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 왕안석王安石 동지冬至

동지冬至/송宋 왕안석王安石

都城開博路 도성에서 오늘은 도박을 허용하니
佳節一陽生 동지 가절 양 기운이 처음 생긴 날
喜見兒童色 아이들 새 옷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歡傳市井聲 시정의 떠들썩한 환호 소리 들리네
幽閑亦聚集 적막하던 곳도 사람이 함께 모여서
珍麗各攜擎 귀하고 좋은 물건을 서로 선물하네
卻憶他年事 다른 해의 오늘을 생각하면 그때는
關商閉不行 성문 닫아 상인들 통행하지 못했지

왕안석(王安石, 1021~1086)의 이 시는 동지가 당시 얼마나 중요한 명절인가 하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동지는 양이 새로 생겨난다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어 태양을 중시하여 이를 기준으로 역법을 정한 주나라에서는 이날을 설로 삼았다. 주나라는 800년을 이어갔기 때문에 그 이후에 설이 바뀌었어도 그때의 전통이 오래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에 보이는 동짓날 풍습은 지금의 설 풍속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러기에 후대에도 계속 작은 설이라 하여 구풍을 이어나간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가 양력설을 일제와 관청에서 강요해도 구정이 오래 이어진 것과 마찬가지이다. 만약 몇백 년 양력설을 쇠었다면 아마 구정도 옛날의 동치처럼 되었을지도 모른다.

박로(博路)는 예전에도 무슨 말인지 정확히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길 이름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렇게 본 사람은 없고 《영규율수(瀛奎律髓)》에서는 평소 도박을 금지하는데 이날은 도박을 허용한 것을 이렇게 만한 것이라 보았다. 박혁(博奕)은 장기나 바둑을 말하기도 하지만 도박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여기에 박(博) 자가 쓰이고 있다. 당시 도성의 어떤 길에서 도박을 했다면 이런 견해가 매우 타당할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도 평소에 아끼고 모아 이날에는 새 옷을 해 입는다. 아이들이 꼬까옷을 입은 것을 어른들은 기쁘게 바라본다. 평소에는 아무 옷이나 입다가 이날 특별한 옷을 입기에 ‘아동색(兒童色)’이라 썼다. 또 시정에서는 도박을 허용하니 사람들이 돈 내기를 하느라 왁자지껄하다 그 기쁜 함성이 전해온다고 한다.

그동안 사람도 안 사는 것 같은 집도 일가친척들이 다 모이고 서로 준비한 진귀한 물건이나 고운 옷감을 서로 바친다고 한다. 고대에 동지에는 성문을 닫아 상인들 통행을 금지하는 풍속이 있었는데 왕안석 당시에도 그 풍속을 유지하다가 이 시를 쓸 무렵 규정이 변한 것으로 보인다.

동지에 양이 하나 생기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이제 어둡고 칙칙하던 것들은 모두 가고 밝고 깨끗한 기운이 가득하기를 기원해 본다.

南都繁会景物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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