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인문학 14-탁발선비 천년기행

솔체꽃과 개미취, 둥근이질풀은 보라색을 자랑한다. 배초향도 무리지어 보라색을 노래하고, 분홍바늘꽃도 보라색 꽃잎을 방긋거린다. 층층잔대도 작은 종 모양의 보라색 꽃을 아래로 향하고 있는데 길게 삐져나온 꽃술이 신비의 바늘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마타리와 애기똥풀은 강렬한 노란색으로 푸른 숲에서 홀로 튀어 오른다.

북방 탁발선비의 발원지인 네이멍구자치구 후룬베이얼시 어룬춘 아리허진의 외곽 산속에 있는 알선동.

독특한 모양도 많다. 오이풀은 벌레의 꼬치가 시커멓게 말라붙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알갱이 하나하나가 꽃으로 피어난다. 그렇게 나온 오이풀의 주홍색 꽃잎은 작지만 찬란하다. 쉬땅나무는 일부만 꽃잎을 열고 있으면 아직 열리지 않은 꽃망울과 이중창을 하는 느낌이다. 두메부추도 쉬땅나무 꽃과 비슷해서 하얀 횃불 모양이다. 자주꽃방망이는 정말 자주 꽃을 꽂은 방망이 같다. 사방으로 뾰족하게 솟은 꽃잎이 이채로운 닻꽃은 여행객의 시선을 한참이나 잡아매두곤 한다. 불과 이백여 미터밖에 되지 않는 길을 걸으면서 내 눈에 담긴 야생화들이다. 그야말로 야생화 천지이다.

동북아시아 지형도를 보면 대흥안령 산맥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만주의 서북쪽에 서남방향으로 1400킬로미터나 늘어져 있다. 북위 50도에 걸쳐진 대흥안령 북단의 어느 계곡은 이번 여름에도 야생화가 만발했다. 변방의 꽃들이다. 중원의 정원에서는 궁녀의 얼굴만한 큼직한 모란꽃이 시인묵객과 황제의 사랑을 받고 자라지만, 변방에서는 바람과 추위에 버티면서 작은 꽃과 가는 줄기로 질긴 생명력을 화려하게 이어간다. 자작나무와 가문비나무 사이의 꽃밭을 한참 걸어가면 커다란 동굴이 나온다. 높이가 20여 미터, 폭이 27미터, 깊이는 90미터이다. 널찍한 광장이 바위산 큰 입 속에 들어앉은 듯하다. 동굴에 들어서면 신령의 동굴이란 느낌이 밀려온다. 중국 네이멍구자치구 후룬베이얼시 어룬춘 자치기 아리허진(阿里河鎭)의 외곽 산속에 있는 알선동(嘎仙洞)이다.

내가 알선동을 처음 찾은 것은 2010년 8월 하순, 자작나무 잎사귀가 이미 노랗게 물들어가는 계절이었다. 베이징에서 탄 기차에 26시간을 앉아서 버티고, 씰룩씰룩거리고 쿵쾅쿵쾅대는 시외버스를 2시간여 견디고, 다시 허접한 시골 무면허 택시를 타고 20분 정도 와서야 동굴 앞에 설 수 있었다. 나를 긴 여정을 감수하고도 이곳에 오게 한 것은 <제국으로 가는 긴 여정>이란, 박한제 서울대 명예교수가 쓴 역사기행서이다.

범상치 않은 제목에 선비족 탁발부의 천년 역사를 응축되어 있다. 대흥안령 깊은 산속의 알선동 일대에서 살다가, 지금의 후룬베이얼 초원으로 일차 남천을 했다. 이곳에서 몸집을 키워서는 흉노고지까지 이차 남천을 하여 북위(北魏)를 세워 북중국을 통일했고, 호한(胡漢)을 융합하는 거대한 변혁을 이끌었고, 종국에는 대당제국에 이르는 대서사시이다.

가을에 찾은 대흥안령

탁발선비의 북위가 대당제국으로 연결되는 과정은 드라마 이상의 드라마였다. 북중국을 통일하고 호한융합까지 강력하게 밀어붙이면서 에너지를 소진한 북위는 서위와 동위로 분열됐다. 동위는 고환이, 서위는 우문태가 실권자가 되어 탁발 씨 황제를 휘둘렀다. 고환과 우문태 모두 아들 대에 가서 탁발 씨 황제를 폐하고 각각 고 씨의 북제와 우문 씨의 북주라는 새 왕조를 열었다. 북제는 북주에게 정벌당해 먼저 사라졌고, 북주는 다시 양견에게 먹혀 수나라가 됐다. 수나라는 남조의 진(陳)을 정벌해서 남북조를 통일했으나 얼마 가지 못하고 이연의 당나라로 뒤집어졌다.

북위(16국) – 서위(동위) – 북주(북제) – 수의 통일(남조) – 대당제국으로 이어지는 왕조 교체가 복잡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간단하다. 정치적으로 북주 수 당 세 왕조는 ‘한 통속 세 집안’이었던 것이다. 서위의 실권자 우문태를 중심으로, 북위 무천진(武川鎭, 지금의 후허하오터시 무천구) 출신들이 탁발선비라는 울타리 안에서 결집[관롱집단]했다가 자기들끼리 치고받으며 정권을 탈취한 것이다. 수문제 양견과 당고조 이연 모두 관롱집단 출신이다. 이들이 한 통속이란 것은 그들 사이의 혼맥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수나라는 북주의 사돈이고, 당나라는 북주의 사위이다. 혼맥의 중심에는 독고신이란 인물이 있는데, 그의 세 딸은 각각 북주 수 당의 황후가 되었다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남의 나라 당나라를 굳이 대당제국이라 할 만한가. 서로 다른 혈통과 문화를 공존하게 하는 거대한 국가 시스템을 제국이라 한다면 충분히 그렇게 묘사할 수 있다. 5호16국 자체가 북방 호족과 중원 한족이 혼거하는 시대였다. 이를 통일한 탁발선비는 호한을 융합하는 개방적인 정치사회 체제를 강력하게 추진했다. 당나라는 북위의 호한융합을 이어받아 개방적인 제국을 세웠던 것이다.

제국으로서의 당나라는 인접국과의 관계도 이전과는 달랐다. 신라인 최치원과 혜초는 당나라에서 차별받지 않고 업적을 쌓았다. 일본인 승려 옌닌도 그랬다. 고선지는 적국이었던 고구려의 포로 2세였지만 당나라 군사 최고위급까지 오르지 않았는가. 서역의 많은 이민족들이 당나라에 들어와서 활동한 예는 무궁무진하다. 배타적인 정복자 한무제와 쇄국으로 지키려던 명나라와는 질적으로 다른, 개방된 제국이라는 것이다.

당시의 유럽과 비교하면 그 의미가 훨씬 선명하게 드러난다. 동아시아에서는 북방민들의 대거 남하하자 호한융합이란 새로운 문명을 창출해 대당제국이라는 역사의 진보를 이뤄냈다. 유럽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게르만족의 이동이라는 변화가 닥쳐왔지만, 그 충격에 허우적대다가 암흑의 중세로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 결과 대당제국의 수도 장안은 100만 인구를 자랑하는 당시 세계 최대의 도시가 되었다. 그때의 로마는 제국의 수도에 어울리지 않게 인구 10만 수준에서 그나마도 허덕이고 있었을 뿐이다.

알선동에서 시작된 두 번의 남천 역시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한 과정이었다. 알선동 일대의 삼림 지대에서 살아오던 탁발선비는 BC 1세기 경 일차 남천을 했다. 서쪽으로 대흥안령을 넘었고 어얼구나강(아르군강, 현재 중러의 국경 하천)을 만나 남하하여 후룬호(呼倫湖) 일대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초원에 적응하며 힘을 키운 탁발선비는 3세기 초(2세기 중엽이라는 주장도 있다) 다시 서남으로 멀고 먼 이차 남천을 했다. 남천 도중에 흉노의 잔여부락 십여만을 흡수하기도 했다. 탁발선비는 흉노고지, 지금의 네이멍구 자치구 수도인 후허하오터 인근에 도착했다. 몇 번의 위기를 넘나들다가 탁발의로가 대국(代國 310~376년)을 세웠다. 대국은 춘추시대의 제후국의 명칭이기도 하고, 지금은 산서성의 대현이란 지명으로 남아 있다.

대국은 전진(前秦)의 공격을 받아 주저앉기도 했으나, 전진이 비수의 전투에서 동진(東晉)에게 패하면서 회생의 기회를 잡았다. 탁발의로의 손자 탁발규 도무제는 386년 북위를 세우고 평성(平城, 지금의 산시성 다퉁大同)으로 천도하여 평성시대를 열었다. 3대 황제인 탁발도 태무제는 북중국 통일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4대 문성제, 5대 헌문제, 6대 효문제까지 급진적인 호한융합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관원들은 한족 복장을 착용하게 했고, 궁정에서는 선비어가 아닌 한어를 사용케 했다. 심지어 자신들의 전통적인 복성을 한족 방식의 단성으로 바꾸게 했다. 황제가 앞장서서 탁발 씨를 원(元) 씨로 개성했다. 호한융합의 하이라이트는 평성에서 낙양으로의 천도였다.

그러나 북위의 에너지는 거기까지였다. 통일과 융합의 꽃을 피우는 것은 후대 왕조의 몫으로 넘어갔다. 앞에서 짚어본 북주-수-당으로 이어진 왕조교체와 대륙통일의 역사이다.

북위 탁발선비의 후예인 대당제국은 국제적인 수도 장안에서 꽃을 피웠다. 꽃은 실크로드의 종착이자 시발점인 서시(西市)에서 가장 화려하게 만발했다. 지금 그곳에 세워진 대당서시 박물관에서 돌아보면, 중원의 실체는 쟁투의 무대라는 생각이 든다. 변방은 무대로 오르는 대기실이었다. 중원의 황성에는 궁녀와 환관들이 가득 찼고, 도성에는 황제의 발치에 기대어 ‘입으로는 천하를 논하나 흉중에는 일계도 없는’ 군상들이 넘쳤다. 반대로 변방에는 황제가 없었다. 거칠게 깨진 원석들이 널려 있는 황무지였을 뿐. 그러나 변방은 다음 시대의 황제를 배태하고 미래의 제국이 고요하게 성장했던 곳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알선동이었고, 그것은 제국으로 가는 긴 여정의 출발점이었다.

대흥안령 계곡에서 만난 야생화들. 왼쪽부터 개미취·솔체꽃·두메부추·분홍바늘꽃·애기똥풀

거란이 말 위에서의 정복자로 군림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칭기즈칸과 그 후예들은 그렇게 세계제국을 이루었고, 만주족은 동아시아 최대판도의 대청제국을 구가했다. 마오쩌둥이 권력을 쥔 것도 대장정, 곧 변방에서 변방으로 이어지는 길고 긴 도주로에서였다. 변방의 작은 야생화들이 내 좁은 소견에 새삼 찬란하게 보였던 것은 이런 역사를 의식해서였을 것이다. 묘한 것은 그곳의 야생화들 대부분은 위도 차이가 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야생화 자문 조영학 : 번역가, <천마산에 꽃이 있다> <여백을 번역하라>의 저자>

윤태옥(중국여행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