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설古今小說-가난한 마주가 떡 파는 여인네를 만나다窮馬周遭際賣䭔媼 1

가난한 마주가 떡 파는 여인네를 만나다 1

앞날은 칠흑처럼 어두워 한 치 앞도 내다볼 수가 없고,
가을밤의 달빛과 봄날의 꽃도 다 때가 있는 거라네.
조용히 하늘의 명령을 삼가 들으시게나,
어쩌자고 어두운 밤에 고통스럽게 날뛰는가.

얘기할라치면 당나라 정관 개원 연간에 태종 황제가 어질고 현명하시며 도리에 밝아 현명한 선비를 믿고 채용하셔서 문관으로는 18학사가 있고, 무관으로는 18로의 총관이 있었다. 그리하여 마치 원앙새가 줄을 맞춰 날아가는 듯, 백로새 떼가 열 지어 나는 듯 질서정연하였다. 이 세상의 재주 있고 지혜로운 사람들은 한사람도 빠짐없이 천거를 받아 자리를 꿰차고 있었고 자신들의 포부를 펼치고 있었다. 하여 천하는 태평하고 만백성은 모두 안락한 생활을 영위하였다.

그려, 그 만백성 가운데 한 사람 이야기 좀 해볼까나. 그 사람 성은 마馬요, 이름은 주周며, 별명은 빈왕賓王이라. 박주博州 치평茌平 사람으로 부모를 모두 여의고 쌀독엔 쌀 한 톨 없이 가난하였다. 마주는 나이가 서른을 넘어서도 아직 장가도 못 들고, 그저 혈혈단신이었다. 어려서부터 경서와 역사책에 정통하고 학문을 넓게 닦아 지략과 기개가 출중하고 매사에 다른 사람보다 빼어난 그 무엇이 있었다. 워낙 혼자서 세상을 버텨내는 상황이라 아무도 그의 뒤를 봐주지아니하였으니 신명한 용이 진흙더미에서 곤욕을 당하며 비상하지 못하는 격이렷다. 재주가 자신의 발뒤꿈치에도 못 미치는 자들이 출세하여 떵떵거리고 자신은 재주를 품고서도 때를 만나지못하였으니 매일 탄식에 탄식만을 거듭하였다.

“내가 때를 못 만난 것인가, 운수가 꼬인 것인가, 내 팔자런가.”

이러니 느는 것 술이라 틈나면 그저 혼자서라도 술잔을 기울여 흠씬 취하고 나서야 겨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저 술잔에 술만 찰랑거리면 매 끼니 식사에 뭐가 있는지 없는지는 전혀 신경 쓰진 않았다. 마주는 수중에 돈이 떨어지면 술 있는 집을 찾아가서 술을 얻어먹곤 하였는데, 그 모양이 너무도 당당하고 도무지 조심하는 기색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술을 마시고 나서는 함부로 말하고 욕을 해대곤 하였다. 이웃사람들은 모두 마주에게 당하기가 한두 번이 아닌지라 그만 보면 피하고 손가락질하면서 자기들끼리 그를 ‘가난뱅이 마주’라고 수군댔으며 술주정뱅이라고 놀려대었다. 하지만 마주는 그런 말을 들어도 그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용과 호랑이라도 때를 못 만나면,
그저 소나 말 취급당하는 거지.

한편, 박주자사 달해達奚는 마주가 경서에 밝고 학문이 깊다는 것을 듣고서는 마주를 초빙하여 박주의 조교에 임명하였다. 마주가 부임하는 날 여러 동료들이 마주의 부임을 축하하는 술자리를 마련하였고 다들 거나하게 마셨다. 다음 날 자사가 직접 학관을 찾아와 마주를 만났으나 그때까지도 마주는 작취미성이라 몸을 가누지도 못하였으니 자사는 버럭 화를 내고 돌아가 버렸다. 마주는 술에서 깨어난 다음에야 자사가 왔다 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자사의 집무실로 달려가 사죄하였으나 자사에게 질책만 잔뜩 들었을 따름이었다.

마주는 입으로는 연신 죄송하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뉘우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어쩌다 학관의 학생들이 모르는 문제가 있어 마주를 찾으면 그 학생들과 더불어 술 마시는 게 일이었고 월급이라도 받으면 다 술독에 털어 넣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학생들 집에 찾아가서 술을 얻어먹었다.

어느 날 마주가 술에 흠씬 취하여 학생 두 명의 부축을 받으며 목청껏 노래를 부르면서 길을 걸어 돌아오고 있을 때 자사의 행렬을 맞닥뜨렸다. 한데 마주가 어찌 자사에게 길을 양보하겠는가? 두 눈을 부릅뜨고서 욕을 퍼붓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노상에서 결국 자사에게 한바탕 핀잔을 들어야만 했다. 그날은 마주 역시 술에 취하여 아무것도 몰랐으나 다음 날 술에서 깨고 난 다음에 학생들이 전날의 전후 사정을 이야기해주며 자사에게 찾아가 죄를 청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마주가 한숨을 쉬고 나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주변에 나를 돌봐줄 만한 사람이 너무도 없어 이렇게 자사에게 몸을 의탁하고선 내가 세상에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잡고자하였으나 이렇게 늘 술이 원수라 자사에게도 몇 차례나 핀잔을 들었으니 무슨 낯짝이 있다고 찾아뵙고 용서를 빌겠는가? 옛 사람도 쥐꼬리만한 월급에 허리를 굽히지 않겠다고 하였는데 나 역시 이 조교직이 무슨 평생을 먹여 살릴 자리라고 연연해하겠는가?”

말을 마치더니 마주는 관복을 벗어서 학생들에게 주고는 자사에게 전달해주라 하고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한바탕 호탕하게 웃고서는 문을 열고 나갔다.

지금이야 세 치 혀로 당당하게 떠벌이고 떠나지만,
다시 돌아올 때는 한 푼 가치도 없게 되는 법.

옛말에 ‘물은 흔들지 아니하면 움직이지 아니하고, 사람은 자극하지 아니하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마주는 그 놈의 술버릇 때문에 자사에게 몇 번이나 꾸지람을 듣고서는 결국 스스로 못 견디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가 이 일이 인연이 되어 새 사람을 만나 결국 이부상서의 지위에 올랐더라. 아무튼 이 건 뭐 나중의 이야기고.

자리를 박차고 나오긴 하였지만 마주는 이제 어디로 간단 말인가? 마주가 이곳저곳을 아무리 떠돌아 다닌다하더라도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마주는 그러느니 차라리 서울인 장안으로 가서 재상 판서를 만나보자는 심산을 하였다. 그러다 보면 재능 있는 자를 잘 알아보고 추천하였다는 소하蕭何나 재주 있는 자를 발탁하였다는 위무지魏無知를 만나지 못할 법도 없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그들의 추천을 받아 내가 두각을 나타내면 평생의 소원을 이룰 수 있으리라. 마주는 서쪽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馬周

하루도 채 안 되어 바로 신풍新豊에 도착하였다. 본디 신풍성은 한고조가 축조한 것이다. 고조는 풍豊이라고 하는 마을에서 태어나 나중에 기병하여 진나라를 무찌르고 항우를 멸하고 난 다음에 드디어 한나라를 세우고 천자가 된 것이다. 고조는 자신의 아버지를 높여 태상황에 봉하였다.

태상황은 장안에서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더욱 사무치매 고조가 장인들을 불러 풍마을의 모습 그대로 성을 쌓으라 한 다음 풍 마을에 살던 사람들을 이주시켜 살게 하였다. 거리와 집들이 풍 마을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으니 옆집에서 기르던 닭이나 뒷집에서 기르던 개나 모두 그대로 다 가지고 와서 거리에 풀어놓으니 그 닭이나 개가 예전 자기들이 노닐던 곳으로 알고는 각자 자기 집을 찾아가더라. 태상황은 너무도 흡족해하며 그 마을의 이름을 신풍이라고 지었다. 오늘날 당나라는 장안에 도읍을 정하고 이 신풍을 장안의 직속 행정구역으로 삼으니 시장과 집들이 빽빽하고 북적대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점포와 객점이 그 수를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신풍에 이르니 해는 뉘엿뉘엿, 마주는 커다란 객점을 찾아들어 성큼성큼 안으로 내디뎠다. 수많은 마차들이 객점을 드나드니 마당엔 온통 흙먼지가 뽀얗게 일고 길 떠나 장사하는 사람들이 물건을 싣고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객점에 찾아들어 하루 저녁을 쉬어가고자 하였다. 객점 주인 왕씨는 손님을 맞아 물건을 받아주고 방을 배정해주느라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손님들은 손님들대로 각자 자기 패들끼리 객점 테이블을 각자 하나씩 차지하고는 술을 시켜 마시기에 바빴다. 객점의 심부름꾼 역시 손님들을 시중드느라 얼이 다 나갈 정도였다. 마주는 혼자서 테이블 한 자리에 썰렁하게 앉아있었으나 자기를 신경 써주는 사람이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마주는 울화가 치밀어 주먹으로 탁자를 치면서 소리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