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양만리楊萬里 동지를 앞두고 부모를 그리며至日前思親

동지를 앞두고 부모를 그리며至日前思親/송宋 양만리楊萬里

節近親庭遠 명절은 가깝고 고향 집은 먼데
天寒日暮時 추운 날씨에 해도 저물어가네
未風窓巳報 바람보다 창문 먼저 흔들리고
欲雪脚先知 눈이 오려나 다리가 먼저 아네

이 시를 양만리(楊萬里, 1127~1206)가 언제 지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시의 내용이 명절에 부모를 생각하는 것인데, 양만리의 모친은 8세 때 작고했고 부친은 1164년에 작고하였기 때문에 이 시는 최소한 양만리의 부친이 작고하기 전에 지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시의 내용상 시인이 고향을 떠나 있어야 하고 또 다리에 신경통을 앓고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을 감안해서 합리적으로 추정하면 양만리가 삼십 대 후반에서 38세 이전에 지은 작품으로 추측할 수 있다.

시의 내용으로 보면 나이가 더 될 것 같은데 예전 사람들의 나이 관념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합치되는 면이 있다. 조선 시대 상소를 보면 보통 30대 후반만 되어도 여러 가지 병을 핑계로 사직을 호소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사직 자체가 그의 본의가 아니더라도 외면상으로는 그렇다. 그리고 시문에 자신을 표현하는 내용을 보면 40이 안 되어도 노인 행세를 하는 경우가 많다. 양만리는 시인 치고는 장수하여 향년이 80세이다. 보통 서화가들은 장수하는 경우가 많은데 문인들은 장수하는 경우가 드문 편이다. 그런데 동시대를 살았던 육유도 86세로 장수를 한다. 두 사람 모두 다작을 하고 자연을 주제로 한 시가 많다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우국적인 시를 많이 썼지만 역시 자연 속에서 만나는 일상적 소재로 쓴 시가 월등히 많다.

사람들이 충신이나 우국지사들은 으레 우국충정이 어린 시를 많이 쓴 것으로 아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실제 사실과는 많이 다르다. 우국 충정이 있는 것도 인생의 어느 특정 시기인 경우가 많고 또 문인이 계속 그런 시만 쓰는 것은 아니다. 고려시대의 대표적 충신이라 불리는 정몽주의 경우 시를 보면 섬세한 시들이 매우 많다. 청음 김상헌 역시 그러해서 초기 시들은 대체로 그런 풍을 지니고 있다. 절의가 드러난 시들은 주로 심양에 잡혀갔을 때 나타난다. 매천 황현 역시 대부분의 시들은 일상적이고 여행 등을 소재로 한 시들이다. 다만 사람들이 그 인물의 주된 특성을 평가하는 것에 맞추어 시를 연구하기 때문에 그렇지 실제는 아니다. 성호 이익의 경우만 해도 연구자들은 실학적인 시를 연구 대상으로 삼지만 실제의 시는 주로 학자풍의 시가 대부분이다. 어쩌면 그 사람의 가장 중요한 공적이나 평가 때문에 시가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시를 보는 사람들은 우선 시를 보아야지 어떤 틀을 먼저 가지고 시를 보아서는 시를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사람도 결국 잘 알지 못한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사람들은 명절을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려는 습관이 있다. 이는 조선 말기에 대유행을 한 서간문 투식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이 시인도 동지 명절을 맞이하여 고향에 가고 싶지만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말하고 있다. 첫 구는 같은 구절 안에서 대구를 썼다. 명절은 가깝고 부친은 멀리 있다는 말이다. 지금은 친정(親庭)이라 하면 주로 시집간 여인들이 자기 본가를 가리키거나 비유적으로 자신이 본래 몸담고 있던 단체나 조직 같은 것을 가리킬 때 쓰지만 본래는 부모를 가리키는 의미로 쓰던 말이다. 어떤 건물 등으로 사람을 표현하는 방식인 셈이다.

날씨도 춥고 해도 저물어 갈 때는 그리움이 배가된다. 바람이 부는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벌써 창문에 반응이 나타난다는 말도 재미있는 관찰이고, 눈이 내리기 전에 다리가 먼저 안다는 말도 체험에서 나온 말이다. 필자도 이 시를 보고서야 신경통이 꼭 비가 오는 날만 도지는 것이 아니라 습도가 높아지면 다 그렇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눈 오는 날은 구름이 끼어 밖이 어두운데 그게 다 습도가 높은 것이다. 이런 일상의 새로운 발견이 일종의 양만리 시의 주요한 특징이다.

이제 세월은 어느덧 연말을 향해 달려간다. 나도 이 시를 보고 바쁜 일을 미루고 시골집에 와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설 전에 동지 같은 날 부모님을 찾아뵙고 팥죽도 끓여 먹고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음 주 일요일이 동지이다.

宋 夏圭 <雪堂客話塗>

365일 한시 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