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창위石昌渝 교수와의 대담

김민호(金敏鎬 翰林大 中國學科 教授) 진행
최진아(崔眞娥 梨花女大 中文科 研究教授) 정리

김민호 :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번 『중국소설연구회보』에서는 선생님과의 대담을 싣게 되었습니다. 우선 이렇게 시간을 허락하여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의 『중국소설원류론(中國小說源流論)』은 한국의 중국문학연구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고 한국어로 번역작업이 진행중에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기회에 선생님을 만나 뵙고 싶어 하는 한국의 많은 중국소설연구자들을 위해 중국소설연구에 대한 선생님의 고견을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먼저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중국소설을 연구하시게 되었나요?

스창위 교수, 사진 ⓒ 조관희, 2006

스창위 : 저는 1940년생이고 어릴 때부터 『삼국연의』․『수호전』․『서유기』 등의 중국고전소설을 즐겨 읽었지요. 중학교에 들어간 후에는 『홍루몽』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물론 대학시절(華中師範大學 中文系)에도 계속해서 중국고전소설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고요. 대학 졸업 후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는데, 그 때 문화대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문혁 시기에는 모든 대학졸업자들의 졸업자격이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공부를 더 할 수가 없었지요. 그러다가 1978년 사인방(四人幇)이 실각한 후에 대학졸업자격이 비로소 인정되었고, 중국사회과학원(中國社會科學院) 연구생원의 입학시험에 합격하여 제 1회 입학생이 되었습니다.

김민호 : 그러면 당시 선생님의 동급생들 중에서 지금까지 중국문학을 연구하시는 분도 있으시겠네요?

스창위 : 그럼요. 그 중 한 사람은 중국사회과학원 소수민족문학연구소 부소장으로 몽골문학을 연구하고 있는 자라가(扎拉嘎)이고, 또 한 사람은 중국사회과학원의 문학연구소 고대실(古代室)에 있는 후샤오웨이(胡小偉)입니다. 대학원 시절에 저를 지도해 주셨던 선생님들은 지금까지 문학연구소에 계시는 류스더(劉世德) 선생님과 판닝(范寧) 선생님 등이십니다. 삼 년을 공부하고 나서 계속해서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에 남게 되어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지요. 저의 지나간 사적은 간단한 편이지요?

김민호 : 선생님, 현재 중국의 고전소설연구 경향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스창위 : 우선 지금까지의 고전소설연구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부터 하겠습니다. 제1단계인 5. 4운동 이후부터 1949년까지의 연구들은 루쉰(魯迅), 후스(胡適), 정전둬(鄭振鐸) 등의 대학자들이 중심이 된 실증적 경향의 연구였습니다. 제2단계인 1949년부터 문화대혁명까지의 연구들은 사회학적인 입장에서 고전소설을 분석하는 입장이었지요. 예를 들면 고전소설을 현재의 어떠한 상황과 연계시켜서 분석하는 것입니다. 특히 문화대혁명시기에는 중국고전소설 연구에 대한 두 가지 경향이 있었지요. 바로 평홍(評紅)(『홍루몽』에 대한 비판)과 비수호(批水滸)(『수호전』에 대한 비판)였습니다. 처음 문혁이 일어났을 때에는 모든 고전소설에 대한 연구가 금지되었고 일반인들이 고전소설을 읽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마오쩌둥(毛澤東)이 홍루몽을 먼저 해금시켰는데 이때 전 중국은 홍루몽 연구에 대한 열기로 뜨거웠지요. 그리고 나서 곧, 1975년 말에 수호전 역시 해금되었는데 여기에는 사인방(四人幇)과 관련된 당시의 정치적인 배경이 다분히 함장되어 있었어요. 하여튼 이 시기에 『홍루몽』과 『수호전』에 대한 판본 연구, 사상 연구, 예술 연구 등 각 방면에 대한 연구성과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홍루몽』과 『수호전』 이외의 고전소설을 읽고 연구하는 것은 역시 불법이었지요. 지금에 와서 이 시기의 연구물들을 보면 연구성과가 그리 높지 않음을 볼 수 있는데, 아마도 그것은 문혁이라는 시대에 제한되어 있었던 사고의 문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학술회의에 참석한 스창위 교수. 오른쪽은 미국인 학자 엘런 위드머 교수, 사진 ⓒ 조관희, 2006

제 3단계인 1976년 덩샤오핑(鄧小平) 등장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소설연구들은 백화제방(百花齊放)의 시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우선은 문혁 당시 연구할 수 없었던 분야들이 해방된 것이지요. 예를 들어 『금병매』와 같은 소설을 연구할 수 없던 조치가 풀리었고 『수호전』 내의 농민반란 등의 주제도 연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또한 소설 연구의 방법도 다양화되었지요. 하지만 전통적인 판본연구에 대한 부분은 오히려 경시된 감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전인(前人)의 성과에 대한 부주의와 기초 자료에 대한 경시로 볼 수 있겠지요. 어쨌든 지금 상황에서의 가장 큰 문제는 국내학자들이 서로 베껴 쓰기식의 저급한 수준의 소설사를 너도 나도 지어내는 것입니다. 또 다른 점은 많은 젊은 학자들이 새로운 서구 이론을 너무나도 좋아한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서구 이론 자체에 대한 깊은 연구도 없이 다만 번역본에만 의존하여 제멋대로 중국소설연구에 적용시키고들 있습니다. 우리 같은 나이든 학자들은 원전의 한 글자 한 글자를 깊이 생각하는 데에서부터 소설연구를 시작하고 있지요. 경도학파(京都學派)에 속하는 어느 일본학자는 ‘단 하나의 글자를 파고들어 연구하는 데에서 그 학자의 모든 사상이 나타난다’고 말한 바가 있어요. 원전과 판본에 대한 튼튼한 기초 위에서만 자신의 생각을 나타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김민호 : 선생님께서는 일본과 한국의 연구경향이 중국과 어떤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스창위 교수, 사진 ⓒ 조관희, 2001

스창위 : 일본의 경우는 중국의 건가학파(乾嘉學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하나의 작은 주제를 들어 매우 깊고도 세밀한 연구를 하는 것이 그 특징이지요. 그리고 그들은 자료의 수집에 대해 매우 열심이예요. 하지만 이론방면에 대해서는 좀 좁은 면이 있습니다. 『홍루몽』을 연구한 이토오 쇼헤이(伊藤淞平), 판본 연구의 대가인 오츠카 히데다카(大塜秀高), 『서유기』 연구 방면의 이소베 아키라(磯部彰) 등은 중국에서도 유명하지요.

한국학자들은 비교적 큰 주제를 연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점은 중국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요. 그리고 판본과 자료의 고증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요. 제가 아는 한국학자들 중 박재연 선생과 최용철 선생이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삼언(三言) 가운데의 여성관(婦女觀)’ 같은 논문은 중국학자들이 즐겨 연구하는 주제이지요. 그리고 이등연 선생의 소설이론연구 분야 역시 중국학자들의 연구방법과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대담을 진행중인 스창위 교수와 김민호 교수, 사진 ⓒ 조관희, 2001

김민호 : 아마도 한국의 중국소설연구자들이 타이완에서 석, 박사를 공부한데에도 이런 연유가 있는 듯하네요. 선생님께서는 한국학자들이 중국고전소설을 연구함에 있어서 특별히 주의할 방면은 어떤 방면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스창위 : 바로 판본과 원전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점은 한국학자들 뿐 아니라 중국학자들도 마찬가지지요. 일본의 경우는 워낙 작은 주제를 선택하여 매우 세밀한 연구를 거쳤기 때문에 어떤 주제에 대한 한 학자의 연구가 종결지어지면 그 뒤의 학자들은 먼저 연구된 결과에 근거하여 다른 연구를 진행합니다. 하지만 한국이나 중국학자들은 동일한 성격의 커다란 주제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계속 연구를 하기 때문에 좀 문제가 된다고 봅니다. 즉, 하나의 연구가 종결되어지지 않았기에 다음번에 그 분야를 연구할 학자들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연구를 시작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지요. 중국의 유명한 장서가인 우샤오링(吳曉鈴)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지요. ‘나는 전문가(專家)가 아니라 벽돌 쌓는 사람(塼家)이다’고요. 이 말은 판본과 원전에 대한 차근차근한 연구가 모든 학문의 기초임을 제시해주는 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민호 : 선생님의 『중국소설원류론(中國小說源流論)』은 많은 한국학자들에게 깊은 공감과 자극을 준 책입니다. 특히 선생님의 책은 이전의 다른 책들과는 달리 소설연구를 시대별로 하지 않고 지괴(志怪), 전기(傳奇), 화본(話本) 등으로 나누셨다는 점에 있어서 특징적입니다. 이런 방식을 채택하신 이유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스창위 : 이런 식으로 소설을 나누어 설명한 점은 제가 처음으로 시도한 새로운 방법이 아닙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문체(文體) 관념을 중시했습니다. 차오피(曹丕)의 『문론(文論)』에서나 류셰(劉勰)의 『문심조룡(文心雕龍)』에도 이러한 점은 이미 나타나 있습니다. 시대별로 나누어 소설연구를 할 때의 약점은 각각의 문체관념을 홀시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중국소설이 서구소설과 다른 점은 서구소설은 신화에서 기원하였지만 중국소설은 사전(史傳)에 그 출발점이 두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체가 더욱 중요하다고 볼 수 있지요. 이와 같은 중국전통의 문체 관념과 문체 발전에 입각한 연구라야 비로소 중국소설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구체적이고 세밀한 부분에 들어서는 다른 방법들을 고려할 수도 있겠지만 중국소설연구의 기본이 되는 것은 당연히 중국전통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민호 : 『중국소설원류론』이 출판된 지 이미 만 삼 년이나 되었습니다. 그 동안 선생님께서는 새로운 자료들도 더 많이 보셨을 것이고 좀 더 다른 생각들도 하셨을 줄로 생각됩니다. 선생님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중국소설원류론』의 결점이나 미처 언급되지 못한 부분은 어떤 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스창위 : 몇몇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이 좀 부족했었다고 생각됩니다. 예를 들자면 산문과 소설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못했습니다. 『장자(莊子)』에 대해서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소설발전의 과정에 관한 점들도 충분히 이야기 되지 못했지요. 즉, 오락과 교화의 전통에 대한 점과 설화의 전통과 사가(史家)의 전통, 아(雅)와 속(俗)이 소설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건드리지를 못했어요. 또한 소설과 문도(文道), 곧 소설과 사통(史通)의 모순이 소설에 영향을 준 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못했어요. 이런 특징은 서구소설과는 구별되는 중국소설의 특성인데도 불구하고요.

김민호 :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으신지 말씀해 주셔요.

스창위 : 앞서 말한 모자란 점들을 보충해서 중국소설발전론에 대한 책을 조만간 펴내려고 합니다. 여기에는 지난번에 언급하지 못한 부분 뿐 아니라 소설과 희곡과의 관계, 소설과 설창과의 관계 및 민간종교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것입니다.

김민호 : 선생님, 장시간 대담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해 주신 점들은 한국의 중국소설연구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스창위 : 별 말씀을요. 이런 기회를 얻게 되어서 저도 기쁩니다.

스창위 교수 부부와 대담을 진행한 김민호 교수 부부, 사진 ⓒ 김민호, 1997

[부록 : 중국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에 대한 간략한 소개]

중국사회과학원은 그 전신인 베이징대학문학연구소(北京大學文學硏究所)에서 출발한 연구기관으로 사십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중국사회과학원(中國社會科學院) 내에는 문학연구소 이외에도 철학연구소, 경제연구소, 법학연구소, 역사연구소, 소수민족연구소, 구어연구소, 세계종교연구소 등 산하 기관이 있다. 문학연구소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다양하고 방대한 양의 자료를 들 수가 있다. 대륙 뿐 아니라 홍콩, 타이완, 일본과 영미권 자료, 러시아, 독일, 프랑스 자료와 북한 자료가 총망라되어 있으며 송대(宋代)와 명청(明淸) 시기의 간행본들도 확보되어져 있다. 또한 한 건물 안에 철학연구소, 역사연구소 등 여러 연구소들이 함께 있으므로 각자의 관심분야에 따라 해당 방면의 연구원을 만날 수 있고 자료를 얻을 수 있다. 즉, 문(文)․사(史)․철(哲)을 아우르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소설방면의 연구원으로는 스창위(石昌渝) 선생 이외에 명청소설 전공인 류스더(劉世德) 선생, 소설 전반과 당대문화(唐代文化)를 연구하는 둥나이빈(董乃斌) 선생, 삼언이박(三言二拍) 분야의 쑨리화(孫麗華) 선생, 현대문학 뿐 아니라 고전소설 부분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양이(楊義) 선생 등이 있다. 특히 이번 연구생 선발시험에는 스창위(石昌渝) 선생 밑으로 무려 아홉 명이나 되는 소설전공자가 지원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에는 몇 가지 맹점도 있다. 우선 이처럼 엄청난 양의 자료가 확보되어 있음에도 자료 이용 자체는 매우 불편하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과학원이 국가 기관에 속하므로 융통성이 없고 내부규정이 수도 없이 많은 점에 기인한다. 예를 들자면 문학연구소의 경우 매주 화요일만 정상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사무 처리에 어려움이 많고, 선장본(善藏本) 도서의 대출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찾은 자료를 복사하려고 하면 7층의 문학연구소 복사실에서만 가능한데 규정상 책 한 권을 한 번에 복사할 수는 없고 삼분의 일씩 복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복사를 담당하고 있는 단 한 사람의 직원 이외에는 다른 사람은 절대로 복사기에 손을 댈 수가 없게 되어 있다. 또한 만일 철학연구소 자료를 복사하려고 한다면 철학연구소가 화요일 오전에는 복사할 수 없고 오후에만 복사가 된다는 자체규정을 알아야 한다. 비록 같은 사회과학원 건물 안에 있다고 할지라도 각각의 연구소와 그 산하의 담당부서 마다 모두 서로 다른 규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방문학자들을 당황케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게다가 사회과학원은 교육부 소속이 아니라 국가직속기관이기 때문에 유학비자를 받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방문학자들은 3개월 마다 비자를 연기해야 하는 번거로운 일을 해야 된다. 또, 설상가상으로 사회주의의 무사 안일한 작업태도와도 무관하지 않은 듯 담당직원이 자리에 있는 적은 거의 없고 종종 사무를 담당한 직원들의 불친절과 무책임에도 맞닥뜨리게도 된다.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에는 고급진수생(高級進修生)과 방문학자(訪問學者) 자격의 구분이 없다. 즉 문학연구소에서 석사나 박사과정을 하는 외국학생 이외에는 모두 방문학자에 속하는 것이다. 일단 방문학자 자격이 주어지면 문학연구소에서는 각각 개인연구실을 하나씩 마련해 준다. 그리고 한 사람당 백 장을 무료로 복사할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진다. 그리고 도서를 열람하고 대출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숙소는 사회과학원 연구생원의 전가루(專家樓)가 있는데 아파트 식으로 되어 생활하기에 편리하게 되어 있다. 방 두 개짜리는 하루당 중국돈 160원이고 방 한 개짜리는 110원이다. 또 전가루(專家樓) 옆에 새로 지은 숙소는 90원인데 취사는 할 수가 없다.

방문학자와 담당 선생님과의 수업은 개인 대 개인으로 진행된다. 즉 서로간의 가장 편한 시간을 정하여 선생님 댁에서 면담을 하는 형식이다. 이미 우리 회원 중에서도 몇 분이 문학연구소에 방문학자 자격으로 다녀간 바 있지만 여러 가지 불편한 점에도 불구하고 연구원으로 계시는 각 선생님들이 멀리서 온 한국학자들에게 기대와 애정을 가지고 지도해 주신다는 점만은 무엇보다도 마음이 놓여지는 점이라 하겠다.

[참고] 스창위(石昌渝, 1940~ ) 교수 소전(小傳)

고전소설 연구가. 1981년에 중국사회과학원(中國社會科學院) 연구생원(硏究生院) 문학과(文學系)를 졸업하였고 지금은 중국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연구원이다. 주요 저작으로는 『대항금병매연구논문선(臺港金甁梅硏究論文選)』(尹恭弘과 공편, 江蘇古籍出版社, 1986), 『금병매인물보(金甁梅人物譜)』(尹恭弘과 공저, 江蘇古籍出版社, 1988), 『금병매감상사전(金甁梅鑑賞辭典)』(주편, 北京師範大學出版社, 1989), 『신편중국문학사(新編中國文學史상․하)』(韋鳳娟․陶文鵬과 공편, 人民敎育出版社, 1989), 『중국소설원류론(中國小說源流論)』(生活·讀書·新知 三聯書店, 1994), 『중국고대문체총서·소설(中國古代文體叢書·小說)』(人民文學出版社, 1994), 『중국화본대계: 웅용봉간행소설사종등사종(中國話本大系: 熊龍峰刊行小說四種等四種)』(校點, 江蘇古籍出版社, 1994), 『중국화본대계: 청평산당화본(中國話本大系: 淸平山堂話本)』(校點, 江蘇古籍出版社, 1994) 등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小說”界說」(『文學遺産』 1994년 제1기) 등이 있다