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안저우(泉州), 중국 푸젠성의 항구이다. 한국인들의 여행 리스트에서는 낯선 도시이겠지만, 반걸음만 들어가면 귀를 종긋할 바다의 역사가 수북하다. 취안저우는 중국 바깥으로는 자이툰(Zaitun, Zaiton)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가 이라크에 파병한 부대 이름, 바로 그 말이다. 자이툰은 아랍어로 올리브인데, 취안저우 서쪽 교외에 자이툰과 비슷한 발음의 엄나무(剌桐, 츠퉁)가 많아서 자이툰이라고 부른 것이 그대로 굳어진 것이다.
중국에 현존하는 이슬람 사원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 취안저우 청정사(淸淨寺)라는 사실도 다소 의아하게 들릴 수 있다. 청정사는 1009년 북송 시대에 창건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중국의 이슬람이라고 하면 신장이나 위구르를 떠올리기 십상지지만 그것은 이슬람 전래 역사의 반쪽에 지나지 않는다. 신장은 유라시아 교역로로 서쪽과 연결되지만 취안저우는 바닷길로 오가던 곳이다. 이슬람만이 아니고 불교 역시 바닷길로 오갔다. 취안저우의 불교 사찰 개원사(開元寺)는 686년 당대에 세워졌으니 1300년이 넘은 역사를 품고 있다.
취안저우를 발판으로 전개됐던 바다의 역사를 일깨워주는 ‘지금 살아있는’ 역사 인물도 있다. 바로 실론의 공주이다. 지금의 스리랑카(1972년 실론에서 변경한 국호)가 아닌 전통시대 실론의 공주이다. 명사(明史)에는 세리파교랄야(世利巴交剌惹)라는 실론의 왕자가 1459년 명나라에 입조했다는 기록이 있다. 입조 후의 사정은 천주부지(泉州府志)에 기록되어 있다. 왕자가 취안저우에서 귀국선을 타려는데 깜짝 놀랄 소식이 전해져 왔다. 본국에서 사촌이 난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했다는 것이다. 왕자는 고심 끝에 취안저우에 눌러앉았다.
실론 왕자는 자기 이름의 한자 표기 첫 글자(世)를 중국식 단성으로 삼았다. 5백여 년이 흐른 20세기 후반 취안저우에서 왕자 후손들의 흔적을 찾아냈다. 사찰에 토지를 기부하기도 했고 과거시험 합격자 명단에 오른 이도 있었다. 현지에 적응하여 살아온 것이다. 명말 모 인사의 공덕비에는 향신의 한 사람으로 이름이 올라있기도 하고, 건륭 48년에 가옥을 매각한 계약서도 발견됐다. 그러나 생존해 있는 후손을 찾지는 못했다. 여기까지는 1986년 스리랑카 의회 대표단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왕자의 ‘실종된 후손’을 찾아달라고 부탁해서 진행된 것이다.
그런데 1996년 취안저우의 한 야산에서 세가갱(世家坑)이라는 표지와 수십 기의 묘가 발견됐다. 비명의 망자는 모두 세(世) 씨였고 사신이라는 말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입구의 사자 석상도 15세기 실론의 양식이었다. 바로 실론 왕자의 후손들이었던 것이다. 묘지를 발견한 후 2년 뒤에 지방정부는 묘지를 철거하고 신도시로 개발하려고 했다. 이에 취안저우 신문은 역사유적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비판하는 기사를 냈다. 이로 인해 세가갱이란 묘지가 지역사회에 널리 알려졌고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비판 기사가 나간 다음날 신문사에 전화 한통이 걸려온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허세음아(許世吟娥, 현대 중국어 표기로는 쉬스인어. 1975년 출생), 조상의 묘지가 훼손될 것을 우려하여 그 묘지의 주인공은 자신의 조상들이라는 것이다.
그녀가 신문사로 와서 밝힌 가문의 내력은 이러했다. 허세음아의 조상은 원래 세 씨였는데 19세기 후반 고조모 대에 아들이 없어 허(許) 씨를 데릴사위로 들이면서 허세(許世)라는 중성(重姓)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오다가 1960년대 문화혁명의 살벌한 광풍이 몰아치자 허세음아의 할머니는 자신들의 외국 관련성이 문제 될까 두려워 족보를 태워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손녀가 성장한 후에 가문의 내력을 말로 전해주며 비밀을 지키라고 당부했다. 허세음아는 할머니의 유훈대로 조상의 내력에 대해 함구하고 살아왔다. 그녀의 남편도 자식도 모르는 역사였던 것이다.
2002년 중국과 우호적이던 스리랑카 정부는 그녀를 실론의 공주라고 칭하며 조상의 나라로 초청했다. 허세음아는 중국과 스리랑카 우호를 상징하는 민간인으로 유명해졌다. 스리랑카 정부는 그녀에게 조상의 나라에 정착하면 도와주겠다고 제안했으나, 그녀는 완곡하게 거절하고 지금도 스리랑카를 위한 ‘평민대사’로서 취안저우에 살고 있다. 세가갱은 개발에 훼손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실론 교민 묘구’라는 표지가 세워져 역사유적지로 보호받고 있다.
취안저우에서 실론까지는 짧게 잡아도 바닷길 6~7천 킬로미터이다. 우리나라 서해안까지의 거리에 비해 5~6배나 되는 거리다. 15세기 조선이 새로운 왕조 세우기에 분투하고 있을 때 서남의 먼 바다에서는 나의 상상을 넘어서는 해로를 오가면서 바다의 역사를 쌓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삼면이 바다이면서 바다에 갇혀 있었던 조선과는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한중일 삼국이 동아시아 역사의 전부인듯 착각하고 살아온 나에게, 남중국해가 동남아를 넘어 인도 스리랑카까지 연결되었다는 것이 실감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살아있는 실론 공주’는 나의 좁은 시야와 둔한 거리 감각을 단숨에 뒤집어 주었다.
취안저우에서 음미하는 바다의 역사는 시박사(市舶使, 市舶司)라는 키워드로도 비춰볼 수 있다. 시박사는 당송과 원명 시대에 국제무역을 관장하는 관직 또는 관아의 명칭이다. 취안저우는 남조(창강 이남에 있던 송-제-양-진 네 왕조) 시대부터 국제무역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당나라는 시박사를 두고 국제무역을 관리했는데 취안저우는 당시에 세 번째로 큰 항구였다. 당나라가 망하고 오대에 들어서는 해외무역을 중요한 세금원으로 인식할 정도로 무역이 발달해갔다.
정화는 명나라의 대항해가라는 명성을 갖고 있지만 그의 신상을 들여다보면 항해가와는 꽤나 다르게 느껴진다. 출생지는 해안이 아닌 서남 내륙의 윈난성이고, 신분은 무관이 아닌 환관이었고, 종교는 이슬람이었다.
송나라는 정책적으로 무역을 중시했다. 취안저우는 광저우에 이어 두 번째 큰 무역항으로 성장했다. 앞의 글에서 찾아갔던 저장성 닝보(당시에는 명주)를 넘어선 것이다. 1087년에는 푸젠의 시박사를 취안저우에 설치했다. 시박사 유적지는 지금도 남아 있다. 취안저우는 동남아와 인도 아랍의 40여개 항구와 거래를 하는 전성기를 맞았다. 남송 시대에는 전체 재정수입의 10%가 취안저우에서 나올 정도였다. 마르코 폴로는 취안저우는 세계에서 가장 큰 항구의 하나이고 많은 상인이 운집하고 화물은 산더미로 쌓여 있어 상상을 넘어선다고 기록했다.
송원 두 왕조는 유라시아 바닷길에서 출중한 해양국가였다. 활기가 넘쳤다. 취안저우의 이슬람 사원 청정사와 몇 만에 달하는 이슬람 거주민들 그것을 말해준다. 실론 왕자와 후손의 이야기도 이 항로에서 맺어진 스토리의 하나이다.
인도양의 동서 양쪽 끝까지 이어지는 가장 장쾌하고 멋진 항해는 명나라 초기에 있었던 정화의 대원정이었다. 1405년부터 1433년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난징에서 출발해 아프리카 동부까지 오갔다. 당시 명나라 정화의 함대가 보유한 해양의 역량은 세계 최대이고 최강이었다. 길이로만 해도 최대 150미터(70미터로 추정하는 학자도 있다)에 이르는 대형 선박 60여 척, 그에 따른 소형 선박도 100여 척, 승조인원 2~3만 명의 대규모 선단이 총 18만5천 킬로미터를 항해하며 남중국해에서 인도양 전역까지 누빈 것이다. 70년이 지난 1492년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콜럼버스 선단과 비교하자면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그렇다고 유럽의 함대처럼 불법무역 노예사냥이나 인명살상이 뒤섞인 반(半) 해적이었던 것도 아니었다. 정화가 항해하던 당시의 인도양은 서로에게 열린 바다였고 공용의 통로였었다.
정화를 기념하는 기념관이나 공원은 난징 푸저우 류안 바오딩 등 여러 곳에 있다. 정화가 태어난 윈난성 쿤밍의 정화공원은 부친의 묘소가 있다.
그러나 정화의 대원정은 출발도 그렇지만 결말도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세계 최강의 해양문화와 역량을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거둬들인 것이다. 항해의 기록마저 파기해버렸다. 그리고는 도항과 사무역을 금지하는 해금(海禁) 체제로 돌아선 것이다.
근현대사를 서양이 바다를 장악하면서 동양을 압박하는 역사라고 요약한다면 아마도 그 변곡점은 정화의 항해가 아니었을까. 그때까지 우월했던 해양의 역량을 명나라는 왜 스스로 포기했을까. 조선이 망국하여 식민지가 되고 그것이 분단의 고통으로 이어진, 먼 이유의 하나는 명나라가 바다를 포기하면서 구축한 동아시아의 조공-공무역 국제질서라고 볼 수도 있다. 바다를 열린 창으로 삼으면 또 하나의 무한공간이요, 담으로 막으려 하면 막을래야 막을 수 없는 광대한 사막일 뿐이다. 그것을 여닫는 것은 한 시대의 선택이었지만 그 결과는 수백 년간 추락하는 역사의 환경이 되었던 것이다.
중국여행객 윤태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