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松)/ [宋] 여본중(呂本中)
바람과 서리 탓에
만목 시들어
추운 계절 오로지
노송 외롭네
진시황은 맑고 높은
지조 모르고
어거지로 그대를
대부 삼았네
一依風霜萬木枯, 歲寒惟見老松孤. 秦皇不識淸高操, 強欲煩君作大夫.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 하리라” 겨울은 소나무의 계절이다. 소나무는 사시사철 푸른데 왜 겨울을 소나무의 계절이라 하는가? 온갖 나무가 다 시들어도 소나무만은 늘 푸른 빛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논어』에도 나온다. “계절이 추워진 연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사실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 역사의 혼란기 때마다 목숨까지 바쳐 지조를 이룬 사람과 사리사욕을 위해 변절을 일삼은 자가 서로 다른 삶을 살았다. 역사와 사회의 정기는 당연히 세한심(歲寒心)에 의해 지탱된다. 속리산에 갈 때마다 정이품송에 얽힌 전설에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았다. 어린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의 가마가 그 밑을 지날 때 세한심을 지닌 소나무가 과연 가지를 들어주었을까? 오히려 가지를 더욱 늘어뜨려 가마 앞을 강경하게 가로막지 않았을까? 중국 역사에 나오는 진시황과 소나무 이야기도 이와 유사하다. 정이품송보다 훨씬 이른 시기의 일화다. 진시황이 태산에 올라 천제(天祭)를 올린 후 하산하다가 폭우를 만났다. 갑자기 쏟아진 비를 피하기 위해 진시황은 길가에 서 있는 큰 소나무 밑으로 들어갔다. 대강 비를 피한 진시황은 그 소나무가 고마워서 오대부(五大夫) 관작을 수여했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심산유곡에서 사시사철 청청한 빛을 자랑하는 소나무에게 세속의 관직이 가당키나 한 일일까? 게다가 분서갱유를 자행한 진시황이 말이다. 더 웃기는 것은 그 오대부송(五大夫松)이 죽자 ‘오대부’가 관직 명칭인지 모른 후세 사람들이 소나무 다섯 그루를 심어 그 일을 기념했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태산 중천문으로 올라가는 길가에 그 중 두 그루가 살아 있다. 기후 온난화가 확산하면서 주위의 소나무들이 사라지는 추세다. 어쩌면 온난화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더욱 근본적인 것은 올바름을 비웃고 천시하는 진정 천박한 사회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가 만연한 천지 간에 어떻게 세한심을 가진 소나무가 자랄 수 있을까? 뿌리에서부터 철저하게 말라 죽는 것이 당연하다.
한시, 계절의 노래 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