 깊이는 되었는데 모두 정으로 새겨 놓은 것 같았다. 나그네는 놀라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리며 얼굴이 빨개져 연이어 말했다.

“부, 부인의 말씀이 모두 맞습니다.”

그녀와 시비를 가리려던 그의 웅심은 마치 눈처럼 사라졌다. 여인은 말을 마치고 침상을 끌고 와 나그네에게 내주었다. 또 말에게 먹이를 준 후, 들어가서 노파에게 문을 잠그게 한 후 불을 껐다.

나그네는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며 탄식하였다.

“천하에 이렇게 힘센 사람이 있을 줄이야. 처음에 섣불리 그녀를 건드렸다면 지금까지 목숨을 보전할 순 없었을꺼야.”

날이 밝자 말을 준비시키고 작별을 고했지만 다른 말을 한마디도 못하였다. 후로는 위엄(威嚴)을 거둬들이고, 다시는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 않았고, 자기 보다 강한 사람을 만나 그에게 당할까 두려워하였다. 이제 자신의 능력을 믿고 허풍을 떨다가 질겁을 당한 이야기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