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李贄-분서焚書 경중승에게 답하다答耿中丞

경중승에게 답하다答耿中丞

지난번 편지를 통해 가르침을 받았습니다만, 제멋대로 어리석게 날뛴다고 저의 병폐를 깊이 지적하셨습니다.

‘성’(性)의 참모습[眞]을 따라 미루어 넓혀서 천하와 더불어 공평무사하게 되는 것을 도(道)라고 합니다.1 이 세상 이 사람들과 함께 이를 따르고자 한다면, 그것이 이르는 범위와 조화의 공2은 실로 크다고 할 수 있지요.

‘학문에 방법[術]이 없을 수 있느냐?’, 이것이 공(公)의 지론이요, 공이 공자로부터 배워서 깊이 믿으면서 가법(家法)으로 삼은 것입니다. 제가 또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공씨(孔氏)의 말이요, 저의 말은 아닙니다. 하늘이 어느 한 사람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으면 자연히 그 사람의 쓰임새가 있는 것이지, 공자로부터 도움을 받아야만 충족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반드시 공자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충족되는 것이라면, 아득한 옛날에는 공자가 없었는데, (그 때 사람들은) 끝내 사람이 될 수 없었단 말입니까? 그러므로 공자의 말을 배우기를 원했던 것이 맹자에서 멈춘 이유지요. 제가 바야흐로 그 잘못을 통감하고 있는 터에, 공은 제가 그것을 원한다고 하십니까?

또한 공자는 일찍이 사람들에게 공자를 배우라고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만약 공자가 사람들에게 공자를 배우라고 가르치려고 했다면, 안연(顔淵)이 인(仁)에 대해 물었을 때, 왜 ‘인(仁)을 행하는 것은 자기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다.’[爲仁由己]3라고 말하고 남으로부터 말미암지 않는다고 말했겠습니까? 왜 ‘옛날에 배우는 사람은 자기를 위했다.’[古之學者爲己]4라고 하고, ‘군자는 자기로부터 찾는다.’[君子求諸己]5고 말했겠습니까? 자기로부터 말미암는 것[由己]이기 때문에 제자들은 당연히 굳이 공자에게 인(仁)에 대해 물어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위하는 것[爲己]이기 때문에 당연히 공자는 문하 제자들에게 배움의 방법을 전수하지 않았습니다. 배움이란 남도 없고 자기도 없는 것[無人無己]입니다. 자기가 없기 때문에, 배움은 자기를 이기는 것[克己]보다 더 우선해야 할 것이 없습니다. 남이 없기 때문에, 가르침은 오직 사람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한두 가지 예를 들어 말하겠습니다. 이를테면 중궁(仲弓)6 같은 경우는 ‘항상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요점을 간략히 취하여 행하는’[居敬行簡]7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인(仁)에 대해 묻자, 공자는 그저 ‘경(敬)과 서(恕)’라고 지적할 뿐이었습니다. 옹(雍)은 총명했기 때문에 그것을 깨닫고 실행하기를 원했습니다.8 또한 사마우(司馬牛)는 형제의 난을 만나 항상 근심과 두려움을 품고 있었는데, 말이나 행동을 신중히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인(仁)에 대해 묻자, 공자는 역시 그저 ‘말을 참는 것이다’라고 지적할 뿐이었습니다. 우(牛)는 총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말에 의심을 품고 도리어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9 이로써 보자면, 공자가 사람들에게 공자를 배우라고 가르친 적이 어디 있습니까? 공자는 사람들에게 공자를 배우라고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공자를 배우는 사람들은 자기를 버리고 반드시 공자를 배움의 지표로 삼으려는 것에 힘쓰니, 공(公)도 역시 정말 우습다고 여길 것입니다.

공자는 일찍이 사람들에게 공자를 지표로 가르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뜻을 얻었다고 해도 필시 자신을 지표로 천하 사람들을 가르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성인이 위에 있으면 원래 만물이 저절로 적재적소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천하 사람들이 마땅히 있을 곳을 얻은 지가 오래 되었는데, 지금에는 있을 곳을 얻지 못하게 되는 까닭은 탐욕스럽고 포악한 자가 이를 뒤흔들고 ‘인자’[仁者]가 이를 해치기 때문입니다. ‘인자’는 천하가 있을 곳을 잃었다고 걱정하여, 일정한 범주를 정하여 있을 곳이라고 제시하는 것에 급급했습니다. 이리하여 덕(德)이니 예(禮)니 하는 것들이 생겨 마음을 규격화하고, 정치니 형벌이니 하는 것들이 생겨 사지를 옭아맴으로써, 비로소 사람들이 있을 곳을 크게 잃게 된 것입니다.

천하의 사람과 만물은 많고도 많은데, 반드시 그 모든 것이 나의 이치대로 되게 하려고 한다면, 이런 일은 천지(天地)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추위는 아교를 꺾을 수는 있지만 조정과 저자거리에서 부귀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꺾을 수는 없고, 뜨거운 열은 쇠를 녹일 수는 있지만 부귀를 향해 앞다투어 나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녹일 수는 없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부귀영달은 나의 타고난 오관(五官)을 편하게 해줍니다. 자연스러운 형세가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그것을 따르고, 따르면 편안해집니다. 따라서 재물을 탐하는 자에게는 봉록을 주고, 권세를 추구하는 자에게는 작위를 주고, 힘이 있는 강한 자에게는 권력을 주고, 능력있는 자에게는 그에 걸맞는 관직을 주고, 약한 자를 양쪽의 휘하에 두고 일을 시킵니다. 덕이 있는 자에게는 명예로운 지위를 주면서 융숭하게 대접하여 모든 사람들이 우러르게 하고, 뛰어난 재능이 있는 자에게는 중요한 자리를 맡기어 (문무․내외의 관직을) 넘나드는 것을 굳이 따지지 않습니다. 각기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게 하고, 각기 자기의 장점을 펼치게 하여, 한 사람도 알맞게 쓰이지 않는 사람이 없게 합니다. 어찌 이 일이 쉽겠습니까?

비록 꾸미고 거짓말하며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노리려고 해도 스스로 애당초 노릴 만큼 좋아하는 것이 없고, 비록 추한 것을 가리고 아름다운 것을 드러내려고 해도 스스로 애당초 가릴 만큼 추한 것이 없습니다. 어찌 이것이 어렵겠습니까? 이것이야말로 진정 천하에 밝은 덕을 밝히고, 앉아서 태평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야말로 진정 실 한 가닥 만큼도 작위의 흔적을 보이지 않고서 저절로 ‘마음이 편하고 날마다 편안한’[心逸日休]10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하니 공자의 학술(學術)에도 또한 오묘한 점이 있습니다. 공자에게도 나름대로 학술(學術)이 있어, 이로써 사람들을 가르쳤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학(學)도 없고 술(術)도 없는 것, 이것이 바로 공자의 학(學)과 술(術)이지요!

공(公)이 이미 스스로를 깊게 믿고 독실히 행하니, 공(公) 스스로의 배움의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반드시 공과 같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공(公)이 행하는 것은 저절로 선하고, 그 쓰임은 저절로 넓고, 배우는 것은 저절로 합당하며, 저 역시 스스로 공을 공경합니다만, 제가 공(公)과 같을 필요는 없습니다. 공(公)이 스스로 저를 아끼는 것을 타당하게 여긴다 해도, 공(公)이 반드시 저보다 현명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공(公)의 이 행실에 따른다면 사람마다 관직에 진출하는 경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같은 사람은 적고 다른 사람은 많아지고, 현명한 사람은 적고 어리석고 모자란 사람은 많아질 것이니, 천하가 과연 언제 태평해지겠습니까!(권1)

耿定向

1 《중용》의 처음에 나오는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를 이지의 견해로 해석한 것이다. 여기서 ‘성’(性)을 무엇으로 보느냐 또는 ‘솔’(率)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등에 따라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2 원문은 ‘범위곡성지공’(範圍曲成之功)이다. 《역경》 <계사상》(繫辭上)에서 “역의 도는 천지의 조화를 빠짐없이 아우르고, 만물의 변화를 빠짐없이 포괄하고, 밤과 낮이 바뀌는 도 즉 음과 양이 상호 작용하는 이치에 통달하게 한다. 그러므로 그 조화의 공이 미치는 범위는 일정하게 규정된 것이 아니고, ‘역’은 일정한 형체가 없다[範圍天地之化而不過, 曲成萬物而不遺, 通乎晝夜之道而知. 故神无方, 而易無體]”라고 한 것을 말한다.

3 《논어》 <안연>(顔淵) 참조.

4 《논어》 <헌문>(憲問) 참조.

5 《논어》 <위령공>(衛靈公) 참조.

6 공자의 제자로 성은 염(冉)이고 이름은 옹(雍)이다. 공자가 “옹은 왕이 될 만하다”(《論語》 <雍也>)라고 했을 정도로 덕행이 뛰어났다고 한다.

7 《논어》 <옹야>(雍也) 참조

8 《논어》 <안연>(顔淵) 참조.

9 《논어》 <안연>(顔淵)에, ‘인’(仁)이나 ‘군자’ 등에 대한 사마우(司馬牛)와 공자의 문답이 실려 있다. 사마우는 요점만을 제시한 공자의 간결한 대답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 듯 자꾸만 되묻곤 했다.

10 《상서》(尙書) <주서․주관>(周書․周官) 참조.

卷一 書答 答耿中丞

昨承教言,深中狂愚之病。夫以率性之真,推而擴之,與天下為公,乃謂之道。既欲與斯世斯民共由之,則其范圍曲成之功大矣。“學其可無術歟”,此公至言也,此公所得于孔子而深信之以為家法者也。仆又何言之哉!然此乃孔氏之言也,非我也。夫天生一人,自有一人之用,不待取給于孔子而後足也。若必待取足于孔子,則千古以前無孔子,終不得為人乎?故為願學孔子之說者,乃孟子之所以止于孟子,仆方痛撼其非夫,而公謂我願之歟?

且孔子未嘗教人之學孔子也。使孔子而教人以學孔子,何以顏淵問仁,而曰“為仁由己”

而不由人也歟哉!何以曰“古之學者為己”,又曰“君子求諸已”也歟哉!惟其由已,故諸子自不必問仁于孔子,惟其為己,故孔子自無學術以授門人。是無人無己之學也。無已,故學莫先于克己;無人,故教惟在于因人。試舉一二言之。如仲弓,居敬行簡人也,而問仁焉,夫子直指之日敬恕而已。雍也聰明,故悟焉而請事。司馬牛遭兄弟之難,常懷憂懼,是謹言慎行人也,而問仁焉,夫子亦直指之曰“其盲也”而已。牛也不聰,故疑焉而反以為未足。

由此觀之,孔子亦何嘗教人之學孔子也哉!夫孔子未嘗教人之學孔子,而學孔子者務舍己而必以孔子為學,雖公亦必以為真可笑矣。

夫惟孔子未嘗以孔子教人學,故其得志也,必不以身為教于天下。”是故聖人在上,萬物得所,有由然也。夫天下之人得所也久矣,所以不得所者,貪暴者擾之,而“仁者”害之也。“仁者”天下之失所也而優之,而汲汲焉欲貽之以得所之域。于是有德禮以格其心,有政刑以縶其四體,而人始大失所矣。

夫天下之民物眾矣,若必欲其皆如吾之條理,則天地亦且不能。是故寒能折膠,而不能折朝市之人;熱能伏金,而不能伏競奔之子。何也?富貴利達所以厚吾天生之五官,其勢然也。是故聖人順之,順之則安之矣。是故貪財者與之以祿,趨勢者與之以爵,強有力者與之以權,能者稱事而官,愞者夾持而使。有德者隆之虛位,但取具瞻,高才者處以重任,不問出入。各從所好,各騁所長,無一人之不中用。何其事之易也?雖欲飾詐以投其好,我自無好之可投;雖欲掩丑以著其美,我自無丑之可掩,何其說之難也?是非真能明明德于天下,而坐致天下太平者欽!是非真能不見一絲作為之跡,而自享心逸日休之效者欽!然則孔氏之學術亦妙矣,則雖謂孔子有學有術以教人亦可也。然則無學無術者,其茲孔子之學術欽!

公既深信而篤行之,則雖謂公自己之學術亦可也,但不必人人皆如公耳故。凡公之所為自善,所用自廣,所學自當。仆自敬公,不必仆之似公也,公自當愛仆,不必公之賢于仆也。

則公此行,人人有彈冠之慶矣;否則,同者少而異者多,賢者少而愚不肖者多,天下果何時而太平乎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