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부지王夫之의 독통감론讀通鑑論 – 권2 한고제漢高帝 3

한고제漢高帝

7. 유방, 진나라를 친 오예(吳芮)와 무저(無諸)를 제일 먼저 봉해주다

유방이 처음 황제에 즉위하여 자제와 공신(功臣)들을 아직 봉하지 않았는데 먼저 장사왕(長沙王) 오예(吳芮)와 민월왕(閩粵王) 무저(無諸)를 봉했으니, 이를 일컬어 ‘큰 책략[大略]’이라고 한다. 그 둘은 항우를 멸망시킨 데에 공을 세운 이들이 아니라 진나라를 무너뜨린 공로를 인정하여 봉해준 것이다. 천하의 공로를 공로로 인정하고 자신을 위한 공을 먼저 내세우지 않은 것을 일컬어 ‘크게 공평한[大公]’ 처사라고 한다. 초나라와 한나라가 북방에서 다투었어도 남방에는 아무 일이 없었는데, 오랫동안 평안하면 전란이 쉽게 일어나기 때문에 왕에 봉해서 진무(鎭撫)했으니, 이를 일컬어 “전란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통제한” 것이라고 한다. 항우가 천하를 불공정하게 다스린 죄를 지목해 토벌하면서, 그 길과는 반대로 드러나지 않은 업적을 맨 먼저 기록해 상을 내렸으니, 이를 일컬어 “물에 빠지지 않고 도중에 도움을 얻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것들은 속으로 결단하는 마음이니 장량(張良)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거늘 하물며 소하(蕭何)나 진평(陳平) 같은 작은 지혜를 가진 이들임에랴! 천하를 잘 다스리려면 사람들이 염려하지 않는 일을 행하며, 멀리 돌아가는 것 같지만 실은 사람들의 마음을 따르는데, 이를 일컬어 ‘헤아리지 못함[不測]’이라고 한다.

8. 병사를 농촌에서 뽑으면 쉽게 해산할 수 있다

진나라와 항우가 멸망하자 병사들이 해산하여 귀가했는데 어째서 그것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고 또 돌아가서도 바로 안정될 수 있었는가? 옛날에는 병사를 모두 농촌에서 뽑아서 집이 없는 이가 없었으니, 해산하면 바로 귀가했던 것이다. 한나라는 파촉(巴蜀)과 삼진(三秦)의 병졸을 일으키고 구강(九江)과 제(齊), 조(趙)의 군대를 활용하면서 그 지역에서 전투를 벌여서 그곳 백성들을 괴롭히지 않아서 민간의 원망을 듣지 않았으므로 병사들이 귀가하자 곧 편안히 지낼 수 있었다. 후세에는 직업이 없는 백성을 소집하거나 모집하니 돌아가려 해도 돌아갈 곳이 없어서 전쟁이 끝나도 병사들을 돌려보내기가 곤란했다.

옛것을 잘 배우면 두루 통달하게 되어서 잘 활용할 수 있으니, 한나라에서 “산간이나 못가에 모여 살면서 이름과 인원수를 기록하지 않은 백성은 옛날의 직위 논밭, 집을 회복시켜 주고 잘 가르쳐서 구휼해 주도록” 하는 조서를 내린 것은 후세에서 본받을 만한 일이었다. 백성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원수처럼 죽이는 일을 금지하고, 벼슬과 논밭, 집이 없으면 남은 땅을 주고, 요역(徭役)을 관대하게 하면서 매달 봉록[稍食]을 받는 서졸(胥卒)이 되라고 명령한다. 이렇게 해서 남은 병졸을 해산하면서 잘 계획을 세워 편히 살도록 해 준다면 어찌 생업을 이을 기술이 없다고 걱정하겠는가? 유방은 천하를 통일하자마자 일찌감치 그들이 살 곳을 마련해 주었다. 나라는 낭비하지 않고 농민은 빈곤하지 않으며 병졸은 돌아갈 곳이 있다. 흐르는 물의 원천에서 명령을 내리면서 조리가 딱 들어맞으니 그것을 ‘큰 책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는가!

9. 정공(丁公)을 죽인 것은 은혜를 잊은, 의롭지 못한 일이다

대의(大義)로 천하를 승복시키려면 정성을 기울이는 수밖에 없나니, 술수를 써서 성공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의로움을 받들면서 술수를 쓰면 의로움을 해치게 된다. 의로움이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지 천하에서 붙여주는 명분이 아니다. 마음에서 편히 여기지 않는데 차마 행하여 명분을 내세우면 천하는 의로움이란 마음을 거스르는 것으로 여기면서 도리에 온화하게 순응하지 않는다. 유방이 곤경에 처했을 때 어찌 정말로 정공(丁公)을 죽여도 된다고 여기고 기어이 죽였겠는가? 정공을 처형하던 날 또 어찌 정말로 정공이 자신을 도와준 정공의 은혜를 잊어버릴 수 있었겠는가? 신하가 군주를 배반한 것을 징치하려다가 먼저 자신을 살려준 은혜를 저버렸다. 그런데 그것이 천하의 공정하고 의로운 처사라고 요란하게 떠든다면 의로움을 빙자해 이익을 챙기는 것이요, 마음속에 측은지심이 없는 것이다.

무릇 의로움에는 천하의 대의와 자기 마음의 깊고 오묘한 도의[精義]가 있다. 깊고 오묘하다는 것[精]은 순전히 자기 양심의 희노(喜怒)와 은원(恩怨)을 덕위(德威)와 형상(刑賞)으로 삼되 이익이 섞여들지 않는 것이다. 천하 사람들이 불충한 신하는 반드시 처벌될 것임을 알고 처형될까 두려워하게 하면서 자기 마음이 은원에 대한 바람을 어기게 한다면 자신을 속여서 이익을 취하는 짓이다. 그렇다면 의로움이란 어짊을 해치는 도끼이자 이익을 챙기기 위한 미끼인가? 그래서 계포(季布)를 사면하여 등용한 것은 훌륭한 처사였으니, 신하에게 충성을 다하도록 권면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공 같은 인물은 버려두고 등용하지 않으면 되는데, 목을 베면 천하 사람들이 은혜를 잊도록 이끄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은혜는 잊을 수 있는데, 그에 뒤따라 처형하지 않는다면 군부(君父)의 지극한 은혜를 누가 잊을 수 있겠는가? 아! 이는 삼대(三代) 이래로 의로움을 명분으로 이익을 챙기면서 양심을 어기는, 너무나 간득(奸慝)한 행위이다.

10. 장량이 적송자를 따라간 것은 보신(保身)을 위해서가 아니다

장량이 적송자(赤松子)를 따라간 것에 대해 사마광(司馬光)은 이렇게 말했다.

“명철보신(明哲保身)을 장량이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장량의 뜻을 온전히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장량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가문에서는 대대로 한(韓)나라의 재상을 지냈으니 한나라의 복수를 하겠다.”

유방을 섬기자마자 초지일관 한나라를 위한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으니, 유방이 꺼리며 화를 냈을 게 분명하다. 그가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뜻을 밝힌 것은 너무나 분명했으며, 의심 많은 천자 앞에서 속내를 솔직히 드러냈다. 그러면서 또 이렇게 말했다.

“인간 세상의 일을 버리고 적송자를 따라가 노닐고 싶습니다.”

한(漢)나라의 벼슬을 기러기 깃털처럼 가볍게 여기며 거기에 뜻을 두지 않았다. 충신과 효자의 환한 대낮과 같은 마음은 영욕(榮辱)도 이해(利害)도 모르는데 어떻게 반드시 한신의 일족을 몰살하고 팽월을 죽여 젓갈을 담가야만 자신을 온전히 지킬 수 있다고 그들의 잘못을 미리 의심할 수 있었겠는가! 설령 그렇다고 해도 유방은 이미 그의 뜻이 올곧고 마음이 깨끗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태자에 대한 교육을 맡기고 시종일관 원망하거나 해치지 않았다.

아! 오직 그가 정성을 다했기 때문에 호랑이 꼬리를 밟고도 꺼림이 없었던 것이다. 불행히 의심을 받더라도 죽으면 그만이니, 마음속에 충심을 품고 겉으로 잠시 아첨할 수는 없다. 조조가 해치려 한다는 것을 서서(徐庶)는 유비가 알 걸로 생각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 문제를 상의한 적이 없지만 조조는 유비를 해치지 못했는데, 하물며 유방은 이성적으로 감지할 능력을 지니지 않았는가! 옛 군주를 잊지 못해서 감정을 숨기고 왜곡해서 재앙을 피하려 했다면 목숨을 잃고 명예가 치욕을 당한 사영운(謝靈運)과 같이 되었을 것이다. “본래 사방을 떠돌던 야인이었는데 충의로 군주를 감동시켰다.”라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