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권 오장군은 밥 한 끼 은혜도 꼭 보답하고
진대랑 등 세 사람이 다시 모이다
烏將軍一飯必酬 陳大郎三人重會
한편 진대랑의 아내와 처남이 떠난 지 십여 일이 지났고 구공은 벌서 돌아왔는데, 숭명현에서 또다시 사람을 시켜 편지를 보내와서는
“요 전날 찾아뵀던 저경교가 외손주들을 빨리 오라고 했다는데 왜 아직도 오지 않는 건가요?”
라고 하는 것이었다.
구공 부부와 진대랑은 모두 깜짝 놀라 이렇게 말했다.
“간 지 벌써 열흘이나 됐는데 어째서 안 왔다는 거야?”
그러자 편지를 가지고 온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그림자도 못 봤는 걸요. 댁의 장모님은 그렇다 치더라도 자제분들은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진대랑은 급히 처남을 태우고 갔던 뱃사람을 찾아다 물었다. 그랬더니 뱃사공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해변에 이르러서 배가 더 이상 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댁네 작은 나리와 부인께서는 ‘뭍에 올라서 길을 가도 그리 멀지 않고 우리가 길을 잘 아니 그냥 가세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날이 곧 어두워지려고 해서 두 분은 급히 가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혼자 배를 몰고 돌아왔는데 어째서 도착을 안 했을까요?”
구공은 다급한 데다 뾰족한 수가 없어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여기서 집을 볼 테니 당신은 사위랑 같이 장모님을 찾아가서 소식을 좀 알아보고 오시오.”
두 사람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다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는 한시라도 늦출 수 없어 서둘러 행장을 꾸리고 배 한 척을 세냈다. 이튿날 아침 일찌감치 숭명현에 도착하여 육씨의 모친을 만나 연고를 묻고서야 병이 이미 점차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만 외손자와 손녀에 대해서는 전혀 그 종적을 알지 못하였다. 이에 증씨는
“아이고 내 새끼들!”
하며 방성대곡을 하였다. 그 소리를 듣고 놀라 소식을 물으러 찾아온 이웃 부녀들도 함께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진대랑은 성격이 급한 사람인지라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난 다 알아. 그 저경교란 놈이 무슨 개 같은 편지를 보낸 것 때문이야! 그놈이 불난 집에서 도둑질하듯이 계략을 써서 납치해 간 거야.”
그리고는 다짜고짜로 씩씩거리며 저경교의 집으로 달려갔다. 저경교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정면으로 맞닥뜨렸다. 저경교가 무슨 일인지 막 물어보려던 참에 진대랑은 그의 멱살을 휘어잡고는
“우리 집 사람들 어서 내놔! 내놓으라고!”
하고 소리치며 관가로 끌고 가려 했다. 이때는 소란했던 나머지 이미 동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구경들을 하고 있었다. 저경교는 놀라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소리쳤다.
“내가 무슨 죄를 졌다는 거요? 자세히 말이나 해줘야지?”
“네놈이 그래도 오리발을 내밀어? 내가 집에서 곱게 지내고 있는데 네가 무슨 편지를 보냈잖아? 내 처와 처남을 어디로 납치해 갔느냐?”
진대랑의 말에 저경교는 가슴을 치며 이렇게 말했다.
“이거야 원, 좋은 일 했다가 되려 욕만 먹고 너무 억울해 못 살겠네. 난 호의로 당신에게 편지를 보냈고, 당신 처는 온 적도 없소. 그들이 실종됐다면 그건 사고일 거요.”
“내 처와 처남이 온 지 벌써 열흘이나 됐는데 어떻게 못 볼 수가 있어?”
“그래도 그러시네? 내가 당신 집으로 가서 소식을 전했을 때는 오늘까지 계산해서 12일이나 됐소. 난 그 다음날 저녁 여기에 도착한 이후로 집밖에 나간 적도 없소. 그때는 당신 처와 처남이 아직도 집에서 출발하지 않았을 때인데 내가 언제 납치를 했겠어? 지금 이웃들이 모두 증인이니 만약 내가 지난 열흘 동안 어디든 집밖에 나간 적이 있다면 다 나 때문이라고 하겠소.”
저경교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말했다.
“정말 나간 적 없어요. 이건 유괴범을 만난 게 아니면 강도를 만난 거야. 죄 없는 사람 억울하게 만들지 말아요.”
진대랑은 그와는 상관없다는 것을 알고는 하는 수 없이 멱살을 잡았던 손을 놓고 화를 꾹 참은 채 증씨의 집으로 뛰어 돌아왔다. 그리고는 곧 숭명현에 소장을 내고 또 소주부로도 가서 소장을 내서 포도청의 체포문서가 발부되었다. 또 도처 담장에 수배전단을 붙이고 상금 은 이십 냥을 걸었다. 또 처음에 진대랑의 처와 처남을 태우고 갔던 뱃사람을 찾아다 포도청으로 데려가 증인으로 세우고 심문을 하게 했다. 그리고는 다시 숭명현으로 가서 증씨와 함께 이십여 일을 지냈으나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어느덧 겨울이 다 끝나가고 새해도 다가오게 되어 두 사람은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구공은 이미 앞서 있던 일을 다 알았던 터라 세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들 기쁘고 즐겁게 설을 쇠었지만, 진대랑 집안만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렇게 또 정월 한 달이 총총히 지나가고 어느덧 2월초가 되었는데, 여전히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진대랑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작년엔 자식을 보게 해달라고 보타락가산에 향불 올리러 가려고 했었는데, 뜻밖에도 지금은 자식은커녕 그 엄마까지 잃어버렸으니 내 명이 이처럼 기구하단 말인가! 이번 달 19일은 관음보살의 생신이니 그곳으로 가서 향불을 올리고 소원을 빌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선은 관음보살님께 보응을 기원하고 또 절강의 경치도 좀 구경하면서 답답한 마음을 좀 풀고 겸사겸사 해서 장사도 좀 하는 거야.’
계획이 정해지자 장인에게 말씀을 드려 점포 관리를 부탁한 후 짐을 꾸려 항주를 향해 길에 올랐다. 항주의 전당강(錢塘江)을 지나서 해선(海船)을 타고 보타에 이르러 뭍에 올랐다. 삼보일배를 하며 대사전(大士殿) 앞에 이르러 분향하고 정례(頂禮)를 한 후 아내와 헤어지게 된 일을 소상히 고백하고 재차 머리를 조아리며 이렇게 빌었다.
“부족한 중생 진실로 경건하게 기도드리나니 엎드려 바라옵기는 보살님의 대자대비로 고난을 구하사 넓고 크신 영험으로 저희 부부가 다시 만나게 해주시옵소서.”
기도를 마치고 다시 배를 타고 가다가 어느 바위굴 옆에 정박하여 묵게 되었다. 그런데 꿈속에서 관음보살이 나타나 네 구절짜리 시 한 수를 말해 주는 것이었다.
재회에는 자연 때가 있는 법
당장은 힘들어도 마음 편히 가지라
대접한 밥 한 끼, 그 보답 크리니
망망대해라도 그 믿음 기대할 수 있으리
진대랑은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으나 그 시구는 한 글자도 잊지 않았다. 그는 글에 그다지 정통하지는 않았지만 그 시구는 이해할 수 있었다. 진대랑은 한숨을 쉬며
“보살님이 과연 영험하시구나. 그분 말씀대로라면 아내를 다시 만나는 것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꿈속에서 본 것만 가지고는 믿을 수가 있어야지?”
하고 말하면서 속으로 답답해하면서도 예전에 눈 오는 날 식사를 대접했던 일은 벌써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 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아직 얼마 가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일진광풍이 몰아치더니 하늘이 캄캄해지고 사방은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뱃사람은 키를 단단히 잡고 바람에 배를 맡겼다. 순식간에 배는 바람에 떠밀려 어느 섬 근처에 다다랐는데, 그 때는 이미 바람이 멎고 해가 났다. 그런데 그 섬에는 도적떼 수백 명이 창과 봉을 휘두르고 활을 겨누고 주먹을 다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곳에 표류된 것은 쥐가 고양이 집을 지나는 격이었으니 그들이 가만 놔둘 리가 없었다. 곧 한 무리가 다투어 배에 올라타서는 배에 있던 사람이 지니고 있던 돈이며 봇짐들을 모두 색출해 냈다. 허나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다들 절에 기도드리러 왔던 객손들이라 가진 것이 많지 않았으므로, 도적들은 성이 차질 않아 칼을 들고 그들을 죽이겠다고 을러댔다. 진대랑은 다급한 나머지
“목숨만은 살려 주세요.”
하고 소리쳤다. 도적들은 동쪽 지방 말씨임을 듣고는 진대랑에게 물었다.
“당신 어디 사람이오?”
“소인은 소주 사람입니다.”
진대랑이 벌벌 떨며 이렇게 대답하자 그들은 곧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포박해서 대왕님한테 끌고 가서 처리해야지 그냥 죽여선 안 되겠군.”
그렇게 해서 배에 있던 사람들까지도 모두 목숨은 건진 채 나란히 결박되어 취의청(聚義廳)으로 끌려갔다. 진대랑은 그때까지도 아직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그의 생명은 결국 그 도적의 두목에게 달려있었다. 그는 눈물어린 눈을 감은 채 입으로는 줄곧 이렇게 되뇌었다.
“고난에서 구원해주옵소서 관세음보살.”
그 때 취의청에서 도적의 두목이 천천히 걸어 내려와서 진대랑을 자세히 살펴보고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내 옛 친구분이시다. 어서 결박을 풀어드려라!”
진대랑은 그 말을 듣고서야 감히 그 대왕을 힐끔 바라보니 바로 두 해 전에 만나 술집에서 밥을 대접했던 털이 잔뜩 난 그 사람이었다. 졸개들이 급히 포승을 풀어주자 두목은 의자를 끌어다가 그를 앉히고는 머리 숙여 절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애들이 뭘 모르고 형장께 폐를 끼쳤으니 부디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진대랑은 거듭 답례하며 이렇게 말했다.
“소인이 경솔하게도 산채를 침범했으니 죽어 마땅하거늘 감히 무슨 다른 말이 있겠습니까?”
“형장께서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저는 형장께 눈 오는 날 밥 한 끼를 얻어먹은 은혜를 입은 뒤로 마음으로 잊지 않고 있습니다. 몇 번이고 형장을 찾아뵈려고 하였으나 산채에 일이 많아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일전에 아이들에게 만약 소주의 객상을 만나면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분부한 바 있었는데, 오늘 이렇게 형장을 만나게 되었으니, 이는 하늘이 내려준 인연입니다 그려.”
“대왕께서 기왕 저를 살려주셨으니 바라건대 저희 동행과 짐들도 돌려주셔서 하루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 주신다면 맹세코 결초보은 하겠습니다.”
“제가 박정이나마 아직 베풀지도 못했는데 형장께서는 어찌하여 그냥 떠나려고 하십니까? 또 형장께 천천히 말씀드릴 일도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두목은 뒤를 돌아보며 졸개들에게 나머지 사람들의 포박도 풀어 주고 짐과 물건들을 돌려줘서 먼저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도록 분부했다. 사람들은 지옥 문 앞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게 된 듯하여 너무나 기뻐서 마치 머리로 마늘을 찧듯 두목에게 감사의 절을 올리고 또 진대랑에게도 감사했다. 그리고는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나는 듯 배를 타고 떠났다.
두목은 곧 진대랑을 위로하기 위해 주안상을 차리게 했다. 금세 준비가 다 되어 대청에 주안상이 차려졌다. 안주로는 산해진미가 다 있었고 사람의 간과 뇌도 있었다. 두목이 좌정한 후 술 몇 잔을 마시자 진대랑이 입을 열었다.
“전날엔 창졸간이라 소홀함이 있어 미처 대왕님의 존함을 여쭙지 못했었는데, 알려주실 수 있는지요?”
“저는 바닷가에서 태어났고 성은 오, 이름은 우(友)입니다. 어려서부터 힘이 좀 세서 사람들이 저를 받들어 이 섬의 주인 노릇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털이 많아서 사람들은 저를 오장군(烏將軍)이라고 부릅니다. 전날 바다에서 숭명현으로 가는 길에 형장이 계시는 곳에 잠시 머물다가 형장과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저는 밥이나 빌어먹는 사람이 아니지만 형장에게 얻어먹은 밥 한 끼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은 우리가 재물을 가볍게 여기고 의리를 중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형장께서 만약 더러운 세속에서 저를 알아봐 주신 것이 아니라면 생면부지인 사람에게 어떻게 흔쾌히 대접할 수 있겠습니까? 옛말에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고 했는데 형장은 과연 저의 지기입니다.”
진대랑은 그 말을 듣고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여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정말 다행이다. 만약 전날 그 식사 대접이 아니었다면 지금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려웠을 거야.’
또 술을 몇 잔 마시고 나서 두목은 이렇게 물었다.
“형장, 댁에는 식구가 몇 분이나 되십니까?”
“장인, 장모와 제 아내 그리고 처남뿐입니다. 그 외에는 없습니다.”
“지금 다들 평안하신지요?”
대왕의 물음에 진대랑은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작년에 제 아내와 처남이 함께 숭명현의 친정으로 가다가 도중에 실종되었는데 지금껏 소식을 모릅니다.”
“그렇다면 형수님은 찾기 어렵겠군요. 이곳에 여인 하나가 있는데 그녀도 형장과 동향이고 나이며 용모도 형장과 딱 맞으니 제가 그녀를 형장께 맺어드리고 싶은데 생각이 어떠신지요?”
진대랑은 혹시라도 두목의 노여움을 살까 두려워 감히 거절하지 못했다. 그러자 두목은 곧 큰 소리로 외쳤다.
“어서 모시고 와!”
곧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대청으로 올라왔다. 진대랑이 눈여겨보니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기의 아내와 처남인지라 서로 부여안고 한바탕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목은 곧 주안상을 더 준비하게 하였다. 세 사람은 손님 자리에 앉고 두목은 주인석에 앉았다.
“형장께서 형수님이 이곳에 있게 된 까닭을 아시는지요? 작년 겨울 우리 애들이 숭명현 해안에 인적 없는 곳으로 가서 좀도둑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남자와 여자가 저물녘 함께 가는 것을 보고 잡아다 저한테 데리고 왔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연유를 물어 형장의 가족임을 알고는 급히 따로 거처할 집을 내드리게 하고 감히 홀대하지 못하도록 했는데, 그게 벌써 두 달이 넘었습니다. 황망한 가운데 기회가 없었지만 마음속으로는
‘형장을 모셔와 뵐 수만 있다면 쉽게 돌려보낼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뜻하지 않게 이렇게 만나게 되었으니 이는 하늘의 뜻입니다.”
세 사람은 모두 감사해 마지않았다. 진대랑의 처와 처남은 사적으로 진대랑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날 해변에서 외가가 보이길래 타고오던 배를 보냈어요. 그런데 누이와 제가 길을 가던 중 한 무리의 사람들과 마주쳐 결박당했는데, 그때는 그저 죽는 줄로만 알았지요. 그런데 뜻밖에도 대왕님을 만나 뵈니 이곳에 온 연유를 물으셨고, 우리는 일일이 사실대로 말씀드렸어요. 그러자 곧 우리들을 다른 눈으로 대하셨는데, 우리는 그 까닭을 알지 못했어요. 지금 말씀하시는 걸 듣고서야 매형이 작년에 소주에서 누군가를 만난 이야기를 했던 게 기억이 났는데, 그게 과연 거짓말이 아니었군요.”
진대랑은 또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정말 다행이야. 전날 대접을 하지 않았다면 오늘 아내도 구할 수 없었을 것 아냐?’
술자리를 마치고 일어서는데 진대랑이 이렇게 말했다.
“장인 장모께서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계시니 이왕 대왕님의 두터운 은혜를 입어 이렇게 만나게 된 바에야 조금이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두목은
“그러시다면 내일 보내드리지요.”
하고 말했다. 그날 밤은 진대랑 부부를 한 거처에 묵게 하고 처남도 따로 한 거처를 주어 각각 쉬게 하였다. 다음날 또 술자리를 마련하여 송별연을 베풀었다. 그리고 나서 세 사람이 감사의 절을 올리고 떠나려 하자 두목은 또 졸개들에게 황금 3백 냥과 은 천 냥에 비단과 여러 가지 물건들을 내주도록 했는데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진대랑은 몇 번이고 사양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너무 많은 예물을 받는군요. 허나 저희들로선 가지고가는 것도 어렵겠습니다.”
그러자 두목은
“그야 당연히 가져다드려야지요.”
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에 진대랑은 하는 수 없이 감사의 절을 올리며 받았다. 두목이
“이제부터는 매년 꼭 한 번씩 오십시오.”
라고 하자 진대랑은 그러겠다고 하였다. 두목이 해변까지 전송하자 졸개들은 벌써 배에 오른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세 사람은 너무나 기뻐하며 작별을 고하고 배에 올랐다. 그 지역 바다는 강도들이 출몰하는 곳이었지만 두려울 것이 없었다. 단 이틀 만에 바닷길로부터 숭명현에 이르러 뭍에 올랐고 도적들의 해선은 떠나갔다.
세 사람은 마침내 외가에 도착했다. 외할머니를 만나 사연을 말해주니 ‘아이고 내 새끼들’ 하며 너무나도 기뻐하였다. 진대랑은 다시 배 한 척을 불러 세 사람은 함께 집으로 갔다. 구공과 모친은 아들딸과 사위가 모두 온 것을 보고도 ‘이게 꿈이야 생시야’ 하며 믿지를 못했다. 진대랑이 앞서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말하자 모두들 한동안 슬픔과 기쁨이 교차했다. 구공은 이렇게 말했다.
“이건 과연 오장군의 의로움 덕분이다. 하지만 만약 폭풍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그 섬에 갈 수가 있었겠느냐? 관음보살님은 정말로 영험하시구나.”
진대랑이 또 꿈에서 관음보살이 시구를 전해 준 것을 말하자 가족들은 모두 경탄해 하였다. 이로부터 진대랑 부부는 매년 보타에 가서 향을 올렸는데, 그때마다 오장군이 사람을 보내 해변에서 맞이하고 전송하였고, 또 매번 많으면 천 냥 적어도 수백 냥을 주어 반드시 후한 예물을 받고 돌아갔다. 진대랑도 해마다 다른 지방으로 나가면 진기한 물건을 가져다 바쳤고, 그러면 오장군은 또 반드시 몇 배로 보답을 하여 결국 오(吳) 지방의 거부가 되었는데, 이것이 곧 한 끼 밥에 대한 보답이었던 것이다. 후세 사람이 이를 기려 지은 시가 있다.
지기의 밥 한 끼 은혜 후하게 갚다니
누가 알았으랴 대도에게도 깊은 정 있었음을
세간에선 늘 뛰어난 남자 이야길 하는데
선비가 녹림호걸보다 꼭 낫다고만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