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부지王夫之의 독통감론讀通鑑論 – 권2 한고제漢高帝 1

한고제漢高帝

1. 패공은 함향(咸陽)에 머물고 싶었다

천하를 가지고도 사적인 재물을 가지면 나라는 가난을 염려하다가 패망에 이르게 되니, 그 마음을 붙들어 매고 그것이 자손에게 이어지도록 한다면 왕업은 자연스럽게 지켜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천지를 다스리고 만물을 관할하는 큰 쓰임새는 모두 자신과는 이미 가깝지 않은 것처럼 여기고 알아서 차고 비워지도록 맡겨두어야 한다. 녹교(鹿橋)와 거대(鉅臺)를 세우는 어리석은 행위를 후세에 왕조를 창업한 영명한 군주들이 모두 습관적으로 당연히 여기고 자손에 대한 조상의 훈계가 잘 전해지지 않는 것은 단지 깊은 궁중에서 자라서 비루한 환관들에게 익숙해진 잘못 때문만은 아니다.

남의 나라를 멸망시키고 그 도읍에 들어가면 그곳의 재물은 모두 내 것이 되는데, 그것을 차지하고 천자의 사적인 재산이라고 여긴다. 당나라가 장안(長安)을 점령하자 수나라의 재산이 모두 당나라 것이 되었고, 송나라가 후주(後周)의 궁궐로 들어가자 오대(五代)의 조정에 쌓아 놓은 것들이 모두 송나라 것이 되었으며, 몽고가 도주하자 대도(大都)에 소장된 것들을 수레에 실어 남경으로 가져왔다. 아! 사치스러운 이들은 그로 인해 욕심을 부풀리고, 인색한 이들은 그로 인해 취향을 낮추니, 하늘의 보배로운 명령과 조상이 대대로 지켜온 혁혁한 기업이 여기서는 품에 안고 손에 쥔 재물에 지나지 않게 된다. 재앙이 가까이 닥쳤을 때 백성에게 끝없이 도움을 청해 자신의 사적인 재산을 지키고 있다가 나라가 망하면 재물을 도적질하는데, 대체 거기에 무슨 즐거움이 있다는 것인가!

한왕(漢王) 유방(劉邦)이 진나라 궁궐에 들어가자 부러운 마음이 들었으니, 이런 호사로운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번쾌(樊噲)가 말했다.

“부자 영감이 되고 싶습니까?”

영명하고 사리에 통달한 군주임에도 식견이 번쾌에게 미치지 못한 이들도 많다. 범증은 “이것만 보더라도 그 뜻이 작은 데에 있지 않다.”라고 했는데, 어찌 천하를 잠시 가지려는 웅대한 책략만을 가리킨 말이겠는가! 그것으로 후손에게 훈계를 남겼으니 문제(文帝)와 경제(景帝)가 훌륭히 다스려서 천하의 전조(田租)를 모두 면제하여 온 나라가 가난을 걱정하지 않고 수백 년 동안 군주와 백성이 부유하게 지낼 책략이 여지에서 정해졌던 것이다.

천자가 열심히 재물을 모아 자손에게 물려주면 나라는 틀림없이 가난해질 것이고, 사대부가 열심히 재산을 모아 자손에게 물려주면 가문은 틀림없이 망가질 것이며, 서민이 열심히 재산을 모아 자손에게 물려주면 후세에 틀림없이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죽는 이들이 나타날 것이다. 주나라는 큰 재물을 가졌으면서도 늦지 않게 나눠주려고 서둘렀기 때문에 30대 동안 왕위를 이었지만 망하지 않았다. 위로 종실을 뒤엎는 참극이 일어나지 않았고, 백성들도 얼어 죽거나 굶주려 약탈하다가 다치는 일이 없었다. 후세에 왕 노릇을 하는 이가 ‘부자 영감’이라는 번쾌의 조롱을 들으면 오히려 뉘우치고 후회하지 않겠는가!

2. 항우가 관작 내리는 것을 중시한 것은 잘못이 아니다

한신(韓信)은 항우의 잘못을 꼽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공을 세워 관작(官爵)을 봉해주어야 마땅한데, 직인(職印)을 깎아 망가뜨려서 차마 주지 못했다.”

이 말 때문에 한신에게는 그저 장수의 직책만 맡겨졌을 뿐 천하를 도모하는 책략을 세우는 데에는 참여하지 못했고, 게다가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끝을 잘 지키지 못한 것도 아마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관작을 봉해주는 것은 하늘이 준 것에 따라 주는 것이지 군주가 천하를 사기 위한 수단으로 쓰는 것이 아니다. 또 관작을 상으로 내리는 것이 어찌 반드시 충분한 영예라고 하겠는가? 힘든 일을 해낸 것이 영예로울 따름이다. 군주가 그것을 가벼이 여기면 천하가 해치려 나서겠지만, 군주가 그것을 중시하면 천하가 영예롭게 여긴다. 송나라 태조는 조빈(曹彬)이 강남으로 가도록 허락하며 사상(使相)에 제수했다. 조빈은 일찌감치 거기에 안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관작이 별로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승복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경시제(更始帝) 때에 제후가 숲처럼 많았지만 나라가 망하는 것을 구제하지 못했던 것처럼, 틀림없이 관작을 얻으리라 기대하면서도 흡족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항우는 자신을 낮추어 남의 아래에 있기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관작을 내리는 데에 인색했는데 어째서 갑자기 도리에 맞지 않게 망할 수밖에 없었는가? 한나라 고조가 천하를 평정한 후 너무 많은 관작을 내리자 반란이 자주 일어났는데, 무제(武帝)가 그것을 빼앗자 천하가 비로소 안정되기 시작했다. 육왕(六王)의 페단을 계승하여 저마다 군주가 되려고 하는데, 그들에게 서둘러 땅과 백성을 주어 멋대로 행동하게 한다면 관숙(管叔) 희선(姬鮮)과 채숙(蔡叔) 희도(姬度)처럼 친형제 사이라도 서로 지켜주지 못했거늘, 하물며 타인이라면 어떠하겠는가! 천하를 가지고 천하를 사면 천자가 되는데, 군주가 신하가 서로 거래하여 기대했던 보답이 신속이 이루어지면 하루아침이나마 그 자리를 차지하기에도 부족할 게 당연하다.

어쩌면 한신이 이런 말을 한 것은 고조를 협박하여 관작을 거래하려 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제(齊) 지역이 평정되자마자 그곳 왕에 봉해 달라고 청했으니, 그의 마음이 드러난 것이다. 거래하려는 마음으로 왕의 자리를 거래함으로써 군주가 그 마음을 엿보게 되었으니, 물건은 이미 팔았어도 원망이 남아 있었다. 운몽(雲夢)에서 사로잡고 미앙궁(未央宮)에서 참수(斬首)한 것은 이미 제왕의 자리를 달라고 했을 때부터 잠복해 있다가 단(壇)에 올라갔을 때 나온 몇 마디에 움직인 것이다. 뜻과 욕망이 망령되게 움직여서 칼이 뽑히면 무사한 이가 없었다. 한신은 이렇게 말했다.

“천하의 성읍(城邑)을 공신에게 봉해주면 누가 승복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군주로서는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으나 신하는 이런 말을 하면 안 된다. 하물며 군주는 본래 이런 마음으로 천하를 거래해서는 안 되지 않던가! 말을 반드시 믿을 필요는 없고, 행동이 반드시 어떤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송나라 태조의 신중함과 조빈의 현명함에 태평을 지키고 부귀하게 살아가는 도리가 들어 있다. 왜 하필 잠시 허락한 말을 따름으로써 제왕의 지위를 부여하는 하늘의 위대한 명령을 모독했단 말인가!

항우가 실패한 것은 관작을 봉해주는 데에 인색했기 때문이 아니다. 한신의 말은 진평(陳平)의 말만큼 타당하지 못하다. 진평은 이렇게 말했다.

“항우가 신임하고 아끼는 이들은 항씨가 아니면 아내의 형제들인지라, 훌륭한 인재가 있더라도 쓰지 못했다.”

그러므로 항우는 전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병폐를 지닌 인물이었다. 자잘한 인척(姻戚)이 군세에 의지하여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큰 권력을 지니고 있으니 인재가 어찌 가려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는 해도 역시 그를 통할 수밖에 없다. 항우는 거짓으로 흥한 인물이다. 회왕을 섬기다가 시해했고, 송의(宋義)의 부하이면서 그를 죽였고, 관중에 먼저 들어간 유방을 억압했고, 전영(田榮)의 무리가 찾아와 의탁했지만 싹을 잘라 약탈했다. 원망이 쌓여 남을 해치는 자는 자신의 관점에서 남이 원망한다고 의심하며, 잔혹한 살인을 가벼이 행하는 자는 크게 원망하는 이가 곁에 있는데 가까이할 수 없다고 원망한다. 이리저리 돌아봐도 오로지 형제나 인척만이 믿고 도와줄 수 있을 뿐이다. 남에게 함부로 권력을 주면 자신 또한 회왕이나 송의와 같은 신세가 될 것이다. 고민하고 두려워하며 꿈속에서도 무기를 휘두르는데 어떻게 천하를 크게 의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의 의심은 구제될 수 없다. 유방의 심복인 항백(項伯)은 항우 자신의 친척이요, 쫓아와서 자결하도록 압박한 자는 그의 옛친구인 여마동(呂馬童)이었다. 그가 전투에서 대패한 후에 뒤따른 서른 명 남짓한 이들 가운데는 형제나 인척이 없었다. 못된 마음을 품고 구원을 바랐으나 결국 고립무원의 처지가 되었다. 직인을 손상시키고 주지 않은 이들이 그를 해치고 적대시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친척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등을 돌리고 있었다.

하늘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면 하늘은 항상 보우해 주고,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도 모두 부릴 수 있다. 정의를 지키며 평탄한 길을 가서 천하라는 넓은 거처에 살고, 편협한 당파를 이루지 않고 상벌을 신중히 행하면서 자랑하지 않아야 하나니, 성패의 기미는 내게 있는 것이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는 않지만, 현자를 가까이하는 것을 버리고 꾀어 유혹하면서 명예와 그릇을 천대하면서 떠도는 자들이나 욕심쟁이들이 다투어 찾아온다고 자랑하는 것은 본래 항우가 행할 가치도 없다고 여기는 짓이었다.

3. 의제(義帝)의 상(喪)을 치른 것은 천하 대계와는 무관하다

의롭다고 이름을 붙이는 것은 이름으로써 의로움을 세우는 일인데, 따를 수는 있지만 알 수는 없는 백성들 사이의 말이다. 의로움을 모르는데 거기에 이름을 붙여서 돌이켜 생각하게 한다면, 돌이켜 생각하게 하고 싶은 것이 이름뿐만이 아닌데 하물며 민중의 준칙(準則)이 되는 잘이에서서 천하에 환히 드러난 군자라면 어떠하겠는가! 동공(董公)이 유방에게 의제의 상을 치르라고 설득한 것이 한나라가 흥성하게 된 이유라고 한다면 그런 말은 천하의 모든 후세를 거짓으로 내몰 것이다.

충효는 남이 설득해 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권유한다면 감히 하지 못하거나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움직이는 것일 뿐이다. 마음이 생겨야 일을 하고, 일을 똑바로 하고 나서 예의가 생기며, 예의를 행하고 나서야 명성이 생긴다. 명성이란 ‘삼루(三累)’의 아래에 있는 것이다. 천하가 명성을 붙여주더라도 충효를 행하는 사람을 자랑하려 하지 않는다. 유방은 애제를 애도하는 마음이 없었는데 하늘을 속이고 백성을 어리석게 여길 수 있었겠는가? 팽성(彭城)의 패배로 거의 죽을 뻔했는데 상복을 입는다 한들 그것을 구제해 줄 수 없다. 그러니 옛 군주를 위해 복수한다는 명분을 꾸민 것이 한나라의 흥성에 합당한 이유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비록 그렇다고 해도, 이를 통해 항우의 죄를 바로잡아 천하가 그를 군장(君長)으로 추대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도록 하기에는 충분했다. 왜냐? 항우는 대대로 미씨(芈氏)를 섬기던 신하였기 때문이다. 의제를 세운 것은 항량이 제후를 부리기 위해서였다. 유방의 집안은 대대로 초나라에서 벼슬살이한 것이 아니었는데도 그가 몸을 굽히고 회왕을 군주로 섬긴 것은 항씨가 그렇게 하도록 강제했기 때문일 뿐이다. 유방은 애초에 의제를 군주로 섬길 생각이 없었으니 회왕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는 천하를 위해 군주를 시해한 역적을 토벌한 것이지 누군가 자신의 군주를 시해했다고 해서 벼슬살이하는 이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상을 치른 뒤에 유방도 끝내 이걸 빌미로 천하를 호령하지 않았고, 항우의 죄 가운데 약속을 저버리고 유방 자신을 진나라의 왕으로 세우지 않은 것을 가장 크게 여겼다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니까 동공의 말은 잠시 임시방편으로 쓴 것이고, 유방도 끝내 마음으로 믿지 않았을 것이다. 아! 군자를 흉내 내는 자는 날마다 마음을 얘기하면서도 명분을 마음이라고 여기고, 날마다 도의를 얘기하면서도 명분을 도의로 여기나니, 고자(告子)가 어찌 도의를 도외시하고 간적을 죽이려 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진나라가 6국을 멸한 것은 서로 싸우다가 강자가 승리한 것일 따름이다. 죄를 따지자면 주나라의 대를 끊어지게 한 것이 가장 심하다. 초나라는 다행히 진나라에게 멸망 당하지 않았지만 역시 진나라의 일부가 되었다. 대대로 섬기던 신하도 아니었고 그 후손도 아니었는데 굳이 초나라를 군주로 섬길 필요가 있는가? 초나라를 추대한 것은 항씨의 사적(私的)인 도의이다. 한나라가 왜 항씨의 도의를 자신의 도의로 삼겠는가! 이 도의는 불명확하지만 명성이 생기면 즉시 도의가 생기게 된다. 이사원(李嗣源)은 오랑캐의 후예지만 당나라라는 명분을 가짐으로써 당나라 사람으로 대접받았고, 이변(李昪)은 누구의 아들인지도 모르는데도 당나라라는 명분을 가짐으로써 당나라 사람으로 대접받았다. 이름만 있고 도의가 없으면 의롭다는 이름을 붙여도 마음에서 도의가 생기지 않으니, 역사를 논하는 이들이 도의를 어지럽힌 것은 오래된 일이다. 중국에서 제위에 오른 군주와 조상부터 대대로 제위를 이어 온 군주는 사람들의 마음에 환히 빛나고 있어서 잊히지 않는다. 신하는 스스로 깨닫는 정성이 있고 감히 하지 못하거나 차마 하지 못하는 일을 실행에 옮긴다면 그것이 어찌 다만 명분 때문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