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부지王夫之의 독통감론讀通鑑論 – 권2 한고제漢高帝 2

한고제漢高帝

4. 한신, 공을 탐하여 제나라를 공격하다

천하에 해를 끼치고 스스로 해를 입는 이는 오직 공을 탐하는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역생(酈生)이 제나라에 유세하여 유방에게 귀의하니 한나라는 동북쪽에 대한 염려가 없어지고 항우는 오른팔의 도움이 끊어져 버렸다. 경포(鯨布)는 도적인데, 한번 초나라를 등지고 한나라를 따른 후로 끝내 배반하지 못했다. 하물며 꼿꼿한 전씨(田氏)들이 한나라에서 편안한 삶을 보장받고 지낼 수 있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한신은 일단 공을 탐하는 마음이 생기자마자 괴철(蒯徹)의 말에 따라 신속하게 공격하여 제나라를 점령했는데, 역생이 팽형(烹刑)을 당하고 역하(歷下)의 군대가 뿌린 피가 들판에 가득하니, 전씨는 결국 종실을 잃고 말았다. 이 얼마나 참혹한 일인가! 공을 탐하는 마음이 은밀히 생겨나면 이미 흐르는 핏물에 방패가 떠다니게 되는 것이다.

용저(龍且)도 이와 같았다. 고밀(高密)에 주둔하자 빈객이 벽을 단단히 쌓고 전투에 나서지 말고 제나라 왕에게 흩어진 백성을 불러 모아 한나라를 등지고 자신에게 귀의하게 하라고 설득했다. 그러면 멀리 원정을 나온 한나라 군대는 오래 머물지 못하고 무너져 흩어질 것이니, 그렇게 되면 삼군(三軍)을 보전하면서 초나라 세력을 다지고 제나라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어찌 함부로 전투를 벌이다가 죽게 되는 것보다 현명한 처사가 아닌가? 그런데 당시 용저는 이렇게 말했다.

“제나라를 구원하는데 싸우지 않고 투항시킨다면, 내가 무슨 공을 세웠다고 하겠는가?”

비록 나중의 승패는 달랐어도 용저 역시 한신과 같은 마음이었던 것이다. 한신은 자신의 독으로 제나라를 해쳐서 제나라 백성들이 몰살당하고 전씨의 왕조가 망하게 했고, 용저는 자신의 독으로 자신을 해쳐서 유수(濰水) 강물에서 초나라 군대가 참패를 당하는 바람에 전씨의 제나라도 구원하지 못했다. 다른 이의 종실과 사직, 백성의 생사존망이 걸린 큰일로도 남을 원망하고 해치는 마음의 골짝을 다 채우지 못하는지라, 결국 독침을 쏘니 벌과 전갈까지 죽게 되었다. 한신은 다행히 제나라를 격파하여 스스로 그곳 왕으로 봉해 달라고 청했으니, 미앙궁에서 처형될 운명이 이미 여기에서 잠복했다. 용저도 결국 유수에서 자신의 목숨을 잃었다. 그러므로 공을 탐하여 남을 해치면 스스로 자신의 목을 원수로 만들어 조속히 베어지게 만든다.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닌가! 어리석음을 고치지 못했을 따름이다.

이좌거(李左車)가 연(燕)나라를 투항하게 만들었으나 연나라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고, 수하(隨何)가 구강(九江)을 거둬들였어도 경포는 의심하지 않았다. 사람을 잘 쓰는 사람이라면 무슨 이로움이 있다고 공을 탐하는 사람을 등용하여 천하를 해치고 결점을 늘리겠는가! 하나라는 제나라를 차지했지만 이미 지쳐서 힘이 없어졌고, 초나라는 제나라를 구원하러 보낸 병력이 복멸(覆滅)하여 항우가 크게 두려워했다. 그러므로 남을 해치는 자를 내쫓지 않고 천하를 평정할 수 있는 이는 여태 없었다.

5. 유방은 한신의 군대를 거둬들일 수 있었다

한신이 위(魏)나라와 대(代)나라를 격파하자 유방은 그 병력을 거둬들였고, 그가 장이(張耳)와 함께 조나라를 격파하자 유방은 또 그 병력을 빼앗았는데, 한신은 왜 자기 세력을 이끌고 떠나 버리지 않고 순순히 명령에 따랐을까? 이야말로 남들이 따라잡을 수 없는 유방의 능력이다. 한신을 제압한 것은 기세지만 그것은 단순한 기세가 아니라 상대가 승복할 수밖에 없도록 잘 살펴서 주고 빼앗는 조치를 취했다. 그들 사이를 묶어 놓은 것은 정(情)이지만 그것은 단순한 정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신임하지도 두려워 당혹해하지도 않아서 한신으로 하여금 그 마음을 솔직히 드러내도록 만들었다. 자신의 행위를 모두 숨김 없이 한신이 알게 한 것이다. 한신은 자신이 끝내 유방의 신임을 얻을 것이기 때문에 병력을 가져가거나 남겨 두는 것은 아무 관계가 없음을 잘 알았기 때문에, 병력이 유방에게 가더라도 자기 휘하에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여겼다. 의혹도 원망도 없으니 인색하게 굴어서 원망을 살 이유가 없지 않은가? 만약 한신의 병력을 빼앗아 남에게 주었거나, 한신이 반란을 일으킬까 의심하여 그 병력을 빼앗아 그런 일을 미리 방비했다면, 항우가 벼슬 하나 주는 것을 아까워 한다는 이유로 그를 배신한 한신이 삼군(三軍)이라는 중요한 것을 두고 어찌 벼슬 하나를 주고 빼앗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여겼겠는가!

자신의 마음을 남이 알지 못하게 하면서 유연한 방법을 쓰면 실패하고 너무 강하게 쓰면 빨리 망하게 된다. 한쪽 말만 듣고 당파에 의지해 사람을 의심하면서 통제하지 못하면 그 사람에게 죽고, 통제할 수 있더라도 그 사람이 금방 배반하고 떠나 버린다. 무왕은 이렇게 말했다.

“내게는 열 명의 유능한 신하[亂臣]가 있으니 나와는 한마음 한뜻이다.”

열 사람이 무왕과 한마음이니, 무왕도 그들을 똑같이 여겼다.

6. 유방이 서둘러 한신의 병력을 빼앗다

유방이 항우를 격파하자마자 정도(定陶)로 돌아가서 즉시 한신의 병력을 빼앗으니, 천하가 이로부터 평안해졌다. 큰 적을 이미 평정했는데 한신이 또 무엇 하러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게 하겠는가? 그러니 내세울 명분이 없어서 명령을 거역하지 못했고, 병력을 빼앗긴 뒤에도 원망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늦추다가 사방에서 갑자기 예기치 못한 사태들이 생겨나면 명분이 생기게 되어서 한신의 병력을 빼앗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신속하고 안전하게 빼앗아 종실과 사직의 토대를 굳히고 원로와 자제들이 천지의 살기를 모으는 것을 종식시키고, 정벌의 권한을 한 명의 왕에게 제한하여 천명을 따르고 사람도 살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한신이 애초에 괴철의 말을 따르지 않고 한나라와 척을 졌다면 항우를 망하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각기 나라를 세운다는 것은 괴철이 광망하게 한신을 미혹하려는 계책이었을 따름이다. 옛날에 한나라는 이것으로 천하의 합종과 연횡을 유지했지만, 진나라에 병탄되면서도 구제받지 못해 나라가 망하고 말았다. 한신이 제나라에서 반란을 일으키니 장이(張耳)가 서쪽을 누르고 팽월(彭越)이 남쪽을 견제함으로써 솥의 다리가 먼저 부러져 부질없이 천하에 해를 끼치는 도적이 되고 말았다. 한신은 자신이 괴철의 말을 거절할 수 없음을 알고 깊이 헤아렸다. 항우가 멸망하고 유방이 지쳐서 관중으로 돌아갔을 때 한신이 일어나 기세를 탔더라면 뜻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괴철의 말을 한신이 어찌 갑자기 잊어버렸을까? 변장자(卞莊子)가 때를 기다렸다가 죽음을 가벼이 여기고 일거에 장렬하게 쓰러지는 일거양득의 술수를 한신은 따라 할 수 없었다. 그가 “차마 한나라를 배신할 수 없다.”라고 한 것은 잠깐 괴철의 제안을 거절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왕위를 없애고 제후에 봉하여 나라는 작고 병력은 없는데도 진희(陳豨)를 핑계로 반란을 일으키고 삼제(三齊)의 강병을 손에 쥔 채 호시탐탐 서쪽을 노렸으니, 그런 마당에 누구를 미워할 수 있겠는가?

어떤 이는 송나라 태조가 번진을 탈취한 것도 이와 비슷했다고 하지만, 또 그렇지는 않다. 한신은 석수신(石守信)이나 고회덕(高懷德)에 필적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땅을 나누어 갖고 왕이 되어서 여러 차례 승리한 경험을 가진 병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진교병변(陳橋兵變)을 통해 옹립해 추대한 군주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송나라 태조는 지난날을 교훈 삼아 극도로 조심하면서 스스로 약한 모습을 보였고, 유방은 발본색원(拔本塞源)하여 반란을 평정했으니, 경중을 따지는 것은 그 권력일 뿐이지 행적(行蹟)의 같고 다름에 달린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