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석양1에게 답하다答鄧石陽
옷 입고 밥 먹는 것이 바로 인륜(人倫)이요, 만물의 이치입니다. 옷 입고 밥 먹는 것을 제외하면 인륜도 만물의 이치도 없지요. 세상의 온갖 것이 모두 옷과 밥과 같은 부류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옷과 밥을 들면 세상의 온갖 것이 저절로 그 안에 포함되어 있고, 옷과 밥 이외에 백성과 전혀 무관하게 또 다른 갖가지 것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오직 인륜과 만물의 이치에서 ‘진공’(眞空)을 알아야 하며, 인륜과 만물의 이치에서 인륜과 만물의 이치를 판별해내려고 하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만물에서 밝혀보고, 인륜에서 살펴본다”2[明於庶物, 察於人倫]고 한 것입니다. 인륜과 만물의 이치에서 밝혀보고 살펴보면 근본에 도달함으로써 ‘진원’(眞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단지 인륜과 만물의 이치에서 비교하고 따져보다, 끝내 터득하는 날이 없게 될 것입니다.
지리멸렬한 것과 간단명료한 것의 구분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밝게 살펴 진공(眞空)을 얻으면 ‘인(仁)과 의(義)를 통해 행하는 것’[由仁義行]이 되고, 밝게 살피지 않으면 ‘인과 의를 행하는 것’[行仁義]3이 되어, 지리멸렬한 쪽으로 빠지고도 자신은 깨닫지 못합니다.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저께 보낸 답장에서 ‘진공’(眞空)에 대한 16자(4자 4구) 글에서 이미 빠짐없이 모든 것을 밝혔지만, 오늘 다시 풀이를 보내니 어떠한지 바로잡아 주기 바랍니다.
이른바 ‘공(空)은 공(空)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空不用空]는 말은 태허공(太虛空)4의 본성을 말한 것으로, 본래 사람이 할 수 있는 공(空)이 아닙니다. 만약 사람이 할 수 있는 공(空)이라면 태허공(太虛空)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어떤 묘법이 있길래 배우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로지 견성(見性)만을 최고의 준칙으로 삼게 하려고 하십니까?
이른바 ‘끝내 공(空)할 수 없다’[終不能空]라는 말은 만약 한 터럭 만큼의 사람의 힘이 포함되면 한 푼의 진공(眞空)이 막히고, 한 푼의 진공(眞空)이 막히면 바로 한 점의 티끌이 묻는 것을 말합니다. 이 한 점의 티끌이 바로 천 겁(劫)의 계려지궐5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으니, 두렵지 않겠습니까!
세상의 평탄한 대로는 천 명의 사람이 함께 따라가고 만 명의 사람이 함께 밟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나도 여기에 있고, 형(兄)도 여기에 있고, 상하 모든 고을이 여기에 있습니다. 만약 생겨날 때부터 따로 나뉘어졌다면 오히려 백성이 일용하는 것만 못합니다. 이것을 잘 헤아려 주기 바랍니다.
이 아우도 이제 늙고, 글이 제멋대로여서 전혀 뜻대로 써지지 않습니다. 형이 만약 간이(簡易)한 이치에 뜻이 있어, 이 한 번의 생을 헛되이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이 아우 역시 비록 간담의 피를 토하며 서로 탐구한다 할지언정 매우 원하는 바입니다. 만약 예전대로 이 견해에 찬동하지 않고 더 이상 생사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절대 내게 어떤 가르침을 주려는 수고는 더 이상 하지 마십시오!(권1)
1 등석양(鄧石陽)은 강서성 석양 사람으로 이름은 등임재(鄧林材)이다. 38세 때, 이지는 조종(祖宗)의 묘소를 돌보러 혼자 귀향하고, 처자식은 공성(共城, 河南省 輝縣)에 남아, 직접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꾸려가던 도중, 대기근이 덮쳐 처자식이 굶주리고 있었다. 이 때 재해 대책 마련을 위해서 새로 현지(縣知)로 부임한 등석양(鄧石陽)이 봉급의 일부를 털어 이지의 처자식을 구호했다고 한다. 고향 일을 마치고 돌아온 이지는 등석양을 찾아가 감사를 표시했고, 이후 두 사람은 시문을 주고받으며 오랜 기간 동안 단속적(斷續的)으로 교유가 계속되었다. 이 편지는 비교적 만년에 쓴 것이다. <등석양에게> 참조. 뒤에 나오는 편지에 주로 석양태수(石陽太守)나 등명부(鄧明府)도 이 사람을 말한다. 또 뒤에 실린 <탁오논략>(卓吾論略)에 나오는 등추관(鄧推官)도 이 사람을 가리킨다.
2 《맹자》 <이루하>(離婁下) 참조.
3 앞의 ‘명어서물, 찰어인륜’(明於庶物, 察於人倫)과 더불어 《맹자》 <이루하>(離婁下)에 나오는 말로, “사람이 짐승과 다른 점은 아주 미미할 뿐이다. 보통 사람은 (짐승과 다른 점을 지키지 못하고) 버리는데, 군자는 보존한다. 순(舜)은 만물에서 밝혀보고, 인륜에서 살펴보아, 인(仁)과 의(義)의 길을 따라 간 것이지, 인과 의를 행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여기서 ‘인과 의의 길을 따라 가는’[由仁義行] 것과 ‘인과 의를 행하는’[行仁義] 것을 구분하여, 인과 의는 이를 행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에 의하여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갖추어져 저절로 행해지는 것임을 강조했다.
4 여기서는 ‘태허공’(太虛空)을 긍정적으로 말하고 있는데, 이지의 다른 글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분서》 권4 <관음문 ― 답명인>(觀音問 ― 答明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有)를 버리고 ‘공’(空)에 집착하려고 하면 ‘완공’(頑空)이 된다. 이것이 이른바 ‘단멸공’(斷滅空)이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서 공통으로 볼 수 있는 ‘태허공’(太虛空)이 이것이다. 이 ‘태허공’은 ‘만유’(萬有)를 낳을 수 없다. ‘만유’를 낳을 수 없는데, 어찌 ‘단멸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으며, 어찌 ‘완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는가?” 또한 《분서》 권4 <해경문>(解經文)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空)이라는 것이 인위적 노력을 통해 이룰 수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진공’(眞空)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설령 ‘공’을 이룬다고 해도, 그것은 땅을 파서 출토된 ‘공’으로, 마치 오늘날의 사람들에게서 공통으로 볼 수 있는 ‘태허공’과 같은 것일 뿐이니, ‘진공’과는 전혀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이다.”
5 계려지궐(繫驢之橛)은 ‘나귀를 매어두는 길가의 말뚝’이란 말로, 아무것도 아니면서 사람이 인연에 얽매이게 하는 것을 비유하는 불교의 상투어이다.
卷一 書答 答鄧石陽
穿衣吃飯即是人倫物理;除卻穿衣吃飯,無倫物矣。世間種種皆衣與飯類耳,故舉衣與飯而世間種種自然在其中,非衣食之外更有所謂種種絕與百姓不相同者也。學者只宜于倫物上識真空,不當于倫物上辨倫物。故曰:“明于庶物,察于人倫。”于倫物上加明察,則可以達本而識真源;否則,只在倫物上計較忖度,終無自得之日矣。支離、易簡之辨,正在于此。明察得真空,則為由仁義行,不明察,則為行仁義,入于支離而不自覺矣。可不慎乎!
昨者複書“真空”十六字,已說得無滲漏矣。今複為注解以請正,何如?所謂“空不用空”者,謂是太虛空之性,本非人之所能空也。若人能空之,則不得謂之太虛空矣,有何奇妙,而欲學者專以見性為極則也耶!所謂“終不能空”者,謂若容得一毫人力,便是塞了一分真空,塞了一分真空,便是染了一點塵垢。此一點塵垢便是千劫系驢之橛,永不能出離矣,可不畏乎!世間蕩平大路,千人共由,萬人共履,我在此,兄亦在此,合邑上下俱在此。若自生分別,則反不如百姓日用矣,幸裁之!
弟老矣,作筆草草,甚非其意。兄倘有志易簡之理,不願虛生此一番,則弟雖吐肝膽之血以相究證,亦所甚願;如依舊橫此見解,不複以生死為念,千萬勿勞賜教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