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선외사女仙外史 제9회

제9회 기근을 구휼하니 청관은 상을 내려 달라 청하고
부부의 인연을 꾀하다가 탐욕스러운 태수는 거세를 당하다
賑饑荒廉官請獎, 謀伉儷貪守遭閹

한편 신장들에 의해 집으로 돌려보내진 묘고는 매일 만다니에게 배운 도술을 익혔고, 유연도 상당히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다가 월군을 영접해 만나게 되자 기쁨이 넘쳤다. 묘고가 천서의 장단점에 대해 묻자 월군은 몇 마디로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그때 만다니가 말했다.

“지금 연왕(燕王)이 북방에서 막 군대를 일으켰으니 어서 군사를 모집하고 말을 준비해 그놈을 처단하러 가야 해!”

유모가 반대했다.

“그건 그저 도적 노릇을 하자는 얘기밖에 안 돼. 때를 기다려서 움직여야지 함부로 나서지는 말아야 해.”

“호호, 황제도 도적에서 시작했잖아!”

월군이 말했다.

“두 분 말씀이 모두 옳긴 하지만 어쨌든 요처에서 때를 기다려야지 이처럼 작은 성 안에서만 있어서는 안 돼요. 이제 집안의 재산과 재물, 종복과 하녀들은 모두 제게 부담스러우니까, 털어 낼 것과 남겨 둘 것을 가려서 정리한 뒤에야 일을 도모할 수 있겠어요.”

유모가 말했다.

“옳은 얘기야.”

그리하여 마을과 성곽을 겸한 건물을 사서 현녀도원(玄女道院)으로 개조하기로 했다. 막 공사를 시작하려 하는데 관청의 심부름꾼이 현령의 명첩을 들고 찾아왔다. 하인이 즉시 전갈하자 월군은 대청에 단정히 앉아 불러들여 면전에서 얘기하도록 했다. 심부름꾼은 용모는 선녀 같은데 천신 같은 위엄을 풍기는 월군을 보자 자기도 모르게 한쪽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이번 겨울에 농가에서 가뭄을 겪고 또 우박에 피해를 당해 가난한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는지라, 현령께서 먼저 봉록을 내놓으시며 이 지역 유지들께도 재난을 구제하는 데에 협조해 달라고 청하셨습니다. 그러다가 평소 부인께서 선행을 많이 하신다는 소문을 들으시고 저더러 서찰을 들고 찾아와 말씀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고을 유지들이 내 놓은 것을 모두 합치면 얼마나 되는가?”

“장부에 기록된 것만 보면 모두 합쳐도 금 백 냥 정도에 지나지 않아서 일을 해 내기에 부족합니다. 또 달리 가져다 쓸 돈이나 식량도 없어서 현령께서 무척 걱정하고 계십니다.”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라. 유지들에게 사정할 필요 없이 이 고을의 모든 이재민들을 나 혼자 구휼하겠다고 말이다. 집집마다 필요한 돈의 액수에 따라 관청의 직인을 찍은 수표를 발행해 주고, 이재민들이 내 집에 오면 수표의 액면가대로 돈을 나눠 주겠다고 해라. 식구 수에 따라 금액을 적당하게 가감해야 할 게야. 하지만 남는 한이 있더라도 모자라게 해서는 안 된다. 언제부터 시작할 건지는 미리 통지해 주는 것이 좋겠지.”

심부름꾼이 깜짝 놀랐다.

“백성들에게 큰 복이 내려졌군요!”

월군은 그의 옷차림이 남루한 것을 보고 은 다섯 냥을 하사했다. 심부름꾼이 절을 하고 돌아가서 현령에게 가서 자세히 보고하니, 주상문은 무척 기뻐했다. 처음에는 그저 조금 많은 협조를 받을 생각이었는데 뜻밖에 이렇게 큰 재물을 내놓는다는 말을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하인 하나와 편지 한 통, 아역 한 명만을 데리고 다니며 성 안팎과 사방 시골의 이재민들을 직접 조사하여 장부에 기록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공문을 개별적으로 발송했다.

현령 주 아무개가 관인(官印)을 찍은 수표를 발행함.
조사 결과 모 지역 모 집안은 가구 인원이 모두 몇 명인데 식량이 부족한 이재민이므로 현청에 와서 신분을 증명하고 수표를 수령할 것. 이 수표를 가지고 당씨 저택으로 가서 제시하면 진위를 검사한 후 액면에 적힌 정확한 액수에 맞춰서 현금을 지불할 것임. 현금을 수령한 후에는 수령증을 지니고 다시 현청에 와서 장부와 대조한 후 명단을 삭제해야 하니, 이는 기회를 이용하여 거짓으로 부당한 이득을 챙기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것임.
이상!

문서 안에는 연, 월, 일이 명기되고 현령의 직인이 찍혔으며, 번호와 장부에는 모두 현청의 관인이 찍혔다. 그는 또 포고문을 작성하여 곳곳에 내걸게 했으니, 그 내용은 이러했다.

산동(山東) 제남부(濟南府) 포대현(蒲臺縣)의 현령 주 아무개가 재난 구휼에 관해 공포함.
조사 결과 올해 가을에 가뭄이 들어 이전보다 추수가 줄었고, 우박의 피해가 이어지면서 곡식 열매가 떨어져 버렸다. 본 현청에서는 백성을 구제하고자 해도 마음만 간절할 뿐 그에 필요한 비용을 만들어 낼 방법이 없어 고심했다. 이때에 당씨 댁의 따님으로 고인이 된 임 아무개의 부인인 분이 기아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가련히 여기고 도랑과 골짝에서 죽어 가는 이들을 애통하게 생각하여 온 집안의 힘을 기울여 본 현의 모든 이재민을 널리 구제하겠노라 맹서했다. 그러니 참으로 인간 세상에 현신한 보살이자 성현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분이라 하겠다. 이에 이달 11일부터 시작해서 20일까지 그대들 백성들이 현청에서 수표를 수령해서 그것을 가져가면 현금을 수령할 수 있게 해 주기로 했으니 스스로 일을 그르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날짜에 따라 구제할 지역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주 현령은 조치를 마치고 몸소 가마를 타고 당씨 저택으로 가서 사람을 통해 경과를 보고하고 수표 양식을 보여주도록 했다. 월군은 수표 말미에 “현금을 수령한 후에는 수령증을 지니고 다시 현청에 와서……”라는 문구를 보고 곧 유연을 통해 이렇게 전했다.

“부인께서 말씀하시길, 다시 현청에 가서 장부와 대조한 후 명단을 삭제하는 것은 이재민으로서는 곤란한 일이니, 아예 수표를 이곳에 납부하고 현금을 수령하게 하는 편이 좋겠다고 하십니다. 구휼이 끝나는 날 부인께서 사람을 보내 한꺼번에 정산하면 되지 않겠냐는 말씀입니다.”

주 현령은 깜짝 놀랐다.

“그건 나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구먼! 어찌 감히 부인의 조언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소?”

그렇게 말하고 그는 현청으로 돌아갔다.

월군은 대문 맞은편 공터에 월대(月臺)를 쌓아 그 위에 푸른 천을 덮어 지붕으로 삼고, 사방으로 한 자 남짓한 처마를 두르고, 아래쪽에는 모두 푸른 천을 감아서 난간을 만들게 했다. 열하루날 새벽에 월군이 월대에 올라 정좌하자, 취운 등 네 하녀가 시립했다. 은을 담은 상자는 두 개가 준비되었는데 하나에는 한 냥씩 담은 봉투가, 다른 하나에는 다섯 전(錢)씩 담은 봉투가 각기 삼천 개씩 들어 있었다. 상자들은 대문 안에 갖다 두었고, 묘고와 노매가 각기 한 상자씩 맡았다. 대문 앞에는 나무 울타리를 설치하여 한 번에 가족 두 명만 들어갈 수 있게 했고, 울타리 밖에는 가구에 따라 수표를 접수했는데, 소삼(小三)과 소교(小巧)가 울타리 안에서 수표를 전달하고 돈을 전달하는 일을 담당했다. 유연은 수표를 거둬들여 장부에 기록하는 일을 맡았다. 업무 분담을 끝내자마자 벌서 이재민들이 남녀노소가 북적북적 몰려왔으니, 그야말로 남루한 옷에 비쩍 마른 얼굴로 금방이라도 굶어 죽은 시체가 될 듯한 모습들이었다. 그들은 월대에 앉아 있는 당 부인을 우러르며 모두들 합장하며 “대자대비하시고 고난에서 구제해 주시는 관세음보살이시여!” 하고 외쳤다.

현령 주상문은 이재민들이 소란을 일으킬까 염려하여 당씨 저택 근처에 아역을 파견하여 사방을 순찰하게 했다. 하지만 월대에 앉아 있는 이를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이재민들보다 더 많아서 무력으로 밀쳐 내니, 수표를 지닌 이재민들은 그 무리에 둘러싸여 꼼짝도 못할 상황이 되고 말았다. 가련한 늙은이와 부녀자들은 땅바닥에 쓰러져 발길에 짓밟혀 비명을 질러 댔는데,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었다. 현령이 아역들을 시켜 호통을 쳤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월군은 즉시 신장에게 명령하여 이 지역 성황(城隍)으로 하여금 귀신 병사 삼천 명을 이끌고 구경꾼들의 왼쪽 다리를 잡고 밖으로 끌어내도록 했다. 순식간에 군중들 속에서 사람들이 어지럽게 구르고 산이 무너지듯이 자빠졌다. 하늘을 보고 털썩 나자빠지고, 비스듬히 쓸려가고, 옆으로 쓰러지고, 절을 하듯 앞으로 엎어지고, 또 남의 집 대문을 붙들고 안간힘을 쓰는 등 난리가 벌어졌다. 하지만 이재민들은 그제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들이 한 명씩 수표를 접수하자 당씨 저택의 하인이 전갈했다.

“마님께서 이재민들께 알립니다. 돈은 모두 액면가보다 더 넣었고, 식구가 작은 집에도 석 전을 더해서 모두 다섯 전을 드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재민들의 환호성이 우레처럼 울려서 마치 황제를 향해 만세삼창을 하는 듯했다. 그렇게 날이 저물 때까지 나눠주고 나서야 겨우 일이 끝났다.

주 현령은 그 때까지도 아직 어느 사당 앞에 앉아 있었는데, 잠시 후 몇몇 아역들이 떠들어 대는 소리가 들렸다.

“세상에 이런 신기한 일이! 정말 신기하구먼!”

주 현령이 불러서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들이 이렇게 대답했다.

“그때 구휼하는 모습을 구경하러 온 이들이 거의 이삼천 명이나 되었는데 갑자기 모두들 어수선하게 땅바닥에 자빠져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서 발버둥만 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재민들은 아무도 넘어진 이가 없이 잘 오갔습니다.”

주 현령이 걸어가 살펴보니 쓰러진 이들이 죄다 하릴없이 놀고 다니는 잘 사는 집안의 자제들인지 즉시 상황을 짐작하고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이재민을 구휼하는 일은 크나큰 음덕을 쌓는 일이거늘, 너희 같이 고약한 젊은 것들이 남의 집안 식솔들을 엿보려 하니 당연히 귀신들도 용납할 수 없어서 암중에 벌을 내린 게지! 어서 월대를 향해 절을 올려 잘못을 회개해라. 그러면 몸을 움직일 수 있을 게야.”

이것은 이들이 요사한 소문을 퍼뜨릴까 염려한 주 현령이 귀신을 빌려 설교한 것이었지요. 어쨌든 현령의 분부를 들은 사람들 가운데 태반이 월대를 향해 큰절을 올렸다. 그러자 무릎이 풀려서 일어날 수는 있었지만, 여전히 다리가 뻣뻣이 굳어서 걸을 수가 없었다. 주 현령이 다시 절을 올리려 하지 않는 이들을 향해 호통을 쳤다.

“이런 못난 놈들 같으니! 아직도 구해 주십사 간청하지 않다니, 죽고 싶은 게냐!”

그제야 그들은 일제히 고개를 조아려 큰절을 올리니 겨우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개중에 입 속으로 욕설을 중얼거리던 몇몇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아이고! 다신 안 그러겠습니다.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그 모습을 본 주 현령도 속으로 기이한 일이라고 찬탄했다. 결국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더 이상 구경하러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멀쩡히 길을 가던 사람들도 모두 멀찌감치 우회해서 지나갔다.

열흘 사이에 구휼이 모두 끝나서 정산을 해 보니 은으로 5만 9천 냥 남짓 소요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 다음 거둬들인 수표를 현청에 반환했다. 주 현령은 구휼 내역을 적은 책자를 상부에 보고하면서, 상을 내려서 선행을 장려해 달라고 청했다. 포정사에서는 부(府)에 현판을 내리라고 지시했고, 부에서는 다시 현청에서 현판을 제작하고 당 부인의 직함을 새긴 깃발을 내걸게 했다. 주 현령은 책상을 치며 무척 놀라워했다.

“조정에서 구휼한다 해도 상평창(常平倉)의 곡식을 나눠주는 정도에 지나지 않지. 하지만 그거야 원래 백성들이 쌓아 놓은 것으로 백성들을 구휼하는 것일 뿐이니, 나라의 창고를 열어서 재난을 구휼하는 것과는 비할 수 없지. 당씨 가문도 그다지 재산이 많지 않고 당 부인도 한낱 과부에 지나지 않는데 이처럼 백성을 불쌍히 여기다니, 참으로 성현의 마음 지닌 분이로구나. 이러니 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지 않은가? 그런데 돌고 돌아서 결국 나더러 편액이나 주라고? 이 부인이 나한테 편액이나 얻자고 이렇게 수만금을 써서 구휼했겠냐 이 말이야! 쳇! 저번에 세 차례 재난에 대해 보고한 것이 모두 반려되었을 때 진즉 알아봤지. 지금 구체적인 내용을 적어 상을 내려 달라 청하면 조정에서 틀림없이 지방관들이 재난에 대한 보고를 기피하고 또 봉록을 털어 구휼하려 하지 않아서 이런 일이 생겼다고 질책할 테니, 자기들로서는 그 죄를 감당할 수 없겠지. 쯧, 이게 벼슬아치의 양심상 그냥 넘어갈 일이란 말이냐! 백성들의 재물을 죄다 갈취하고 토지의 껍질까지 죄다 벗겨 먹었으면서도 이제 백성들에게 기근이 들었는데도 굶어 죽는 것은 앉아서 구경만 하면서 구제해 주지 않다니! 훌륭한 제왕이 정치에 힘을 쏟는 시대에 아직 이런 탐관오리들이 있을 줄이야. 참으로 가슴 아프고 분개할 일이로구나!”

그는 한참 동안 말없이 앉아 있다가 다시 중얼거렸다.

“어차피 공문이 내려왔는데 편액을 보내지 않으면 상부에서 지시를 무시하고 태만했다고 질책할 테고 백성들도 내가 당 부인을 소홀히 대한다고 여기겠지. 하지만 경솔하게 보내면 당 부인도 탐관오리가 보낸 편액이라고 모욕으로 여길 게 분명해.”

이에 그는 명함을 들려서 사람을 보내 상황을 설명하고 당 부인의 뜻을 물었다. 월군은 심부름꾼을 불러 사연을 물어보고 이렇게 말했다.

“재난을 구휼한 돈은 원래 선친께서 유산으로 남기신 것이다. 본가에서는 지금 현녀도원을 짓고 있는데 조만간 완공될 것이다. 이 안에 선친의 신주를 모실 텐데, 기왕에 내린 편액이 있다면 신주 앞에 걸어도 괜찮을 것이다.”

심부름꾼이 돌아가서 주 현령에게 보고했는데, 갑자기 부(府)에서 보낸 심부름꾼이 북을 울려 통지하면서 공무가 있어서 만나고 싶다고 했다. 주 현령이 후당(後堂)으로 불러들이자 심부름꾼이 소매 속에서 지부(知府)의 명함을 꺼내어 바치며 말했다.

“나리, 즉시 성(省)으로 오시랍니다.”

“무슨 일로 부르는지 아시오?”

“자세한 이유는 저도 모릅니다.”

주 현령은 어쩔 수 없이 서둘러 부 관아로 달려갔다. 도착한 날에는 이미 날이 저물었는데, 태수(太守)가 즉시 후당으로 청해서 간단히 술잔을 기울이게 되었다. 잠시 상투적인 인사를 나누고 나자 태수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이제 은퇴할 생각이오. 그런데 한 가지 자잘한 일이 있어서 주 현령의 명망을 빌려 도움을 청할까 하오. 몸을 상하거나 하는 일은 아니니 염려 마시오.”

주 현령이 가볍게 허리를 숙여 경의를 표하며 말했다.

“감히 분부를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내 모친이 곧 팔순이 되시는데, 내겐 형제도 드물고 아내도 없어서 모친을 모시기에 너무 외롭구려, 듣자하니 그 지역에 임 아무개라는 과부가 상당히 현숙하다고 명성이 자자하던데, 그 사람을 계실(繼室)로 들였으면 하오. 이렇게 하면 본인이 다스리는 지역의 백성을 처첩으로 들였다는 비난도 피할 수 있지 않겠소? 미안하지만 현령께서 직접 나서서 일을 추진해 주시면 평생의 영광으로 여기겠소!”

주 현령은 본래 말도 어눌하지만 또 너무 화가 치밀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한참 말없이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어르신께서는 휘하 백성을 처첩으로 삼지 않는 셈이 되겠지만, 현령이 백성의 중매쟁이 노릇을 하는 것도 관료의 상도(常道)에 오점을 남기는 일인 것 같아 따르기 어렵겠습니다.”

태수는 대답이 무척 늦어서 이미 기분이 나빴는데 또 무슨 ‘관료의 상도’에 누가 되느니 어쩌니 하는 것은 분명히 자신을 풍자하는 말인지라 벌컥 화를 낼 뻔했다. 하지만 주 현령을 제외하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지라 화를 참으며 말했다.

“현령께선 어려울 거라 생각하시는구려. 그 사람의 전 남편은 그저 괜찮은 집안에서 태어난 놈팡이에 지나지 않았소. 하지만 나는 지금 어엿한 벼슬살이를 하는 몸이니 설령 첩이라 한들 기꺼이 따를 텐데, 하물며 정실로 들이겠다는 게 아니오! 현령께서 ‘관료의 상도’를 핑계로 거절하시는데, 설마 내가 그걸 모르겠소?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황제도 신민(臣民)의 딸을 후비(后妃)로 삼아서는 안 되고 아울러 궁녀를 선발해서도 안 되지 않겠소! 옛말에 ‘법률은 큰 원칙에 맞게 세우고 예절은 인간의 정리에 따라야 하며, 임시방편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성인도 금지하지 않았다.[津設大法, 禮順人情, 事可從權, 聖人不廢]’라고 하지 않았소? 잘 생각해 보시구려. 내가 무슨 잘못된 일에 연루시켜서 현령께도 누가 미치게 만들자는 게 아니지 않소?”

주 현령은 울분이 차서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제가 보기에 이 부인은 평소 절조를 지키고 있으니 말주변 좋은 소진(蘇秦)이나 장의(張儀)가 설득한다 해도 재가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일이 성사되지 못하고 소문이 퍼지면 오히려 얼마나 불미스러운 결과가 되겠습니까!”

태수는 주 현령이 절대 일을 맡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화를 내며 사나운 목소리로 말했다.

“겨우 이런 일조차 완강히 거절하다니! 예로부터 수절하는 과부가 밖으로 노출된 누대에 나와 앉아 사람들이 구경하며 우스갯소리를 하게 만든 경우가 어디 있었소? 나는 서른여섯 개 주(州)와 현(縣)에 대한 생사여탈(生死與奪)의 권한을 쥐고 있소. 어디, 두고 보시오. 내가 그 사람과 결혼할 수 있는지 없는지, 그 사람이 버틸 수 있는지 없는지 두고 보란 말이오! 이 일은 그대가 격발시킨 셈인데, 이 나후성(羅睺星)이 마음대로 해 버리겠소!”

주 현령이 잠시 생각해 보니 태수가 사람을 시켜 납치하려는 것 같은데, 당 부인에게 틀림없이 무슨 방법이 있을 테니 일단 응하는 척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이에 그가 공손히 허리를 숙이고 말했다.

“제가 감히 문제를 일으키려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모자라서 상관(上官)을 욕되게 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을 따름입니다.”

“허락하고 말고는 그 사람한테 달린 것이고, 얘기를 하고 말고는 그대에게 달린 것이오. 일단 보고를 기다리겠지만, 내 나름대로 방법이 있소.”

주 현령은 “예! 예!” 하고 물러났다. 그리고 포대현 관서로 돌아오자 화가 치밀어 투덜거렸다.

“이렇게 탐욕스럽고 음란한 군수(郡守)라니! 하늘은 어찌 저런 놈을 응징하지 않고 백성을 괴롭히도록 내버려둔단 말인가!”

그는 저녁도 먹지 않고 잠자리에 들어 버렸다. 그의 부인 포씨(包氏)은 상당히 지혜로운 여자였기에 무슨 문제가 있음을 눈치 챘다.

“여보, 무슨 걱정거리가 있어요? 우리 청렴하신 현령께서 어찌 저 탐욕스럽고 추악한 지부(知府)를 무서워하실까?”

“누가 그런 자를 무서워한다고 그러시오? 다만 너무 가소로운 일이 있어서 화가 날 수밖에 없으니 문제지!”

그러면서 태수가 당 부인을 계실로 들이려 한다는 얘기를 자세히 들려주었다. 그러자 포 부인이 말했다.

“어렵지도 않은 문제네요. 저한테 좋은 방법이 있어요. 양쪽 가문 모두 화내는 일이 없을 테니, 당신은 더욱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당신이 헤아려 정한 것은 이제껏 나보다 훌륭했으니 기대가 되오. 그래 어떤 방법이 있다는 말씀이오?”

“백성을 구휼한 일에 대해 당신이 명함을 들고 가서 감사한다면 겉치레처럼 보일 테니, 제가 직접 가서 공경하는 마음을 보여주겠어요. 그리고 기회를 봐서 얘기를 건네 보겠어요. 그쪽에서 허락한다면 지부에게 중매쟁이를 찾아보라고 하고 당신은 아무 대가 없이 빠지고, 허락하지 않으면 그 증거로 수절을 기키겠다는 시를 한 수 지어 달라고 하겠어요. 이러면 당신도 책임이 없어지지요. 제가 그래도 제법 눈썰미가 있으니 일단 만나 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거예요. 어떻게 생각하셔요?”

“아주 절묘한 방법이구려!”

이튿날 아침 포 부인은 세수하고 치장한 다음 두 명의 어린 하녀를 데리고 나서면서, 한 명을 미리 보내 당씨 저택의 문간에서 안쪽에 전갈을 넣도록 했다. 월군이 맞이하러 나오니 포 부인은 벌써 중문(中門)까지 걸어 들어와 있었다. 포 부인은 그야말로 청렴한 관리의 아내다운 모습이었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요?

화장은 우아하고 담백하여
화려한 연지 좋아하지 않고
의복은 깔끔한데
모두가 소박한 베옷이로구나.
몸가짐에는 긍지와 자부심이 넘쳐
규중 여자의 요염함은 전혀 없고
언사는 민첩하여
재녀(才女)들 가운데 으뜸을 다투겠구나.
나이는 거의 중년인데
고명부인(誥命夫人)에 봉해져서 백성을 평안하게 해 주겠구나!
梳粧雅淡, 不尙鉛華.
衣服鮮明, 全然布素.
體態矜莊, 抹殺閨中艷冶.
言詞敏給, 奪將林下聲名.
問年幾希半老, 封誥將次安人.

월군이 하얀 양탄자를 깔아 놓은 중당(中堂)으로 맞이하여 서로 인사를 나누고 나자 포 부인이 말했다.

“오래 전부터 대고(大家)를 뵙고 제자가 되고 싶었는데, 오늘 마침 네 남편이 저더러 찾아 뵙고 감사 인사를 올리라고 하셔서 평소 바람을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디 지극히 선한 길을 알려주시면 한없이 감복하겠습니다.”

“저는 여자의 몸에 안주하지 않고 매번 예법의 범주를 벗어나니 도학(道學)에서 내침을 당하지 않을까 스스로 염려하고 있는데, 부인께서는 어찌 이리 외람되게 칭찬하시는지요?”

“저는 부인께서 평상적인 것을 초월하시기에 더욱 감동했습니다. 《예기》 〈내칙(內則)〉 같은 경우 부녀자의 몸가짐을 강조하여 중‧하급의 인재로 구속할 뿐이니, 그게 어찌 우리 같은 사람을 위해 설정된 규범이겠습니까? 옛날에 이른바 ‘낭자군(娘子軍)’이니 ‘부인진(夫人陣)’ 같은 것들이 역사에 아름다운 명성을 빛내고 있으니, 어찌 그들을 단순히 부녀자로만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예로부터 성현께서 드리우신 가르침에서 여자는 규방 문턱을 나서지 않는 것이 부덕(婦德)을 지키는 것이라고 한 것은 그들의 식견이 남자보다 못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화목란(花木蘭)의 경우는 여자의 몸으로 열두 해 동안 종군했지만,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여전히 현숙한 처녀였습니다. 그러니 여자의 덕이 올곧거나 함부로 한도를 넘어서는 것은 타고난 천성에 달린 것이지 외부 환경에 의해 흔들리거나 지조를 빼앗기는 것이 아닙니다. 예로부터 음란한 여자는 항상 내실(內室)에서 나오지 않았습니까? 규율이 엄격한 궁중에서 보모가 보호해도 다잡아 통제할 수 없는데, 하물며 남도 낮고 창도 허술한 상황에서 그 음란한 마음을 금지시키려 한다면 소홀함이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제가 보기에 부인의 행실은 여자 가운데 성현이요 남자 가운데 호걸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쥐새끼 한 마리가 분수에 넘치게 눈독을 들이고 있으니 참으로 가소롭습니다!”

월군은 뭔가 내막이 있는 말이라고 짐작하고 즉시 술상을 차리고 유모와 만다니를 모셔오라고 분부했다. 포 부인은 두 사람을 보자마자 예사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채고 기필코 스승으로 모시려고 했다. 그러자 월군이 말했다.

“손님과 주인이 자리를 나누어 앉는 것은 고금을 관통하는 보편적인 대의(大義)인데, 하물며 귀한 손님을 어찌 홀대하겠습니까?”

포 부인은 재삼 겸양했지만 어쩔 수 없이 윗자리에 앉았다. 월군은 또 묘고를 불러서 인사를 시켰다. 하녀들이 술병을 들고 술을 따랐고, 차려진 과일과 고기 안주들은 모두 포대현에서 나는 것들이 아닌데 무척 맛있었다. 포 부인 또한 뛰어난 인재라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 마음이 맞아서 가슴을 터놓고 마음껏 마셨다. 월군은 유연에게 부인의 시비들을 옆방으로 데려가 술을 대접하게 했다. 포 부인이 고개를 들고 하녀들에게 조금만 마시라고 분부하려는데, 뚱뚱하고 시커먼 하녀 하나가 눈앞에 떡 서 있었다. 포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호호, 이 사람은 딱 맹광(孟光)일세!”

그러자 노매가 말했다.

“맹광이라, 맹광! 나는 양홍에게 시집가지 않을 거예요!”

포 부인은 깜짝 놀랐다.

“강한 장수 아래 허약한 병사가 없다더니, 부인이야말로 여자 정현(鄭玄)이시군요!”

그러면서 다시 노매에게 말해다.

“내 얘기는 자네의 덕이 맹광 같다는 것이지 맹광처럼 못생겼다는 얘기는 아니니, 개의치 마시게.”

“못생긴 거야 사실이지만, 그래도 신선 세계의 개 노릇을 알 수 있거든요!”

월군이 폭소를 터뜨리며 포 부인에게 말했다.

“이 하녀는 시집가지 않겠다고 결심해서, 지금 벌써 서른 살입니다. 예전에 돌아가신 제 어머님이 글을 가르쳤고, 제가 공부할 때에도 옆에서 귀동냥을 해서 고금의 전고(典故)들을 대충 알고 있답니다. 그런데 오늘은 부인 앞에서 추태만 부리는군요.”

그러자 노매가 말했다.

“못난 얼굴을 보이지 않으면 어떻게 부인께 술을 권할 수 있겠어요?”

포 부인이 한 잔을 따라 몸소 노매에게 건네며 말했다.

“오히려 내가 한 잔 줘야 되겠구먼.”

노매가 받아서 단숨에 비우고 나서, 두 개의 큰 잔을 포 부인 앞에 갖다 놓고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부인께서는 쌍잔을 드셔야 합니다.”

포 부인은 노매가 시집을 가지 않은 사람이라서 쌍잔으로 놀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두 말끔히 비우고 말했다.

“자네의 높은 뜻을 이루도록 도와주고 싶어서 두 번째 잔은 권하지 않겠네.”

이에 월군이 자리에서 일어나 옥으로 만든 술잔에 몸소 술을 따라 부인에게 권했다.

“조금 전에 쥐새끼를 언급하셨는데, 좀 자세히 말씀해 주시지요.”

포 부인이 잔을 비우고 말했다.

“이 지역 태수는 우물 안의 개구리에 지나지 않으니 언급할 가치도 없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그자가 제 남편을 불러서 추잡한 소리를 지껄여 댔다지 뭡니까! 그래서 제 남편이 면전에서 몇 마디 쏘아붙이고 분기탱천해서 돌아왔는데, 아마도 그자가 권세를 이용해서 강제로 겁탈할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남은은 이 때문에 현령의 자리를 걸고 그자와 맞붙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곧 벼슬을 잃게 될 모야이라 저더러 부인을 뵙고 구휼해 주신 데에 감사 인사를 할 겸 이 소식을 알려서 미리 방비하시도록 했습니다. 남편은 강직한 성품이나 부인이 성스러운 여인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설령 하찮은 백성의 아낙이라 할지라도 기꺼이 이 벼슬을 내놓고 부인의 명예와 절조를 지켜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월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부군께 걱정하실 필요 없다고 하십시오, 다만 사흘 안에 태수에게 보고해야 도리에 맞겠지요. 혹시 무슨 문제가 생긴다 해도 모두 제가 감당하고, 절대 누를 끼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제 남편 생각은 다릅니다. 그자가 탐욕스럽고 악랄하게 백성을 괴롭히는지라 이 일을 빌미로 그자의 벼슬을 박탈해서 서른여섯 주와 현의 백성을 구제하려는 것이지요!”

“그럴 가치도 없습니다! 일단 차분히 소식을 기다려 주십시오.”

포 부인은 무척 기뻐했다. 그리고 날이 저물자 그녀가 월군과 두 선사에게 작별하고 현청으로 돌아간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한편 제남부의 지부는 이름이 나경(羅景)이라고 했는데, 탐욕스럽고 포악하여 ‘나후성(羅睺星)’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다. 팔 년 동안 태수 노릇을 하면서 서른여섯 주와 현의 백성들로부터 삼십만 냥이 넘는 금은을 사취하고 벌써 태반을 자기 고향으로 옮긴 상태였다. 부친은 아직 살아 계시고 모친은 먼저 세상을 떠났다. 아내도 이미 죽어서 계실을 하나 얻었는데, 음란하고 질투가 많고 사나워서 두 첩과 늘 다투었다. 그러다가 몇 달 전에는 나경과 대판 싸워서 결국 두 첩을 집으로 돌려보내 그로 하여금 홀아비 생활의 맛을 누리게 해 주었다. 이 때문에 그는 월군을 계실로 들이려 했으니 미모와 재산을 모두 탐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설령 만금을 주고 들인다 한들 결국 그 돈은 자기에게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또 현령이 나서서 중매를 서면 백성이 따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주 현령을 불러 놓고 거짓으로 군자인 척 말을 지어 내서 구슬렸던 것이다. 만약 고집스럽게 말을 듣지 않는다면 나경도 나름대로 악독한 계책이 있었다. 즉 제법 재간이 있는 하인 몇 명을 강도로 위장해 노략질하면서 재물은 물론 사람까지 쓸어 오도록 하는 것이었다. 다만 일단 주 현령의 보고를 받고 나서 행동에 옮길 작정이었다. 때는 건문(建文) 2년(1400) 9월 15일이었는데, 이날 나 태수는 관아의 의장(儀仗)을 갖추고 업무를 처리하는 자리에 올랐다. 당의 위아래에는 죄인을 다스리고 정숙을 지키는 병졸들이 두 줄로 늘어서 있었으니, 그 위엄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다음과 같은 노래[詞]가 있다.

오사모 쓰고
하얀 밑창의 검은 가죽장화 신었다.
도포에는 구름과 기러기 날고
허리띠에는 금실로 꽃무늬 장식했다.
긴 수염 늘어뜨리고
허연 얼굴 살짝 오목하다.
비스듬히 꽂힌 굵은 두 눈썹
불룩 튀어나와 사나운 두 눈
돈 있는 이 보면 기뻐지지만
무일푼을 보면 발작을 하지.
아역들은 일제히 큰 나리라고 부르지만
백성들은 속으로 진짜 강도라고 욕하지.
頭帶烏紗帽, 脚穿粉底皂.
袍是雲雁飛, 帶是花金造.
鬚長略似鬍, 面白微加凹.
斜插兩眉粗, 突兀雙睛暴.
有錢便生歡, 無錢便發躁.
衙役齊呼太老爺, 百姓暗罵眞強盜.

공무를 모두 처리한 나경이 퇴청하려 할 때 갑자기 한 줄기 향기로운 바람이 난각(暖閣) 안으로 불어 들어오더니, 공중에서 호통소리가 들렸다.

“나경, 속히 태음성후(太陰聖后)의 왕림을 영접하라!”

나경이 고개를 들고 보니 계석비(戒石碑)가 들어 있는 정자 위에 세 덩어리의 오색구름이 머물러 있고, 그 안에 연꽃을 받침으로 한 세 개의 연화대(蓮花臺)가 모여 있었다. 중앙에는 관음보살에 비견될 미녀가 앉아 있고 동쪽에는 비구니가, 서쪽에는 여도사가 앉아 있었으며, 황금갑옷을 입은 네 명의 신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었다. 아역들은 모두 놀라 진즉부터 무릎을 꿇고 있었다. 나경은 너무 놀라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어쩔 수 없이 엎드렸다.

“선녀님, 무슨 가르침을 내리려고 강림하셨사옵니까?”

그러자 황금갑옷을 입은 신들 가운데 하나가 호통을 쳤다.

“성후님이 바로 청포현의 당 부인이시다. 그런데 탐욕스럽고 추악한 태수 네놈이 못된 마음을 품었으니, 그 죄는 만 번을 죽어 마땅하다!”

나경은 다급해서 도망치려 했지만 두 무릎이 땅바닥에 뿌리가 박힌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역들은 모두 멍하니 그저 고개만 조아릴 뿐이었다. 그때 만다니가 말했다.

“당장 저놈을 거세해 버려라!”

그러자 나경이 갑자기 제 스스로 옷을 벗었는데, 내의 안쪽에서 붉은 피가 배어나왔다. 나경은 그대로 처마 아래 쓰러져 버렸다. 당시 아문 안의 모든 이들을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고 삼사십 명쯤 되는 나경의 하인들이 제각기 창칼과 활을 들고 달려 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길이가 몇 길쯤 되는 한 줄기 푸른 기운이 공당(公堂)으로 날아와 춤을 추듯이 어지럽게 맴돌았다. 그 빛이 창칼을 휘감으면 창칼이 부러졌고, 활과 화살을 휘감으면 모조리 가루로 부서져 버렸다. 사람들은 모두 발에 못이 박힌 듯 반걸음도 떼지 못했다. 그때 다시 고함소리가 들렸다.

“아역들은 들어라. 나경은 만백성을 착취하여 중대한 죄악을 저질렀으니, 본래 천참만륙을 내서 죽여야 마땅하지만 성후께서 살계(殺戒)를 열지 않으셨기에 잠시 목숨을 남겨둔다.”

그러자 월군이 말했다.

“나경이 쌓아 둔 네 상자의 금은보화는 모두 제남 백성들의 고혈(膏血)이니 신장들은 속히 그것들을 상청관(上淸觀)으로 옮겨 의지할 데 없이 외롭고 시름겨운 백성들에게 나눠주도록 하라!”

이윽고 세 개의 연화대가 천천히 공중을 날아가더니 옥황전(玉皇殿)에 이르러 공중에서 뜬 채로 참배(參拜)한 후 모두 서쪽을 향해 돌아앉았다. 백성들은 처음에 부(府)의 관청 앞을 가득 메우고 있었는데, 금은을 나눠주지 않을 때에는 모두들 살아 있는 보살을 구경하려 했다. 그러다가 이제 관청 부서에서 네 개의 상자가 공중을 날아 옮겨지면서 백성들에게 나눠줄 거라는 얘기가 들리자 더 많은 이들이 모여들어 상자를 따라 달려갔다. 모자가 떨어지고 신이 벗겨지고 서로 머리를 부딪치고 하는 북새통이 벌어졌지만 다들 목숨조차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간이 좁아서 그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모인 것을 본 만다니가 소매에서 쌀을 한 줌 꺼내어 공중에 뿌리자, 그것들이 모두 신병(神兵)으로 변했다. 상자를 하나 열자 작은 은 덩어리들이 가득 들어 있었는데, 신병들이 각기 하나씩 들고 가난한 백성을 골라 나눠주면서, 은을 얻은 사람은 모두 물러나고 얻지 못한 사람들만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렇게 시끌벅적한 상황에서 관청의 문무 관료들은 마음속으로는 두려웠지만 어쩔 수 없이 모두 상청관으로 왔다. 그런데 길가에 늘어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백성들이 모두 칭송하면서 하늘에서 내려오신 불모(佛母)께서 우리 백성을 위해 강도를 없앴다고 칭송하면서 절을 올리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관료들은 변란이 일어날까 두려워서 그것을 금지시키지도 못했다. 개중에 어느 천총(千總)이 도사(都司)에게 보고했다.

“조금 전에 관청 안에 있던 하인들이 창칼을 들고 나섰지만 죄다 부러져 버렸는데, 무슨 술법을 쓴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속히 성의 누각으로 가서 홍의화포(紅衣火炮)를 장착하고 수백 명의 조창수(鳥槍手)를 동원해 돌아가는 길을 막는 것이 좋겠습니다. 성으로 다가오면 총을 쏘고, 도망치면 포를 쏘는 겁니다.”

“아주 좋은 생각일세!”

그리고 번사(藩司)와 얼사(臬司)에 통지하여 모든 준비를 마친 후 대기하라고 했다. 또 돼지와 양, 개의 피와 오줌, 똥 등의 더러운 것들도 준비해 놓으라고 지시했다.

그때 상자 하나에 들어 있던 은을 모두 나눠주어 가난한 백성들이 모두 흡족해 하자, 월군은 신장들에게 그 세 개의 상자를 포대현으로 가져가게 하고, 곧 두 선사와 함께 옥황궁을 향해 고개 숙여 절을 올린 후 오색구름을 몰고 돌아갔다. 그러다가 성 위에 조창수들과 대포가 늘어선 것을 본 만다니가 회오리바람을 일으키자 휭휭 부는 바람이 건물을 무너뜨리고 나무를 뽑아 기와와 모래가 충을 추듯 날아다니며 폭우처럼 쏟아졌다. 이 바라에 별사들은 모두 머리가 터지고 얼굴을 다친 채 눈물을 줄줄 흘렸다. 들고 있던 조창은 공중에서 낚아챈 듯 한 자루도 남지 않았고, 열 문의 대포도 모두 성 박에 팽개쳐져 버렸다.

적루(敵樓)에 숨어서 이런 신통력을 목격한 문무 관료들은 모두들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런데 군사업무를 담당하는 곳에서 파견된 관리가 찾아왔는데, 태수의 직인을 회수하러 온 것이었다.

“지부(知府)가 죽지는 않았지만 양물이 잘려 나가는 바람에 수염과 눈썹이 떨어져서 내일 병을 이유로 사직을 청하는 문서를 제출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신인지 요괴가 이런 기이한 술법을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관청 안의 하인들은 지금에야 겨우 발걸음을 옮길 수 있게 되었는데, 모두들 두 발이 땅 위에 갇힌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나 지부도 조금 전에야 움직일 수 있게 되었기에 제가 이렇게 늦게 온 것입니다.”

포정사(布政使)는 큰 변고가 생겼다고 판단하고 각 관료들과 상의한 후 상부에 보고하려 했다. 그러자 안찰사(按察使)가 말했다.

“이 일은 지부가 자초한 것입니다. 지금 잃은 것은 그 사람의 개인적인 재물이지 공금이 아닙니다. 그대로 상부에 보고하면 탐관오리를 제대로 감찰하지 못하고 요괴도 잡지 못했다고 여기고 이곳의 문무 관료들을 모두 처벌하려 할 겁니다. 차라리 사교(邪敎)를 금지하고 각 지방의 요사한 도적을 색출하면서 아울러 각 주와 현의 직인이 찍힌 미결사안들을 저 사람 책임으로 떠미는 게 낫습니다.”

그러자 여러 관료들도 모두 좋은 생각이라고 칭송하며 파견 나온 관리에게 가서 지부의 직인을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나경은 병을 핑계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동료들에게 창피까지 당하고 나자 혼자 짐을 꾸려 밤중에 고향으로 떠났으니, 그야말로 이런 격이었다.

미인쯤이야 쉽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건만
뜻밖에 양물이 갑자기 사라질 줄이야!
只道美人容易得, 誰知陽物忽然亡.

제남부에서 일어난 이 기이한 일은 전단지를 통해 각 주와 현에까지 알려졌다. 주 현령은 그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가 다시 무척 기뻐하며 황급히 안채로 들어가 부인에게 얘기했다.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이 처치 방법은 정말 오묘하군요! 저번에 제가 살아 계신 세 분의 신선들과 술을 마셨으니 정말 행운이었어요. 보아하니 당신이 청렴하고 공정한 관리라서 그분들이 존중해 주셨나 보군요.”

주 현령은 공바(工房)에 분부하여 편액에는 자신의 이름만 넣어서 제작하여 즉시 보내라고 했다. 당시 월군은 현녀도원에 구천현녀의 신위(神位)를 마련하고 춘예와 홍향, 취운, 추도 등의 하녀들에게 모두 여도사가 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각기 은 삼백 냥을 주어 향을 사르는 일을 담당하게 했다. 그때 갑자기 주 현령이 편액을 걸기 위해 몸소 찾아왔다는 전갈이 들어왔다. 월군은 대문에 나가 한사코 사양하며 그를 돌려보내고, ‘인민유애(仁民遺愛)’라는 글자가 새겨진 현판을 임 도령의 신주 앞에 걸게 했다. 그날 밤 월군은 구천현녀의 신위 앞에 앉아 산동(山東)의 각 지역을 신유(神遊)하며 창업의 기반을 일으킬 만한 장소를 물색했다. 그러다가 어느 지역에 이르게 되었으니, 이로 인해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된다.

요대의 시녀들 다시 상봉하고
제수의 영웅들 다시 맹약하다.
瑤臺侍女重相會, 濟水英雄再定盟.

자세한 내용은 다음 회를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