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메모장大賬簿
어렸을 때, 배를 타고 고향으로 성묘하러 간 적이 있었다. 선창에 기대어, 끊임없이 배 옆으로 겹겹이 출렁거리는 물결을 한창 정신없이 보고 있던 중, 깜빡 기우뚱하다가 손에 쥐고 있던 오뚝이를 강물에 떨어뜨렸다. 오뚝이가 물결에 휩쓸려드는 것에 얼이 빠진 나는 허겁지겁 뱃고물로 달려갔다. 하지만 순식간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려, 알 수 없는 아득한 세계에 모든 걸 줘버린 꼴이었다. 텅 빈 내 손을 보다가, 창 밑에서 끊임없이 겹겹이 출렁거리는 물결을 보다가, 오뚝이를 잃은 것에 상심하여 자꾸 배 뒤편의 망망한 허연 물을 참담하게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마음 속에서 의혹과 비애가 술렁거렸다. 놓쳐버린 오뚝이는 어디로 갔으며 어떤 결말을 맞을까 의혹이 일었고, 영원히 알 수 없는 그 운명에 비애가 일었다. 물결 따라 흘러가다 어느 강가에 걸려 멈추어 어느 시골 아이 손에 들어갈 수도 있고, 어느 어부의 그물에 걸려 고기잡이 배의 오뚝이로 살아갈 수도 있고, 깊고 어두운 강바닥으로 영영 가라앉아 오랜 세월 끝에 진흙으로 변해버려 이 세상에선 그 오뚝이를 더 이상 못 보게 될 지도 모른다. 그 오뚝이는 지금 분명히 어디엔가 있긴 있을 것이며, 언젠가는 어떤 결말을 맞을 것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누가 그걸 조사할까? 그 불가사의한 운명을 누가 알까? 그런 의혹과 비애가 내 마음 속에서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혹시 아버지가 그 결과를 알아 내 의혹과 비애를 풀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아니면 장차 내가 자라서 결국 그 결과를 알게 되어 의혹과 비애가 풀릴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과연 나이를 먹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의혹과 비애는 여전히 풀리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훨씬 많아지고 깊어졌다. 초등학교 때 학우와 교외로 산보를 나간 적이 있었다. 우연히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 스틱으로 사용했다. 나중에 그걸 밭에 버리고, 몇 번이고 되돌아 보면서, 자문자답했다.
“저 막대기를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앞으로 저 막대기는 어찌 될까? 영영 저걸 다시 못보겠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영영 알 수 없을 거야!”
혼자 산보를 나갔었다면, 그런 상황에서 나는 차마 그 곁을 떠나지 못하고 좀 더 머물렀을 것이다. 때론 이미 몇 걸음 갔다가 다시 돌아가서, 버린 것을 다시 집어들고 정중하게 작별을 고하고 눈 딱 감고 그것을 버린 후에 돌아온 적도 있다. 나중에 나 스스로가 그런 바보같은 행동에 웃은 적도 있다. 그런 것은 인생에서 하나도 아까울 것 없는 자질구레한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비애와 의혹이 생생하게 내 마음에 가득 쌓여, 그러지 않을 수 없게 하곤 한다.
시끌벅쩍한 곳에서 정신없이 바쁠 때면, 그런 의혹과 비애도 마음 깊은 곳에 눌려 있어, 아무렇지 않게 사물을 취하고 버릴 뿐, 앞에서와 같은 바보같은 짓을 더 이상 안한다. 간혹 그런 와중에도 의혹과 비애가 어쩌다 떠오르긴 한다. 그러나 대중의 감화와 현실의 압박의 힘이 너무 위대하여 즉시 그런 의혹과 비애를 억눌러서, 의혹과 비애는 그저 내 마음 속에서 한 순간 반짝일 뿐이다. 그런데 조용한 곳에 가면, 고독할 때, 특히 밤에, 그것들이 다시 온통 내 마음에 떠오른다. 등 밑에서 회계 연습장을 펴고 붓을 들어, 하루 동안 암송했던 시를 종이에다 끄적끄적 쓴다.
“춘잠도사사방진, 랍구성회……”(春蠶到死絲方盡, 蠟炬成灰……)
쓰다 말고 집어들어 등불 위에 대고 종이 한 귀퉁이에 불을 붙인다. 화라락 불꽃이 번지는 것을 보며, 글자 하나하나와 마음 속으로 작별을 고한다. 완전히 재로 변했건만, 그 종이가 타기 전의 온전한 형태가 문득 내 눈 앞에 선명하게 떠오른다. 바닥에 떨어진 재를 내려다보자면, 또 암담한 비애를 느낀다. 내가 방금 일 분 전에 분명히 종이에 썼던 글자들을 다시 한 번만 좀 보려고 한다면 어떨까? 이 세상 그 어떤 힘 있는 세도가, 도지사, 주지사, 대통령이라고 해도, 전 세계 황제의 권력에 부탁한다 해도, 혹은 요순, 공자, 소크라테스, 크라이스트 등 모든 옛 성현이 부활해서 협력하여 내게 방법을 마련해본다 해도,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 사실 나는 그런 말도 안되는 바람을 품는 건 아니다. 나는 그저 재를 바라보며, 이제는 분간할 수 없는 자그만 먼지로 변해버린 그 속에서, 어느 것이 ‘춘(春)’이 탄 재인지 어느 것이 ‘잠(蠶)’이 탄 재인지…… 각 글자의 유해를 좀 찾아보고 싶을 따름이다. …… 또한 내일 아침 이곳 종업원이 이 재를 쓸어갈텐데, 그러면 어떻게 될까? 만약 바람 속으로 날아간다면, 각각 어디로 날아갈까? ‘춘(春)’이 탄 재는 누구 집으로 날아들까? ‘蠶(잠)’이 탄 재는 누구 집으로 날아들까?…… 만약 진흙 속에 섞인다면, 어떤 식물에 영양을 공급할까?…… 모든 것이 아득하여 알 수 없는 영원한 커다란 의혹인 것이다.
밥 먹을 때, 그릇에서 밥풀 하나 내 옷깃에 떨어진다. 그 밥풀을 보고, 생각을 안 하면 그만이지만, 생각을 했다 하면 또 하나의 커다란 의혹과 비애가 일어난다. 언제 어느 농부가 어느 밭에서 뿌린 씨앗의 벼에서, 그 중 어떤 벼이삭에 열매로 맺혀서, 밥을 하여 이 밥풀이 된 낟알로 자랐을까? 또한 그 낟알이 열린 벼를 누가 베고, 누가 갈고, 누가 찧고, 누가 팔아, 우리 집에 오게 되어, 지금 이렇게 밥풀이 되어, 내 옷깃에 떨어지게 되었을까? 이런 의문에는 그 답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 밥풀 자신만이 알 뿐, 조사하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주머니에서 동전을 한 줌 꺼내보면, 분명히 하나하나 복잡하고 기나긴 역사가 있다. 지폐나 은화는 사람 손을 거치면서 때로 인장이 하나 더 찍히기도 한다. 그러나 동전에서는 그동안 지내온 내력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가 없다. 그 중 어떤 것은 거리에서 거지가 애걸하는 목표물이 되었을테고, 어떤 것은 노동자의 피땀어린 댓가가 되었을테고, 어떤 것은 죽 한 그릇과 바뀌어 배고픈 사람의 굶주린 배를 채웠을테고, 어떤 것은 사탕 하나와 바뀌어 어떤 아이의 우는 입을 틀어막았을테고, 어떤 것은 도적의 장물에 끼었을테고, 어떤 것은 부자의 두둑한 배 근처에서 편안히 잠을 잔 적이 있을테고, 어떤 것은 편안하게 변소 바닥에 숨어 지냈을테고, 어떤 것은 신세도 사납게 지금 말한 모든 내력을 다 거쳤을 것이다. 또한 그 중 어떤 것은 내 주머니에 처음 들어온 것이 아닐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이 역시 알 수 없다. 이 동전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나는 틀림없이 귀한 손님으로 받들어 모시며 그들이 그동안 지내온 얘기를 차례대로 해달라고 하여 경청했으리라. 만약 그것들이 글을 쓸 수 있다면, 틀림없이 동전 하나하나마다 <로빈슨 표류기>보다 더 신기한 책을 한권씩 저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전들은 하나같이 마치 죽어도 안 불겠다는 범인인 듯, 사건과 관련된 온갖 내막과 진상을 마음 속에 꼭꼭 감추고 있음이 틀림없으면서, 죽어도 비밀을 누설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젠 이미 서른이 넘어서, 반평생 이상을 살았다. 가슴에 쌓아둔 그런 의혹과 비애는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갔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자극은 담박해져서, 이전 소년 시절 신선하고 짙은 자극에는 훨씬 못 미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참고하며 애쓴 결과이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저 천하태평하게 밥을 뱃속에 채우고, 돈을 주머니에 집어넣을 따름이요, 그런 것은 꿈조차 안 꾸는 것 같았다. 이는 살아가는 데 확실히 큰 도움이 되어, 나는 죽어라고 다른 사람들을 스승삼아, 그들의 행복을 배우려고 했다. 지금까지 서른이 되도록 배웠건만, 아직 졸업은 못했다. 얻은 것은 단지 그런 의혹과 비애의 자극이 조금 담박해진 것 뿐이요, 살아갈수록 그 양은 나날이 많아지기만 했다.
어느 여관에 묵었다가 떠날 때마다, 아무리 객실이 형편없었을지라도, 아무리 벌레가 많았을지라도, 하여튼 떠날 때가 되면 잠시 고개 숙이고 “내가 또 이 객실에서 묵을 날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영원한 결별이로구나!”라며 개탄하곤 한다. 기차에서 내릴 때면, 아무리 그 여행이 힘들었을지라도, 아무리 옆자리 사람이 지겨웠을지라도, 하여튼 내릴 때가 되면 어떤 특별한 느낌이 생기게 된다. “내가 또 이 사람과 같은 자리에 앉을 날이 있을까? 이게 이 사람과 영원한 결별이 아닐까?” 그러나 이런 느낌이 솟는 것도 아주 순간적이고 어렴풋하여, 정말이지 날아가는 새의 검은 그림자가 연못을 스치고 지나가듯 그저 몇 초 동안 내 마음에 번쩍 스쳐 지나가는 것에 불과할 뿐, 잠깐 뒤엔 전혀 그런 일이 없다. 그동안 배우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 역시 순전히 선생님 — 대중 — 앞에 있어야만 가능하다. 일단 선생님이 보이지 않으면, 무리와 떨어져 혼자 있을 때면, 나의 옛 작태가 그대로 다시 꿈틀거린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이다. 백도화(白桃花) 꽃잎 한 조각이 봄바람에 창으로 날아와, 내 원고지 위에 떨어진다. 분명히 우리집 마당의 백도화 나무에서 날아온 것일텐데, 그것이 처음에 어떤 가지 어떤 꽃에 붙어있던 것인가를 누가 알까? 창가 뜰에 흰눈처럼 무수히 떨어진 꽃잎, 분명히 저마다 원래 붙어 있던 가지와 꽃자루가 있었을텐데, 누가 일일이 출처를 조사하여 그 꽃잎들이 원래 꽃자루로 돌아가게 할 수 있을까? 이런 의혹과 비애가 또 내 마음을 습격한다.
어쨌든,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런 의혹과 비애가 끊임없이 줄기차게 내 마음을 습격했지만, 끝내 풀지 못했다. 나이가 늘어갈수록, 지식이 많아질수록, 점점 큰 힘으로 습격해온다. 다른 사람들의 본보기가 엄하게 압박해올수록, 그에 대한 반동 역시 더욱 강해진다. 30여 년 동안 내가 경험한 의혹과 비애를 일일이 기록하자면, 아마 <사고전서(四庫全書)>나 <대장경>보다 그 양이 많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 역시 단지 나 한 사람이 30년이라는 짧은 세월 동안 경험한 것에 불과할 따름이다. 커다란 우주와 드넓은 세계와 수많은 사람의 생각에 비하면, 내가 느낀 것은 그야말로 항하(恒河) 중의 자그마한 모래알에 불과할 뿐이다.
한없이 큰 메모장을 보는 듯도 하다. 메모장에는 우주 및 세계의 온갖 사물과 사건의 과거, 현재, 미래 삼세의 갖가지 우여곡절과 인과관계가 상세하게 실려 있다. 작고 작은 원자로부터 거대한 천체에 이르기까지, 미생물의 꿈틀거림으로부터 혼돈의 영겁에 이르기까지, 그것들의 유래, 경과, 결과 등이 하나도 빠짐없이 상세히 기록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래야 그간의 내 의혹과 비애가 모두 풀릴 것이다. 오뚝이가 어디에 있는지, 스틱이 어떻게 되었는지, 재는 어디로 갔는지, 하나하나 모두 기록되어 있다. 밥풀과 동전의 내력을 하나하나 찾아볼 수 있다. 내가 어떤 인연으로 그 여관에서 묵게 되었고 그 기차를 타게 되었는지, 나와 관련된 이런저런 인연이 진작부터 어느 쪽에 실려 있다. 백도화 꽃잎 하나하나가 원래 붙어 있던 꽃자루를 모두 확실하게 찾아볼 수 있다. 정녕 영원토록 알 수 없느냐며 내가 누차 탄식했던 것들, 마당 모래더미 모래알의 숫자조차 확실하게 기재되어 있다. 그 아래 쪽에는 또 그 중 몇 모래알은 어제 내가 손으로 집어본 것이라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내가 어제 집어본 모래를 모래더미에서 골라내려 하면, 역시 이 메모장에서 찾아보면 어렵지 않다. — 내가 30년 동안 보고, 듣고, 행한 모든 것이 하나도 빠짐없이 너무나 상세하게 실려 있고 고증되어 있다. 그런데 그것이 차지하는 자리 또한 그저 페이지(PAGE)의 한 귀퉁이일 뿐, 전체 메모장에서 무한대 분의 1밖에 안된다.
이 거대한 메모장이 우주에 분명히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래야 내 의혹과 비애가 모두 풀릴테니.
(1929년 청명절 지나고 석문만에서 쓰다)
(1929년 5월 <小說月報> 20권 5기)
大賬簿
我幼年时,有一次坐了船到乡间去扫墓。正靠在船窗口出神观看船脚边层出不穷的波浪的时候,手中拿着的不倒翁失足翻落河中。我眼看它跃入波浪中,向船尾方面滚腾而去,一刹那间形影俱杳,全部交付与不可知的渺茫的世界了。我看看自己的空手,又看看窗下的层出不穷的波浪,不倒翁失足的伤心地,再向船后面的茫茫白水怅望了一会,心中黯然地起了疑惑与悲哀。我疑惑不倒翁此去的下落与结果究竟如何,又悲哀这永远不可知的命运。它也许随了波浪流去,搁住在岸滩上,落入于某村童的手中;也许被鱼网打去,从此做了渔船上的不倒翁;又或永远沉沦在幽暗的河底,岁久化为泥土,世间从此不再见这个不倒翁。我晓得这不倒翁现在一定有个下落,将来也一定有个结果,然而谁能去调查呢?谁能知道这不可知的命运呢?这种疑惑与悲哀隐约地在我心头推移。终于我想:父亲或者知道这究竟,能解除我这种疑惑与悲哀。不然,将来我年纪长大起来,总有一天能知道这究竟,能解除这疑惑与悲哀。
后来我的年纪果然长大起来。然而这种疑惑与悲哀,非但依旧不能解除,反而随了年纪的长大而增多增深了。我偕了小学校里的同学赴郊外散步,偶然折取一根树枝,当手杖用了一会,后来抛弃在田间的时候,总要对它回顾好几次,心中自问自答:“我不知几时得再见它?它此后的结果不知究竟如何?我永远不得再见它了!它的后事永远不可知了!”倘是独自散步,遇到这种事的时候我更要依依不舍地留连一会。有时已经走了几步,又回转身去,把所抛弃的东西重新拾起来,郑重地道个诀别,然后硬着头皮抛弃它,再向前走。过后我也曾自笑这痴态,而且明明晓得这些是人生中惜不胜惜的琐事;然而那种悲哀与疑惑确实地充塞在我的心头,使我不得不然!
在热闹的地方,忙碌的时候,我这种疑惑与悲哀也会被压抑在心的底层,而安然地支配取舍各种事物,不复作如前的痴态。间或在动作中偶然浮起一点疑惑与悲哀来;然而大众的感化与现实的压迫的力非常伟大,立刻把它压制下去,它只在我的心头一闪而已。一到静僻的地方,孤独的时候,最是夜间,它们又全部浮出在我的心头了。灯下,我推开算术演草簿,提起笔来在一张废纸上信手涂写日间所谙诵的诗句:“春蚕到死丝方尽,蜡炬成灰……”没有写完,就拿向灯火上,烧着了纸的一角。我眼看见火势孜孜地蔓延过来,心中又忙着和个个字道别。完全变成了灰烬之后,我眼前忽然分明现出那张字纸的完全的原形;俯视地上的灰烬,又感到了暗淡的悲哀:假定现在我要再见一见一分钟以前分明存在的那张字纸,无论托绅董、县官、省长、大总统,仗世界一切皇帝的势力,或尧舜、孔子、苏格拉底、基督等一切古代圣哲复生,大家协力帮我设法,也是绝对不可能的事了!——但这种奢望我决计没有。我只是看看那堆灰烬,想在没有区别的微尘中认识各个字的死骸,找出哪一点是春字的灰,哪一点是蚕字的灰。……又想象它明天朝晨被此地的仆人扫除出去,不知结果如何:倘然散入风中,不知它将分飞何处?春字的灰飞入谁家,蚕字的灰飞入谁家?……倘然混入泥土中,不知它将滋养哪几株植物?……都是渺茫不可知的千古的大疑问了。
吃饭的时候,一颗饭粒从碗中翻落在我的衣襟上。我顾视这颗饭粒,不想则已,一想又惹起一大篇的疑惑与悲哀来:不知哪一天哪一个农夫在哪一处田里种下一批稻,就中有一株稻穗上结着煮成这颗饭粒的谷。这粒谷又不知经过了谁的刈、谁的磨、谁的舂、谁的粜,而到了我们的家里,现在煮成饭粒,而落在我的衣襟上。这种疑问都可以有确实的答案;然而除了这颗饭粒自己晓得以外,世间没有一个人能调查,回答。
袋里摸出来一把铜板,分明个个有复杂而悠长的历史。钞票与银洋经过人手,有时还被打一个印;但铜板的经历完全没有痕迹可寻。它们之中,有的曾为街头的乞丐的哀愿的目的物,有的曾为劳动者的血汗的代价,有的曾经换得一碗粥,救济一个饿夫的饥肠,有的曾经变成一粒糖,塞住一个小孩的啼哭,有的曾经参与在盗贼的赃物中,有的曾经安眠在富翁的大腹边,有的曾经安闲地隐居在毛厕的底里,有的曾经忙碌地兼备上述的一切的经历。且就中又有的恐怕不是初次到我的袋中,也未可知。这些铜板倘会说话,我一定要尊它们为上客,恭听它们历述其漫游的故事。倘然它们会纪录,一定每个铜板可著一册比《鲁滨逊飘流记》更奇离的奇书。但它们都像死也不肯招供的犯人,其心中分明秘藏着案件的是非曲直的实情,然而死也不肯泄漏它们的秘密。
现在我已行年三十,做了半世的人。那种疑惑与悲哀在我胸中,分量日渐增多;但刺激日渐淡薄,远不及少年时代以前的新鲜而浓烈了。这是我用功的结果。因为我参考大众的态度,看他们似乎全然不想起这类的事,饭吃在肚里,钱进入袋里,就天下太平,梦也不做一个。这在生活上的确大有实益,我就拼命以大众为师,学习他们的幸福。学到现在三十岁,还没有毕业。所学得的,只是那种疑惑与悲哀的刺激淡薄了一点,然其分量仍是跟了我的经历而日渐增多。我每逢辞去一个旅馆,无论其房间何等坏,臭虫何等多,临去的时候总要低徊一下子,想起“我有否再住这房间的一日?”又慨叹“这是永远的诀别了!”每逢下火车,无论这旅行何等劳苦,邻座的人何等可厌,临走的时候总要发生一种特殊的感想:“我有否再和这人同座的一日?恐怕是对他永诀了!”但这等感想的出现非常短促而又模糊,像飞鸟的黑影在池上掠过一般,真不过数秒间在我心头一闪,过后就全无其事。我究竟已有了学习的功夫了。然而这也全靠在老师——大众——面前,方始可能。一旦不见了老师,而离群索居的时候,我的故态依然复萌。现在正是其时:春风从窗中送进一片白桃花的花瓣来,落在我的原稿纸上。这分明是从我家的院子里的白桃花树上吹下来的,然而有谁知道它本来生在哪一枝头的哪一朵花上呢?窗前地上白雪一般的无数的花瓣,分明各有其故枝与故萼,谁能一一调查其出处,使它们重归其故萼呢?疑惑与悲哀又来袭击我的心了。
总之,我从幼时直到现在,那种疑惑与悲哀不绝地袭击我的心,始终不能解除。我的年纪越大,知识越富,它的袭击的力也越大。大众的榜样的压迫越严,它的反动也越强。倘一一记述我三十年来所经验的此种疑惑与悲哀的事例,其卷帙一定可同《四库全书》、《大藏经》争多。然而也只限于我一个人在三十年的短时间中的经验;较之宇宙之大,世界之广,物类之繁,事变之多,我所经验的真不啻恒河中的一粒细沙。
我仿佛看见一册极大的大账簿,簿中详细记载着宇宙间世界上一切物类事变的过去、现在、未来三世的因因果果。自原子之细以至天体之巨,自微生虫的行动以至混沌的大劫,无不详细记载其来由、经过与结果,没有万一的遗漏。于是我从来的疑惑与悲哀,都可解除了。不倒翁的下落,手杖的结果,灰烬的去处,一一都有记录;饭粒与铜板的来历,一一都可查究;旅馆与火车对我的因缘,早已注定在项下;片片白桃花瓣的故萼,都确凿可考。连我所屡次叹为永不可知的、院子里的沙堆的沙粒的数目,也确实地记载着,下面又注明哪几粒沙是我昨天曾经用手掬起来看过的。倘要从沙堆中选出我昨天曾经掬起来看过的沙,也不难按这账簿而探索。——凡我在三十年中所见、所闻、所为的一切事物,都有极详细的记载与考证;其所占的地位只有书页的一角,全书的无穷大分之一。
我确信宇宙间一定有这册大账簿。于是我的疑惑与悲哀全部解除了。
一九二九年清明过了写于石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