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대소설 서발문中國古代小說序跋文 《신선전》자서 <神仙傳自序>

《신선전》자서<神仙傳自序>

거훙葛洪[1] 

【原文】

予著<內篇>[2],論神仙之事,凡二十卷。

弟子滕昇問曰[3]:󰡒先生云,仙化可得,不死可學,古之得仙者,豈有其人乎?󰡓

予答曰:󰡒秦大夫阮倉所記有數百人[4],劉向所撰[5],又七十餘人,然神仙幽隱,與世異流,世之所聞者,猶千不得一者也。故寧子入火而陵烟[6],馬皇見迎於護龍[7];方回變化於雲母[8],赤將茹葩以隨風[9],涓子餌術以著經[10],嘯父別火於無窮[11];務光游淵以哺薤[12],仇生却老以食松[13];邛疏煮石以煉形[14],琴高乘鯉於碣中[15];桂父改色以龜腦[16],女幾七十以增容[17];陵陽呑五脂以登高[18],商邱咀菖蒲以無終[19],雨師煉五色以屬天[20],子先轡兩虯於玄塗[21];周晋跨素鶴於緱氏[22],軒轅控飛龍於鼎湖[23];葛由策木羊於綏山[24],陸通匝遐托於橐盧[25];蕭史乘鳳而輕擧[26],東方飄幘於京師[27];犢子鬻桃以淪神[28],主柱飛行以餌砂[29];阮邱長存於雎嶺[30],英氏乘魚以登遐[31],修羊陷石於西岳[32],馬丹回風以上徂[33];鹿翁陟險而流泉[34],園客蟬蛻於五華[35]

予今復抄集古之仙者,見於《仙經服食方》[36]及百家之書,先師所說[37],耆儒所論,以爲十卷,以傳知眞識遠之士。其系俗之徒,思不經微者,亦不强以示之。則知劉向所述,殊甚簡略,美事不擧。此傳雖深妙奇異,不可盡載,猶存大體,竊謂有愈於劉向多所遺棄也。󰡓

晋抱朴子葛洪稚川題

【우리말 옮김】

  내가 지은 <내편>은 신선의 일을 논한 것으로 모두 20권이다.

  하루는 제자 텅성滕昇이 다음과 같이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신선도 될 수 있고, 죽지 않는 것도 배울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옛날에 신선이 된 사람이 정말로 있었습니까? ”

  나는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진秦나라 때 대부 롼창阮倉의 기록에 수백 명이 있었고, 류샹劉向의 저술에도 칠십 여 명이 있었다. 그러나 신선은 깊이 숨어 일반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세상에 알려진 이가 천 명 가운데 한 명도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닝쯔寧子는 불 속에 들어가 연기를 타고 승천했던 것이고, 마황馬皇은 호룡護龍의 영접을 받았으며, 팡후이方回는 운모를 달여 먹고 변화했고, 츠쟝赤將은 풀과 꽃을 먹고 비바람을 오르락내리락했으며, 쥐안쯔涓子는 [한약재인 백출과 창출을] 즐겨먹은 뒤 그것으로 책을 지었고, 샤오푸嘯父는 횃불을 늘어놓고 승천했으며, 우광務光은 연못에서 노닐며 부추를 먹었고, 처우성仇生은 늘 송진을 먹었으며, 츙수邛疏는 석수를 삶아 먹고 양생을 했고, 친가오琴高는 잉어를 타고 나타나 사당에 머물렀으며, 구이푸桂父는 거북의 뇌수를 먹고 얼굴빛을 바꾸었고, 뉘지女几는 나이 칠십에도 젊음을 간직했으며, 링양陵陽은 산에 올라 오색 돌의 진액을 삼켰고, 상츄商邱는 창포 뿌리를 먹고 죽지 않았으며, 츠쑹쯔赤松子는 오색 돌을 연마하여 하늘에 올랐고, 쯔셴子先은 쉬안투玄塗에서 두 마리 용에 고삐를 매었으며, 저우진周晋은 거우스산緱氏山에서 백학을 탔고, 쉬안위안軒轅은 정鼎을 만들고 비룡을 제어했으며, 거유葛由는 쑤이산綏山에서 목양을 만들었고, 루퉁陸通은 탁로나무 열매에 의지해 명산을 노닐었으며, 샤오스蕭史는 봉鳳을 타고 가볍게 승천했고, 둥팡쒀東方朔는 경사의 관직을 버리고 홀연히 사라졌으며, 두쯔犢子는 복숭아를 팔아 신선의 경계에 들었고, 주주主柱는 단사를 먹고 하늘을 날았으며, 롼츄阮邱는 우이산睢山에서 오래 살았고, 잉스英氏는 잉어를 타고 승천했으며, 슈양修羊이 서악(화인산華陰山)에서 돌 [침대에 누우면 침대가 푹신하게] 움푹 들어갔고, 마단馬丹은 회오리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랐으며, 루웡鹿翁이 험한 산에 오르니 샘이이 흘러나왔고, 위안커園客는 오색 나방의 껍질을 벗었던 것이다.

  나는 이제 고대의 신선에 관해 《선경복식방》과 백가들의 서적에 보이는 것들을 다시 모아 베끼고, 선인들의 말씀과 대유들이 논한 바로 10권의 책을 만들어, 진리를 깨우치고 원대한 식견을 가진 도사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하지만 저속한 무리들이나 생각이 올바르지 못한 자들은 억지로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그런즉 류샹劉向이 서술한 것은 아주 간략한 데다 미덕이 될 만한 사적은 거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신선전》은 비록 오묘하고 기이한 것을 다 싣지는 못했으나, 그런 대로 대체적인 내용은 갖추었다. 삼가 말하건대 류샹이 빠뜨리고 돌아보지 않은 것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겠다.

  진晉의 바오푸쯔抱朴子 거훙葛洪 쓰다.

【해설】

  《산해경(山海經)》에는 매우 기이한 산천초목과 날짐승, 들짐승, 곤충, 물고기 등의 자연현상이 기록되어 있는데, 형식적인 면에서는 비교적 간단하고 할 수 있고, 단지 원시적인 형태에 가까운 신화 자료가 보존되어 있을 따름이다. 신화와 전설이 발전함에 따라, 이렇듯 신이 된 인간과 인간화된 신은 점점 종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어 드디어는 신괴소설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도가인 거훙이 《신선전》을 저술한 목적은 “신선도 될 수 있고, 죽지 않는 것도 배울 수 있다仙化可得, 不死可學”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거훙은 폭넓은 자료 수집과 상세한 묘사를 통해 실제로는 후대의 신괴소설을 쓴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그는 류샹劉向의 서술이 “아주 간략한 데다 미덕이 될 만한 사적은 거론하지 않았다殊甚簡略, 美事不擧”고 비판했는데, 상대적으로 자신의 책은 풍부한 이야기와 상세한 묘사가 돋보인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소설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자질구레하고 짧은 말들叢殘小語”의 기록이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춘 후대의 소설로 발전하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그런 면에서 거훙의 발언은 타당성을 갖는다. 아울러 거훙은 자신의 책에 나타난 “오묘하고 기이한 것深妙奇異”을 언급했는데, 후대의 소설이 이야기와 플롯의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로 ‘기이함novleness’을 강조하고 있는 것과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주석]

[1]  거훙葛洪(281?~341년)의 자는 즈촨稚川이고, 스스로 호를 바오푸쯔抱朴子라 하였다. 단양丹陽의 쥐룽句容(지금의 쟝쑤 성江蘇省) 사람이다. 어려서는 유학으로 이름을 날렸고 뒤에는 신선의 양생술 등을 좋아하여 진대晋代의 유명한 도가道家가 되었다. 저작으로 시詩와 부賦 외에 《포박자抱朴子》, 《은일전隱逸傳》, 《신선전神仙傳》 등 다수가 있다. 《신선전》 10권에는 84명의 신선이 기록되어 있다.

[2]  <내편內篇> : 《포박자抱朴子》는 내, 외편으로 나뉜다. 그 자서自敍에 의하면 “《포박자》의 내편은 신선의 방술과 단약, 귀신의 변화, 양생하여 수명을 늘이는 법, 악귀를 막고 재앙을 물리치는 법 등 등의 일 등을 기록했는데 이는 도가道家에 속하고, 외편은 인간관계의 득실과 세상사의 옳고 그름에 대해 논했는데 이는 유가儒家에 속한다.其內篇言神仙方藥, 鬼怪變化, 養生延年, 禳邪却禍之事, 屬道家. 其外篇言人間得失, 世事臧否, 屬儒家.”고 하였다. 본 서문에서는 내편이 20권이라 했는데 《신당서新唐書》<예문지藝文志>에는 10권으로 되어 있다. 지금 전하는 판본은 20권으로 되어 있는데, 한 권이 한 편이다.

[3]  텅성滕昇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4]  롼창阮倉 : 《수서隋書》<경적지經籍志>에서는 “한대에 롼창이 《열선도列仙圖》를 지었고, 류샹劉向이 경적의 교열을 맡은 뒤 비로소 《열선列仙》、《열사列士》、《열녀列女》의 전傳을 지었는데, 모두 생각나는 대로 경솔하게 지은 것이다.漢時阮倉作《列仙圖》, 劉向典校經籍, 始作《列仙》、《列士》、《列女》之傳, 皆因其志向, 率爾而作.”라고 하였다. 《열선도》는 지금 전하지 않는데, 실제로는 동한 때 사람의 위탁이다.

[5]  류샹劉向(기원 전 77~기원 전 6년) : 본명은 겅성更生이고. 자는 쯔정子政이며, 서한西漢 페이沛(지금의 쟝쑤 성 페이 현沛縣) 사람이다. 간대부諫大夫(임금에게 간언을 하는 관리)와 중루교위中壘校尉를 지냈다. 일찍이 천록각天祿閣에서 많은 책들을 교열하고 《별록別錄》을 지었다. 기타 저술로 《홍범오행전洪範五行傳》, 《열녀전列女傳)》, 《신서新序》, 《설원說苑》 등이 있다. 본 서문에서 “류샹이 지은 것劉向所撰”은 《열선전列仙傳》을 가리킨다. 현존하는 《열선전》은 츠쑹쯔赤松子부터 쉬안쑤玄俗에 이르기까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71명의 신선을 기록한 것이다.

      《열선전》의 우리말 번역본으로는 김장환 역주, 《열선전》(예문서원, 1996)이 있다. 이하 각주에 인용된 《열선전》의 번역은 이것을 참고하되 역자가 약간 손을 보았다.

      같은 시기에 정선경은 《《열선전》에 대한 서사학적 연구 및 역주》(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 1996)를 펴낸 바 있다.

[6]  닝쯔寧子에 관한 구절은 《열선전列仙傳》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닝펑쯔는 황제 때 사람이다.·····펑쯔封子는 땔감을 쌓아놓고 자신을 불 태워 그 연기를 타고 승천했다. 타고 남은 재를 살펴보았더니 그의 뼈가 아직 남아 있었다. 당시 사람들이 함께 닝 땅 북쪽의 산중에 장사지냈다. 그런 까닭에 그를 닝펑쯔寧封子라 부른다.寧封子者, 黃帝時人也. ·····封子積火自燒而隨烟氣上下, 視其灰燼, 猶有其骨, 時人共葬于寧北山中, 故謂之寧封子焉.”

[7]  마황馬皇에 관한 구절은 《열선전》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마스황은 황제 때 말 의사馬醫였다. 말의 상태를 보고 생사의 진단을 내릴 줄 알아 치료하면 말의 병이 곧 나았다. 뒤에 용이 그에게로 내려와 귀를 내려뜨리고 입을 벌리자, 마스황이 말했다. ‘이 병든 용은 내가 자기를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구나.’ 그리고는 용의 입술 아래와 입 안에 침을 놓고 감초 탕을 먹여 낫게 해주었다. 그 뒤로 많은 병든 용들이 물결을 헤치고 나타나 [증상을] 고하고 그에게 치료를 청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용들이 마스황을 업고 가버렸다.馬師皇者, 黃帝時馬醫也. 知馬形生死之, 診治之, 輒愈. 後有龍下問之, 垂耳張口. 皇曰:‘此龍有病知我能治.’ 乃針其唇下口中, 以甘草湯飮之而愈. 後數數有病龍出其波, 告而求治之. 一旦, 龍負皇而去.”

[8]  팡후이方回에 관한 구절은 《열선전》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팡후이는 요 임금 때의 은자다. 요임금이 그를 초빙해 여사閭師로 삼았다. 운모를 달여 먹고, 또 병이 든 사람에게도 그것을 먹여 주었다. 우쭤산에 들어가 은거하다가 하나라 계왕 말년에 환사가 되었다.方回者, 堯時隱人也. 堯聘以爲閭士, 煉食雲母, 亦與民人有病者, 隱于五柞山中, 夏啓末爲宦士.”

[9]  츠쟝赤將에 관한 구절은 《열선전列仙傳》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츠쟝쯔위는 황제 때 사람이다. 오곡을 먹지 않고 여러 가지 풀과 꽃을 먹었다. 요堯 임금 때 목공木工이 되었는데, 비바람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할 수 있었다.赤將子輿者, 黃帝時人. 不食五穀而噉百草花. 至堯帝時爲木工, 能隨風雨上下.”

[10] 쥐안쯔涓子에 관한 구절은 《열선전》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쥐안쯔는 제나라 사람이다. [한약재인 백출白朮과 창출蒼朮로 나뉘는] 삽주 뿌리를 즐겨 먹어 그 정기를 받았다. 30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제나라에 나타나 《천인경天人經》 48편을 지었다.涓子者, 齊人也. 好餌朮, 接食其精, 至三百年乃見于齊, 著《天人經》四十八篇.”

[11] 샤오푸嘯父에 관한 구절은 《열선전》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샤오푸는 지저우冀州 사람이다. 젊었을 때 시저우西周의 장터에서 신발을 깁는 일을 하였는데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은 그가 기인奇人임을 알지 못했다. 뒤에 그가 늙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호사가들이 애써 그 비술을 가르쳐달라고 하였으나 배울 수 없었다. 오직 량무梁母만이 그의 불 만드는 법火法을 터득하였다. 싼량으로 올라갈 때, 량무와 이별한 뒤 수십 개의 횃불을 늘어놓고 승천했다. 시저우의 읍西邑에서는 그를 받들어 제사지내는 곳이 많다.嘯父者, 冀州人也. 少在西周市上補履, 數十年人不知也. 後奇其不老, 好事者造求其術, 不能得也. 唯梁母得其作火法, 臨上, 三亮上, 與梁母別, 列數十火而升, 西邑多奉祀之.”

[12] 우광務光에 관한 구절은 《열선전》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우광은 하나라 사람이다.務光者, 夏時人也”,  “탕이 걸을 제압하고난 뒤 천하를 우광에게 양보하였다.湯旣克桀以天下讓于光”, “마침내 돌을 짊어지고 랴오수이에 빠졌다. 이미 스스로 모습을 감춘 지 400여 년 뒤인 무정武丁의 시대에 다시 나타났다.遂負石自沈于蓼水, 已而自匿. 後四百餘歲至武丁時復見.”

[13] 처우성仇生에 관한 구절은 《열선전》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처우성은 어느 지방 사람인지 모른다. 은나라 탕왕 때 목정木正(목공木工, 또는 목관木官)이 되었다. 30년이 지났는데도 더욱 건장해졌기에, 그제서야 사람들이 그가 기인임을 알게 되었고, 다 함께 그를 스승으로 떠받들었다. 그는 항상 송진을 먹었고, 스샹尸鄕의 베이산北山에 스스로 석실을 만들었다. 주周나라 무왕武王때에 무왕이 석실에 행차하여 그를 제사 지냈다.仇生者, 不知何所人也. 當殷湯時爲木正, 三十餘年而更壯, 皆知其奇人也, 咸共師奉之, 常食松脂在尸鄕北山上, 自作石室, 知周武王幸其室而祀之.”

[14] 츙수邛疏에 관한 구절은 《열선전》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츙수는 주나라 봉사封史(《주례》12원<지관·봉인地官·封人>에 나오는 봉인과 같은 것으로 추정된다. ‘봉인’은 제후들의 봉지封地와 관련된 일을 관장했다)이다. 행기(체내의 탁한 기운을 내뱉고 맑은 기운을 들이마셔 체내에서 순환시키는 호흡법)와 연형술(특별한 비법으로 신체를 단련하여 항상 젊음을 유지하는 것)에 능했으며, 석수石髓를 삶아 그것을 복용했는데, 그것을 석종유라 하였다.邛疏者, 周封史也. 能行氣煉形, 煮石髓而服之, 謂之石鍾乳.”

[15] 친가오琴高에 관한 구절은 《열선전》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친가오는 조나라 사람이다. 금琴 연주로 송나라 강왕의 측근이 되었다. 쥐안쯔涓子와 펑쭈彭祖의 비술을 행하면서 지저우冀州와 줘쥔涿郡(혹은 탕쥔碭郡) 사이를 떠돌아 다닌지가 200여 년이 되었다. 그 뒤 용의 새끼를 취하러 줘수이涿水로 들어가면 여러 제자들에게 당부했다. ‘모두 목욕재계하고 물가에서 기다렸다 사당을 세우도록 하라.’ 과연 그가 붉은 잉어를 타고 나와 사당 안에 앉았다. 아침이 되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았다. 한 달 남짓 머물다가 다시 강으로 들어가 사라졌다.琴高者, 趙人也. 以鼓瑟爲宋康王舍人, 行涓彭之術, 浮游冀州涿(一作碭)郡之間, 二百餘年後辭入涿水中, 取龍子與諸弟子. 期曰:‘皆潔齋侍, 于水旁設祠.’ 果乘赤鯉來, 出, 坐祠中, 旦有萬人觀之. 留一月餘復入水去.”

[16] 구이푸桂父에 관한 구절은 《열선전》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구이푸는 샹린象林 사람이다. 얼굴빛이 검었는데, 때로 하얘졌다가 때로 누렇게, 또 때로는 붉은 빛으로 변했다. 난하이南海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받들어 모셨다. 늘 계피와 해바라기 씨를 복용했는데, 거북의 뇌수로 그것을 개어 열 근의 육계로 천 개의 환약을 만들어 먹었다. 대대로 그것을 볼 수 있으니, 지금 징저우 남쪽에는 아직도 계환이라는 약이 있다.桂父者, 象林人也. 色黑而時白時黃時赤, 南海人見而尊事之. 常服桂及葵, 以龜腦和之, 千丸十斤桂. 累世見之, 今荊州之南尙有桂丸焉.”

[17] 뉘지女几는 다른 판본에는 ‘뉘환女丸’ 또는 ‘뉘판女凡’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几’, ‘丸, ’凡‘ 세 글자 모두 자형이 비슷해 혼동이 있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그녀에 관한 구절은 《열선전》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뉘지는 진陳의 저잣거리에서 술을 팔았던 부인이다. 항상 향기로운 술을 빚었는데 우연히도 신선이 그녀의 집을 지나다 술을 마시고는 소서素書 5권을 저당 잡혔다. 뉘지가 그 책을 펼쳐 보았더니 다름 아닌 성명을 보양하는 교접술養性交接術이었다. 뉘지가 몰래 그 요지를 베껴놓은 뒤, 방을 더 들여놓고는 젊은이들을 받아들여 향기로운 술을 마시고 함께 잠자리를 같이 하며 책의 방법대로 수행했다. 이렇게 30년을 하니 안색이 20대 같았다.女幾者, 陳市上沽酒婦人也. 作酒常美, 遇仙人過其家飮酒, 以素書五卷爲質. 幾開視其書, 乃養性交接之術. 幾私寫其文要, 更設房室, 納諸年少飮美酒與止宿, 行文書之法. 如此三十年, 顔色更如二十時.”

[18] 링양陵陽에 관한 구절은 《열선전》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링양쯔밍陵陽子明은 즈샹銍鄕 사람이다. 쉬안시旋溪에서 낚시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하루는 흰 용을 낚았다. 쯔밍이 두려워 낚시 바늘을 풀고 절을 하고는 용을 놓아 주었다. 그 뒤 흰 물고기를 낚았는데 뱃 속에 책이 있었다. 이것은 쯔밍에게 복식법服食法을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쯔밍은 마침내 황산에 올라 다섯 가지 돌의 진을 뽑아 물을 끓여 그것을 먹었다. 3년 뒤 용이 와서 그를 맞이해 가 링양산 위에서 100년 간 머물렀다. 그 산은 지상에서 천여 길이나 떨어져 있었다.陵陽子明者, 銍鄕人也. 好釣魚于旋溪, 釣得白龍, 子明懼, 解金勾拜而放之. 後得白魚, 腹中有書敎子明服食之法. 子明遂上黃山采五石脂, 沸水而服之. 三年, 龍來迎去, 至陵陽山上. 百餘年, 山去地千餘丈.”

[19] 상츄商邱에 관한 구절은 《열선전》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상츄쯔쉬商邱子西는 가오이高邑 사람이다. 돼지를 기르고 피리의 일종인 우竽를 불기 좋아했다. 나이 칠십에 결혼도 안하고 늙지도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 이를 기이하게 여겨 그 비법을 배워 따라하려고 그 요체을 물으니 그가 대답했다. ‘그저 삽주朮와 창포의 뿌리를 먹고 물을 마시기만 하면 이처럼 배고프지도 않고 늙지도 않는다오.’.商邱子西者, 高邑人也. 好牧豕吹竽, 年七十不娶婦而不老. 邑人多奇之, 從受道, 問其要. 言:‘但食術菖蒲根, 飮水不飢, 不老如此.”

[20] 우사雨師에 관한 구절은 《열선전》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츠쑹쯔赤松子는 신농 때 우사雨師다. 수정을 복용했으며, 신농에게 가르쳐 주었다. 불 속에 들어가 자신을 태울 수 있었다. 종종 쿤룬산에 올라 시왕무의 석실에서 머물기도 했으며 비바람을 따라 산을 오르락내리락 하였다. 염제의 막내딸이 그를 좇아 또한 신선이 되어 함께 떠나갔다.赤松子者, 神農時雨師也. 服水玉以敎神農, 能入火自燒, 往往至昆侖山上, 止西王母石室中, 隨風雨上下. 炎帝少女追之, 亦得仙俱去.“

[21] 쯔셴子先에 관한 구절은 《열선전》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후쯔셴呼子先은 한중漢中의 관문 아래 살던 점술사卜師이다. 장수하겨 나이가 백 살이 되었다. [한중을] 떠날 때가 되어 술집 노파를 불러 말했다. ‘급히 짐을 꾸리게나. 할멈과 함께 중릉왕의 부름에 응해야 하오.’ 밤에 어떤 선인이 띠풀로 만든 개 두 마리를 데리고 와서 후쯔셴을 불렀다. 쯔셴은 한 마리는 술집 노파에게 건네주고 [각자] 그것을 탔는데, 그게 바로 용이었다. [사람들이] 화인산華陰山에 오르면 항상 산 위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쯔셴! 주모는 여기 있네.’呼子先者, 漢中關下卜師也. 老壽百餘歲, 臨去呼酒家老嫗曰:‘急裝, 當與嫗共應中陵王.’ 夜有仙人持二茅狗來至呼子先. 子先持一與酒家嫗, 得而騎之, 乃龍也. 上華陰山, 常于山上大呼言:‘子先! 酒家母在此.’云.”

[22] 저우진周晋에 관한 구절은 《열선전》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왕쯔챠오王子喬는 주나라 영왕의 태자 진晋이다. 생황을 잘 불어 봉황의 울음소리를 내었다. 이수이伊水와 뤄수이洛水 사이에서 노닐었는데, 도사 푸츄궁이 그를 데리고 쑹가오산嵩高山으로 들어갔다. 30여 년 후 [사람들이] 그를 찾았는데, 환량桓良(보량 栢良으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을 보고 말했다. ‘7월 7일에 거우스산緱氏山에서 나를 기다리라고 내 집에 알려주게.’ 그 날이 되자 과연 흰 학을 타고 산마루에 내려앉았다. 멀리서 그를 바라보되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손을 들어 당시 사람들과 이별하고 며칠 뒤 떠나갔다.王子喬者, 周靈王太子晋也. 好吹笙作鳳凰鳴, 游伊洛之間. 道士浮丘公接以上嵩高山. 三十餘年後, 求之于山上見桓良曰:‘告我家, 七月七日待我于緱氏山嶺.’ 至時, 果乘白鶴駐山頭, 望之不得到, 擧手謝時人, 數日而去.”

[23] 쉬안위안軒轅에 관한 구절은 《열선전》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황제는 호가 쉬안위안이다.黃帝者號曰軒轅”, “황제가 쑤이산綏山에서 구리를 캐어 징산荊山 아래에서 정鼎을 주조하였는데, 정이 완성되자 용이 수염을 내려뜨려 그를 맞이하니 황제는 곧 하늘로 올랐다.黃帝采首山之銅, 鑄鼎于荊山之下, 鼎成, 有龍垂胡髥下迎, 帝乃升天.”

[24] 거유葛由에  관한 구절은 《열선전》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거유는 강羌족이다. 주나라 성왕 때에 나무로 양을 잘 만들어 그것을 팔았다. 하루는 그 양을 타고 서촉西蜀에 들어갔는데, 촉의 왕후·귀인들이 그를 좇아 쑤이산綏山으로 올라갔다. 쑤이산은 어메이산峨嵋山 서남쪽에 있는데 그 높이가 끝이 없었다. 그를 따라간 이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모두 신선이 되었다.葛由者, 羌人也. 周成王時好刻木羊賣之. 一旦騎羊而入西蜀. 蜀中王侯貴人追之上綏山. 綏山在峨嵋山西南, 高無極也. 隨之者不復還, 皆得仙道.”

[25] 루퉁陸通에 관한 구절은 《열선전》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루퉁은 추쾅졔위楚狂接輿라고도 한다. 양생술을 좋아하여 탁로나무 열매와 무청의 씨를 먹고 여러 명산을 돌아다녔다. 촉蜀의 어메이산峨嵋山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그를 볼 수 있었는데, 수백 년이 흐른 뒤 사라졌다.陸通者, 云楚狂接輿也. 好養生, 食橐盧木實及蕪菁子, 游諸名山. 在蜀峨嵋山上, 世世見之, 歷數百年去.”

[26] 샤오스蕭史에 관한 구절은 《열선전》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샤오스는 진나라 목공 때의 사람이다. 퉁소를 잘 불어 공작과 백학을 뜰에 불러들일 수 있었다. 목공에게는 자를 눙위弄玉라 하는 딸이 있었는데, 그를 좋아하자 목공은 마침내 딸을 샤오스에게 시집보냈다. 날마다 눙위에게 봉황의 울음소리 내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몇 년이 자닌 뒤 봉왕 소리와 비슷하게 불었더니, 봉황이 그 집 지붕에 날아와 머물렀다. 목공이 봉대鳳臺를 지어주자, 부부는 그 위에 기거하면서 몇 년 동안 내려오지 않다가 어느 날 봉황과 따라 날아가 버렸다.蕭史者, 秦穆公時人也. 善吹簫, 能致孔雀白鶴于庭. 穆公有女字弄玉好之, 公遂以女妻焉, 日敎弄玉作鳳鳴. 巨數年, 吹似鳳聲, 鳳凰來至其屋. 公爲作鳳台, 夫婦止其上, 不下數年, 一旦皆隨鳳凰飛去.”

[27] 둥팡東方에 관한 구절은 《열선전》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둥팡숴東方朔는 핑위안平原 옌츠厭次 사람이다.·····선제宣帝 초년에 이르러 낭이라는 벼슬을 버리고 난세를 피하여 관사에 두건을 놓아 둔 채 바람을 타고 홀연히 사라졌다.東方朔者, 平原厭次人.·····棄郞而避亂世, 治幘官舍, 風飄之而去.”

[28] 두쯔犢子에 관한 구절은 《열선전》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두쯔는 예鄴 지방 사람이다.……항상 술집 주인 양두陽都의 집을 들르곤 하였다. 양두의 딸은 시장에서 술을 파는 집 여자였는데 눈썹이 자라날 때부터 맞붙었으며, 귀가 가늘고 길었다. 사람들이 이를 기이하게 여겨 모두들 ‘이 사람은 천상의 인물’이라고 말했다. 마침 두쯔가 누런 송아지 한 마리를 끌고 와서 들렀을 때, 양두의 딸이 그를 좋아해 그를 머무르게 한 뒤 받들어 모셨다. 양두의 딸이 두쯔를 따라 복숭아와 오얏을 가지러 갔다가 하룻밤을 자고 돌아왔는데, 그 과일은 껍질까지도 달고 맛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들의 뒤를 밟아 뒤쫓았는데, 문을 나서 송아지의 귀를 끌고 걸어갔는데도 사람들은 쫓아갈 수가 없었다.犢子者, 鄴人也.·····常過酤酒陽都家. 陽都女者, 市中酤酒家女, 眉生而連耳, 細而長, 衆以爲異, 皆言此天人也. 會犢子率一黃犢來過, 都女悅之, 遂留相奉侍. 都女隨犢子出取桃李, 一宿而返, 皆連兜甘美. 邑中隨伺逐之, 出門共牽犢耳走, 人不能追也.”

[29] 주주主柱에 관한 구절은 《열선전》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주주는 어느 곳 사람인지 모른다. 도사와 함께 탕산宕山에 올라 말하길, ‘이곳에서는 단사 수만 근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탕산의 관리가 그 사실을 알고 산에 올라가 그곳을 봉인하였는데, 단사가 흘러나와 불꽃처럼 날렸다. 이에 주주에게 단사를 캐서 단약을 만들도록 허락했다. 현령인 장쥔밍章君明은 3년 동안 단사를 먹고는, ‘비설’이라는 신비한 단사를 얻어 그것을 5년 동안 복용한 뒤 허공을 날아다닐 수 있게 되었고, 마침내 주주와 함께 떠나갔다고 한다.主柱者, 不知何所人也. 與道士共上宕山, 言此有丹砂, 可得數萬斤. 宕山長吏知而上山封之, 砂流出飛如火, 乃聽柱取, 爲邑令章君明餌砂三年, 得神砂飛雪, 服之五年, 能飛行, 遂與柱俱去之.”

[30] 롼츄阮邱에 관한 구절은 《열선전列仙傳》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황롼츄黃阮邱는 우이산睢山의 도사다. 가죽 옷에 머리는 풀어 헤쳤으며, 귀의 길이가 7촌이나 되고 입 안에는 이빨이 없었으며, 하루에 400리를 걸어 다녔다. 산 위에서 파와 부추를 심으면서 100년을 살았지만 사람들은 알지 못하였다. 때때로 산에서 내려와 약을 팔았는데, 주황朱璜이라는 자가 그의 정체를 밝혀낸 뒤에야 사람들은 그가 신통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진으로 산이 무너지고 길이 끊긴다는 것을 산 아래 사람들에게 미리 알려주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를 받들어 제사를 올렸다.黃阮丘者, 睢山上道士也. 衣裘被髮, 耳長七寸, 口中無齒, 日行四百里, 于山上種葱薤, 百餘年人不知也. 時下賣藥, 朱璜發明之, 乃知其神人也. 地動山崩道絶, 予戒下人, 世共奉祠之.”

[31] 잉스英氏에 관한 구절은 《열선전列仙傳》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쯔잉子英은 쉬샹舒鄕 사람이다. 자맥질을 해 물고기를 잡는 데 뛰어났다. 하루는 붉은 잉어를 잡았는데, 그 고운 빛깔이 마음에 들어 가지고 돌아와 연못 속에 놓아두고 매번 쌀 알갱이를 먹였다. 한 해가 지나니 길이가 한 길 남짓이나 자랐으며, 불이 돋고 날개가 생겼다. 쯔잉이 괴이하게 여겨 잉어에게 배례하자 잉어가 말했다. ‘내가 그대를 맞이하러 왔으니 그대가 내 등에 올라타면 함께 승천할 것이오.’ 이내 큰 비가 내렸고 쯔잉이 물고기의 등에 올라 타자 솟구쳐 올라 떠났다.子英者, 舒鄕人也. 善入水, 捕魚得赤鯉, 愛其色好, 持歸著池中, 數以米穀食之, 一年長丈餘, 遂生角, 有翅翼, 子英怪異, 拜謝之. 魚言:‘我來迎汝, 汝上背, 與汝俱升天.’ 卽大雨, 子英上其魚背, 騰升而去.”

[32] 슈양修羊에 관한 구절은 《열선전列仙傳》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슈양궁修羊公은 위魏나라 사람이다. 화인산華陰山에 있는 석실에서 살았다. 허공에 돌로 만든 침상이 걸려 있었는데, 그 위에 누우면 돌이 모두 푹신하게 들어갔다.修羊公者, 魏人也. 在華陰山上石室中, 有懸石榻, 臥其上, 石盡穿陷.”

[33] 마단馬丹에 관한 구절은 《열선전列仙傳》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마단은 진晋나라 겅耿 지방 사람이다. 문후文侯 때 대부가 되었고, 헌공獻公에 이르러는 다시 막부정幕府正이 되었다. 헌공이 겅耿을 정벌하고 공태자恭太子를 살해하자, 마단은 곧 떠났다. 조선자趙宣子 대에 이르러 안거安車를 타고 진晋의 도읍으로 들어와 여러 대부들을 방문했다. 영공靈公이 그에게 벼슬을 주려고 하면서도 예의를 차리지 않고 억지로 핍박하자 갑자기 질풍이 불어와 집을 날려버렸고, 마단은 그 회오리바람 속으로 들어가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북방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여 제사지냈다.馬丹者, 晋耿之人也. 當文侯時爲大夫, 至獻公時復爲幕府正. 獻公滅耿, 殺恭太子, 丹乃去, 至趙. 宣子時乘安車入晋都, 侯諸大夫, 靈公欲仕之, 逼不以禮, 有迅風發屋, 丹入回風中而去. 北方人尊而祠之.”

[34] 루웡鹿翁에 관한 구절은 《열선전列仙傳》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루피궁鹿皮公은 즈촨淄川 사람이다. 젊어서 관청의 하급 관리인 목공木工이 되었었는데 손을 댔다 하면 금방 기계를 만들 수 있었다. 천산岑山의 정상에는 신령스러운 샘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이를 수 없었다. 하급관리(곧 루피궁)가 태수에게 아뢰어 도끼질에 능한 목공 30명을 청하여 암벽에 회전식 가교를 만들었는데, 기발한 착상이 끊임없이 떠올라 수십 일 만에 네 칸의 사다리 길을 완성했다. 그 정상에 올라 사당을 짓고 그 옆에 머물면서 사다리 두 칸을 끊어버리고 스스로 갇혀 살았다. 영지를 먹고 신령스러운 샘물을 마시며 70년을 보냈다. 즈수이淄水가 불어나자 산 아래로 내려가(어떤 판본에는 산山이 아니라 삼三으로 되어 있는 것도 있는데, 이 경우 ‘세 번 내려가’로 번역할 수도 있다) 일가친척 60명을 불러 모아 산 중턱으로 올라오도록 하였다. 마침내 홍수가 일어나 온 군이 완전히 수몰되어 죽은 자가 만 명에 이르렀다.鹿皮公者, 淄川人也. 少爲府小吏木工, 擧手能成器械. 岑山上有神泉, 人不能至也. 小吏白府君, 請木工斤斧三十人作轉輪懸閣, 意思橫生. 數十日, 梯道四間成, 上其顚, 作祠舍, 留止其旁, 絶其二間以自固. 食芝草, 飮神泉, 且七十年, 淄水來山下, 呼宗族家室得六十餘人, 令上山半, 水盡漂一郡, 沒者萬計.”

[35] 위안커園客에 관한 구절은 《열선전列仙傳》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위안커는 지인濟陰 사람이다. 외모가 잘 생기고 성격도 좋아, 마을 사람들이 딸 자식을 그에게 시집보내려 하였으나, 위안커는 끝내 결혼하지 않았다. 항상 오색의 향초를 심어놓고 수십 년 동안 그 열매를 먹었다. 어느 날 오색의 나방이 향나무 끝에 앉았는데, 위안커가 그것을 잡아 베를 깔아주었더니 누에를 낳았다. 누에를 칠 때가 되었을 때, 어떤 아름다운 여자가 밤에 찾아와 스스로 위안커의 아내라고 하고는, 누에의 상태를 설명해주었ㄷ가. 위안커는 함께 누에를 길러 120개의 고치를 얻었는데, 모두 항아리만큼이나 컸으며, 고치 하나를 켜는 데 60일이 걸려서야 비로소 끝낼 수 있었다. 일을 마치고 함께 떠나니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園客者, 濟陰人也. 姿貌好而性良, 邑人多以女妻之, 客終不取. 常種五色香草, 積數十年, 食其實. 一旦, 有五色蛾止其香樹末, 客收而荐之以布, 生桑蠶焉. 至蠶時, 有好女夜至, 自稱客妻, 道蠶狀, 客與俱收蠶得百二十頭, 茧皆如甕大, 繅一茧六十日始盡, 訖則俱去, 莫知所在.”

[36] 《선경복식방仙經服食方》은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신선복식약방神仙服食藥方》 10권은 바오푸쯔抱朴子가 지었다.” 동시에 지은이가 알려지지 않은 《신선복식경神仙服食經》 10권과 《신선복식비방神仙服食秘方》 2권, 《신선복식방神仙服食方》 5권 등도 저록著錄되어 있다.

[37] 기유耆儒는 나이 많은 유자老儒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