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포령휘鮑令暉 고시古詩 <손님이 먼 곳에서 찾아와>를 모방하여擬客從遠方來詩

고시古詩 <손님이 먼 곳에서 찾아와>를 모방하여擬客從遠方來詩/남북조南北朝 포령휘鮑令暉

客從遠方來 손님이 먼 곳에서 찾아와
贈我漆鳴琴 나에게 옻칠한 금을 주네
木有相思文 나무엔 그리움 무늬 있고
弦有別離音 줄에는 이별의 음이 있네
終身執此調 종신토록 이 곡조 지켜서
歲寒不改心 추울 때에도 변치 않으리
願作陽春曲 바라건대 양춘곡을 지어서
宮商長相尋 음률처럼 영원히 이어지길

이 시를 지은 포령휘(鮑令暉 : 420년 전후 출생)는 산동성 임기(臨沂) 사람으로 저명한 시인 포조(鮑照 : 416? ~ 466)의 여동생이다. 남조 시대에 드물게 자기 저작 《향명부집(香茗賦集)》을 남긴 여성이기도 한데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오빠 포조가 악부 시로 육조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다면 포령휘는 의고시에 특히 뛰어났다.

동한 시대의 시 중에 “손님이 먼 곳에서 찾아와, 나에게 비단 한 끗을 전해주네.[客從遠方來, 遺我一端綺]라고 시작하는 5언 고시가 있다. 이 시는 《고문진보》에 <고시(古詩)>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그런데 ‘고시’라고 하면 수많은 고시 중에 어떤 시인 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시인이 이 시의 첫 구를 제목으로 삼은 것이다. 제목 첫 글자에 ‘의(擬)’자를 쓴 것은 뒤에 제시한 고시를 ‘모방했다’는 의미이다.

오늘날은 모방이라고 하면 예술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심지어는 표절이라는 비난에 직면하기도 한다. 모방하고도 모방이라고 빍히지 않는 것이 바로 모방에 대한 부정적 관념을 증명한다. 이는 대개 서양의 예술 상식에 기초한 발상이다. 중국의 경우, 시뿐만 아니라 산문, 그림도 모방을 많이 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작품을 흔히 의고시, 의고체, 의작(擬作), 방작(倣作) 등의 말로 부른다. 의작은 대개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존경의 대상인 경우가 많다. 이는 중국 특유의 학술 사상과 관련이 있다. 공자(孔子)를 위시한 유학자들은 전대의 학문을 잘 계승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학술사에서도 주석이나 교감 등이 발달했다. 온고지신이라는 말이 있듯이 앞 시대 대가들의 작품을 잘 소화한 바탕 위에서 집대성을 하는 것이 최고의 예술인 것이며, 지금 시대보다 옛날이 좋다는 상고(尙古)의 정신이 강했다.

이런 경향은 학문이나 예술뿐만이 아니라 친구를 사귀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같은 마을에 사귈 만한 사람이 없으면 한 고을에서 찾고 한 고을에도 없으면 한 나라, 한 나라 안에도 없으면, 이 세상 전체, 이 세상에도 없으면 옛사람을 친구로 삼으니 이를 상우천고(尙友千古)라고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특권층이나 재벌들이 자기들끼리 사귀고 하지만 예전에는 식자들이 친구를 매우 가려서 사귀었기 때문에 계회(禊會) 관련 문헌들을 보면 자기 동네 사람을 다 놔두고 멀리 가서 사람을 만나고 한 것을 알 수가 있다. 각설하고, 이런 전통의 시각에서 보자면 지금 포령희가 의작을 한 것은 비난의 대상은커녕 그만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과감히 드러낸 것이자 동시대의 문인들에게 그런 문재(文才)를 인정받았다는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본래 고시라고 하면 《시경》의 시를 ‘시(詩)’라 부르는 것과 달리 육조 시대 사람들이 한나라나, 위나라 시를 부르던 이름인데 지금은 당 이전의 시는 물론이고 후대의 평측을 따지지 않은 시를, 격률을 중시하는 초당 이후의 근체시(近體詩)와 비교하여 다 고시라고 부르니 고시의 범주가 아주 넓어졌다. 동한 말기는 매우 사회가 혼란하고 사람들이 전쟁에 동원되어 부부가 이별하는 경우가 많았다. <<삼국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지식인들도 마찬가지여서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세력가를 주군(主君)이라 섬기곤 했다. 이들은 타향에서 아내와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시에 여성 화자를 등장시켜 사랑을 변치 않는다는 내용의 시를 지어 자신들을 위로했다.

이 시인이 의작의 대상으로 삼은 시도 멀리 있는 남편이 비단을 보내주자 시골에 있던 여인이 그 비단으로 이불을 지으며 변치 않는 사랑을 노래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시는 다 남자들이 여성의 마음을 짐작으로 헤아려 지은 것이다. 그러나 이 시는 포령희 본인이 여성의 입장에서 이 시를 지었다는 면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이 시가 본래의 시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우아한 느낌이 든다.

이 시를 보면 고사를 잘 알고 함축적인 언어를 구사하고 있어 과연 포령희가 뛰어난 시인이라는 것을 절로 알 수 있다. 나무에 상사문(想思文)이 있다는 것은 옻칠을 한 나무결의 문양을 두고 한 말이다. 여기엔 고사가 있다. 전국 시대에 위(魏)나라는 진(秦)나라의 침략에 시달리고 있어 많은 남자들이 군사로 동원되었다. 어떤 부인이 종군한 남편을 그리워하다 죽자 사람들이 무덤을 썼는데 그 무덤에 난 나무의 가지와 잎이 모두 남편이 간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어 상사목(相思木)이라 불렀다고 한다. 《술이기(述異記》에 나온다. 여기선 남편이 보낸 금의 나무 무늬를 보면 그리운 마음이 든다는 말인데 시인이 이 고사를 떠올리도록 언어를 구사한 것이다. 또 현에 이별의 음이 있다는 말은 현에 무슨 악보 같은 게 붙은 것이 아니라 줄을 튕겨 보면 이별의 슬픈 감정이 든다는 말이다. 그래서 여인은 남편이 보낸 금을 받고 금을 어루만지고 줄을 퉁겨 보면서 종신토록 남편의 이런 정성을 품에 안고 변치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양춘곡(陽春曲)>은 <백설곡(白雪曲>과 함께 전국 시대 초나라에서 매우 고아(高雅)하고 심오한 노래였다.《문선(文選》의 <송옥대초왕문(宋玉對楚王問)>에 “어떤 사람이 초나라 서울 영중(郢中)을 지나다가 <하리곡(下里曲)>과 <파인곡(巴人曲)>을 부르니 화답한 자가 수천 명이고, <양아곡(陽阿曲)>과 <해로곡(薤路曲)>을 부르니 화답한 자가 수백 명이더니, <양춘곡>과 <백설곡>를 부르자 화답한 자가 수십 명을 넘지 못했다.”라고 하였다. 여기선 그만큼 고상한 노래를 의미한다. 이런 노래를 지어서 궁상각치우 오음(五音)이 화음을 이루듯이 자신도 사랑하는 남편과 영원히 금슬 좋게 살고 싶다는 소망을 노래하고 있다. 상심(相尋)의 심(尋)은 ‘연속적으로 이어지다’라는 의미이다. 부부 관계를 음률이 잘 맞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이 시는 의미를 생각하면서 외워보면 시가 지극히 자연스럽고 함축이 풍부하고 소리가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唐 周昉《调琴啜茗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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