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쉽고 재미있는 세계명작해설

연구사 서술은 대개 지난 원시자료 발굴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면 언제나 앞의 내용을 수정해야 한다. 나는 지난 번에 우리나라 [세계문학전집]의 시작이 1955년 고금출판사에서 간행한 [요약 세계문학전집](전4권)이라고 진술한 바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알기 쉽고 재미있는 세계명작해설–세계문학의 압축판]이 나왔음을 최근에야 확인했다. 기획 의도와 편집 체재는 [요약 세계문학전집]과 똑같지만 1953년에(단행본 235쪽) 출간되었다.

내용을 살펴보면 중국, 아라비아,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독일, 북유럽, 러시아, 영국, 미국의 총 97부의 명작을 줄거리와 해설로 나눠 소개하고 있다. 이 컨셉을 조금 늘이고 7권으로 기획하여 총4권만 출간한 것이 [요약 세계문학전집]이므로 기실 이후 우리나라 [세계문학전집]의 원조는 [알기 쉽고 재미있는 세계명작해설]이라고 해야 한다.

근래에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책 중에 [지대넓얕]이란 책이 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따라서 [알기 쉽고 재미있는 세계명작해설]도 요즘 식으로 줄여서 부르면 [알재명해]라 할 수 있다. 어느 시대나 넓고 얕은 지식을 위한 다이제스트판은 늘 일정한 수요가 있었던 셈이다.

이 책을 편집한 사람은 앞에서도 몇 번 소개한 김광주다. 나는 김광주가 소개한 루쉰 관련 자료를 찾던 도중 이 [알재명해]를 알게 되었다. 이 책에 [아Q정전]이 소개되어 있다. 김광주는 중국 상하이 남양의대를 다니다가 중도에 그만두고 문학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루쉰이 일본 센다의학전문학교를 중도에 그만두고 문학으로 돌아선 일과 매우 유사하다. 김광주는 이후 임시정부와 연관된 생활을 했고 귀국 이후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비서로도 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광주는 이미 1930년대부터 루쉰을 포함한 중국현대문학을 본격적으로 국내에 소개 한 바 있고 1946년에는 이용규와 함께 [노신단편소설선 1,2]를 번역 출간한 적이 있다. 또 이후에도 1960~1970년대를 거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각종 [세계문학전집]에 [아Q정전]을 비롯한 루쉰 작품을 끊임없이 소개했다. 우리나라 [세계문학전집]에 [아Q정전]이 들어가게 된 시초는 바로 1953년에 김광주가 편집한 [알기 쉽고 재미있는 세계명작해설]이라 할 수 있다.

luxun1
김광주, 이용규, 《魯迅短篇小說集》, 서울출판사, 1946. 사진 출처: 세이북

이 책 서문 [이 책을 내놓으며] 끝에 명기된 날짜와 장소를 보면 “서기 1952년 8월 20일 부산에서”라고 되어 있다. 아직 6.25전쟁 도중 부산에서 이 책을 편집하여 휴전 직후인 1953년 10월 15일 서울에서 출간했음을 알 수 있다. 아침에 저녁의 삶을 예측할 수 없는 전쟁 통에도 문학과 출판을 이어나가기 위한 고투가 매우 눈물겹게 진행되었음에 숙연한 마음 금할 수 없다.

[알기 쉽고 재미있는 세계명작해설]에 요약 소개된 [아Q정전]은 2년 뒤 출간된 [요약 세계문학전집]보다 분량이 적다. 그러나 해설은 비교적 정확하다. 물론 지금은 [아Q정전]에 대한 연구가 당시보다 훨씬 심화되었지만 당시로서는 김광주의 해설이 가장 수준 높은 경지에 도달해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