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평화》 번역본이 또 나왔다. 2000년에 정원기 교수의 번역이 처음 나왔으니 꼭 20년 만에 새로운 번역본이 나온 셈이다. 소설 자체에 대한 설명과 부수적인 해제는 췌언에 지나지 않을 것이므로 바로 두 책의 비교에 들어간다.
먼저 외관을 보면 정원기 본은 하드커버에 학술서 느낌을 주는 디자인으로 단순함을 추구했다. 김영문 본은 소프트커버로 최근에 나온 책답게 단순하면서도 깔끔한 느낌을 준다. 분량은 443쪽과 389쪽으로 정원기 본이 좀 더 많다.
양자의 가장 큰 차이는 그 내용이다. 정원기 본은 《삼국지평화》 원문을 먼저 앞세우고 그 뒤에 번역문을 실었다. 김영문 본은 원문은 없는 대신에 《신전상삼국지평화新全相三國志平話》의 삽화를 가져와 해당 본문에 맞춰 배열했다. 이것은 이른바 ‘상도하문上圖下文’이라는 평화의 체제를 그대로 재현해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아울러 삼국지 인물도와 삼국의 형세도, 각 나라의 왕실 계보도를 앞쪽에 배치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한 마디로 전체적인 레이아웃과 체제는 아무래도 나중에 나온 김영문 본이 상대적으로 투박한 정원기 본보다 낫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이것은 두 책 사이의 시간적인 거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20년이란 시간만큼 우리나라의 출판 환경과 기술이 제자리걸음을 하지는 않았을 터이니.
번역문의 매끄러움 역시 마찬가지다. 정원기 본은 본인이 <역자 서언>에서 밝힌 대로 “직역을 원칙으로” 하되, “문맥상 앞뒤 연결이 곤란하거나, 지나친 생략으로 수식어가 필요한 경우에는 원래의 뜻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임의로 적당한 부사어를 첨가했다.” 그래서일까 정원기 본은 번역문투가 사뭇 투박한 느낌을 준다. 이에 반해 김영문 본은 번역문에 대한 구구한 언급은 일절 하지 않았으되 문장이 유려하게 술술 읽힌다. 나는 이 차이가 작품을 대하는 두 사람의 태도에 기인한다고 본다.
정원기 본은 체제도 원서 그대로 <상권>, <중권>, <하권>으로 나누었다. 김영문 본 역시 같은 방식을 따랐으되, 단순히 상, 중, 하로 나누어 그 구분이 크게 도드라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큰 차이는 해제 부분에 있다. 김영문 본이 일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내용상의 특징들을 설명하고 독자들이 주안점을 두어야 하는 것들을 미리 제시해 보여주고 있다면, 정원기 본은 마치 학술논문처럼 ‘성서成書’와 ‘판본’ 상황에서 시작해 작품의 체제와 구성, 그리고 서사 내용 및 문체 등을 서술한 뒤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 《삼국지평화》의 성립과정과 작품 내부에 흐르는 사상까지 다루고 있어 한 편의 학위논문을 보는 듯하다.
결국 양자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곧 정원기 본은 학술적인 성격을 띤 학술 번역이라 할 수 있고, 김영문 본은 대중들이 이 소설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게 평이하게 풀어내고자 하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대중적인 성격의 번역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정원기 본에 인용된 원문에 달린 엄청난 양의 각주에서도 드러난다. 정원기 본은 마치 한때 중문과 학생들의 독해 교재로 많이 쓰였던 ‘소설 선독選讀’를 보는 듯하다. 이 점은 김영문도 <옮긴이의 머리말>에서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그의 역주본은……학술적 성격이 매우 짙어 일반 독자들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차이가 두 책의 우열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양자를 비교할 때는 출판 당시의 상황도 고려해야 하지만, 그 지향점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점을 우선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학술적인 엄밀함을 지향한 정원기 본과 대중성을 주안점으로 두고 있는 김영문 본은 출발점이 전혀 다른 작업의 결과물이다. 뭐가 됐든 학문에 대한 두 분의 변함없는 열정에 항상 감복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