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李贄-분서焚書 소자유의 노자 해설 서문子由解老序

<소자유의 《노자 해설》 서문>[1][子由解老序]

먹으면 배부른 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다. 남쪽 사람은 벼[稻]를 먹으면 달게 느끼고, 북쪽 사람은 기장[黍]을 먹으면 달게 느낀다. 그런데 남쪽 사람과 북쪽 사람은 지금까지 서로를 부러워한 적이 없다. 그러나 두 사람더러 각각 바꾸어 먹게 해보면, 그렇다고 해서 안 먹고 버리는 일도 없다. 공자(孔子)의 도와 노자의 도는 마치 각각 남과 북의 벼와 기장과 같다. 어느 한쪽에 만족스러워 다른 쪽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해도, 다른 쪽을 차버리면 되겠는가? 무엇 때문인가? 무엇이든 먹고 배부르면 그것으로 충분할 뿐, 정말 굶주린 사람은 가릴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 북방에서 공부를 할 때 주인의 집 일을 해주고 먹고 살았던 적이 있었다. 날씨가 추운 데다 큰 비와 눈이 사흘 동안 내려서, 7일 동안 식량이 끊겨서 굶주리고 꽁꽁 얼어 뒹굴다가, 주인에게 한가닥 희망을 걸고 찾아갔다. 주인은 나를 불쌍하게 여겨, 기장을 끓여 내게 먹으라고 했다. 나는 이것저것 가릴 틈도 없이 입을 있는 대로 벌려 마음껏 먹었다. 밥상을 물리고 나서 나는 “제가 먹은 것이 아마 벼인가보군요! 어쩌면 이렇게 맛이 있는지요!”라고 물었다. 주인은 웃으며 말했다. “이것은 기장일세. 벼하고는 다르지. 또한 지금의 기장은 옛날의 기장과 다를 것이 없다네. 다만 배가 아주 고프니 아주 맛있는 것이요, 아주 맛있게 먹으니 배가 아주 부른 것이라네. 자네는 이제부터 벼라고 생각하지도 말고 기장이라고 생각하지도 말게.”

나는 주인의 그 말을 듣고 문득 탄식하며 ‘만약 내가 도를 추구하는 것이 지금 먹을 것을 추구하는 것과 같다면, 공자든 노자든 가릴 겨를이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서, 이때부터 오로지 《노자》를 공부했다. 마침 소자유(蘇子由)가 《노자》를 해설한 《노자해》(老子解)를 구하여 읽었다.

《노자》를 풀이한 것은 많지만, 그 중 소자유의 것을 최고라고 일컫는다. 소자유는 《중용》의 이끄는 말을 인용하여 “희노애락의 감정이 아직 생기지 않은 상태를 중(中)이라고 한다”[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고 말했다. 희노애락의 감정이 아직 생기지 않은 중(中)의 경지는 지극히 심오한 경지라서, 송나라 유학자들이 정명도[2] 이후로 그 이치를 전수해 주면서 매번 문하의 제자들에게 그 기상이 얼마나 위대한지 탐구해보게 한 것이다. 소자유는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 《중용》의 말 중에서 이 미언(微言)을 취하여《노자》를 해설함으로써 《노자》의 깊은 뜻이 아주 적절하게 드러나게 했다. 5천여 글자로 이루어진 《노자》의 뜻이 밝은 해처럼 밝게 드러남으로써, 배우는 사람들은 절대 하루라도 이 책을 손에서 떠나게 하지 않는다.

소자유는 해설이 완성되자, 이를 도전(道全)에게 보여주니 도전이 마음에 들어 했고, 소자첨[3]에게 부치니 자첨 또한 마음에 들어 했다. 그런데 지금 나와 소자유와는 서로 5백년 간격이 떨어져 있는데, 뜻하지 않게 이 뛰어난 것을 다시 보게 되었다. 아아! 역시 정말로 굶주린 이후에 얻을 수 있는 것이구나!(권3)


[1] 송대(宋代) 소철(蘇轍)의 자가 자유(子由)이다. 소순(蘇洵)의 아들이요, 소식(蘇軾)의 동생이다. 이들 삼부자가 모두 문장으로 이름을 날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에 나란히 꼽혔다.

[2] 명도(明道)는 주렴계(周濂溪)에게서 배운 명도선생 정호(程顥)이다. 자는 백순(伯淳)이고 하남 낙양 사람이다. 맹자의 학문을 좋아하였으며 인(仁)을 생의(生意)로 해석한 북송 성리학의 선구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동생 정이와는 달리 매우 호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3] 자첨(子瞻)은 송대(宋代) 소식(蘇軾)이고, 그의 호는 동파(東坡)이다.

卷三 雜述 子由解老序

食之于飽,一也。南人食稻而甘,北人食黍而甘,此一南一北者未始相羨也。然使兩人者易地而食焉,則又未始相棄也。獨之于孔、老,猶稻黍之于南北也,足乎此者,雖無羨于彼,而顧可棄之哉!何也?至飽者各足,而真饑者無擇也。

蓋嘗北學而食于主人之家矣。天寒,大雨雪三日,絕糧七日,饑凍困碚,望主人而向往焉。主人憐我,炊黍餉我,信口大嚼,未暇辨也。撤案而後問曰:“豈稻粱也歟!奚其有此美也?”主人笑曰:“此黍稷也,與稻粱埒。且今之黍稷也,非有異于向之黍稷者也。帷甚饑,故甚美,惟甚美,故甚飽。子今以往,不作稻粱想,不作黍稷想矣。”

余聞之,慨然而歎,使余之于道若今之望食,則孔、老暇擇乎!自此專治《老子》,而時獲子由《老子解》讀之。解《老子》者眾矣,而子由稱最,子由之引《中庸》曰:“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夫未發之中,萬物之奧,宋儒自明道以後,遞相傳授,每令門弟于看其氣象為例如者也。子由乃獨得微言于殘篇斷簡之中,宜其善發《老于》之蘊,使五千余言爛然如皎日,學者斷斷乎不可以一日去手也。解成,示道全,當道全意;寄予瞻,又當子瞻意。今去子由五百余年,不意複見此奇特。嗟夫!亦惟真饑而後能得之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