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세언型世言 제16회 1

제16회 내강현의 세 열녀가 수절하고,
성도군의 두 고아가 연속 급제하다
內江縣三節婦守貞, 成都郡兩孤兒連捷

골짜기 구름은 무산(巫山) 북쪽에서 자욱하고,
민산(岷山)의 수원은 강물 깊은 데서 물결치네.
땅이 영묘하니 응당 기이한 호걸이 나오고,
강한 절개는 바로 고금을 능가하네.
설도전(薛濤箋)같은 종이 있어도 설도(薛濤)의 시를 쓰지 않고,
거문고 있어도 어찌 탁문군(卓文君)의 음을 연주하겠는가.
돌거울에 비친 초승달은 밤의 어두움을 덜고,
가을신 백제(白帝)가 보낸 산들바람은 가을 다듬이소리 전하네.
처연하게도 저것은 움이 고통을 참는 것을 애석히 여기고,
거문고 소리는 더욱 단단해져 돌마음과 같다.
하얗게 변한 소나무와 대나무는 다행히 부끄러움이 없고,
푸른 구름 밑의 난초와 계수나무는 어찌 적막하고 고요한가.
나는 지금 마구 써서 붉은 관에 넣네,
향내나는 소리가 영원히 규중의 경계가 되기를.

이 시는 단지 촉(蜀)땅에 살았던 여자 몇사람을 읊은 것이다. 촉(蜀)땅에는 옛부터 특이한 여자들이 많았다. 한(漢)나라 때에는 탁문군(卓文君)이 있었다. 눈썹이 먼 산과 같았고, 얼굴은 복숭아꽃색이었으며, 글을 잘 짓고 거문고를 잘 탔다. 원래는 혼자 살고 있었는데, 사마상여(司馬相如)가 ‘구황봉곡(鳳求凰曲)’을 켜서 그녀를 유혹했기 때문에, 야밤을 틈타 사마상여(司馬相如)를 따라갔다. 견식이 있는 사람들은 그녀가 절개를 잃었다고 말한다. 또한 왕소군(王昭君)이 있다. 그녀는 비파로써 원망의 심정을 나타냈는데, 무덤의 풀이 유독 푸른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특이한 여자였다. 그러나 흉노족의 왕 선우(單于)에게 욕을 당하였으니, 윤리를 어지럽게 했다는 치욕을 가지게 되었다. 당나라 때에는 설도(薛濤)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녀를 여교서(女校書)라고 불렀다. 그러나 오히려 안일을 추구하여 정조를 버리고, 종신토록 기생노릇을 했다. 촉(蜀)땅에는 두명의 서비(徐妃)가 있었는데, 궁사(宮詞) 백 수를 지었다. 그러나 아들과 마찬가지로 음란을 일삼고 방탕에 빠져서, 나라를 잃는 데에 이르렀다. 그리고 또 화예(花蕊)부인이 있었는데, 촉(蜀)이 망하자 송(宋)으로 들어가 송태조(宋太祖)를 알현했다. 시를 지어 말했다.

“이십만 사람이 일제히 갑옷을 벗었는데, 남자아이 같은 이가 아무도 없네.”

재주와 미모가 모두 뛰어나, 후에 총애받아 송(宋)의 서울에서 벼슬살이 했다. 미모와 재주가 있었으나, 절개와 덕이 없었다.<그녀를 여감(女鑑)이라 할 수 있고, 여률(女律)이라 할 수도 있다.> 여자란 마땅히 덕과 절개를 중심삼아야 하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절개란 욕정에 의해 움직이는 바가 아니고, 빈천에 의해 옮겨지는 바가 아니며, 힘에 굴복하는 바가 아니다. 굳세게 스스로 정조를 지키는 것이다. 덕이란 음탕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탐내지 않고, 사납지 않고, 질투하지 않는 것이며, 오만불손하고 게을러고, 입잘놀리고 경망스러워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안에서 음란하고 절도질하고, 사납고 난폭하고 게으른 것은, 좋은 일이 아니며, 모두가 부인들이 수치스러워 하는 것이다. 탐내고 인색하면 근검절약한다고 핑계되고, 교만하면 체면차린다고 핑계되고, 경망하면 얽매이지 않아서라고 핑계되고, 말잘하면 영리해서라고 핑계된다. 이것은 없애기 어려운 것이나, 검소하면 면할 수 있는 것이다. 단지 질투 이것이 가장 어렵다. 있었던 일을 비추어 보면, 막을 수 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진(晋)의 사안석(謝安石)부인을 예로 들어 보겠다. 아들이 「관저(關雎)」를 읊고, 부인에게 질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인이 물었다.

“이 시는 누가 지었는가?”

아들이 대답했다.

“주공(周公)입니다.”

이에 부인이 말했다.

“만약 주파(周婆)라면 반드시 짓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조대(朝代)에 양시랑(楊侍郞)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처가 질투로 인해 첩을 죽여, 대신 옥에 갇혔다. 그리고 주씨(朱氏) 성을 가진 현지사는 후처가 질투로 인해 전처의 자식을 죽여, 대신 곤장을 맞고 죽었다. 정말로 질투심이 사납고 강한 부인이 있어, 남편이 제어하지 못하면, 결국에는 누가 된다. 만약 첩보기를 자매와 같이 하고, 남의 자식보기를 자기자식 보는 것처럼 하여, 죽을 때까지 굳게 지켜 변하지 않을 수 있다면, 어찌 절개와 덕을 갖춘 것이 아니겠는가.

이 일도 촉(蜀)땅에서 있었던 것이다. 성도부 내강현(成都府 內江縣)에서 생긴 일이다. 이 현(縣)에는 대가문이 있었는데, 그 중에 성(姓)이 소(蕭)이고 이름이 등(騰)이며, 자(字)가 중승(仲升)인 사람이 있었다. 그의 동생의 이름은 로(露)이고, 자는 계택(季澤)이었다. 그들은 효성스럽고 우애있는 형제였다. 두 소년은 모두 공부했으나, 끝내 성취를 할 수 없었다. 소중승(蕭仲升)은 말단관리인 리(吏)가 되고, 소계택(蕭季澤)은 농사짓고 살았다. 중승이 맞이한 처는 음씨(陰氏)로서, 사이에 아들 세건(世建)을 두고 있었다. 계택이 맞이한 처는 오씨(吳氏)였다. 오씨는 결혼한 지 오래되었는데, 아직 자식이 없자, 하루는 계택에게 말했다.

“남들이 말하기를 ‘벼슬이 없어도 몸은 홀가분하지만, 아들만 있으면 만사가 만족스럽다.’라고 합니다. 지금 저는 아직 자식이 없으니, 첩을 맞이하여, 그녀로 하여금 아이를 낳게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계택이 말했다.

“나와 자네가 부부로서 얼마나 다정스러운데 그러느냐, 이런 쓸데없는 일을 만들지 말아라. 하물며 자네는 아직 나이도 젊은데, 어찌 자네가 애를 못낳는다는 것을 알리오? 만약 첩을 얻으면, 그 첩의 사람됨이 어떠한 줄을 모르니, 어떤 경우에는 화가 날것이다.”

이에 오씨는

“화가 나고, 안나고는 모두 저한테 달렸습니다.”

라고 말하고,<“화가 나고, 안나고는 모두 저한테 달렸습니다.” 이 말은, 千古에 미칠만 하다.> 곧 매파에게 사람을 구하게 하고, 직접 가서 상을 보고, 인물이 잘 생겨야 한다고 했다. 이 사실이 단지 오씨의 여동생에게 알려져, 여동생이 와서 말했다.

“언니, 이제껏 남자중에 좋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 새것을 좋아하고 옛것을 버렸습니다. 만약 그에게 이쁜 첩을 구해다주든지, 못생기고 이상하게 생긴 첩을 구해주든지 간에, 아마 형부는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는 모두가 서시(西施)같은 미인으로 보인다.’란 말처럼 되어 버릴 거예요. 만약 나이 어리고 이쁜 첩을 구해다주면, 언니의 남편은 반드시 그녀를 좋아할 거예요. 군자부부라고 불리워지는 부부들은 추파를 보내거나, 요염하게 단장하여 애교떠는 경우가 없으니, 정말 고집스럽고 융통성이 없어요. 첩들은 단지 가장의 비위를 맞추거나, 가장의 환심을 사려는 행위를 하니 어떤 일도 못하겠어요? 그래서 자연히 형부는 첩과 가깝게 되고 언니와는 소원해지게 되는 거죠. 그녀는 처음에는 언니 말을 잘 듣다가도, 나중에 형부의 총애를 얻든가, 혹은 아들을 낳든가 하면, 그녀 자신이 최고가 되어버리죠. 든든한 배경이 있으니, 이후로는 언니에게 복종하지 않을 거예요. 언니, 생각해보세요. 형부가 그곳에 있을 때, 그들 둘이 오손도손지내던가, 혹은 그들 둘이 침대에서 환소하지만, 언니 혼자 쓸쓸해질텐데, 어찌 살아갈 수 있겠어요?<처와 첩이 재앙을 얽어 만드는 것은, 겉과 속이 모두 닮았기 때문이다.> 언니가 만약 아들을 낳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남의 소생을 언니 몸에 붙여서는 안되요. 언니가 만약 아들을 낳으면, 어찌 다른 사람의 아들이 가산의 반을 떼가지 않겠어요? 언니 형부의 꾀임에 넘어가지 마세요. 남자들이란 첩도 얻기 전에도 같은 얼굴이고, 첩을 얻고나서도 같은 얼굴이죠. 언니 나중에 후회해봐자 소용없어요.”

오씨는 듣지 않고, 간택하러 왔다 갔다 하다가, 같은 현의 오동리(梧桐里)에 사는 이가(李家)의 18살된 딸을 골랐다. 오씨는 자기의 비녀와 빗을 팔아 그녀를 맞이했다. 오씨는 그녀를 집으로 맞이하여, 그녀에게 한칸의 방을 마련해주고, 생활용품을 가져와선 자기와 마찬가지로 하였다. 여동생이 또 와서 말했다.

“언니, 이렇게 형부를 위해 첩을 맞이해, 남들은 모두 언니를 품성이 곱다고 해요.그러나 곧 내부적으로 성가시게 될 것을, 사람들은 믿지 않아요. 언닌 그녀를 처음부터 기를 꺾어나야지, 좋은 얼굴로 그녀를 대해주지 않도록 하세요. 한달에 형부더러 한번 또는 두번만 가게 하세요. 친척집에 갈 때에, 반드시 데리고 가세요. 저녁에는 방문을 밖에서 잠그고, 형부가 언니의 말을 듣지 않고, 몰래 가지 않도록 하세요.”<가정의 변고는, 대부분 옆사람의 부치김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吳氏는 자기의 귓가에 웅웅거려도 듣지 않았으니, 정말 뛰어나고 어질면서도 신성하다.>

오씨는 웃으며 말했다.

“한족(漢族) 집안에는 그 나름의 제도가 있으니, 동생은 마음 쓸 필요 없어요.”

여동생이 말했다.

“언니, 제가 말이 많은 게 아녜요. ‘막 시댁에 온 며느리 버릇없게 하고, 막 태어난 아이 버릇없게 하네’와 같이 되어서는 안되요.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예요. 스스로 화를 내는 것이 진짜예요. 언니는 듣지도 못했어요. 제가 사는 곳에 주감생(朱監生) 마누라가 있었는데, 사람됨이 제 분수를 아는 사람이었는데, 한순간 생각을 잘 못하여, 남편이 첩을 얻는 것에 응낙했어요. 그런데, 후에 남편의 뜻이 그 첩에게만 미치는 것을 보고, 질투가 나 목매어 죽었어요. 그리고 당공자(黨公子)가 있는데, 본처를 내팽개치고, 첩과 침대에서 뒹굴며 돌아오지도 않고, 집안살림도 내몰라라 했어요. 이것은 모두가 ‘앞에 배가 지나간 것, 뒤에서도 확실히 알 수 있다.’와 같은 경우이죠.”

그러나 오씨의 생각을 어찌할 수 없었다. 이후에 소계택이 비록 양쪽 다 따뜻하게 대해주었지만, 이것을 돌보다보니 저것을 놓치는 경우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오씨는 개의치 않았다. 다행히 이씨(李氏)가 지극히 독실하고, 먼저 남편의 환심을 사고자 하는 작태가 없었고, 예절바르고, 오씨를 세심하게 잘 대해주었다. 반년도 되지 않아 이씨는 임신을 하게 되었다. 오씨는 이씨로 하여금 집안일을 하지 않게 하였고, 출산시에 지극하게 간호하여, 다행히 아들을 얻었다. 여동생이 또 와서는 오씨로 하여금 이씨를 다른 데에 시집보내라고 하며 말했다.

“언니, 이 아이는 후에 단지 언니만을 알 수 있도록, 마땅히 친히 낳은 것으로 해야 해요.”<밉다. 미워>

그러나 오씨는 또 듣지 않고, 그 아이에게 태어난 지 삼일 후에 행하는 예식을 베풀어 주었고, 만 일개월이 되자, 유모를 고용하여 키우게 했다. 결코 이것과 저것을 가리지 않았다. 그 아이는 6살 때에 서당에 가서 공부하였으며, 이름을 세연(世延)이라 했다. 세건(世建)은 두살이었는데, 총명하고 영리하였다.

이 해에, 이미 두번의 승진시험을 거친 소중승(蕭仲升)은, 세번째 승진시험 칠 때가 되어, 서울로 가려고 하였다. 시험관리관청에서 일을 처리하여, 문선사제(文選司題)와 관대(冠帶)를 보내 왔다. 이 관청의 관리들은 모두 돈독이 오른 사람들이었며, 활절두(活切頭), 흑호도(黑虎跳), 비과해(飛過海) 등 뇌물로써 승진이 된 자들을 제외하고, 이들 모두는 평민이었다. 이부서판(吏部書辦)이 부정을 행하였다.<관리들의 폐해가 명확하다.> 어떤 경우에는 원년성제(遠年省祭)를 사사로이 조작하였다. 만약 인원이 오지 않으면, 반드시 사망으로 처리하였다. 또한 집안이 가난하거나, 길이 멀고 나이가 많아 포기하고 오지 않으면, 대체하여 보충하였다. 또한 어떤 경우에는 도장을 위조하여, 상관이 하관에게 보내는 공문서에 실제경력 및 승진시험에 대한 추천의 글을 쓰고, 재물을 바치고 뇌물을 주어, 벼슬을 청하였다. 다른 경우에는 관청의 명부를 조작하여 자금유용하고, 장부를 뜯어 고쳐 돈을 빼가고 하여, 일찍 뽑히도록 공작하였다. 이것은 이부(吏部)가 부정한 것이지만, 이부관리들 스스로 부정한 것도 있는데, 남에게 부탁하여 대리시험치게 하거나 시험보는 탁자에 글을 붙이거나 하는 등의 행위였다. 첩경은 이부(吏部)와 삼원(三院)이 힘쓰는 것인데, 가장 빠른 것은, 당관(堂官)과 측근자 등 여러 명이 힘쓰는 것이다. 이부(吏部)에서 옷을 접는 행위를 하는 것을, 어부가 그물을 친다고 한다. 여러 관리들이 출입할 떄 마다 옷상자를 받쳐들고 왔다갔다하는 것을, 두 귀신이 고리를 다툰다라 한다. 요강을 든 것을, 유해(劉海:道敎 全眞道의 교주)가 두꺼비를 가지고 논다라 한다. 문입구에서 알리고 들어가는 것을, 낮에 귀신을 본다라 한다. 이것들은 시험치는 중 성제(省祭)를 면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특차전형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소등(蕭騰)도 시세를 따라 평탄하게 나아갔는데, 호광상음 순검후결(湖廣湘陰 巡檢候缺)로 뽑혀, 임지로 가서 직무를 담당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의 처 음씨(陰氏)가 세건(世建)을 낳고나서부터, 몸에 병이 많아, 더 이상 낳고 기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집안 살림도 보살필 수가 없어서, 첩과 동행했다. 그 첩은 부순현(富順縣) 진견촌(陳見村)의 여자로, 나이가 19살이었다. 얼굴이 참하게 생겼고, 또한 바느질도 잘 하며, 성격이 온순하고, 사람됨이 신중하였다. 음씨는 자신이 병이 많아, 조용한 것을 좋아했는데, 이것은 결코 진씨(陳氏)가 빼어나게 예뻐서, 그녀가 남편의 총애를 독차지 할까봐서, 질투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진씨도 또한 남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남편 앞에서 아양을 떨든가, 등 뒤에서 이간질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두사람은 자매처럼 살았는데, 정말로 잘 의기투합하였다.

바람은 잔잔하고 아리따운 연꽃은 서로 말을 전하고
하늘은 화창하고 고운 새는 서로 지저귀고 있네.
아황(娥皇)과 여영(女英) 두 여자 처럼,
그대들도 절세의 미인이로구나.

趙得昌 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