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번역된 루쉰의 단행본 『중국소설사략』

루쉰이 출간한 단행본은 얼마나 될까? 소설 3권, 산문시 1권, 회고수필 1권, 잡문 16권, 『양지서(兩地書)』 3권, 『중국소설사략(中國小說史略』 1권(상,하 포함), 『당송전기집(唐宋传奇集)』 1권, 『역외소설집(域外小說集)』(周作人과 공역) 2권, 『고민의 상징(苦悶的象徵)』(역서) 1권 등 거의 50권에 달한다. 출간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이 숫자를 훨씬 상회한다. 지금 인민문학출판사에서 출간한 『루쉰전집』은 모두 18권인데, 여기에는 루쉰의 저작, 서신, 일기만 포함되어 있다. 루쉰의 번역물을 망라한 『루쉰역문전집(魯迅譯文全集)』 8권과 『노신과학논저집(魯迅科學論著集)』 1권은 따로 출간되어 있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루쉰은 청나라 말기인 1881년에 태어나 중화민국 25년인 1936년에 56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문학가, 고대문학 연구가, 번역가, 공무원, 교육가, 출판가, 혁명가, 사회운동가 등의 신분으로 다양한 삶을 살면서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글을 썼다.

그의 다양한 단행본 중에서 우리나라에 완역 형태로 처음 출간된 저작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그의 문학 작품이 아니라 고대문학 명저 『중국소설사략』이다. 이 책은 본래 루쉰이 1920년 베이징대학 국문과에서 중국소설사를 강의할 때 강의안으로 작성한 유인물이었다. 본래 제목은 『소설사대략(小說史大略)』이었고, 이후 내용을 보태 『중국소설사대략』(北大印刷社 鉛印本)으로 고쳤다가 1923~1924년에 걸쳐 베이징 신조사(新潮社)에서 『중국소설사략』(상,하)이란 이름으로 정식 출간했다. 그리고 1925년 초판본에 교정을 보고 상,하권을 1권으로 합쳐 베이신서국(北新書局)에서 재판본을 냈으며, 계속해서 중판을 거듭하여 1935년 6월에 제10판 최후수정본을 출간했다.

이 책은 중국 고대소설을 역사적으로 정리한 중국 내 첫 번째 저작으로 이후 중국 소설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루쉰이 교정한 『혜강집(嵇康集)』 등이 청나라 고증학의 짙은 영향을 보여준다면 이 책은 당시 새로운 학문 연구 방법을 고대문학 연구에 적용한 근대적 학술 저작이다. 루쉰은 학문 연구 분야에서도 전통에서 근대로 전환해가는 ‘역사적 중간물’의 성격을 짙게 보여준다.

일본의 중국문학 연구가 마스다 와타루(增田涉)는 루쉰이 아직 생존해 있을 때 이 책에 주목하고 일본어 번역에 착수했다. 그는 번역 과정에서 봉착한 어려운 문제를 루쉰에게 직접 논의하면서 번역을 완성하여 1935년 7월에 『支那小說史』(東京, 賽棱社)란 제목으로 정식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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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래동, 정범진 역, 『중국소설사』, 금문사, 1964.11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 해방 후 혼란, 6.25동란, 4.19혁명, 5.16쿠데타 등 격동기를 거치면서 루쉰 저작을 제대로 번역할 기회를 잡기 어려웠다. 마침내 1964년 11월 정내동(丁來東)과 정범진(丁範鎭)은 『중국소설사략』을 함께 번역하여 『중국소설사(中國小說史)』란 이름으로 금문사(錦文社)에서 정식 출간했다. 정내동이 누구인가? 1930년 4월 9일부터 4월 12일(『조선일보』)까지 양백화의 「아Q정전」 우리말 번역을 읽고 그 오역을 꼼꼼하게 토론한 바로 그 사람이다. 기실 양백화는 한문에는 능통했지만 현대중국어는 거의 구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현대중국어로 쓰인 「아Q정전」 번역에 오역이 많이 포함될 수밖에 없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老婆’를 노파 즉 할머니로 번역한 대목이다. 정내동은 현대중국어의 ‘라오포(老婆)’는 우리말의 노파가 아니라 ‘아내’ 혹은 ‘마누라’라고 지적하면서 양백화의 「아Q정전」 번역에는 이런 오류가 다수 발견된다고 했다. 이는 한학자 이가원이 ‘吶喊’을 ‘눌함’으로 읽고 ‘어눌하다’ ‘말 더듬다’의 뉘앙스에서 끝까지 벗어나지 못한 점과 유사하다. 하지만 현대중국어에 능통한 김광주는 ‘부르짖다’로 번역했다.

정내동은 일본 타이세중학(大成中學)을 졸업하고 중국 베이징의 민궈대학(民國大學)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같은 시기에 다양한 중국문학 과목도 수강했다. 민궈대학을 졸업한 후 귀국하여 보성전문학교 중국어 전임강사, 서울대 중문과 교수, 국학대학 교수, 성균관대 교수를 역임했다. 1920년대 말부터 중국 현대문학과 루쉰을 국내에 소개하며 혁혁한 업적을 남겼다.

정내동과 공역에 참여한 정범진은 성균관대학교 중문과 출신으로 타이완사범대학에 유학하여 중국소설을 전공했다. 이후 1960년대 초반 귀국하여 이화여대와 성균관대에서 강사 생활을 하며 루쉰의 『중국소설사략』을 번역했다. 정내동이 1961년부터 1968년까지 성균관대학교 교수를 지냈으므로 이 기간 정범진도 모교에 출강하며 서로 학문 교류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범진은 초창기 중국문학계에서 중국 소설 연구 분야를 개척했으며, 이후 한국중국학회 회장, 한국중어중문학회 회장, 중국문학연구회 회장을 역임했고, 마침내 성균관대학교 총장에까지 올랐다.

그런데 의문점은 과연 정내동과 정범진이 동등하게 같은 분량으로 『중국소설사략』을 번역했을까 하는 점이다. 왜냐하면 정범진은 1964년 금문사에서 정내동과 공역으로 출간한 『중국소설사』를 1978년 범학도서에서 『중국소설사략』이라는 본래 제목으로 출간하면서 역자를 자기 혼자 이름만 표기했기 때문이다. 같은 책을 1987년 학연사에서 출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저간의 사정을 알 수 없어서 함부로 논단할 수 없지만 『중국소설사략』 번역은 정범진이 주도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듯하다.

『중국소설사략』은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문학가 루쉰의 저작이기 때문에 흔히 현대중국어로 썼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당시 루쉰은 강의안의 유인물 인쇄비를 아끼기 위해 현대중국어보다 함축적인 표현이 가능한 고대중국어 즉 한문 고문으로 『중국소설사략』을 썼고, 1935년 마지막 수정본을 낼 때까지 이를 고치지 않았다. 따라서 『중국소설사략』은 본문을 정확하게 읽는 것만 해도 대단한 공력의 소유자라 해야 한다. 그런데 정범진은 불과 서른 살에 이 책 번역본을 출간했으니 학문적 수준과 끈기 그리고 선도적 노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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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관희 역, 『중국소설사』, 소명출판, 2004

정범진의 선도적 노력이 있은 후 이를 이은 명실상부한 완역본은 상명대 교수 조관희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다년 간의 윤독과 역주 작업을 거쳐 마침내 1998년 살림출판사에서 『중국소설사략』 완역 역주본을 출간했다. 이후 이 책의 수정본이 2003년 소명출판사에서 나왔고, 다시 같은 책이 2015년 『루쉰전집』 한국어판 제11권으로 편입되었다. 조관희의 완역본은 당시까지의 『중국소설사략』 역주와 연구 업적을 총망라한 명역으로 외국어 학술저작 번역과 주석의 모범을 보여준다고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