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 +1-소식蘇軾 오잠현 승려의 녹균헌에於潛僧綠筠軒 (연재를 마치며)

오잠현 승려의 녹균헌에 於潛僧綠筠軒/송宋 소식蘇軾

可使食無肉 식사에 고기가 없어도 괜찮지만
不可使居無竹 거처에 대나무가 없으면 안 되네
無肉令人瘦 고기가 없으면 사람이 마르지만
無竹令人俗 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이 속되네
人瘦尚可肥 마른 것이야 다시 살찌면 되지만
士俗不可醫 선비가 속된 것은 고칠 수 없네
旁人笑此言 옆 사람이 이 말 듣고 비웃으며
似高還似癡 고상한 듯하나 도리어 어리석다 하네
若對此君仍大嚼 이 분을 대하고 고기를 실컷 먹는다면
世間那有揚州鶴 세상에 어찌 양주학이란 말이 있겠는가

이 시는 소식(蘇軾, 1037~1101)이 1073년 37세에 항주 통판을 할 때 지은 시이다. 이 시에 나오는 녹균헌(綠筠軒)은 오잠현 적조사(寂照寺)에 있는 건물로 승려 혜각(惠覺)이 거처하던 곳인데 그의 이름은 자(孜)이다. 소식이 오잠현으로 시찰을 나갔다가 이 녹균헌에 들러 대나무가 아주 그윽하게 자란 것을 보고 이 시를 써 준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우선 승려의 거처에 대해 써 준 제시(題詩)라는 것을 감안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냥 일반인에게 이 시의 내용을 말한다면 다소 편협한 면이 있지만 승려에게는 계율에도 부합할 뿐만 아니라 대나무를 잘 가꾸고 있는 승려에 대한 칭송의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행의 길이가 자유로운 고시이며 운자를 3번 바꾸었다. 자신의 의론을 잘 드러내기 위해 이런 형식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가 기반하고 있는 것은 2개의 고사이다. 하나는 왕희지(王羲之)의 아들 왕휘지(王徽之)의 고사이며, 다른 하나는 양주학(揚州鶴)의 고사이다.

왕휘지는 자유(子猷)라는 자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데 대나무를 아주 좋아하였다. 잠시 남의 집 빈집을 얻어 살 때 대나무를 심으니 다른 사람이 의아해했다. 이때 왕휘지는 이분이 없이는 하루도 살 수가 없다는 말을 한 것으로 유명해졌다. 이분은 원문에 ‘차군(此君)’이라고 되어 있어 차군이 대나무의 별칭이 된 것이다.

양주학은 현실에서 실현하기 어려운 소망을 말한다. 옛날 어떤 사람들이 모여서 각각 자기 소원을 말하였다. 한 사람은 양주 자사(揚州刺史)가 되기를 원하고, 한 사람은 재물이 많기를 원하고, 한 사람은 학을 타고 하늘에 오르기를 원했는데, 어떤 사람이 허리에 10만 관의 금을 차고는 학을 타고서 양주로 날아가기를 원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런 일로 여러 가지 좋은 것은 겸하고자 하나 현실에서 이루기 어려운 것을 표현할 때 이 말을 쓴다.

시에서 먹는 것은 좀 시원찮아도 되지만 고상한 정신을 하루라도 망각할 수 없다는 말은 왕휘지의 말을 계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견해에 대한 비판을 의식하고 이렇게 하는 것은 세상의 좋은 것을 다 얻을 수 없고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한 것이다.

하늘을 나는 새에게는 강한 이빨을 주지 않고 강한 이빨이 있는 짐승에게는 날개를 주지 않았다는 말이 있다. 이를 여치거각(予齒去角)이라 하는데 줄여서 치각(齒角)《한서(漢書)》 <동중서전(董仲舒傳)>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이 권력을 잡고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면서 또 고상한 이름까지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그것이 양립할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오늘 박물관에 가려면 그 시간에 다른 것을 하는 것은 버려야만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높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인생관이나 가치관의 이름으로 선택하는 것도 있지만 매 수간 선택의 상황을 만나게 된다. 이런 선택도 잘 하자면 결국 그 사람의 심성과 평소에 연마한 정신적 힘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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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365일 연재는 이것으로 마친다.
처음엔 가볍게 생각했지만 하다 보니 만만치 않은 일이란 걸 알았다. 그러나 이를 돌파하는 과정에서 시를 보는 눈이 한 단계 성장하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시를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함께 해준 독자들은 어땠을지 모르겠다. 나는 시에 대해 중요한 토론을 약간은 기대하였는데 댓글은 대개 작은 문제를 지적하거나 시의 내용과 다소 거리가 먼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마도 말없이 시를 감상하려는 의도이거나 매체의 성격이 그런 것 아닌가도 생각한다.

성원해준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린다.

朱耷、石涛,《兰竹石图》,广州艺术博物院藏, 출처 澎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