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산자卜算子 · 雪月最相宜/송宋 장효상張孝祥
雪月最相宜 눈과 달은 가장 잘 어울리고
梅雪都清絕 매화와 눈은 모두 너무도 맑네
去歲江南見雪時 지난해 강남에서 눈을 볼 때는
月底梅花發 달 아래 매화가 피었지
今歲早梅開 올해도 이른 매화가 피었고
依舊年時月 작년 그때처럼 달도 떴네
冷豔孤光照眼明 차가운 매화 고고한 달 눈에 환한데
只欠些兒雪 다만 눈이 없는 게 조금 흠이네
복산자(卜算子)는 사패의 이름이다. 총 44자 쌍조(雙調)이고, 각 단은 4구 22자이며, 짝수 구에 측성 운자를 놓는다. 소동파 역시 ‘복산자’라는 사패를 시를 지은 적이 있다. 그 첫 구가 ‘성긴 오동나무에 이지러진 달 걸렸고[缺月掛疏桐]’라고 시작하는데 이 ‘결월괘소동’이 시 사패의 별칭이기도 하다.
초당 4걸 중의 한 사람인 낙빈왕은 시를 쓸 때 숫자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여 당시 사람들이 ‘복산자(卜算子)’라고 불렀다고 한다. ‘복산자’는 숫자를 계산하여 점을 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중에 사를 짓는 작가가 이 말을 사용하여 곡조를 붙였기 때문에 사패의 이름이 된 것이다.
2단의 ‘년시(年時)’는 당년, 즉 작년의 그때를 의미한다. 냉염(冷艶)은 지금 차가운 겨울에 핀 매화의 아리따움을 말한 것이고, 고광(孤光)은 이 밤에 홀로 빛을 발하는 달의 자태를 표현한 말이다. 나는 이 표현만으로도 이 시인의 역량이 보통이 아님을 느끼고 무릎을 치며 탄복한다. 만약 눈이 있었다면 이 시인이 무엇이라 표현했을지 궁금해진다. 사아(些兒)는 약간, 조금이라는 의미이다.
우리 속담에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이란 말이 있다. 여러 조건을 다 갖춘 사람이나 사물을 구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은 그런 것을 구하기 어려우니 그것이 귀하다든가 그런 것을 구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대개 그런 까다로운 자신의 기준을 낮추고 현실적인 대책을 강구하라는 맥락에서 사용된다.
지금 이 시는 그와 정말 딱 반대이다. 너무도 깨끗함, 즉 청절(淸絶)의 아름다움을 음미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서운하다는 말이다. 이 시인이 그렇게 생각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즉 작년 바로 오늘, 하얀 눈, 밝은 달, 그윽한 매화 이 3가지를 두루 갖춘 광경을 감상했다는 것이다. 대단한 안복(眼福)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은 그때의 감격은 말하지 않고 오늘도 작년처럼 매화도 피었고 달도 떴지만 눈이 없다고 말하여 올해의 아쉬움 속에 작년의 기쁨도 아울러 추억하고 있다. 시인의 말대로 하면 달과 매화가 정말 잘 어울린다고 한다. 그런데 청절은 매화와 눈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3가지가 갖추어져야 더 바랄 것이 없는데 지금은 딱 한 가지 눈이 없어 아쉽다고 한다.
이 사는 어려운 말도 거의 없고 내용도 복잡하지 않다. 다만 시에서 말하는 있는 상황이 현실에서 이루기 어려운 조건일 뿐이다. 마치 이 시인이 시와 사, 글씨에서 이룬 것이 이 시에서 말한 것과 같다. 보통 시, 서, 화를 삼절(三絶)이라 하는데 동양의 전통에서는 이런 것이 큰 의미가 있다. 각 예술의 장점을 결합하여 문기(文氣)가 풍부한 작품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소동파, 조맹부, 예찬, 심주, 문징명 이런 사람을, 한국에서는 안평대군, 신위, 강세황, 김정희 이런 사람을 들 수 있다. 이 사는 어쩌면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읽을 때 비로소 의미가 풍부해짐을 느끼게 된다.
이 사를 지은 장효상(張孝祥, 1132~1169)은 절강성 영파 사람으로 당나라 시인 장적(張籍)의 7세손이며 호는 우호거사(于湖居士)이다. 1154년에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지냈고 문집 《우호집(于湖集)》이 있다. 그는 시와 사를 잘 썼는데 시는 두보를 종주로 하는 강서 시파의 영향을 받았고 사는 풍격이 호방하여 남송 호방사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글씨도 안진경과 미불의 필법을 위주로 하되 여러 서가를 두루 배웠는데 당시에 높은 평가를 받았다. 종합적으로 개괄해 보면, 장효상은 문장보다는 시를 잘 쓰고 시보다는 사가 뛰어났다고 한다. 그의 사는 소동파를 계승하고 다시 신기질(辛棄疾)로 이어지는 남송 사단의 큰 맥이라 할 수 있다. 다만 38세의 한창 나이에 죽어 자신의 역량을 다 발휘하지 못하였다.
365일 한시 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