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古城

샤오쳰蕭乾(1910∼1999년)
원래 이름이 빙쳰秉乾 또는 빙쳰炳乾으로 베이징 태생의 팔기 몽골인이다. 기자이자 문학가, 번역가로 활동했다. 베이징 푸런대학辅仁大学과 옌징대학燕京大学, 영국의 케임브리지대학 등에서 공부하고 중국작가협회의 이사와 고문을 역임했다. 1931년에서 1935년 사이에 미국인 에드가 스노우 등과 『중국간보中国简报』, 『살아있는 중국』 등의 간행물을 엮어낸 바 있다. 1949년 이후에는 주로 문학과 번역 작업에 종사했다.

초겨울의 하늘은 잿빛으로 낮게 드리운 가운데 그야말로 사람이 숨조차 못 쉬게 짓눌러댔다. 그저께 내린 눈은 한편으로는 주민들에게 약간의 청명함을 가져다주긴 했지만, 눈 온 뒤의 정상은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차가운 북풍이 추녀와 기와에 붙어 있는 눈을 한꺼번에 공중으로 말아 올려 둥근 원을 그리며 춤을 추다가 제대로 갈 길을 찾아 길가는 사람들의 목덜미에 내리꽂힌다. 거리는 얄궂은 햇볕에 진흙탕으로 변하고 잔설 위에는 사람들 발자국 흔적이 아로새겨진다.

비행기가 익숙한 방향에서 날아왔다. 웅장한 울림소리에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흠칫 놀랐다. 그들 얼굴에는 각자 공포스러운 기억이 그려졌다. 자동차 바퀴자국에 기어들어가 진흙덩어리를 갖고 놀던 아이들도 손을 멈추고 하늘을 우러러 저 기괴한 잠자리를 바라보는 것이 짐짓 사태의 심각성을 의식하고 있는 듯했다. 잠자리가 나무 가지에 가려지자 그들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지저분한 놀음을 이어나갔다.

이것은 쇠로 만든 회색의 새였다. 이 고성古城에 대하여 완전히 낯선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정탐꾼이었다. 곧게 뻗은 날개를 펼치고, 오래 묵은 나뭇가지를 스쳐지나가고, 고요한 기와집을 스쳐지나가고, 왕실의 호수를 스쳐지나가고, 찬란한 유리기와를 빙 둘러 날고 날았다. 고성은 뚱뚱한 노인과 같이 움직일 수 없는 다리를 꼬고 앉아 눈을 부릅뜨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다.

성문의 낮고 어두운 구멍으로는 장사꾼들이 분주하게 지나가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멍한 눈을 뜨고 유일하게 받은 사회교육이라는 게 ‘나랏일은 논하지 말라’는 것인지라 그저 입을 꾹 닫고 있다. 다시 한 번 변란이 있어야 한다. 그들도 누구와 누가 올 건지를 알 수 없어서 아마 절인 채소를 많이 준비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리라. 아울러 손 가는 대로 집안의 부엌 신을 위해 선향線香 몇 가닥을 청하는 것을 잊지 않는데, 일가족의 평안을 지키기 위해서다.

햇빛이 성벽 귀퉁이의 눈을 녹이니 파괴된 흔적인 드러났다. 그것은 역사의 하사품이다! 역사는 그것을 건축한 위인을 낳은 동시에 그것을 파괴한 패자霸者 역시 보내주었다. 몇 차례의 변란 속에서 그것은 거주민들을 대신해 칼을 맞고, 포화를 맞았다. 면전에서 그것이 어떤 운명과 조우했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어찌 되었든 거주민들이 조수처럼 성안으로 밀려들어갔다. 저것은 아주 훌륭한 기압계이고, 또 다른 정복자 역시 이 고성의 모든 것을 엿보고 있다.

고성 자체는 여전히 뚱뚱한 노인 같이 고개를 숙이고 가늘게 숨을 쉬며 눈물을 글썽이며 슬하의 저 무고한 한 무리 아이들을 지키고 있다.

부기附記) 9·18사건 1931년 9월 18일 일본 제국주의가 대륙 침략의 교두보로 삼기 위해 만주를 침략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이 일어난 다음해에 답답하고 우울한 가운데 당시의 베이징을 소묘한 것이다.

『소수엽小樹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