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李贄-분서焚書 명인에게與明因

명인에게與明因1

세상 사람들은 모두 어떤 차별도 없지만, 그래도 속세를 떠나 수행하는 것을 배우려면, 틀에 박힌 도덕의 범주를 벗어난 장부(丈夫)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지금 우리들은 이미 틀에 박힌 도덕의 범주를 벗어난 장부의 일을 하고 있는데, 세상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고 나를 믿기를 기대한다면, 이 또한 미혹에 빠진 것이 아닌가!

더욱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를 믿지 않는데, 그들과 논쟁을 벌이려 한다면, 그 미혹은 더욱 심한 것이다. 나같은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단지 너희들처럼 속세를 떠나서 수행을 배우려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마성(魔性)2에 의해 흔들리는 사람들이 자재(自在)하지 못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서서 마왕(魔王)3이 되어 쫓아내려는 것이니, 너희같은 사람들이 어찌 그들과 논쟁을 벌일 필요 있겠는가?

하물며 그들은 모두 나와 함께 묵고 함께 먹고 마시는 무리가 아니다. 내가 속세를 떠난 사람이 된다고 해서 그들의 머리 위에 빛이 더해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속세를 떠난 사람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수치와 치욕이 그들의 머리 위에 더해지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감히 나에게 와서 직접 논쟁을 벌이려 하겠는가? 그들이 나와 얼굴 마주하여 침을 뱉는 것도 무방하니, 내가 원하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굳은 마음으로 이 큰 일을 끝맺는 것이다.

석가가 출가할 때 정반왕(淨飯王)은 그의 친 어버이였는데도, 상관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다. 성불(成佛)하는 것이 어떤 일이라고, 불도가 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고, 세간의 상식과 잣대로 헤아릴 수 있겠는가? (권2)

1 명인(明因)은 이지가 호북(湖北)에서 사귄 여승의 법명이다.
2 세속의 틀에 박힌 도덕의 범주로 출가한 사람들을 비판하는 논리를 가리키는 말로 해석하는 것이 문맥에 맞을 것 같다.
3 이지는 스스로 세상을 향하여 거침없는 변론과 기탄없는 비판을 마다하지 않는 자신의 처지를 ‘마왕’(魔王)으로 자임했다. 이러한 이지의 입장에 동참하려는 수행자들이 있어, ‘마왕’의 역할은 자기 한 사람이면 족하고, 나머지는 수도에 전념할 것을 권유하는 내용이다.

卷二 書答 與明因

世上人總無甚差別,唯學出世法,非出格丈夫不能。今我等既為出格丈夫之事,而欲世人知我信我,不亦惑乎!既不知我,不信我,又與之辯,其為惑益甚。若我則直為無可奈何,只為汝等欲學出做法者或為魔所撓亂,不得自在,故不得不出頭作魔王以驅逐之,若汝等何足與辯耶!況此等皆非同住同食飲之輩。我為出世人,光彩不到他頭上,我不為出世人,羞辱不到他頭上,如何敢來與我理論!對面唾出,亦自不妨,願始終堅心此件大事。釋迦佛出家時,淨飯王是其親爺,亦自不理,況他人哉!成佛是何事,作佛是何等人,而可以世間情量為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