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그때 온 천하게 큰 가뭄이 들어 태종황제께서 칙령을 내려 5품 이상의 모든 관원은 정치의 득실을 가려내고 나름의 대책을 세우는 글을 올리도록 하였다. 상하 역시 관직 품계 상 당연히 대책 글을 올려야했다. 하여 상하 역시 그 작업을 맡아줄 인재를 널리 찾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왕 여인이 마주 이야기를 꺼내니 이는 허기질 때 밥 주는 격이요, 목마를 때 시원한 물 한 잔 주는 격이요, 가려울 때 긁어주는 격이니 어찌 마다하겠는가? 상하 집의 하인이 마주 이야기를 상하에게 꺼내니 상하는 너무도 반가운지라 바로 마차를 마련하여 보내주며 어서 데려오라 한다. 마주는 왕 여인에게 인사를 하고서 상하의 집으로 이거하였다. 상하가 마주를 만나보니 생긴 것부터가 범상치 아니하여 저절로 신뢰와 존경심이 일어날 정도였다. 상하는 그 날로 마주와 술잔을 서로 기울이고 서재를 치우고서는 마주를 머물게 하였다.
다음 날 상하는 백은 스무 냥과 비단 열 필을 친히 들고서 서재로 찾아와 마주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런 다음 태종황제가 지금 시무대책 글을 받고 있는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마주는 상하의 말을 다 듣고 나서 먹을 갈아 먹물을 붓에 듬뿍 적셔 하얀 종이 위에다 성큼성큼 글자를 써내려가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일필휘지 <세상을 이롭게 하는 스무 가지 대책>을 완성하였다.
상하는 감탄하여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상하는 마주가 작성한 세상을 이롭게 하는 스무 가지 대책을 다시 자기가 직접 종이에 한 자 한 자 옮겨 적었다. 그런 다음 상하는 그것을 다음 날 태종황제에게 올렸다. 태종황제가 그것을 받아들고 읽더니 한 조목 한 조목 넘어갈 때마다 침이 마르게 칭찬하고 또 칭찬하더니 마침내 상하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그래. 이런 식견은 사실 그대가 직접 적었을 리는 만무하고 대체 누가 이런 걸 작성하였단 말이요?”
상하는 바짝 엎드려 말씀을 올렸다.
“신이 죽을 죄를 지었나이다. 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스무 가지 대책>은 우둔한 소신이 차마 황제폐하의 어명을 거스를 수가 없어 저희 집의 가신인 마주에게 부탁하여 지은 것입니다.”
“그래 그럼 그 마주는 지금 어디에 있소이까? 어서 마주를 불러 짐 앞에 보이도록 하시오.”
황제의 명령을 수행하는 비서관이 상하의 집으로 곧바로 달려가 마주를 찾았다. 마주는 이날도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코를 골며 잠들었는지라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일어날 줄을 몰랐다.
그래도 황제의 추상같은 명령을 받들고 왔는지라 거듭 깨우지 않을 수 없었다. 비서관이 마주를 깨우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으려니 상하가 달려왔다.
어진 선비를 찾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니,
태종의 어진 선비 찾음이 이처럼 절실하였구나.
조정에서 재주를 아낌이 이와 같았으니,
재주 있는 자가 어찌 초야에서 덧없이 묻혔으랴.
상하는 황급히 서재로 달려와 심부름꾼에게 마주를 부축하라 하고는 차가운 물을 마주 얼굴에 뿜으니 그제야 마주가 정신을 차렸다. 마주는 황제께서 자신을 찾는다는 말을 듣고서 황급히 말에 올라탔다. 상하가 마주를 이끌고 황궁에 도착하였다. 황제를 알현하고서 인사를 올리니 황제의 질문들이 들려온다.
“그대는 어디 출신이오, 지금 어떤 벼슬을 하고 있소?”
“소신은 치평 태생으로 일찍이 박주의 조교를 지냈사오나 제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였기에 서울로 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폐하를 뵙게 되었으니 무한한 영광이옵니다.”
태종은 그 말을 듣고서 너무도 기뻐하며 즉시 감찰어사로 임명하고 도포와 홀과 관대를 하사
하였다. 마주는 그것들을 받아서 입고는 은혜에 감사드리며 물러났다. 마주는 상하 집에 돌아와 자신을 천거해 준 은혜에 거듭 감사하였다. 상하는 성대한 잔치를 열어 술을 따라주며 마주를 격려하고 축하하였다.
술자리가 파할 무렵, 상하는 이제 더 이상 마주를 자기 집 서재에만 붙잡아 둘 수 없겠다는 생각에 마차를 따로 준비하여 떡 가게 왕 여인에게 보내주고자 하였다. 이 때 마주가 상하에게 이렇게 아뢰었다.
“왕 여인은 사실 제 친척이 아닙니다. 그저 왕 여인의 도움으로 그 집에 기식하고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상하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럼 그대의 가족은 어디 있습니까?”
“말씀드리기 부끄럽습니다만 집안이 가난하여 아직까지 장가를 들지 못하였습니다.”
“원천강 선생이 관상을 보더니 왕 여인이 정경부인이 될 관상이라고 하여 혼약을 권할까 하였으나 둘 사이가 친척이라 하여 꺼려하였는데 친척도 아니라 하니 이것도 천생연분이라 그대는 걱정 마시라, 내가 꼭 중매를 서리다.”
마주 역시도 평소 왕 여인에게 마음이 있었던지라 바로 응낙하였다.
“선배께서 이렇게 저를 위하여 다리를 놓아주신다면 그 은혜를 잊지 않겠나이다.”
그날 밤 마주는 상하의 집에서 하루 더 묵었다. 다음 날 아침 마주는 상하랑 같이 입궐하여 황제를 알현하였다. 때는 바야흐로 돌궐이 반란을 일으켜 태종황제가 사대총관을 출병시켜 정벌케 하고자 하였으므로 이 건과 관련하여 마주에게 오랑캐를 평정하고 안정시킬 계책을 보고하도록 하였다. 마주는 황제의 면전에서 계책을 상주하는데 말하는 모양은 청산유수요, 하는 말마다 이치에 딱딱 들어맞아 황제가 흡족해하더니 마침내 감찰어사 직 대신 급사중의 직에 봉하더라. 상하는 현명한 선비를 추천한 공이 있다하여 비단 백 필을 하사받았다.
한편 상하는 즉시 사람을 파견하여 왕 여인에게 만나자고 기별을 하였다. 왕 여인은 상하가 또 자기에게 억지 청혼을 하는 것이라 지레짐작하고는 숨어버리고는 결코 응하지 않을 기세였다. 상하는 왕 여인의 태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가게 심부름꾼을 부르더니 이웃집 노파 하나를 불러오게 하였다. 왕 여인의 떡 가게에 한 노파가 들어오니 상하는 그 노파를 불러 세우고는 자신의 말을 노파에게 전하도록 하였다.
“지금 나 상하가 이 떡 가게에 찾아온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급사중 마주의 중매를 서고자 함이오.”
왕 여인은 그 전후 사정을 알아보고는 급사중 마주가 바로 며칠 전 자신의 가게에 머물던 그 마주임을 알게 되었다. 왕 여인은 전날 백마가 용으로 변하는 꿈이 이렇게 현실로 이루어졌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이거야말로 하늘이 내린 인연인데 어찌 거역할 수 있으랴! 왕 여인이 감히 거스르지 못함을 본 상하는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비단을 왕 여인에게 결혼 예물로 주었다. 빈집을 빌리고 마주에게 그 집으로 이사 들게 하고는 길일을 택하여 왕 여인과 결혼식을 올리게 하였다. 결혼식 날 문무백관들이 모두 와서 축하하였음은 말할 필요조차 없겠다.
빌어먹던 보잘것없던 저 선비,
하루아침에 고관대작이 되어버렸네.
왕 여인은 마주에게 시집을 갔고 자신의 살림을 모두 마주 집으로 합쳤다. 동네 사람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왕 여인의 행실을 칭송하고 또 칭송하였다.
한편, 황제는 마주를 만난 다음부터는 마주의 말이라면 무조건 신용하고, 마주가 건의하는 것이라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없었다. 불과 3년 만에 마주는 마침내 이부상서가 되었다. 왕 여인 역시 마침내 정경부인이 되었다.
신풍 객점의 주인 왕씨는 마주가 이부상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특별히 장안으로 찾아가 마주를 한 번 만나보고자 하였고 그 김에 우선 자신의 여조카 왕 여인을 먼저 만나보고자 만수가에 도착하여 떡 가게를 찾았으나 아무리 보아도 떡 가게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왕씨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왕 여인은 이미 떡 가게를 같이 하던 남편하고는 사별하였고 개가를 하였는데 그 남편이 바로 마주라는 것이었다. 왕씨는 이 소식을 듣고서 더욱 더 기뻐하였다.
왕씨는 물어물어 마 상서 댁을 찾아가 마주와 왕 여인을 만나 서로 지난 이야기를 나누었다. 왕씨가 그 집에서 한 달여를 머물다가 이제 떠나려 하니 마주가 왕 씨에게 천금을 선물로 주었다. 하나 왕씨가 어찌 그걸 그냥 날름 받으려하겠는가?
“내가 그대 집 벽에 써두었던 한 끼 식사가 천금보다 귀하다는 그 시 한 구절을 그대는 잊지는 않으셨겠지요. 내가 어찌 그대에게 받은 그 한 끼 식사의 은혜를 갚지 않을 수 있겠소?”
왕씨는 그 말을 듣고서 그제야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마주의 선물을 받았다. 왕씨는 마주의 선물 덕분에 신풍의 거부가 되었다. 이거야말로 자비를 베풀고 은혜를 받는 것이요,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것 아니겠는가.
한편, 박주의 자사를 지냈던 달해가 부모상을 당하여 고향으로 갔다가 상복을 벗고서 장안으로 돌아와서는 자기가 예전에 마주를 파면한 것을 생각하고는 마음속으로 송구하여 차마 마주에게 나아가 복직 신청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주는 그런 달해에게 여러 차례 통기하여 걱정하지 말고 나오라 하였다. 달해는 마주를 뵙더니 바닥에 바짝 엎드려 이렇게 아뢰었다.
“소인이 눈이 있어도 태산 같은 인물을 알아보지 못하였으니 그 죄는 죽어 마땅하옵니다.”
마주가 황급히 달해를 일으켜 세우며 말하였다.
“자사께서는 여러 학생의 교육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었으니 당연히 품행이 방정한 선비를 택하여 조교로 삼아야 했지요. 술 마시며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른 저의 잘못이지 그것이 어찌 자사의 죄이겠소이까.”
마주는 그 날로 달해를 경조윤京兆尹에 보임해주었다. 모든 관원들은 마주의 도량이 넓은 것을 보고 감동해 마지않았다. 마주는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왕 여인과 다복하게 함께 하였다.
일대의 명신이 술독에서 났구나,
떡 파는 왕 여인 역시 기인 중의 기인이로고.
세상 사람들 눈이 멀어,
돌멩이 속의 진주를 알아보지 못하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