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자 · 꽃잎이 여러 겹인 매 生査子 · 重葉梅/송宋 신기질辛棄疾
百花頭上開 온갖 꽃보다 가장 먼저 피니
冰雪寒中見 빙설의 찬 겨울에 드러내네
霜月定相知 찬 달은 반드시 이를 알기에
先識春風面 봄바람의 얼굴 먼저 알아보네
主人情意深 주인은 매화를 너무도 좋아해
不管江妃怨 강비의 원망을 상관하지 않고
折我最繁枝 나 위해 가장 좋은 가지 꺾어
還許冰壺薦 깨끗한 옥병에 담아 내어놓네
신기질(辛棄疾, 1140~1207)이 지은 사(詞)이다. <생사자(生査子)>는 사패의 이름으로 당나라 때 교방의 음악이던 것이 송나라 때 사로 정착되었다. 이 사를 보면 외형적으로는 5언 율시와 똑같아 제목만 없다면 분간하기 어렵다. 다만 시를 아는 사람들은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오언시의 평측과 다르고 후반에 대구를 쓰지 않는 것 등을 통해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이런 작품이 다른 시들과 섞여 제목 없이 나온다면 분간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 본다. 다만 시와는 달리 사의 경우는 단의 사이에 공격을 주는 습관이 있어 이것으로 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도 있다.
이 사는 2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4구에 5언으로 총 40자이다. 이 사의 변격은 글자가 한 두자 더 늘어나 외관상으로도 율시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는 글자를 운용한 것이 일반 산문은 물론이고 시의 구법과도 많이 달라 해석에 특별히 주의가 요구된다. 일반적 산문 문법이나 시의 구법을 적용해 이 사를 이해하고자 하면 한 구절도 제대로 알기 어렵다.
두상(頭上)이라는 말은 ‘머리 위’라는 뜻이 아니고 ‘가장 먼저’라는 말이다. 대구를 이루고 있는 한중(寒中)이 ‘찬 겨울에’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1, 2구는 대구를 이루고 있으며 각각 앞의 4글자는 모두 상황을 나태내는 일종의 부사구이며 마지막의 ‘개(開)’와 ‘견(見)’이 서술어로 쓰이고 있는데 한시에서는 이런 문법이 거의 없고 사(詞)이기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한문의 문리는 단순히 구문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글의 맥락과 배경에 대한 이해를 아울러 말하는 것이니 문리가 깊다는 말은 바로 1차원적인 구문론을 뛰어넘어 전체를 통관해 보는 종합적 힘을 말한다. 이런 대목의 해석에 바로 깊은 문리가 요구되는 것이다.
1, 2구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면 3, 4구 역시 반드시 함께 이해해야 한다. 한시에서 3구에 전환이 일어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구조이다. ‘상월(霜月)’은 서리가 내리는 한 밤의 달을 말한다. 이 달은 매화의 이런 특성을 반드시 잘 안다고 한다. ‘상지(相知)’의 상(相)은 달의 입장에서 매화라는 대상을 표시하기 위해 사용된 일종의 문법적 기능을 하는 허사이다. ‘춘풍면(春風面)’, 즉 ‘봄바람의 얼굴’은 바로 매화꽃을 의미한다. 찬 달이 봄바람의 얼굴을 알아본다는 말은 달이 한밤에 매화꽃을 비추는 것을 인격을 부여하여 표현한 말이다. 시인은 한 겨울 피어나는 매화에 대해 그 생물적 특성을 넘어서서 정신적 의미를 부여한 데 이어 달 역시 지각 능력을 지닌 유정물로 표현하고 있다. 시인이 이렇게 표현한 것은 모두 매화의 고결한 정신을 칭송하기 위해서이다.
온갖 꽃들이 봄이 온 줄 모르고 잠들어 있는 빙설의 차가운 날씨에 매화는 엄혹한 추위를 뚫고 피어난다. 이런 매화의 정신적 면모를 찬 하늘의 달은 잘 알기에 한밤에 달빛을 비추며 알아본다는 내용이 바로 1단의 전체적 의미이다.
주인은 신기질을 초대한 집의 주인을 말한다. 강비(江妃)는 당 현종의 총애를 받았던 여인을 말한다. 강비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 여인이 복건성의 어느 강에서 마름을 채취하다가 고력사(高力士)에게 발탁되어 궁중으로 갔기 때문이다. 이 여인은 춤과 노래, 애교로 승부하는 양귀비와는 완전히 다른 유형의 여인이었다. 어려서 글을 배워 시를 잘 짓고 교양이 풍부하였는데 매화를 특히 좋아해 거처하는 주변에 매화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결국 양귀비의 경계를 받아 현종과 멀어진다. 강비가 원망한다는 말은 주인이 매화를 화병에 꽂기 위해 꺾기 때문이다. 주인은 매화를 좋아했던 강비가 원망한다 하더라도 관계치 않고 가장 좋아 보이는 가지를 꺾어 깨끗한 병에 담아 내놓고 시인과 함께 감상한다는 말이다. 사 내용이 이러하므로 뒤의 작품은 두 구씩 떼어 번역할 수 없고 반드시 4구를 이어 붙여야만 의미가 통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매비(梅妃)를 인용한 것은 단순히 매화를 좋아했던 비빈을 말하기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매비를 언급한 것은 양귀비와 안록산의 난, 그리고 당나라의 쇠락, 이런 것들을 환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부귀와 환락을 상징하는 양귀비와 반대로 고결한 절조를 연상시키는 매비를 인용하여 매화가 지닌 정신적 의미를 사회적인 의미로 확대하고자 하는 것이 시인의 의도가 아닐까 한다. 현종이 안록산에게 도망갈 때 매비를 데리고 가지 않아 그녀는 결국 우물에 투신자살한다. 양귀비가 군인들의 반란으로 죽음에 내몰린 것과는 반대된다.
이 사는 1162년에 신기질이 장강을 건너 남쪽으로 와서 금나라에 항전할 것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에서 지은 시인 만큼, 매화에 시인의 뜻이 깊이 투영되어 있다. 한 편의 영물시로도 볼 수 있지만 이런 개인적, 사회적 배경을 고려하여 이 시를 읽으면 더욱 겨울 매화의 정신적인 면모가 풍부하게 다가오며 아울러 시인의 마음과 시의 본질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365일 한시 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